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37
정도마신 136화
사완악은 철이 들면서부터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천기자는 어째서 자신을 사대악인에게 제자로 받아 달라고 했을까?
어려서부터 사대악인에게 교육을 받은 사완악이기에 딱히 그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강호의 제일기인이라는 사람이 그런 부탁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나이가 더 들면서, 사완악에게는 그 호기심을 넘어서 반드시 천기자를 만나야 하는 진짜 이유가 생기게 되었다.
자신을 낳아 준 부모는 누구인가?
뿌리를 알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
사완악은 나이가 들수록 부모에 대한 궁금증이 강해졌지만, 그와 같은 생각을 한 번도 사대악인 앞에서 발설한 적 없었다.
그 이유는 사부들 중 채보령과 있었던 일화 때문이었다.
자신을 사부가 아니라 어머니라고 부르게 했던 채보령은 어느 날 사완악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완악아, 네 진짜 어미가 누군지는 궁금하지 않니?’
사완악은 당시 채보령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하여 자신은 채보령을 진짜 어머니로 생각하고, 생모가 누군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때 채보령은 웃음을 터뜨리며 사마소가 들으면 아주 흡족할 만한 대답이라고 했는데, 사완악은 이때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자신이 부모를 궁금해하는 것을 사대악인이 알게 된다면, 특히 신천마뇌 사마소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거란 것을.
그 후로 사완악은 이 의문을 오직 가슴 깊은 곳에 숨겨 둔 채 살아왔다.
그리고 강호로 나오게 되었을 때, 사완악은 반드시 천기자를 찾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어린 자신을 사대악인에게 넘긴 천기자라면, 반드시 그의 부모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전대의 천기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사완악은 분노를 참기가 어려워 천의문을 몰살시키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백신형의 입에서 부모를 알고 있다는 말이 나오자 사완악은 흥분되는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천의문주 백신형은 그런 사완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당신의 말대로 아무리 사부님이라 하더라도 누가 수호성의 기운을 타고났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황제의 아들일 수도 있고, 농가의 자식일 수도 있었지요. 그래서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사부님께서는 천의문의 금지된 술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음양천자의 제자이자 천의문의 선조이신 천기께서 이 술법을 남기시면서, 하늘이 허락하지 않은 계시를 읽기 위해서는 천의신공을 극성으로 익힌 사람의 영혼이 필요하다고 하셨지요.”
사완악은 평소답지 않게 진정되지 않는 표정으로 계속 말하라는 듯 백신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신형이 이어서 말했다.
“수호성의 운명을 잉태한 여인은 무림의 사람이었습니다.”
“무림인이라고?”
순간, 사완악의 머릿속에 불안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내 사부님들과 원한이 있는 사람은 아니겠지?”
백신형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의 부모님은 사대악인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그래야지. 만약 그랬다면 네놈들을 곱게 죽이지는 않았을 거다. 그럼 누구지?”
백신형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대답했다.
“먼저 말씀드리자면, 당신의 친부는 돌아가셨습니다.”
사완악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느낌에 백신형을 노려봤다.
“죽었다고?”
“예. 어떤 명의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었다고 합니다.”
사완악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던지, 그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가 피가 흘러내렸다.
사완악은 그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사완악은 이성을 잃지는 않았고, 오히려 희망적인 눈빛을 떠올렸다.
부모님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수없이 해 왔던 것.
그런데 백신형은 친부가 죽었다는 말만 했으니, 친모는 살아 있다는 의미였다.
어쩌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백신형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는 마치 어떤 마음속의 큰 결심을 내려야 하는 사람처럼 눈빛이 복잡했고, 표정에는 감출 수 없는 그늘이 드리워졌다.
사완악은 협박하듯 그를 재촉했다.
“빨리 말해라. 죽여 버리기 전에.”
백신형은 한 차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고는 말했다.
“세외선녀 연가인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 있습니까?”
세외선녀 연가인.
사완악은 물론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사부 채보령과 함께 전대의 천하 삼대미녀 중 한 사람.
“천하 삼대미녀…….”
백신형은 목이 메는 듯한 마른 음성으로 말했다.
“그분이 당신의 친모입니다.”
“……!”
사완악은 잠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백신형을 바라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천하 삼대미녀, 세외선녀 연가인.
자신을 낳아 준 여인이 그녀라고?
그게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순간, 사완악의 신형이 폭발하듯 앞으로 쏘아지며 백신형의 목을 움켜쥐고 그대로 벽에 밀어붙였다.
“컥……!”
백신형은 목이 부러질 것 같은 고통에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사완악의 분노는 그 정도로 표현될 것이 아니었다.
사완악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사존의 기운은 건드는 순간 처소를 통째로 날려 버릴 듯 주변에 휘몰아쳤고, 눈에서는 백신형을 갈가리 찢어 죽일 듯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 엄청난 내공과 살기……!’
천의신공을 팔 성 단계까지 익혀 웬만한 마공이나 사공에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 백신형조차 숨이 막히고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살기였다.
사완악은 간신히 자신의 이성의 끈을 잡고 있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연비려.”
“…….”
“그녀는 스스로 세외선녀 연가인의 딸이라고 했다.”
백신형인 쥐어짜내듯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사매는…… 당신의 동생이 맞습니다.”
쾅!
백신형의 몸이 처소의 벽을 뚫고 날아가 마당에 처박혔다.
그리고 사완악이 날아와 다시 백신형의 멱살을 움켜쥐고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백신형의 머리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백신형은 아무 신음도 내지 않은 채 힘없이 중얼거렸다.
“미안합니다…….”
퍽!
우지끈!
쿠웅!
백신형은 다시 한번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 나무에 부딪치고 떨어졌다.
사람 허리보다 두꺼운 나무 기둥이 도끼로 베인 듯 반대쪽으로 쓰러지며 땅울림이 일었다.
“큭…….”
사완악은 고통을 참으며 몸을 웅크리는 백신형에게 다가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있겠지?”
백신형은 몇 차례 기침을 토해 낸 뒤 말했다.
“당신은 영리한 사람이니…… 그 생각이 모두 맞소. 사매는…… 오늘 같은 날을 위한 사부님의 마지막 안배였소.”
사완악은 다시 한번 주먹을 꽉 쥐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이미 사완악은 천기자의 생각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수호성을 악인으로 만들어 천살성을 억제하려 했던 천기자의 계획.
하지만 그는 만약 사완악이 영겁사령존의 악성을 이겨 내고 수호성의 봉인이 풀렸을 때에 대한 대비까지 해 두었다.
바로 사완악의 친동생을 자신의 제자로 만들어 사완악이 천의문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복수를 막고, 혈육을 위해서라도 천살성과 맞서게 만드는 것이었다.
사완악은 단숨에 백신형의 머리통을 부숴 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그녀…… 가 내 동생이라면, 만약 내가 너희의 계획대로 악인이 되어서 그때 정도맹이든 너희든 나를 죽였다면…… 네 사매는 스스로 혈육을 죽이게 되는 셈이었다. 그걸 알고 있는 거냐?”
백신형은 사완악의 말이 이어질수록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두 눈을 꼭 감아 버렸다.
그리고 힘들게 입을 열었다.
“사부님께서도…… 죽는 순간까지 그것을 가장 힘들어하셨…… 컥!”
사완악이 다시 백신형의 목을 잡고 목뼈를 부러뜨려 버릴 기세로 힘을 줬다.
백신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갔지만, 그는 발버둥 치지 않고 마치 죽음을 받아들이는 듯 꼼짝하지 않았다.
“미친 새끼들.”
사완악은 백신형의 머리를 땅에 꽂아 버렸다.
백신형의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사완악은 손으로 백신형의 머리카락을 잡아 뒤로 젖히며 말했다.
“그…… 여자는 모르고 있는 거겠지?”
기절하기 직전의 몰골로 백신형은 힘겹게 말했다.
“사매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세외선녀께서…… 당신의 존재를 함구하셨으니까요.”
“이유가 무엇이지?”
“사부님께서는 세외선녀를 속이셨습니다.”
“속였다고?”
“당신의…… 부친에게 생긴 희귀하고 치명적인 병환…… 그 병이 피를 이어받은 당신에게도 있다고……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런데 이때였다.
“무슨 짓이에요!”
슬픔과 놀람, 다급함이 섞여 있는 뾰족한 외침.
사완악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손에서 힘이 쑥 빠지는 것만 같았다.
오군, 연비려였다.
연비려는 신법을 펼치며 다가와 분노와 원망 섞인 눈빛으로 사완악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는 당신에게 마교와 싸우다 죽겠다고 약속을 했고, 당신은 그것을 허락했어요.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죠? 생각해 보니 분이 안 풀렸나요? 그래서 대사형을…….”
연비려는 백신형의 모습을 보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백신형은 그녀를 보고는 목 멘 음성으로 말했다.
“사매…… 나는 입이 열 개라도 그에게 할 말이 없다…… 그는 잘못이 없어…… 괜찮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
연비려는 울음을 참지 못하며 사완악에게 말했다.
“이래야지만 당신의 속이 풀리는 건가요?”
“…….”
사완악은 순간 그녀에게 어떤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이토록 머릿속이 어지럽고 심장이 요동치는 것은 처음이었다.
“왜 대답도 안 하죠? 좋아요. 우리가 당신에게 저지른 행동이 있으니 이런다 한들 어떤 말을 할 자격도 없겠죠. 그럼 차라리 지금 죽이세요.”
사완악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하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가…… 못 죽일 것 같으냐?”
연비려가 대답했다.
“아니요. 당신은 한다면 반드시 하는 사람이죠. 그래서 약속도 지켜 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대사형 말대로 우리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겠죠. 그러니 대사형도 죽이고 저도 죽이세요.”
“…….”
사완악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어떤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사매…….”
그런데 이때, 사완악은 연비려를 바라보는 백신형의 눈빛을 보고는 안색이 무섭게 굳어졌다. 연비려는 백신형의 모습이 안타깝고 가여운 듯 슬픈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 깨물고 있었다.
사완악은 대뜸 그녀에게 물었다.
“이 녀석을 좋아하냐?”
순간 백신형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고, 연비려는 황당하다는 듯 사완악을 노려봤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
“좋아하냐고 물었다!”
사완악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연비려는 깜짝 놀라 사완악을 바라보다 대답했다.
“그, 그는…… 내 사형이에요.”
“남자로 사모하는지 묻는 것이다.”
“도대체 내가 왜 당신에게 그런 것까지 대답해야 하죠? 그건 당신의 분노와는 전혀 상관없는…….”
“대답해!”
연비려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었다.
사완악이 말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이놈을 죽여 버리겠다.”
연비려는 사완악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당황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말했다.
“그는 내 사형이고,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