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33
정도마신 132화
“일군! 이군! 멈추시오!”
사완악을 비롯한 사람들이 있는 야산 아래에서부터 한 노파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는 심후한 내력이 실려 있었는데, 보통의 무공 고수가 지르는 소리와 달리 산 전체가 울리는 것이 아니라 귓가에 화살이 박히듯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음공(音功)의 고수만이 가능한 수법이었다.
또한 그 노파의 음성은 내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매우 다급하고 절박한 기색이 가득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큰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게 만들었다.
사완악과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산 아래쪽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한 노파가 풀포기를 사방으로 날리며 질풍 같은 신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칠군?”
노파는 바로 전대 천기자의 일곱 번째 제자, 칠군이었다.
이때 일군은 그녀를 보자마자 굳어진 안색으로 빠르게 물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사완악과 큰 싸움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노파는 주변의 상황을 보고는 의아한 듯 눈을 굴렸다.
현종은 일전에 노파와 마주친 적이 있기에 바로 알아보았는데, 그녀가 칠군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는 사실에 조금은 당황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현종은 마음속으로 천의문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했는데,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과 인연이 있는 그녀가 천의문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노파 역시 그녀는 현종을 발견하고는 네가 왜 이곳에 있느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다가, 이내
무적검천 사도준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사군……!”
노파는 평소 사도준과 사이가 별로 좋지 못했으나, 한 식구처럼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녀가 아는 사도준은 이렇게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매우 놀란 듯 사도준을 보다가 사완악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천의문의 사람들은 이 순간 매우 심각한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평소의 감정적인 그녀라면 매우 분노하여 어떤 행동이라도 했을 터인데, 어쩐 일인지 순식간에 감정을 추스르며 일군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정유문에 웬 괴인들이 나타났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야. 그런데…….”
노파의 음성이 무겁게 흘러나왔다.
“그들에게서 마공의 기운이 느껴지네.”
순간, 사람들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경직됐다.
노파가 말했다.
“일단은 이군이 펼쳐 놓은 진법을 작동시켰네. 그리고 육군이 지키고 있네. 하지만 그들의 기운은 정말로 심상치 않아서 진법이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네.”
노파는 고수다.
천의문에서 가장 고강한 무공을 지닌 사람은 무적검천 사도준이었고, 일군은 일반적인 무공이 아니라 다른 궤의 능력들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내공의 심후함으로만 따지자면 노파는 무적검천보다 더 뛰어났다.
그리고 육군 나양조는 그들만큼의 고수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자였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곳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다는 건…….
그녀와 육군, 둘만으로는 진법의 이점을 안고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노파가 다음 말을 빠르게 꺼낼 때였다.
파팟!
땅이 움푹 파이며 두 인영(人影)이 신법을 펼치며 전광석화처럼 달려 나갔다.
사완악과 현종이었다.
사완악의 신법은 가로막는 무엇이든 날려 버릴 것 같은 기세로 대기를 갈랐고, 현종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날개를 펼쳐 바람을 타고 나는 새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으음……! 대단한 신법이구나.’
노파는 두 사람의 경신술에 놀란 듯 잠시 말을 잃었다.
일군이 물었다.
“하실 말씀이 더 있으신 것 아닙니까?”
칠군은 다시 고개를 돌려 일군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때 칠군의 표정은 마공을 익힌 괴인들에 대한 말을 할 때보다 더욱 심각해져 있었다.
“일군. 영성옥(靈星玉)에서 천살성의 기운이 감지됐었네.”
“……!”
“……!”
일군과 이군, 오군, 팔군의 표정에 떠오른 충격과 경악은 형용할 말이 없었다.
노파가 품에서 영성옥을 꺼냈다.
여인의 주먹만 한 크기의 투명한 구슬은 빛을 받는 표면이 영롱히 반짝였다.
그리고 구슬의 안쪽에는 또 하나의 작은 구슬이 있었는데, 그 안쪽 구슬은 평소에는 겉과 마찬가지로 투명하지만 지금은 매우 옅은 자색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상서롭고 기이하게 생긴 구슬, 영성옥은 특별한 별의 기운을 품고 태어난 사람에게만 반응하는 천의문의 보물이었다.
안쪽 구슬이 옅은 자색을 띠고 있는 이유는 사완악 때문이었다.
자색은 자미성의 기운을 뜻했다.
그들의 사부, 전대의 천기자가 봉인한 사완악의 수호성이 기운이 깨어났다는 뜻이었다.
다만, 그 색이 옅은 것으로 보아 아직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완악의 신형이 멀어질수록, 자색의 빛은 서서히 사라졌다.
노파는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순 영성옥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네.”
수호성과는 반대로, 천살성의 기운은 붉은색을 띤다.
이때 이군이 물었다.
“영성옥은 어느 정도 가까운 곳에 있어야만 반응하지 않습니까? 설마 정유문을 공격해 온 괴인들 중에 천살성이 끼어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칠군 역시 도통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것이 너무 이상하네. 본래라면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만, 영성옥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가 곧바로 사라졌네. 그야말로 찰나였어. 아무리 사람의 신형이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해도 그런 속도는 낼 수 없지 않은가? 일군, 도대체 이게 무슨 현상이겠는가? 나는 그분에게 이런 설명을 들어 본 적이 없네.”
칠군이 말하는 그분은 전대의 천기자였다.
일군 백신형 역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역시 영성옥에 관한 기록 중 그런 말은 본 적이 없습니다.”
단순히 영성옥이 이상 현상을 일으킨 것일까?
천의문의 문도들은 쉽사리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백신형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하며 생각하다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군요. 일단은…… 정유문을 도우러 가야겠습니다.”
정유문에는 그들의 사형제인 육군 나양조가 남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팔군에게 말했다.
“사제는 사군의 시신을 수습해서 천천히 따라와라.”
“……예.”
그리고 백신형은 현종과 사완악이 사라진 방향으로 신법을 펼쳤다.
현종과 사완악만큼은 아니지만, 깔끔하면서도 표홀한 신법이었다.
백신우와 연비려, 칠군이 그 뒤를 급하게 따랐다.
* * *
정유문.
설린의 옆에는 황임과 관일성, 그리고 귀령들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설린은 갑자기 나타난 천의문의 문도, 육군 나양조를 보며 물었다.
“당신은…… 그리고 저들은 대체 누구입니까?”
육군은 무거운 눈빛으로 정유문 장원 밖에서 안쪽을 쏘아보고 있는 괴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천의문이라는 문파의 사람입니다. 지금은 자세한 것을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다만, 저들은…… 마공을 익힌 자들입니다.”
“마공이요?”
“아마도, 마교의 교도들인 것 같습니다. 오백 년 전의, 그 마교입니다.”
설린과 황임, 관일성은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오백 년 전의 전설적인 공포의 집단.
역사상 가장 강하고 잔혹했던 그 마교의 교도들이라니?
그들이 어떻게 강호에 나타날 수 있으며, 대관절 무슨 이유로 지금 정유문에 쳐들어왔단 말인가?
육군 나양조가 어두운 기색으로 말했다.
“이 진법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버텨야 합니다. 칠군께서 지금 천의문의 다른 사람들과 사완악, 그 사람을 데리러 갔습니다.”
설린은 육군의 심각한 표정과 잘게 떨리고 있는 두 손을 보며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지금은 속사정들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설린은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총관님, 숙부님, 정유문의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황임이 놀라 물었다.
“문주님은요?”
“저는 이곳에서 만일을 대비하겠습니다.”
황임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문주님을 두고 저희끼리만 대피하라는 말씀입니까? 하인들만 보내겠습니다.”
설린이 몸을 돌려 황임과 관일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총관님, 숙부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들과 대적하게 된다면 두 분의 무공 실력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이건 문주로서 명령입니다. 이렇게 지체할 시간에 어서 명을 따라 주세요.”
“으음…….”
관일성은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었다.
설린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옆에 있으면 설린에게, 혹은 만약 사완악이 이곳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방해만 될 것이었다.
다만 친딸, 친손녀처럼 여기는 설린을 혼자 두고 대피해야 된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만사무가 말했다.
“문주님은 우리가 지키고 있을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관일성은 피가 나도록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알겠네. 부탁하네.”
그러고는 주변을 향해 크게 외쳤다.
“모두 나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와라!”
관일성은 아무 망설임 없이 하인들을 데리고 움직였다.
하지만 그가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설린도, 황임도 느낄 수 있었다.
‘사공자…… 어서…… 어서 와 주게.’
황임은 잠시 바깥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관일성을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이때였다.
드득!
드드드드득!
갑자기 땅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정유문의 장내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육군 나양조의 표정은 더없이 다급해지고 일말의 절망감마저 느껴졌다.
“이럴 수가……! 벌써 진법이……!”
그리고, 쾅!
굉음과 함께 검은 옷을 입은 이십 명의 괴인들이 일제히 정유문의 담을 넘어 날아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악마가 담을 타고 들어오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중 한 괴인이 선두에서 검을 들고 귀신처럼 다가왔다.
“멈춰라!”
육군 나양조는 일장을 날리며 괴인에게 맞서 갔다.
검광이 번쩍이며 육군 나양조의 전신요혈을 찔러 왔다.
검과 손이 어지러이 얽히며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십여 합을 주고받았다.
나양조는 팔군을 제외하면, 천의문의 제자들 중 무공이 가장 부족했다.
하지만 그의 특기인 경쾌한 보법을 밟아 가며 맞서자 괴인도 쉽사리 그를 벨 수 없었다.
괴인의 뒤를 이어 다른 흑의인들도 검광을 뿌리며 달려들었다.
만사무와 묵영, 천화가 앞으로 나섰고, 설린은 장내에 남아 있는 정유문의 식구가 없는지 확인한 뒤, 그 뒤를 따랐다.
까가가가강!
깡깡!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