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ay away from my family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위나델의 손가락을 따라간 세르비투스의 붉은 눈 또한 이채를 띠었다.
파베는 서둘러 그들 곁으로 갔다. 그리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
파베 또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백 미터쯤 떨어진 숲에 울창하게 자라 있던 나무들이 픽픽 쓰러지는 중이었기에.
3미터가 넘는 키 큰 나무들 위로 상앗빛의 무언가가 이질적으로 솟아 있었다.
심지어 느리게 움직이고 있기까지 했다. 그제야 상황을 알아챈 파베가 중얼거렸다.
“마수…….”
거대한 마수 한 마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저를 가로막은 숲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돌파하면서.
마수의 투구 같은 밀빛 머리가 움직일 때마다 나무들이 파도처럼 흔들리며 우수수 쓰러졌다. 위나델이 놀란 기 가시지 않은 음성으로 물었다.
“저 마수도…… 립시산으로 가고 있는 걸까요?”
“아마 그럴 것 같구나.”
이 근처에 이만큼 큰 마수가 살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파베의 눈이 가늘어졌다.
세르비투스도 한마디 했다.
“다행히 위나델라의 집과 겹치지는 않는군요.”
“응?”
“마수의 동선 말입니다. 이곳에서 립시산까지 가는 직선 경로를 생각하면, 크로슈 저택과는 겹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파베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방금 제자의 말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저 방향으로 계속해서 움직이면…….”
이제 제3 위성도시라는 명칭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번화해진 쿠프룸은 각지에 가옥이 있었다.
쿠프룸을 저런 식으로 관통하여 움직이다간 엄청난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
파베는 더 생각하지 않고 마법을 썼다.
다음 순간, 그녀는 이동하는 마수 근처 허공에 떠 있었다.
“…….”
굼뜬 바위처럼 움직이던 마수가, 마나의 파동을 느꼈는지 파베를 돌아보았다.
밤바다 같은 눈은 빛마저도 삼킬 듯이 어둡고 검었다. 파베는 곧장 언령을 발했다.
“멈춰라.”
체고가 근 5미터에 달할 만큼 거대한 상급 마수였으나 대마법사의 언령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일 뿐이었다.
마수를 멈춰 세운 파베는 허공을 평지처럼 걸어서 짐승의 정면으로 갔다. 적당한 거리에서 눈을 맞춘 채 마수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
어느새 그녀를 따라 마법으로 쫓아온 세르비투스가 말했다.
“죽이십시오.”
“…….”
“인간들이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는 거라면, 여기서 죽이는 게 맞습니다. 이 정도 덩치면 북부까지 올라가며 여러 문제를 일으킬 겁니다.”
틀리지 않은 말이었으나, 그전에 짚고 넘어갈 것이 있었다.
파베가 제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가를 저택에 혼자 내버려 두고 온 거냐?”
“위나델라가 따라가도 괜찮다 말했습니다. 파베가 혹시 위험해질지도 모르니 얼른 가 보라고 하더군요.”
“……하아.”
세르비투스는 이런 면에서 왈라이카와 차이점이 많다.
왈리라면 아이도 데리고 오거나, 무슨 안전장치부터 해 주었을 텐데.
이쯤 체격이 큰 상급 마수가 흔한 것은 아니지만, 한 번이 있다면 두 번 또한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파베는 그에게 위나델을 데리고 오라 일렀다.
세르비투스와 함께 파베 곁으로 온 아이는 거대한 마수를 바라보며 몹시 신기해했다.
“우와, 진짜 커요.”
“상급 마수란다. 급이 높다고 해서 모든 개체가 다 거대한 건 아니지만, 급이 높을수록 덩치도 커지는 편이지. 마력 없이 이만큼 거대한 몸을 유지하는 건 어려우니까.”
돌로 만든 비늘 같은 외피에 싸여 있는 마수는 머리에 야만 전사의 투구 같은 녹색 뿔이 양쪽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세르비투스가 다시 말했다.
“피해를 막고 싶다면 지금 죽여야 합니다, 파베.”
“으음…….”
그 말에 위나델이 침음했다.
마수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본 소녀가 말했다.
“꼭 죽여야 하나요? 사람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사람에게 적대적인 마수가 위험한 것은 피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위나델라. 이쯤 거대한 상급 마수는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해를 입힙니다. 그렇다면 적대적인 마수와 다를 게 없습니다.”
매사에 냉정한 세르비투스다운 견해였다.
파베는 묘하게 처량해진 양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말했다.
“일단은 죽이지 말아 보자꾸나.”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가 말대로 인간에게 적대적인 것 같진 않다. 그렇다면 본래 지내던 곳에 돌려보내고 이후 행동을 지켜보는 것도 나름의 정보가 되지 않겠느냐.”
아이가 보는 앞에서 생명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말이 슬쩍 따라붙었다.
세르비투스는 영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으나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았다. 파베가 위나델을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아는 까닭이다.
다만 몇 마디 덧붙였다.
“이런 일이 이번 한 번일 리가 없습니다, 파베.”
“…….”
“우리는 힘이 있으니 마수들을 평화롭게 억제할 수 있지만, 다른 곳은 아니겠죠. 모든 마수들을 이런 식으로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파베는 의뢰소에서 지점장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레지아에서도 마수의 이동 때문에 문제가 생겼으며, 왕실에서 나서 상황을 살피고 있다는 이야기.
이 마수의 이동 또한 그녀가 되살아난 역리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면, 그로 인한 피해 또한 그녀의 책임이었다.
세르비투스의 말이 그 점을 예리하게 찔렀다. 파베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다른 인간들이 다치든 죽든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무정한 홍옥빛 눈으로 마수를 바라보며, 엘프가 이었다.
“내 세계엔 파베만 있으면 족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다른 인간들의 상처에 슬퍼하고, 자책하겠지요. 지난 150년 전에도 그랬듯.”
냉정하고 무정하기에 오히려 이타를 논할 수 있는 이성이 새삼스러웠다.
이것 또한 네가 세상과 어우러지는 과정이면 좋으련만.
파베는 세르비투스의 단정한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중요한 점을 짚어 주어서 고맙다며 감사를 표했다.
언령과 마법을 이용하여 마수를 본디 살던 곳으로 돌려보냈다.
마수가 살던 곳은 쿠프룸 외곽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이었다. 파베는 마수가 보금자리에 틀어박히는 것을 확인하고 몇 가지 마법을 걸어 놓았다.
[내 애기 오늘도 많이 바쁜가 보네.]하루 두 시간의 할당량을 받으러 온 샐리온이 파베 곁에 붙어서 쫑알거리는 중, 위나델을 세르비투스에게 맡긴 파베가 말했다.
“나는 상황을 더 확인해야겠다. 돌아올 때까지 아가를 보살펴다오.”
“그냥 우리도 같이 가면 안 됩니까?”
“혹시라도 힘을 써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아가에게 그런 모습은 보여 주고 싶지 않아.”
“…….”
세르비투스는 가벼운 불만이 어린 표정으로 파베를 배웅했다.
덕분에 샐리온만 신이 났다.
[와, 애기랑 단둘이 있을 수 있다니 너무 좋다. 상황 확인한다고 했지? 어디로 갈 거야?]“의뢰소에서 파악했던 곳은 전부 가 볼 참이다. 마수가 없어졌다면 위치를 추적하고, 남아 있다면 마법을 써 놔야겠지.”
“가능하면 적은 마나에도 유지되는 방향으로 술식을 개조할 거다. 그리고 내 마나가 좀 많으냐? 그 정도로는 컵에서 물 한 방울 덜어낸 수준밖에 안 돼.”
[그렇긴 해.]둘은 의뢰소에서 받은 자료의 장소들을 일일이 순회했다.
운 좋게도 십중팔구는 본디 영역에 머무르고 있었으며, 떠난 마수들도 큰 피해를 낳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이 운이 계속되리라 기대할 순 없겠지만.
‘나 혼자 힘으론 무리야.’
파베 크로슈가 아무리 강력한 대마법사라고 해도 결국은 한 명의 인간이었다.
마력이야 소모되지 않고 다시 돌아온다 쳐도, 그녀의 시간에 한계가 있었다. 중급만 수백에 달할 마수들을 혼자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
마수들의 서식지를 전부 알 수 없다는 문제 또한 컸다. 시험 삼아 언령을 써 보았다가 실패한 파베가 한숨을 내쉬었다.
“세계가 요구하는 대가가 내가 지닌 마나보다 크구나.”
[어쩔 수 없지. 인과의 법에는 애기 특성까지도 어느 정도 반영되니까. 게다가 지금 상황 자체가 애기의 역리 때문에 발생한 거잖아. 대가가 더 크게 들걸?]속 편하게 대꾸한 샐리온이 침대에 눕듯 허공에 모로 누워 턱을 괴었다.
파베를 바라보며 세르비투스가 했던 것과 같은 말을 했다.
[그냥 위치 아는 것들이라도 다 죽여.]“…….”
[직접 하기 싫은 거라면 내가 태워 줄게. 애초에 그럴 가능성 때문에 애기애기 안 데리고 온 거잖아?]원하기만 하면 제가 모든 것을 처리해 주겠다 말하는 샐리온의 얼굴은, 자녀에게 장난감을 사 주겠다 말하는 부모처럼 다정하고 너그러웠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파베가 대답했다.
“그게 가장 편리한 방법이라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럼 왜 망설여?]“…….”
파베는 곧장 답하지 않은 채 잠시 말을 골랐다.
그리고 어조를 바꾸어 질문했다.
“샐리온. 마수들이 왜 생겨났는지 알고 있느냐?”
[외경에 기록되길 성신의 심장으로 땅을 정화한 후부터 생겨났다며? 나도 자세히는 몰라. 그땐 내 전대 정령왕이 있던 시기라서.]대수롭지 않은 듯 가볍게 흘러나온 대답이었으나, 파베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눈빛은 꽤 진지했다.
대마법사는 제 아버지나 다름없는 샐리온에게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는…… 외경의 내용이 의심스럽다.”
[흐음?]“신화를 일반적인 시각과 견해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만…… 그 내용을 현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