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36
정도마신 135화
사완악이 백신형을 향해 내공을 끌어 올리고 있을 때, 현종은 복잡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교의 교주가 정말 그렇게 대단한 자라면, 한 사람의 힘이라도 더 필요하다.’
현종 역시 천의문이 지금까지 저지른 일들은 조금도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종은 얼마 전 개방과 함께 했던 조사에서 죄 없는 어린아이들이 마공의 수련을 위해 희생되었던 것을 떠올렸다.
갑자기 땅에서 솟은 것처럼 나타난 마교와 그들의 교주.
만약 그 교주가 천의문에서 말하는 천살성의 힘을 정녕 지니고 있다면?
온 강호가 힘을 합해 그들을 막아야 한다.
현종은 응당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감정적으로는 친우인 사완악이 천의문에게 느낄 증오와 환멸을 깊이 공감했기에 사완악을 말려야 할 것인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만약 천의문을 비호해 준다면, 완악은 뜻을 돌릴지언정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이때, 현종의 눈이 크게 떠졌다.
“너희 천의문은 이곳에서 죽는다.”
사완악은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말했고, 동시에 그의 신형이 백신형을 향해 덮쳐 갔다.
그 시간은 눈 한 번 깜짝할 정도의 찰나에 불과했지만, 현종의 머릿속에는 그야말로 수십 번의 고민과 갈등이 스쳐 갔다.
‘아미타불.’
속으로 불호를 외친 현종의 손에서 한 줄기 돌풍 같은 벽공장력(劈空掌力)이 뿜어져 나왔다.
소림사의 절학이자 사완악이 전개하는 파신마장의 원형인 백보신권이었다.
꽈앙!
천지를 흔드는 굉음과 함께 기의 폭발이 일어났다.
천의문의 문도들은 깜짝 놀란 얼굴로 눈을 크게 떴다.
백신형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의 소리는 사완악이 무적천검 사도준과 겨룰 때보다 더 크고 심장이 떨리는 폭음이었다.
그리고 이때, 사완악의 얼굴에는 미미한 충격이 떠올라 있었다.
현재 이곳에서 이토록 대단한 장법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고, 그는 결코 사완악의 앞을 가로막을 사람이 아니어야 했다.
사완악은 고개를 돌려 현종을 바라봤다.
“뭐 하는 거야?”
“완악…….”
“현종. 설마 이 녀석들을 옹호할 생각은 아니지?”
사완악과 현종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두 사람은 서로를 신뢰하고 그 누구보다 끈끈한 사이였지만, 각자의 기세가 너무나 비범하여 주변 사람들은 마치 호랑이와 용이 마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현종이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아니다.”
그 순간, 사완악의 얼굴에 왠지 모르게 깊은 안도의 빛이 흐르는 것 같았다.
현종은 사완악을 바라보며 진심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결정을 후회할 때가 있는 법. 나는 네가 저들에 대한 처사를 한 번 더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몇 번을 생각해도 똑같다면?”
“아무도 네 결정에 왈가왈부할 수 없겠지.”
“…….”
사완악은 현종의 말을 듣고는 다시 백신형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이 흘렀을까?
사완악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친구의 말을 존중하는 뜻으로 너의 말에 대해 세 번 정도 더 생각해 봤다.”
사완악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역시 너희를 용서할 수는 없다.”
사완악의 전신에 다시금 기의 흐름이 소용돌이쳤다.
그런데 이때,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약조를 지켜 주세요.”
그 여인은 천의문의 오군, 연비려였다.
사완악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약조?”
연비려는 사완악을 향해 걸어와 백신형의 옆에 서서 말했다.
“제 부탁을 들어주시기로 하셨죠.”
사완악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당신에게 한 가지 큰 부탁을 할 거예요. 그때가 되면 그 부탁을 들어주세요.’
‘하하하. 나중에 할 부탁을 들어달라는 게 부탁이란 말이군?’
‘염치없지만 맞아요.’
‘좋아, 그러지.’
연비려가 과거 정유객잔에 찾아왔을 때, 두 사람이 나눈 대화였다.
사완악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랬었지. 그래서, 지금 너희를 살려 달라는 건가?”
연비려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아니요. 천의문이 당신에게 한 행동을 용서해 달라는 것이 아니에요.”
사완악은 의외라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죽을 방법을 선택하게 해 주세요.”
연비려의 부탁은 사완악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우 뜻밖의 말이었다.
“죽을 방법?”
연비려는 백신형을 한 차례 쳐다보고는 말했다.
“대사형 말대로 천의문은 강호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일념만으로 지금까지 왔어요.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외면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 공자님과 설린 문주에게 큰 과오를 저질렀죠.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은 알아요. 다만…… 마교와, 천살성과 싸우다 죽게 해 주세요.”
연비려는 사완악이 대답을 하기 전에 다시 한번 말했다.
“저희는 사 공자님께서 하라는 대로 따를 거예요. 당신이 선봉에서 싸우라면 싸우고, 상대의 함정에 들어가라면 기꺼이 들어가겠어요. 당신의 복수 방법은 언제나 당한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 아니었나요? 우리가 당신 인생을 조종하려 들었으니, 이번에는 당신이 우리를 마음대로 사용하세요.”
사완악은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끼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 말은 마음에 드는군.”
연비려는 장내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보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우리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사 공자님은 마교와 싸울 수밖에 없어요. 정유문도 마교의 표적에서 예외는 아닐 것이고, 사 공자님은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을 테니까요.”
사완악은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마교가 정유문을 가만히 놔둔다 해도, 정유문의 문주 설린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녀는 만약 강호가 위기에 빠진다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검을 들 사람이었다.
“그 싸움에 너희를 사용해라? 그리고 너희는 목숨으로 사죄하겠다? 이 말인가?”
“맞습니다.”
사완악은 백신형에게 물었다.
“네 생각은?”
“사매의 말대로 해 준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소.”
“그럼 해 주기 싫은데?”
“…….”
백신형은 마치 처분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는 말을 아낄수록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사완악은 그 모습을 못마땅한 듯 바라보다 연비려에게 말했다.
“너는 참 묘한 재주가 있군. 별로 싸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든단 말이야.”
연비려가 정유객잔에 처음 왔을 때도 그랬다.
천기자의 제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완악은 그녀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이상한 기분은 설린과 현종에게서도 느껴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때 정유객잔에서 점소이로 일하고 얼마를 받았지?”
갑자기 나오는 엉뚱한 질문에 연비려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솔직히 답했다.
“갑자기 그건 왜…… 아무것도 받은 것은 없죠.”
사완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나는 계산은 확실한 사람인데 말이지. 좋아, 그렇게 하지.”
“아…….”
연비려는 마치 울 듯한 표정으로 사완악을 바라보다 말했다.
“미안해요.”
그것은 그녀가 천의문에 들어와 사완악의 존재를 알게 된 그때부터, 줄곧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물론 우리 문주님이 허락할 때 이야기야.”
사완악이 설린을 쳐다보자 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에게 가장 피해를 본 것은 사 공자님인데, 제가 그 결정을 따르지 않을 리가요.”
사완악은 손가락으로 이군 백신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이 남궁준휘의 배후였는데?”
“네?”
순간 설린은 놀란 표정으로 이군을 바라보다 그에게 물었다.
“정말 당신이 그 일을 꾸몄던 건가요?”
이군은 변명 없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군요.”
“그 말을 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이야말로 우리 사형제 중에서 가장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로 속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겠지요.”
설린은 이군을 노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맞네요. 나도 당신에게 사과 따위 받고 싶지 않군요.”
그리고 그녀는 사완악에게 말했다.
“저는 상관없어요.”
“그래?”
“네. 사 공자님 뜻대로 하세요.”
사완악은 설린을 잠시 바라보다 연비려에게 말했다.
“문주님이 허락하셨으니 그렇게 하도록 하지. 하지만 명심해.”
사완악의 얼굴에 씩 미소가 그어졌다.
“너희는 마교와의 싸움에 목숨을 바치겠다는 말을 반드시 지켜야 할 거야. 만약 그 싸움에서 살아난다면, 그때는 내 손으로 끝내줄 거니까.”
사완악은 이어서 백신형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만 따라와. 할 말이 있으니까.”
* * *
사완악은 백신형을 데리고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백신형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처소에 도착한 사완악은 돌연 내공을 일으키더니 백신형에게 물었다.
“이 방안에 내공으로 기의 막을 형성해 놨다.”
백신형은 담담히 말했다.
“어떤 말도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겠군요.”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나는 사실 너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네 단전을 파괴해서 천의문의 내공을 없애고, 섭혼술을 사용할 생각이었지.”
뜻밖의 말이었지만 눈치 빠른 백신형은 차분히 답했다.
“섭혼술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사정을 알게 된 당신에게, 내가 숨길 것은 없으니까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말하겠습니다.”
사완악은 백신형의 말에 잠시 머뭇거렸다.
백신형은 그제야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보아 온 사완악의 여유로우면서도 거침없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사완악은 어려운 말을 꺼내듯 입을 열었다.
“천기를 읽고 나를 사대악인의 제자로 만든 것은 전대의 천기자. 네 사부이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너희는 천살성도 가까이 있어야만 그 존재를 알 수 있다고 했지. 영성옥인지 뭔지가 반응해야지만 알 수 있으니까.”
“말을 돌려 하실 필요 없습니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사완악은 백신형을 노려보다 말했다.
“그럼 나는 처음에 어떻게 발견했지?”
“…….”
백신형은 사완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천천히 물었다.
“혹시…… 당신의 부모에 대해 묻고 싶은 것입니까?”
그 순간 사완악의 동공이 그답지 않게 흔들렸다.
사완악은 마치 허튼 소리를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백신형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다. 너는 내 부모…… 그들…… 에 대해 알고 있는가?”
백신형은 담담한 표정으로 사완악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사완악은 강호에 나온 이후로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이 거세게 박동하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그들은 누구지? 지금 어디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