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25)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26화
속죄 (4)
“이, 이…!”
라키엘의 몸이 떨렸다.
노골적인 조롱.
‘빛의 수호자’라 스스로를 칭하는 존재가 내뿜은 마기.
그것이 진짜 실수였을 리는 없었다.
“네놈… 대체 정체가 뭐냐.”
라키엘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강우를 노려보았다.
처음 그가 마기를 내뿜었을 때, 라키엘은 어딘가 낯익은 감각과 함께 오싹한 공포를 느꼈다.
그 정도로 막대한 양의 마기였다.
하지만.
‘사라졌어.’
두 번째로 그가 황금빛을 내뿜었을 때, 막대했던 마기의 기운은 온대간데 찾을 수 없었다.
아니, 마기는커녕 그와 완전히 상반되는 성력(聖力)이 그를 대신하고 있었다.
‘있을 수 없어.’
라키엘은 이마에 손을 짚었다.
그를 오싹하게 만들어졌을 정도로 막대한 마기를 지닌 존재가 순식간에 그만큼의 성력을 내뿜었다.
애초에 성력과 마기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
“…그랬군. 그 능력으로 가이아 님의 눈을 속였던 거냐.”
라키엘의 눈에 불똥이 튄다.
마기를 성력처럼 속일 수 있는 능력.
만약 가이아에게 그 능력을 간파하지 못했다면, 그에게 속고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정황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체….”
대체 왜.
“왜 나였던 거냐.”
왜 하필, 내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거냐.
라키엘은 입술을 짓씹으며 물었다.
그 이유라도 알고 싶다는 듯이.
‘내가 과거에 저지른 죄와… 연관이 있나.’
주먹을 굳게 쥔다.
어깨에 짊어진 죄악(罪惡)의 무게가, 그를 짓누른다.
그럴 가능성이 클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테니까.
아마, 그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라키엘은 각오가 담긴 눈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아, 그게 말이지.”
강우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아마를 짚었다.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필이면 중복 닉네임이어서 말이야.”
“…뭐?”
“아니, 내가 변명을 하나 하자면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없었거든?”
내가 그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강우는 라키엘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을 간략하게 알려줬다.
타락천사 콘셉트의 악역이 한 명 필요했는데, 부하에게 이름 하나만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하필 그게 라키엘이었다.
“햐, 세상 참 좁아? 그치? 거기서 중복이 뜰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고.”
억울하다는 듯 말한다.
“원망하려면 나 말고 발록을 원망해, 다 걔가 잘못한 거라니까?”
“이, 이….”
라키엘의 표정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그는 밀려오는 분노에 잠시 뒷목을 잡더니, 이내 영혼을 담아 절규했다.
“이 개자식이이이이이!!”
-쿠구구구궁!!
차원의 틈이 흔들린다.
마기를 전력으로 끌어올린 라키엘의 날개에서 검은 뇌전이 튀어 올랐다.
“새끼,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너무 야박하네.”
다 인생 경험이다 생각하고 받아들여야지.
강우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라키엘은 발작을 일으키듯 욕설을 내뱉었다.
검은 뇌전이 주변을 휩쓴다.
“가, 강우 씨.”
“임자, 뒤에서 지원해줘.”
강우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설아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섰다.
가늘게 눈을 떴다.
검은 뇌전에 휩싸인 라키엘을 응시한다.
‘괜히 마신의 친위대가 아니라, 이건가.’
강했다.
아니, 정확히는 강해졌다.
처음 김시훈, 우리엘과 싸웠을 때까지만 해도 강하기는 해도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치 개문(開門)을 사용했을 때처럼 가슴에 손을 올리고 난 이후에는 갑작스러울 정도로 그 힘이 강해졌다.
‘정면 싸움은 말이 안 되고.’
마신의 신격(神格)을 해방한 라키엘은 개문을 사용하지 않고는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느낌으로 보면 베히모스와 동급.
‘그렇다고 개문을 쓸 수는 없지.’
강우는 날카롭게 눈을 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개문(開門)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
하다못해 혼돈 계열 기술이라도 사용해야 신격을 지닌 존재에게 대항할 수 있다.
어느 쪽도 나름의 리스크를 감당해야 했다.
‘물론.’
일대일로 싸운다고 가정했을 때의 얘기.
‘괜히 임자를 데려온 게 아니란 말이지.’
강우는 힐끗 고개를 돌렸다.
한설아는 두 손을 모은 채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세라핌의 영혼을 각성한 후, 그녀의 버프와 치유 관련 신성 마법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그 효과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김시훈을 통해 이미 확인해둔바.
일대일이라면 승산이 없는 적이라도 그녀의 지원을 받는다면 얘기가 달랐다.
거기에 더해.
“크윽, 쿨럭! 쿨럭!”
‘오래 버티지는 못 하겠군.’
라키엘의 상태는 겉으로만 봐도 굉장히 위태로워 보였다.
‘그렇다면.’
강우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렸다.
거칠게 발을 박찼다.
망설임 없이,
도망친다.
“크읏!! 네노오오오옴!!”
“푸헤헤헤헤헿!! 꼬우면 따라오시던가!”
일부러 경박한 웃음을 흘리며, 라키엘을 도발한다.
분노하면 분노할수록 좋다.
이성을 잃은 짐승만큼 상대하기 쉬운 적은 없으니까.
-파지지직! 파직! 파지지직!!
‘오우, 시바.’
도망치는 강우를 향해 검은 뇌전 줄기가 쏟아진다.
무시무시한 속도에 강우의 뒷골이 서늘해졌다.
‘이거 너무 빠른데?’
음속을 넘는 속도로 도망치고 있건만, 라키엘은 정확하게 그를 향해 뇌전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강우는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검은 뇌전을 아슬아슬하게 바닥을 굴러 피했다.
-쿠구구구궁!
신성이 담긴 뇌전이 바닥을 때린다.
거대한 통로 바닥이 수백 미터 깊이로 뚫렸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라키엘은 창을 움켜쥐었다.
풍차처럼 창대를 돌리더니, 강우가 도망치는 방향을 향해 내리찍었다.
“암전(暗轉)-뇌섬(雷閃).”
-쩌저저적적!
창끝을 따라 쏘아진 검은 뇌전이 공간을 찢어발기며 날아왔다.
흠칫, 강우의 몸이 떨린다.
‘제길.’
피하기엔 너무 빠르다.
다급히 손을 들어올린다.
‘철벽의 권능.’
마기가 뭉쳐 거대한 방패의 형상으로 만들어진다.
“아이기스(Aegis).”
방패하기 보단 벽, 이라고 불러야 할 법한 방패가 만들어진다.
두 손으로 아이기스를 잡으며, 몸을 낮게 웅크린다.
만마전의 마기를 아이기스에 쏟아 붓는다.
하지만,
신성이 담긴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때였다.
“천신의 수호!”
한설아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마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방패에, 찬란한 빛이 덮어졌다.
그와 동시에 검은 뇌전이 방패를 후려쳤다.
-쿠구구구구구궁!!
“크으…!”
아찔한 충격이 강우를 뒤흔들었다.
몸 전체가 무시무시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뚫고 밀려났다.
치이이익!
검은 뇌전에 담긴 무식한 열기에 아이기스를 잡은 손이 타들어 갔다.
순식간에 살점이 녹아내리며, 뼈가 보일 정도로 상처가 커졌다.
‘제길, 지금 재생의 권능을 쓸 수도 없는데.’
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상처를 치료할 여유가 없었다.
신성(神聖)이 담긴 공격은 그 자체로 기운을 소멸시킨다.
아직 신성을 다루지 못하는 강우가 신성이 담긴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신성으로 인해 소멸하는 마기보다 더욱 많은 마기를 쏟아 부어서 막는 무식한 방법 외에는 없었다.
“이런 미친….”
라키엘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신성이 담긴 공격을, 단순히 마기를 쏟아 부어서 정면에서 받아 내다니.
애초에 신성은 같은 신성이 담긴 공격이 아닌 이상 막을 수 없어야 정상이다.
휘둘러지는 검을 물대포를 쏘아 튕겨내는 것과 같은 정신 나간 짓.
“크읏!”
생각지도 못한 법으로 공격을 막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그것도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라키엘은 살점이 녹아내리는 강우의 손을 바라보며 더욱 힘을 끌어올렸다.
“치유의 광휘!”
한설아가 다시 마법을 캐스팅하자, 살점이 녹아내리던 강우의 손이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다시 멀쩡해지기 시작했다.
강우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임자아아아아!’
역시 한설아를 데려온 것은 정답이었다.
“…어?”
라키엘의 입에서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설아를 바라보던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왜… 어째서?”
그의 몸이 덜덜 떨린다.
“세라핌님이… 아니 그럴 리가.”
창백하게 질린 라키엘의 표정.
강우의 눈이 빛났다.
‘아, 그러고 보니.’
세라핌을 손에 넣기 위해 마신의 유혹에 넘어갔다고 했던가.
강우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거 상황이 좀 재밌게 됐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수확.
강우는 능글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지? 뭐 문제라도 있나?”
“어, 어째서. 어째서 세라핌님이 이곳에 있는 거냐!!”
“응? 당연히 연인 사이니까 같이 있는 거지.”
“뭣?”
연인, 이라는 말에 라키엘의 두 눈이 부릅떠진다.
그는 강우를 향해 쏟아 붓던 공격도 멈춘 채 멍한 시선으로 한설아를 바라보았다.
“연인, 이라고?”
“그럼.”
강우가 한설아에게 다가가 과시하듯 그녀를 한 팔로 끌어안았다.
한설아는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이내 뺨을 붉히며 그의 품에 안겼다.
“아, 아아.”
라키엘의 몸이 떨렸다.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 적어도 라키엘의 눈에 비치는 세계는 무너지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무릎이 꿇렸다.
“세, 세라핌 님이… 사, 살아계셨다고?”
“정확히는 부활했지. 인간의 몸을 빌려서 말이야.”
“…….”
아드득.
라키엘의 이가 갈렸다.
섬뜩한 살기가 그의 눈에 서리기 시작했다.
“감히 네놈 따위가… 손을 대서는 안 되는 분이다.”
그 고귀하고, 아름다운 천사는.
“네놈 따위가… 손을 대서는 안 되는 분이란 말이다!!”
울부짖었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날개가 검게 물들면서까지, 수많은 동족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손에 넣고 싶었던 여인.
고귀하고 고결하며,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그의 ‘집착’의 대상.
그가 정체모를, 저열하기 짝이 없는 악마의 손에 넘어갔다고 생각하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뭐라고요?”
그의 외침에 대답한 것은 강우가 아니었다.
한설아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그녀는 거칠게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살기 어린 시선으로 라키엘을 노려보았다.
“아….”
서릿발처럼 차가운 시선에, 라키엘의 몸이 굳는다.
“강우 씨가 왜 저한테 손을 대면 안 된다고 하시는 거죠?”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 강우의 손을 잡아 가슴에 가져다 댄다.
자랑하듯 라키엘을 향해 왼손을 내밀었다.
“강우 씨랑 저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에요. 앞으로 평생,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영원히 같이 있기로 했다고요.”
한설아는 살짝 몸을 돌려 강우를 끌어안았다.
“그러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보란 듯이 살짝 발돋움을 해 강우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라키엘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 아으.”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 쑤신다.
시야가 흔들린다. 머리가 뜨겁다.
지금 눈앞의 상황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실감나지 않는다.
“아니야.”
이럴 리가 없다.
“아니라고….”
세계가 무너진다. 산산이 조각난다.
그를 이루고 있던 무언가가, 소중히 간직해온 무언가가 처참하게 망가져 갔다.
“아니….”
“뭐가 아니야.”
강우가 낄낄 웃는다.
“인정하라고. 넌 그냥 이제까지 삽질한 거야.”
“…….”
라키엘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우의 조롱이 이어졌다.
“뭐, 네놈 따위가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거참, 말만 들으면 지는 무슨 청렴결백한 줄 알겠어요?”
“너, 너….”
“속죄? 마신에게 조종당해 어쩔 수 없었다고? 아주 지랄 똥을 싸요, 그냥.”
강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처음 유혹에 넘어간 이유는 뭔데? 세라핌이랑 한 번 해보고 싶어서 홀라당 넘어간 거 아냐? 앙? 그런데 이제 와서 구질구질하게 조종당했다고? 네 의지가 아니었다고?”
“…….”
“감성 팔지 마, 새끼야. 포장 한 번 기가 막히게 하려는 모양인데, 그냥 이것저것 다 실패하니까 죄책감 좀 덜고 뒤지려고 열심히 딸치는 거잖아? 응? 맞아 아니야?”
쯧쯧. 혀를 찬다.
“추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라키엘은 몸을 떨었다.
강우가 내뱉은 말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를 헤집었다.
그리고,
무언가,
끊어졌다.
“아, 아아! 으아아아아아아!!”
광기가 차오른다.
이성이 증발하고, 그 자리를 광기가 채운다.
“이, 이 개새끼가아아아아아아!!!”
분노가 임계점을 넘는다.
라키엘은 살기를 뿌리며, 강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고 했다.
-쩌적!
“나의 아이야!”
“형님!”
“강우!!”
차원의 틈이 열리며 가이아와 김시훈, 우리엘이 나타났다.
라키엘은 그들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강우를 응시했다.
“…어?”
라키엘의 입에서 다시금 당혹스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방금 전 그를 조롱했던 악마는,
“쿨럭! 커허억!”
바닥에 쓰러져 몸을 비틀고 있었다.
“아, 안 돼….”
처절하게 몸을 비틀며, 눈물을 쏟아내며,
라키엘을 향해 무릎 꿇는다.
“제, 제발 설아만큼은… 제발….”
“…….”
“크윽! 나, 나를 죽여도 좋아! 하지만… 제발 설아는…!”
처절한 절규.
라키엘은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분노조차 날아간 듯, 허망한 시선으로 강우를 내려다보았다.
“나의 아이야!”
가이아가 다가와 강우를 끌어안는다.
그녀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라키엘을 노려보았다.
“네노오오옴!!”
“…….”
분노에 찬 여신의 외침을 들으며, 라키엘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하, 하하.”
달그락.
손에 쥔 창이 바닥에 떨어졌다.
마치 도박으로 모든 재산을 날린 사람처럼,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웃음소리.
투명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흑, 흐윽, 흐으으윽.”
타락천사의 흐느낌이 통로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