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79
정도마신 178화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과 오대세가의 가주들에게 무공을 전수 받은 후.
사완악은 정도맹 지하에 있는 밀실로 들어가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
명문대파의 진신 절학들을 익히며 얻은 깨달음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누구의 방문도 허락하지 않는 시간.
그야말로 식음(食飮)을 전폐한 폐관수련(閉關修鍊)에 들어간 것이다.
사람들은 사완악이 어떤 대단한 무공을 익히는지 궁금하여 밀실의 근처를 기웃거렸으나, 내부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흐르고.
사완악은 정확히 삼십 일 만에 다시 나타나 회의를 소집했다.
사람들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사완악을 찬찬히 살폈다.
이 대단한 천재가 본인답지 않게 폐관수련까지 하고 돌아왔으니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 달리, 사완악은 삼십 일 전과 비교하여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그저 얼굴에 한결 여유로움이 더해진 정도가 전부였다.
“마교 쪽에서 별다른 소식은 없었나?”
“없었소. 사 공자를 따라 폐관수련에 들어간 것처럼, 마교에 관련되어서는 단 하나의 잡음도 들려오지 않고 있소.”
“그래?”
사완악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종. 그러니까 마교의 오대 교주 종천은…… 황제가 될 생각이야.”
“……!”
사람들의 동공이 확장되며 사완악을 바라봤다.
“화, 황제?”
“천자(天子)를 말씀하시는 것이오?”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 황제가 그거 말고 또 있어?”
“그, 그에게 직접 들은 것이오?”
“아니. 하지만 그거밖에 없어. 그는 세상의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 천하를 다스리고 싶어 하니까.”
세상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 천하를 다스리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사완악의 말대로 자금성의 주인, 황제뿐이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대표들이 이토록 놀라는 이유는 그들이 바보라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중원에는 몇 번의 대혼란과 혈겁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과거 마교의 중원침공과 사령문의 등장 같은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세력은 없었다.
단순히 관무불가침이라는 불문율 때문이 아니다.
태극신검 상현 진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황궁에는 천황무위대가 존재하네.”
“천황무위대?”
이번에는 사완악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회의에 참석한 각 문파의 대표들은 모두 천황무위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장문인이나 가주의 자리에 오를 때, 황궁과 천황무위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기 때문이었다.
“황궁에는 천황무위대라는 신비한 무공을 지닌 집단이 있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황제의 세력은 아니네. 나라의 전쟁과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관과 무림에 큰 갈등이 생길 때만 나타나는 자들이지. 그들의 무공은 기이하게도 그 어떤 종류의 내공도 무력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들었네. 이들은 왕조가 바뀌어도 그들만의 기준으로 새 황실을 지정하여 무림으로부터 수호한다고 들었네. 관무불가침이라는 말은 그들로 인해 생겨났고, 과거 마교 역시 황실과의 싸움은 피했던 이유였네.”
사완악은 상현 진인의 말을 흥미롭게 듣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뭐,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글쎄. 그 황궁무위대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람이 정도맹에 있나?”
“그들은 무림과 밀접한 연을 맺지 않네. 하지만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네. 우리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장문인이나 가주가 바뀌게 되면, 천황무위대의 대주가 은밀히 방문을 하기 때문이네. 마지막으로 그와 만난 사람은…….”
상현 진인은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리며, 최근에 장문인이 되었던 종남파의 정옥을 바라봤다.
“정옥 장문인이겠군.”
정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칠 년 전이었지요.”
사완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런 유서 깊은 집단이라면 칠 년이라는 세월이 짧다고 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는 어떤 일이든 발생할 수 있기 마련.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리고 설령 그들이 아직까지 있다고 해도, 마교에서 그들의 무공을 깨뜨릴 방법을 찾아냈을지도 모르는 거고.”
“그야 그러네만…….”
“내가 천의문의 예언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천기자는 이번에 나타나는 천살성이 세상을 멸망시킬 거라는 했지. 그 안에는 당연히 황제나 천황무위대도 포함일 테고.”
“으음……!”
“아무튼 종천의 목적이 황제인 것은 분명해.”
화산파의 장문인 천향도는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했다.
“그럼 우리가 하루빨리 자금성으로 가서 황제 폐하를 보호해야 하지 않겠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황제의 충실한 신하다.
무림의 패권을 다투는 것과 나라의 역모를 꾀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
목숨을 걸고 황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그들의 마음에 가득했다.
이때 사완악이 말했다.
“그 편이 좋겠지. 하지만 너무 서둘러서는 안 돼. 마교 역시 그만큼 준비된 바가 있을 테니까. 우리도 그만큼 만반의 태세를 갖춰야겠지. 무공이 약한 사람들은 필요 없어. 어차피 마교의 교주는 내가 맡으면 되는 거고, 마교의 절정 고수들은 이쪽의 절정 고수들이 상대해야겠지. 당신들은 각 문파에서 마교의 일반 무인들을 상대할 수 있는 정예를 선별해 놔. 황궁으로 향하는 것은 보름에서 이십 일 정도 뒤로 하지. 내가 잠시 다녀올 곳이 있거든.”
* * *
회의실에서 나온 사완악은 연비려의 처소로 향했다.
“나와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 마교와 싸우기 전에 알아볼 것이 있어.”
“저와 함께요?”
연비려가 의아한 표정으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그래. 혼자 가면 적적하니까.”
“알겠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바로 채비할게요!”
사완악은 그동안 되도록이면 연비려를 모든 일에서 제외시키려 했었다.
연비려는 그것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오라버니에게 어떤 힘도 되어 주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을 필요로 하니 활력이 솟아날 수밖에.
사완악은 연비려가 봇짐을 준비해 나오자, 별다른 말 없이 바로 정도맹을 떠났다.
“오라버니,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예요?”
“낙양.”
“낙양이요?”
“가 보면 알아.”
두 사람은 정도맹에서 준비해 준 튼튼한 준마를 타고 관도를 따라 빠르게 달렸다.
사완악은 물론, 연비려 역시 천의문의 정순한 내공을 지니고 있기에 이삼 일 정도는 잠을 자지 않고 말을 타도 끄떡없었다.
그들은 중간중간 마을에서 지친 말을 바꾸어 타면서 낙양으로 쉬지 않고 이동했다.
그렇게 낙양에 들어서자, 북쪽에 병풍 같이 늘어선 산들이 나타났다.
“우리는 저 산으로 가는 것이다.”
“북망산(北邙山)이군요.”
낙양의 북쪽에 있는 북망산.
망산은 죽음의 산이라는 뜻.
멀리서 봐도 풍광이 수려한 산에 그러한 이름이 붙은 것은 공교롭게도 중원의 어떤 산보다 풍수(風水)가 빼어난 명산이기 때문이었다.
산수가 좋으니 역사적으로 수많은 제왕(帝王)과 왕후장상들이 북망산의 남쪽 지대를 묘로 사용했고, 시간이 흘러 그 일대는 공동묘지와 다름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사완악은 대관절 마교와의 싸움을 준비하는 이때에 무슨 연유로 급하게 북망산을 찾아온 것일까?
연비려는 내심 그것이 궁금했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외출인데 밥 좀 먹고 가자.”
사완악은 객잔에 들러 열 가지의 요리를 시켰다.
연비려는 사완악이 얼마나 식도락을 즐기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아니, 그런 사완악이 삼십 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수련을 했으니 맛있는 음식을 보고 눈이 뒤집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천천히 드세요.”
사완악은 술까지 시켜 꽤 오랫동안 식사를 즐겼다.
그렇게 날이 어둑어둑해졌을 때.
사완악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사완악은 객잔에서 나와 연비려가 따라올 수 있는 정도로 가볍게 경공을 펼쳤다.
‘오라버니는 저녁 시간까지 기다리고 계셨구나.’
왕들의 묘가 즐비한 북망산에 굳이 저녁에 오르다니.
의아한 일이었다.
게다가 사완악은 북망산의 남쪽, 그러니까 묘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일대로 산을 올랐다.
북망산 남쪽, 깊은 곳으로 들어서자 마치 귀신이 나타날 것 같은 짙은 안개가 가득해졌다.
잎사귀와 잔가지들이 밟혀 부스러지는 소리는 마치 사람의 뼈가 부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어쩐지 으스스하네요.”
연비려는 사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실제로 주위의 산세는 매우 음침했다.
짙은 안개는 방향의 감각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덤이 겹겹이 쌓이듯 널려 있었다.
간혹 파헤쳐진 무덤도 있었는데, 흙무더기 사이로 흰 백골이 삐죽 튀어나와 있어 연비려는 머리끝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북망산의 남쪽은 왕들의 묘가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부와 권력이 있는 자들은 산의 중앙과 북쪽의 좋은 묫자리를 가져갔다.
하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법.
힘없는 사람들 또한 죽어서라도 좋은 곳에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북망산에 소중한 사람들의 묘를 만들었는데, 그들은 이 남쪽 일대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죽은 후에도 완전히 평등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나중에는 묘도 만들지 못하고, 시체만 끌어다 놓는 사람들까지 생겨났으니 사방에는 심심치 않게 해골이 나타났고, 시체를 뜯으러 온 짐승의 흔적들도 보였다.
“오라버니, 뭘 찾고 계신 거예요?”
연비려는 참다못해 물었다.
그런데 이때 사완악이 제자리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중얼거렸다.
“대충 잘 찾아온 거 같구나.”
연비려가 의아해하려는 찰나.
사완악은 돌연 내공을 일으켜 동쪽과 서쪽을 향해 한 번씩, 벼락같은 권풍을 날렸다.
성벽을 부수기 위해 날아가는 바위처럼 가공할 위력의 권풍이 쏘아져 양쪽에 우뚝 솟아 있던 거목(巨木)의 기둥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쿵! 쿵!
두 그루의 나무가 기우뚱하며 서서히 쓰러지자 마치 지진 같은 땅울림이 일어났다.
연비려는 사완악의 돌발 행동에 깜짝 놀라 바라보다가 눈을 더 동그랗게 떴다.
주변의 짙었던 안개가 점차 사라지며, 놀랍게도 쓰러진 두 그루의 나무 사이로 새로운 오솔길이 나타났던 것이다.
“설마 진법이 펼쳐져 있었던 건가요?”
“그래. 하마터면 못 알아챌 뻔했네.”
연비려는 천기자의 제자였다.
이군만큼은 아니지만, 진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경험은 갖추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절묘한 진법이었다.
“이런 진법은 스승님의 진법 외에는 본 적이 없어요.”
“일단 가자.”
사완악은 성큼성큼 오솔길을 따라 들어갔다.
연비려가 그 뒤를 따라 어느 정도 걸었을 때였다.
“누구십니까?”
돌연 하나의 앳된 음성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