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6
정도마신 5화
“크으으…… 아악!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신천마뇌 사마소의 처소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산골짜기의 바람을 타고 연달아 울려 퍼졌다.
영환 대사, 구득소, 채보령, 세 사람은 사마소의 처소를 멀리서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음…… 사마소가 드디어 군림혼혈공(君臨魂血功)을 전수하는군.”
누구한테 맞았는지 두 눈이 시퍼렇게 멍든 구득소가 중얼거렸다.
“저놈이 정말 강호제일의 두뇌가 맞나? 저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가르치다니…….”
영환 대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놈에게 무식하단 소리를 듣다니, 사마소가 땅을 치며 통곡할 노릇이군.”
“군림혼혈공이 어떤 무공인지 알면서도 그러냐, 이 중놈아.”
“닥쳐라, 입을 꿰매 버리기 전에.”
구득소는 할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한마디 쏘아붙인 염라대사 영환의 눈살도 조금은 찌푸려져 있었다.
요희요검 채보령은 두 손을 꼭 모은 채 말했다.
“군림혼혈공은 의왕(醫王) 갈효봉이 만들어 내고 그 위력이 너무 잔혹해서 스스로 폐기한 무공…….”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완악이에게 필요한 무공이긴 하지만, 꼭 저렇게 배울 필요는 없을 텐데…….”
염라대사 영환이 딱 잘라 말했다.
“모르는 소리. 저 고통을 자신이 직접 당해 보는 것만큼 좋은 경험은 없지. 그리고 저런 고통이야말로 강인한 악심(惡心)을 길러 주는 것이야.”
* * *
“끄으으윽……!”
사완악은 눈알이 뒤집히는 고통에 다시 한번 들끓는 신음을 내뱉었다.
“시끄럽다. 어떤 고통 속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인내력이 생길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
사완악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입을 다물었다.
“좋다. 하지만 기절해서도 안 된다. 고통은 네 육신이 느끼는 것. 그것과 별개로 너의 정신은 냉정해야…….”
사마소는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사완악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이미 기절해 버린 것이다.
사마소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자신의 부채를 들어 사완악의 혈도 세 곳을 찔렀다. 그러자 찬물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콜록대며 사완악의 눈이 다시 뜨였다.
사마소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동안 다른 사부들이 너를 너무 안일하게 가르쳤구나. 고작 이 정도 고통에 혼절해 버린다니…….”
“죄송합니다…… 사부님.”
사완악의 태도는 이전의 사부들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엄숙했다.
신천마뇌 사마소는 사완악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부였다.
잔혹신풍 구득소는 할아버지 같았고, 염라대사 영환은 엄한 아버지 같았으며, 요희요검 채보령은 호칭처럼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신천마뇌 사마소는 다르다.
사완악이 그동안 느낀 그의 존재는…….
‘관찰자.’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사마소는 언제나 냉철한 눈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
또한 사마소에게는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바로 그가 익힌 진안심공(眞贋心功) 때문이었다.
‘진안심공은 내력으로 상대 말의 진실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심공이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을 말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심장과 뇌에서 어떤 불안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진안심공은 바로 그 변화를 감지해 내는 수법이지. 그러나 상대가 나보다 많은 양의 내공을 지니고 있다면 진안심공의 효능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진다.’
사마소가 처음 설명했던 진안심공의 능력.
그때 사완악이 물었다.
‘그럼 다른 사부님들처럼 초절정의 고수들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겠군요?’
그러자 사마소가 웃으며 답했었다.
‘아니지. 진안심공이 통하지 않는 초절정의 고수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강호에서는 매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사마소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계산하고, 그것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완악은 그의 심계(心計)를 배우면서, 사마소가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날마다 느끼고 있었다.
“군림혼혈공은 강호제일의 점혈 수법이다. 네가 방금 당한 것은 분근착골(分筋錯骨)의 수법, 뼈와 살을 뒤틀리게 하는 것이지. 하지만 이건 군림혼혈공의 세 가지 고문 수법 중 가장 위력이 약한 것이다.”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방금 전 자신이 경험한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가장 위력이 약한 수법이었다니…….
“육체의 단련은 내 관할이 아니다. 아마 일이 년 후에는 단순한 무공의 경지만으로는 네가 나를 앞지를지도 모르지.”
사마소는 잠시 사완악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정신은 다르다. 지금의 너는 너무 나약하다. 앞으로 이 군림혼혈공의 고통 속에서도 정신은 고요한 수면처럼 아무 흔들림이 없어질 때까지 훈련을 할 것이다.”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분근착골만 하더라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인데, 앞으로는 더 강도 높은 훈련이 이어진다니?
과연 사람의 몸으로 견딜 수 있는 고통이기는 할까?
그러나 사완악은 사마소의 말을 거역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사마소가 가까이 와서 의자에 묶여 있는 사완악을 풀어 주었다.
두 사람의 손이 접촉되는 순간, 사완악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사마 사부한테도 통할까?’
그러나 찰나의 순간이 지나기도 전에 사완악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야. 위험해.’
“뭐지?”
사마소가 사완악을 바라보며 물었다.
실로 놀라운 직감이다.
사완악이 잠시 다른 생각을 품었을 뿐인데, 사마소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듯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마소가 사완악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물었다.
“너, 나에게 뭔가 감추는 것이 있느냐?”
사완악은 사마소의 눈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진안심공이다……!’
사완악의 내공은 아직 사마소를 웃돌지 못한다. 즉, 거짓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아직은 사부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사완악이 씩 웃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사부님께서 상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이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사마소는 고요히 사완악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악한 녀석, 마음에 드는구나.”
사마소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역시 사마 사부한테는 실험해 보지 않길 잘했어. 어차피 다른 사부들에게 통했다면 사마 사부에게도 통하겠지. 무공으로 따지면 사마 사부가 가장 약하니까.’
사마소는 자리에 앉아 말했다.
“그동안 너는 나에게 무공보다는 다른 공부를 배워 왔다. 무공은 어차피 다른 세 사부의 것만으로도 능히 천하제일을 논할 수 있을 테니. 군림혼혈공과 진안심공 또한 강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용한 수법이니 가르쳐 주는 것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너는 왜 우리가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너를 가르치는지도 알겠지?”
“사부님들은 제자가 강호에 나가 최고의 악인이 되길 바라시는 것 아닌가요?”
사마소가 눈을 찌푸렸다.
“멍청한 녀석…… 말귀가 이렇게 어두워서야. 누가 그걸 물어봤느냐? 네가 왜 악인이 되길 바라는지 아느냔 말이다.”
“그건…… 천기자와의 내기 때문에…….”
“후…… 답답하군. 마음 같아선 네놈의 머리통을 통째로 뜯어 버리고 싶구나.”
사마소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사완악은 천재였다.
지금까지 사완악이 사대악인의 가르침을 흡수하는 속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무재뿐만 아니라 머리 역시 영특하기 그지없었다. 한 번 들은 것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았고, 하나를 알려 주면 열을 깨닫는 소년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천마뇌 사마소 앞에서 사완악은 말문이 막히고는 했다.
사마소가 한층 차가워진 눈빛으로 물었다.
“악이란 무엇이냐?”
악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사완악으로 하여금 순식간에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동안 사부들은 악인이 되어야 한다고만 했지, 무엇이 악인지는 말해 준 적이 없었다.
물론 사완악 스스로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문일지십(聞一知十)의 재능이 있는 사완악이라도 이것에 대한 대답을 얻기는 어려웠다.
사대악인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과 교류를 해 본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세상의 도의나 정의 따위에 대하여 교육을 받은 적도 없던 까닭이다.
그저 사부들에게 개구지게 장난치는 것 정도가 사완악이 느끼는 악에 가까운 행위였다.
이를테면 사완악은 아직까지는 선이나 악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소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악이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사마소는 사완악을 가만히 바라봤다.
“모르겠다라…….”
사완악은 내심 긴장했다.
사마소는 모르겠다는 말을 매우 싫어했다.
설령 모르더라도, 배운 적이 없더라도, 그 자리에서 어떤 대답이라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아무런 질책도 없이 사마소의 말이 이어졌다.
“그동안 네가 우리의 과거를 물어봐도 알려 주지 않았었다. 이제는 네게 말을 해 줘야 하겠구나.”
사완악의 눈이 반짝 빛났다.
지금까지 사완악은 사부들이 왜 사대악인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수차례 물었으나, 그때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부들은 대답을 얼버무리고 넘어갔던 것이다.
사마소는 부채를 펼쳐 천천히 흔들며 말했다.
“잔혹신풍 구득소는 일곱 개의 화전민 부락을 돌아다니며 백여 명의 죄 없는 민간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바로 구천살심공을 익혔기 때문이었지.”
사완악은 구천살심공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막대한 내공을 얻을 수 있지만, 백 번의 살인 충동이 찾아온다는 사이한 심법.
“하지만 잔혹신풍의 진짜 악행은 그때부터였다. 그는 자신의 살육 행위를 목격하고 제지하려고 했던 상도문(常道門)과 매영문(梅英門)의 제자를 죽여 버렸다.”
사완악은 사마소에게 배웠던 강호 문파들을 떠올리고는 놀라며 말했다.
“상도문은 칠십 년 전, 호정검(浩正劍) 하일량을 배출한 문파이고, 매영문은 화산파가 자랑하는 속가 문파 아닌가요?”
“맞다.”
“그런데 단순히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모두 죽인 건가요?”
사마소가 고개를 저었다.
“결코 아니지. 잔혹신풍은 그들이 목격자여서 죽인 게 아니라, 죽이고 싶어서 죽인 것뿐이다.”
“예?”
“구득소는 처음에는 구천살심공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지만, 백 번의 살육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쾌감을 맛본 것이지. 그리고 때마침 상도문과 매영문의 제자들이 정의 운운하며 따지고 드니까 죽여 버렸고, 심지어 그 문파들을 찾아가 강아지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도륙해 버렸지.”
“헉! 그러니까, 구천살심공의 영향과 상관없이 단순히 살인의 쾌감을 더 느끼기 위해서 그들을 모두 죽인 거군요.”
사마소는 고개를 끄덕인 후 계속해서 말했다.
“염라대사 영환은 본래 소림사의 천재 후기지수였다. 그는 똑똑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공에 있어서만큼은 태생적으로 뛰어났다. 강호의 태산북두라는 소림사에서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무재였고, 그만큼 기대를 받았던 사람이었지. 어느 날, 영환 대사는 자신의 사부와 소림사에서 내려온 일이 있었는데, 그날 밤 자신의 사부가 웬 여인과 운우지락을 나누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 순간, 그는 참지 못하고 방에 쳐들어가 사부 각양 대사를 일장에 죽여 버렸다.”
사완악은 의외라는 듯 물었다.
“중은 여색을 밝히면 안 되는 규율이 있지 않나요? 영환 사부의 행동은 무조건적인 악행이라고 볼 수 없겠군요.”
사마소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불의를 참지 못한 게 아니다. 자신이 그 여인을 품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지.”
“……!”
“그 이후 소림사의 추적을 피하며 열일곱 명의 유명한 강호 미인들을 겁탈했지만, 염라대사의 무공이 너무나 고강하여 소림사는 오히려 소중한 절정의 고수들을 다섯 명이나 잃게 됐다.”
사완악은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궁금함을 참지 못하며 물었다.
“정말 듣기만 해도 영환 사부는 나쁜 놈이군요. 여자를 탐하려고 자신의 사부를 죽이다니…… 그럼 어머니는요?”
사마소는 너무나 태연한 얼굴의 사완악을 잠시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너는 구 사부와 영환 사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끼는 바가 없느냐?”
사완악은 고개를 갸웃한 다음 말했다.
“제가 무엇을 느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