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4
정도마신 3화
휘이이잉……!
흡사 귀곡성(鬼哭聲)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계절 내내 칼바람이 멈추지 않는 산골짜기.
이곳은 천기자가 사대악인에게 내준 천의문의 은거지였다.
휘이이…… 파팟!
이번에는 바람의 소리가 조금 달랐다.
산골짜기를 감싸듯 휘몰아치는 바람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바위를 쪼갤 듯 쏘아지는 질풍(疾風).
짝짝짝!
그 질풍을 멀리서 바라보던 잔혹신풍 구득소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대단하구나, 대단해. 벌써 승광신법(乘光身法)을 저 정도까지 익히다니.”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명의 소년이 불쑥 나타났다.
“헤헤! 저 정도까지라니? 이제 자네와 시합해도 이길 자신이 있네만.”
소년(少年).
열서넛쯤 되었을까?
하얗고 뽀얀 얼굴에 투명하게 맑은 눈빛.
여자아이로 착각할 듯 곱상한 얼굴이지만, 짙고 굵은 두 눈썹이 대장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말끔한 용모보다 눈에 더 들어오는 것은 얼굴 전체에 가득한 장난기였다.
잔혹신풍 구득소가 소년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녀석아, 사부보고 자네라니? 말본새가 갈수록 고약해지는구나!”
소년이 히히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내가 고약한 사람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는가?”
“이 녀석이!”
구득소의 비대한 신형이 소년에게로 번개처럼 쏘아 갔다. 동시에 소년의 몸도 다시 질풍이 되어 구득소의 손길을 빠져나갔다.
휘릭! 휘릭! 휘릭!
허공을 찢어 버릴 듯 날카로운 파공음이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의 신형은 마치 공간 사이를 건너뛰는 것처럼 이곳저곳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눈 깜짝 할 새에 오십여 장을 이동해 버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실로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잔혹신풍 구득소야 그렇다 치더라도 겨우 열서넛에 불과한 소년의 경공술이 저러한 경지라니…….
그러나 곧 소년의 목덜미를 움켜쥔 구득소의 득의에 찬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클클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그렇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다니. 이놈아, 아직 멀었다!”
사완악(四完惡)이라는 해괴(駭怪)한 이름을 가진 소년이 입을 삐죽였다.
“아니, 구 사부는 뱃살이 그렇게 나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빠르지?”
구득소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육체의 무게는 상관이 없다니까. 요(要)는 바람과 빛과 어둠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네놈은 구결만 외우며 요체를 깨닫지 못하니 심득(心得)을 얻지 못하는 게다.”
“쳇! 알았으니까 이제 놔줘.”
사완악은 구득소의 손목을 잡고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잔혹신풍 구득소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사완악이 자신의 손목을 잡자, 찰나지만 뭔가 자신의 기운이 쑥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 느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증발해 버려서 초절정 고수인 구득소조차 잠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사완악의 눈동자에서 의미심장한 눈빛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을 구득소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도 네 녀석의 성취는 정말 놀라울 뿐이구나. 내 어릴 때와 비교하면 네놈이 열 배는 더 빠르다.”
“어릴 때부터 돼지였구나?”
“이놈이 또!”
그러나 혀를 쏙 내민 사완악은 어느새 이삼 장은 멀어져 있었다.
“이제 영환 사부한테 갈 시간이에요. 날 붙잡으면 영환 사부가 구 사부를 가만두지 않을걸.”
구득소는 영환 대사의 이름에 침음성을 냈다.
사대악인이 이 산골짜기에서 함께 생활한 지 어느덧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요희요검 채보령과 신천마뇌 사마소와는 어느 정도 친해진 구득소였지만, 염라대사 영환만큼은 여전히 어려운 그였다.
“그 땡중은 성질머리가 워낙 개 같으니……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지. 어서 가 봐라.”
“알겠어.”
대답과 함께 사완악의 신형은 쏜살같이 멀어졌다.
그러나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 하나의 메아리가 그의 귓가로 들려왔다.
“똥을 무서워하는 돼지라…… 똥을 무서워하는 돼지라…… 하하하! 웃기구나, 웃겨, 웃겨!”
“저, 저노무 시키!”
구득소의 얼굴은 와락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 * *
주먹과 주먹이 부딪치고, 장법과 장법이 격돌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격타음(擊打音)은 결코 피골(皮骨)이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었다.
쾅! 쾅!
팽팽하게 가득 찬 무언가가 터져 버리는 듯한 폭음.
그리고 답답한 신음 소리가 이어졌다.
“컥……!”
“흥! 그 정도로 무너지느냐!”
염라대사 영환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사완악의 얼굴을 보며 더욱 거칠게 삼권(三拳)을 연달아 내질렀다.
사완악은 이를 악물며 손바닥으로 염라대사의 주먹 옆쪽을 비켜 쳐 냈다. 상대의 강맹(强猛)한 기세를 정면으로 상대할 수 없으니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들려온 것은 영환의 호통 소리였다.
“갈(喝)! 누가 그따위 잔재주를 부리라 했느냐!”
염라대사 영환의 주먹이 바로 펴지며 노도(怒濤)와 같은 장세(掌勢)가 밀려왔다.
파파팍!
염라대사의 장법은 사완악의 방어를 부숴 버리듯 뚫고 그대로 격중했다. 그러자 사완악의 신형은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가 뒹굴었다.
“큭…….”
사완악은 마치 불에 덴 것 같은 열기(熱氣)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고통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것이 바로 염라대사의 독문심법인 염화신공(炎火神功)의 위력이었다.
영환은 간신히 일어서는 사완악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네놈이 마지막에 펼친 것은 구가(九家) 놈의 유풍유권(柔風幽拳)이 아니더냐? 나쁜 권법은 아니다만…… 넌 잔머리를 굴려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는 임기응변만 너무 늘어나는구나.”
사완악은 누더기처럼 찢어져 버린 무복(武服)을 털어 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럼 영환 사부의 공격을 무식하게 정면으로 받아 내라는 겁니까? 그냥 나보고 뒈지라고 하시죠.”
염라대사는 뭐라 한마디 하려다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신의 호통에도 기죽지 않는 사완악의 당돌함이 꽤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이놈아, 무림오십공(武林五十功)에 대해 기억하느냐?”
“당연하죠. 무림에서 상승무공으로 분류되는 오십 가지 무공 아닙니까? 근데 그거 체면치레라면서요.”
염라대사 영환이 조소를 흘리며 끄덕였다.
“그래. 기실 무림오십공 중 진정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은 상위 열 개의 무공과 열 개의 심공이지. 너는 그것들을 모두 기억하느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완악의 입에서 열 개의 무공과 심공이 빠르게 나열되었다.
“무당파의 태극혜검(太極慧劍), 종남파의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 공동파의 복마검법(伏魔劍法), 하북팽가의…….”
염라대사 영환은 사완악이 조금도 막힘없이 무공 이름을 줄줄 외는 것을 보며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아이는 무재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오성(悟性)이 뛰어나고 영특하기 그지없다. 신천마뇌가 왜 그리 흡족해하는지 이해가 가는구나.’
하나 그는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으며 말했다.
“용케 다 외우고 있구나. 네가 강호에 나가면 언젠가 그런 무공들과 겨루게 될 터인데, 진정한 고수를 만나면 유풍유권 따위로 상대나 되겠느냐?”
사완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하지만 구 사부도 칠대고수 중 한 명이잖아요?”
“흥! 그거야 구가 놈의 승광신법이 제법 쓸 만하니 그렇지.”
“헷! 영환 사부도 구 사부의 경공술은 인정하나 보군요?”
염라대사 영환은 마뜩잖은 얼굴로 답했다.
“그놈과 무공을 겨루어 이기는 건 손바닥 뒤집듯 쉽겠지만, 그가 오로지 도망치기로 마음먹으면 골치 아프겠지.”
사완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무림오십공 중 영환 사부와 채 사부, 사마 사부의 무공은 왜 없을까요? 사부님들의 무공은 상위 열 개의 무공들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염라대사 영환이 말했다.
“상위 열 개의 무공 중 왜 소림사의 무공이 하나도 없는 지 기억하느냐?”
사완악은 당연하다는 듯 빠르게 답했다.
“소림사의 무공에는 소림칠십이예(少林正宗七十二藝)가 있죠. 일흔두 가지의 무공으로 이루어진 연공 비결인데, 그 하나하나가 모두 무림오십공에 오를 만한 절정 무예라서 언급하지 않는 거라고 했었죠.”
“그렇다. 소림칠십이예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무림오십공 중 상위 무공들만 한 위력을 지니고 있어서 굳이 목록에 꼽지 않는 것이지. 일일이 다 집어넣으면 무림오십공이 아니라 무림백공으로도 모자랄 테니 말이다.”
“근데 그게 제 질문과 무슨 상관이죠?”
염라대사 영환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네가 연마 중인 파신마장(破神魔掌)이 바로 소림칠십이예에서 파생된 권법이니라.”
장난기 넘치는 사완악의 얼굴에 놀람이 나타났다.
“소림칠십이예에서요? 잠깐…… 그럼 영환 사부가 소림사 제자였던 건가요?”
사완악은 그가 파계승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소림사 출신이라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염라대사 영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소림칠십이예를 모두 익혔었다. 그중 정수(精髓)만을 집대성하여 십사 초식(十四招式)의 새로운 무공으로 창안한 것이 파신마장이다.”
사완악이 입을 삐죽거렸다.
“십사 초식은 무슨…… 한 초식마다 열 가지의 변화가 있으니 백사십 초식이나 마찬가지죠. 초식이 왜 이렇게 드럽게 많나 했더니 소림칠십이예를 베껴서 그렇군요. 좀 간단하게…… 악!”
이죽거리듯 말하던 사완악이 머리를 감싸 쥐고서 비명을 질렀다. 염라대사 영환의 바위 같은 주먹이 사완악의 머리통에 내리꽂힌 것이다.
“까불지 말고 계속 듣기나 해라.”
사완악은 한마디 더 했다가는 정말 머리통이 부서질지도 모른단 생각에 얌전히 물었다.
“그럼 소림칠십이예가 상위 열 개 무공의 위력이라 했으니…… 파신마장이 무림오십공 중 제일이겠군요? 게다가 염화신공은 상위 열 개의 심공 중 하나잖아요.”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상승의 무공은 대성하면 모두 나름의 강함이 있는 법이니까. 염화신공과 파신마장을 모두 익힌 나도 천하제일인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지. 강호에는 괴물 같은 놈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법이다.”
“칠대고수 중 영환 사부보다 강한 사람도 있었나요?”
염라대사 영환이 냉소를 날리며 말했다.
“강하다기보단 승부를 장담하지 못한다고 해야겠지.”
“그런데 왜 파신마장은 무림오십공에 없죠?”
“강호 놈들은 파신마장의 존재를 모른다. 그걸 본 놈들은 모두 다 죽었으니 알 수가 없지.”
“소림사 중놈이 그런 살인마라니…… 역시 대단한 악인이군요, 사부는!”
중놈이라는 말에 염라대사 영환은 한 차례 사완악을 쏘아보고는 말했다.
“어쨌든, 구가 놈의 무공과 사마소의 무공은 무림오십공에 능히 들어갈 수 있지. 강호 놈들이 사대악인의 무공을 무림오십공에 넣기 싫으니 빼 버린 것뿐이다. 구가의 유풍유권은 잡기(雜技) 정도로 익혀 두면 괜찮고, 사마소의 점혈(點穴) 무공은 위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굉장히 쓸모 있는 수법이니 열심히 익힐 만하지.”
사완악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어머니의 무공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