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87
정도마신 186화
“모두 물러서지 마라! 황제 폐하를 시해한 악마의 무리를 이곳에서 처단하라!”
“와아아!”
개방의 방주, 신주대일랑 방욱의 외침은 정도 무인들의 마음에 뜨거운 무혼(武魂)을 일깨웠다.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기세는 천하의 마교도들도 멈칫하며 뒤로 물러설 정도.
그런데 그때였다.
“크악!”
“컥!”
“끄악!”
돌연 마교의 진영에서 참혹한 비명들과 함께 피분수가 일어났다.
마교의 무인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봤다.
그것은 마교 진영의 가장 후방에 있는, 아직 정도맹의 무인들과 마주하지도 않은 마교도들의 비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마교의 진영에서 마교도 셋을 순식간에 죽여 버렸단 말인가?
그러나 잠시 후, 마교도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헉!”
“처, 천마대주……!”
큰 키에 길게 풀어헤쳐진 머리.
검고 각진 얼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흉터.
검은색 무복을 입고, 마치 얼음장을 보는 듯한 차가운 눈빛에 강철 같은 분위기를 지닌 사내.
그는 바로 마교 교주의 직속 부대인 천마대의 대주, 염궁이었다.
염궁의 입에서 땅울림처럼 묵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천마신교의 무인에게 후퇴는 없다. 물러서는 자는 내 손에 죽을 것이다.”
“……!”
“비켜라.”
염궁의 한마디에 마교도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만들었다.
염궁은 백 명의 천마대를 이끌고 그 길을 따라 뚜벅뚜벅 걸어 나와 선두에 서서 외쳤다.
“천마대가 앞장설 것이다! 신교의 교도들은 교주님을 위해, 황제 폐하를 위해 검을 들라!”
천마대주 염궁은 칠대마가의 가주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초절정의 고수였다.
또한 천마대의 대원들 한 명 한 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칼을 휘두르도록 혹독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기계 같은 무인들.
그들이 전장에 나타나자 주춤하던 마교의 기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천마대주가 왔다!”
“좋다, 중원 놈들의 씨를 말려 버리자!”
천마대주와 천마대원들은 거침없이 땅을 박차며 질풍같이 나아갔다.
“컥!”
“크윽!”
그것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가 덮치는 듯한 광경이었다.
염궁은 저승사자가 땅에 내려온 듯 차가운 얼굴로 검을 휘둘렀고, 정도맹의 무인 열댓 명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그야말로 추풍낙엽.
장내의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뀌어 마교도들은 악귀처럼 달려들고, 정도맹 무인들은 내심 크게 당황하여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전쟁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 나서주지 않는다면 승기(勝機)는 마교의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미타불!”
갑자기 울려 퍼지는 불호 소리.
그리고 나타나는 백여 명의 붉은 가사를 걸친 승려들.
선두에 선 중년의 승려가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사자후의 수법으로 외쳤다.
“소림은 백팔나한진(百八羅漢陣)을 펼쳐라!”
그 목소리에 정도맹 무인들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소, 소림? 소림이 왔다!”
“소림의 백팔나한진이다!”
백팔나한진.
소림사에는 무패전설로 유명한 십팔나한진이 있다.
소림사에 침략하는 절대고수를 대비하여 만들어진 최강의 진법.
그 위력은 과거 태산에서 현종과 사완악을 궁지로 몰아넣었을 만큼 대단한 진법이었다.
백팔나한진은 바로 그 십팔나한진을 변형하여 만든 대형 진법이었다.
십팔나한진이 한두 명의 절대고수를 상대하기 위해서라면, 백팔나한진은 다수 대 다수의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진법이었다.
즉, 십팔나한진은 절정에 이른 열여덟 명의 나한들이 고된 훈련으로 합을 맞춰 펼치는 진법이었고, 백팔나한진은 일류급에 들어선 소림사의 고수라면 누구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대형 진법이었다.
“핫!”
“핫!”
“핫!”
백팔 명의 소림 승려들은 일제히 기합을 지르며 일사불란하게 대형을 만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소림사를 대표하는 무기, 사람 키만 한 크기의 황토색 목봉이 쥐어져 있었는데, 도검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승복을 입고 목봉을 든 그들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정도맹 무인들의 가슴에 차분한 안정감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소림사 승려들의 눈빛에는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마교의 교주는 방장 대사와 원로 스님들을 시해했다. 소림은 그들의 죗값을 물을 것이다!”
방장 대사 현암은, 뛰어난 무공과 훌륭한 인품으로 모든 승려들에게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다.
또한 원로원은 그들의 스승이거나 스승의 스승인 어른들.
그들을 죽인 사람이 다름 아닌 소림수호승 현종이라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소림사였지만, 그만큼 그들이 이 전쟁에 임하는 각오는 목숨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리고 이어서 또 하나의 외침이 들려왔다.
“개방은 타구진(打狗陣)을 펼쳐라!”
개방의 용두방주, 신주대일랑 방욱의 음성이었다.
그러자 누더기 옷을 입은 개방의 거지들이 일렬로 죽 늘어서며 품에서 하나의 몽둥이와 구걸할 때 쓰는 밥그릇을 꺼냈다.
이 타구진은 개를 때려잡는 진법이라는 뜻으로, 사실 소림사의 백팔나한진과 비교하면 그리 대단한 원리가 숨겨진 진법은 아니었다.
그저 개가 도망치지 못하게 줄지어 늘어서고, 각자가 옆 사람을 도울 수 있을 정도의 기본적인 약속만 정해 놓은 진법이었다.
하지만 이 타구진의 진정한 무서움은 압도적인 숫자였다.
천마대를 마주 보며 늘어 선 개방도들의 숫자는 무려 이백 명.
본래의 타구진은 삼백 명 이상이 펼치는 초대형 진법이지만, 이번 전쟁에는 개방도 중에서 무공이 뛰어난 자들만이 선별되어 왔기 때문에 평소보다는 숫자가 적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백 명이 일제히 늘어선 모습은 그 위세가 실로 남달랐다.
또한 그들은 품에서 꺼낸 몽둥이로 밥그릇을 일제히 두들기기 시작했다.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일정한 속도로 울려 퍼지는 밥그릇 소리.
처음에는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던 그 소리가 계속해서 울리자, 정도맹의 무인들은 묘한 투쟁심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전장에서 울려 퍼지는 북소리와 같았던 것이다.
“백팔나한진과 타구진이라. 재밌구나.”
천마대주 염궁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중얼거렸다.
종천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마교의 호법, 음유신마 조위청은 종천에게 염궁을 소개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유비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조조의 진영에 뛰어든 조자룡 같은 사람입니다.
종천은 그 설명을 매우 흡족하게 여겼다.
한마디로 염궁은 주군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 속에도 뛰어들 수 있고,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한 무인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조위청의 소개를 증명이라도 하듯, 염궁은 소림사와 개방의 두 진법을 바라보면서도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투지를 불태웠다.
“천마대는 들어라. 너희는 오늘, 나와 함께 소림과 개방을 무림에서 지운다. 알겠느냐?”
“예!”
“가자!”
염궁은 가장 선두에 서서 정도맹 진영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그때, 세 명의 사내가 하늘에서 떨어지듯 나타나 염궁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의 상대는 우리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바로 신주대일랑 방욱이었다.
염궁은 방욱 외에 다른 두 사람 역시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내공의 기운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물었다.
“너희는 누구냐?”
“나는 하북팽가의 가주, 팽일해다.”
“남궁조다.”
염궁의 눈에서 이채가 흘렀다.
방욱과 함께 염궁을 막아선 두 사내.
그들은 바로 혼원벽력도 팽일해와 무애신검 남궁조였다.
“셋이서 나를 합격하려는 것인가?”
정파의 고수들은 한 사람을 상대로 합공하는 것을 매우 꺼려했다.
하물며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인 방욱과, 오대세가의 가주들인 팽일해와 남궁조라면 일평생 누군가를 합공해 본 기억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방욱은 전혀 거리낄 것 없다는 듯 히죽 웃으며 말했다.
“무인끼리의 대결에는 다른 사람이 끼어들 수 없지. 하지만 미친개를 상대하는 건 다른 말이다. 선량한 사람들이 다치기 전에 힘을 합쳐서 빨리 때려잡아야 하지 않겠느냐?”
“거지 늙은이가 혓바닥이 아주 매끄럽구나.”
물론 그것은 방욱과 팽일해, 남궁조의 입장에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칠대마가의 가주들을 겪은 그들은 인정하기 싫지만 마교의 초절정 고수들이 중원의 팔대고수들보다도 더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번 전쟁에서 자존심 같은 것을 버리기로 했다.
악마의 힘을 이어받은 집단으로부터 황제를 구하고, 세상을 구하는 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멸살해야 하는 진짜 전쟁이었다.
“하하하! 얼마 전에 기름진 고기를 동냥 받아서 그렇다, 이 싸가지 없는 놈아!”
방욱은 껄껄 웃으며 소리 지르다가 돌연 염궁을 향해 돌진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듯 신형을 흔드는 취팔선보(醉八仙步)의 움직임에 중원 삼대 장법 중 하나라는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이 펼쳐졌다.
천마대주 염궁은 그 강맹한 기운에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자신의 대도를 휘둘렀다.
퍼엉!
서로의 경력(經力)이 충돌하며 압축된 공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하북팽가의 혼원벽력도와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법이 잇따라 전개됐다.
천마대주의 대도는 귀신들린 듯 정신없이 움직이며 세 사람의 공격을 막고, 반격까지 가했다.
이어서 천마대원들은 소림사의 백팔나한진과 개방의 타구진을 향해 돌격했다.
소림사와 개방이 합세한 정도맹 무인들과 천마대의 격돌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 * *
“잘들 싸우네.”
원독마가를 사천당문에게 맡기고 빠져나온 사완악은 소림과 개방, 그리고 천마대의 싸움을 목격했다.
사완악이 일견 보기에 소림사와 개방, 그리고 남궁세가와 하북팽가의 가주까지 합세한 싸움은 정도맹이 약간 더 유리했다.
하지만 약간 유리하다는 것은, 양측의 힘이 크게는 차이나지 않는다는 뜻.
결국 정도맹이 이긴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희생이 따를 것은 분명했다.
사완악은 순간 그들을 도와줄까 싶었지만, 독왕 당온추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네의 힘은 그자를 막아야 하네.
-강호의 평화를 자네의 손에만 맡길 수는 없네.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래. 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전쟁.
하지만 섣불리 힘을 낭비할 수도 없는 상황.
어쩐지 입안이 씁쓸해지는 사완악이었다.
그런데 이때, 한 사람이 오십 명의 무인을 이끌고 사완악의 앞을 막아섰다.
“자네는 교주님께 가지 못하네.”
사완악이 고개를 돌려 나타난 사람을 쳐다봤다.
그는 약 칠팔십 세 정도로 보이는 고령(高齡)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이 놀란 것은 그의 나이 때문이 아니었다.
‘강하군.’
지금까지 칠대마가의 가주들을 보고도 크게 감탄하지 않았던 사완악.
그런 사완악의 머릿속에서 강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의 노인이 나타난 것이다.
“넌 누구지?”
노인은 사완악의 반말에도 담담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나는 칠대마가의 수장. 혼원마가(混元魔家)의 가주 양인섭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