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84
정도마신 83화
사람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사대악인의 제자와 소림사의 현 자 배 승려가 친우라니?
또한 그들은 현종이 ‘막역하다’라는 표현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강조했다는 것을 알아들었다.
무당칠자의 산양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저자가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것은 맹주께서 불과 얼마 전에 알아낸 것이다.’
산양자가 현종에게 물었다.
“대사는 저자가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것을 알고도 친우가 되었소?”
현종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자 온몸의 내공을 소모한 강개가 힘없는 음성으로 물었다.
“표정을 보니 지금은 알고 있다는 소리 같은데, 그럼 왜 그를 구해 준 것이오?”
평소 말투에 거침이 없는 강개라 할지라도 소림사의 현 자 배 승려에게는 함부로 하대를 할 수는 없었다.
현종은 담담히 말했다.
“그는 사대악인의 제자이나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고, 여전히 저의 친우이기 때문입니다.”
사완악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강개는 그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듯 언성을 높였다.
“저놈은 맹주를 시해했고, 이제는 무림공적이오!”
현종이 말했다.
“저는 지금 맹주님께서 저 친구를 가두었던 장소에 가서 어느 정도의 자초지종을 듣고 내려왔습니다. 맹주님과 저 친구의 대결은 그 어떤 비열한 수단도 없었던 정정당당한 결투였습니다. 그것을 어찌 시해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실로 안타까운 일이나 그것은 서로 뜻이 상충하는 무인끼리의 생사결이었고, 결투의 승리자에게 죄가 있다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반대로 맹주님의 손에 저 친구가 목숨을 잃었다면, 맹주님을 무림공적으로 선포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현종의 말은 처음 사완악이 했던 말과 매우 유사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소림사의 제자가 맹주의 죽음을 저렇게 치부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완악은 신이 나 말했다.
“옳은 말이다, 옳은 말이야. 내가 말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소림사의 승려가 말하니까 다르긴 다르군. 무당파와 화산파는 상대에 따라 정의나 신념이 바뀌는 모양이야. 하하하.”
무당칠자와 화산오검은 심기가 크게 거슬려 사완악을 노려봤다.
사완악은 어린아이처럼 혀를 내밀며 그들을 약 올렸다.
이에 산양자가 말했다.
“그것은 저자를 잡아 심문해 보면 명명백백 드러날 일일세.”
현종이 말했다.
“심문이란 말은 이미 저 친구를 죄인으로 확정해 놓은 듯한 느낌이군요. 저 친구는 이미 맹주님과 정정당당하게 대결을 했고, 사대악인의 행보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심문을 더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산양자가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신분이고 어떤 행실을 했냐에 따라 합리적인 의심을 받을 수도 있네. 사대악인의 제자인 저자의 말은 완전히 믿을 수 없는 것이지. 따라서 시간을 두고 여러 가지를 알아봐야 할 것이네.”
현종이 말했다.
“단순한 심문이라면 괜찮겠지요. 하지만 과연 사대악인에 대한 원한을 저 친구에게 대신하는 사람들이 없겠습니까? 지금 여기 계신 선배님들도 사대악인에 대한 원한 때문에 모인 것이 아닙니까?”
산양자는 사완악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사부는 부모와 같네. 사대악인이 그만큼 참혹한 악행을 저질렀으니, 그의 제자도 어느 정도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일세.”
현종이 말했다.
“사부는 부모와 같고, 저 친구는 어려서부터 그들 손에 자랐으니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성인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죄를 지어도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악인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그 죄를 짊어질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
두 사람의 대화는 잔잔한 듯 이어졌지만, 서로가 명분을 찾는 첨예(尖銳)한 설전이었다.
산양자가 어떤 말을 해도 현종은 마치 준비한 것처럼 술술 대답이 나왔고, 마지막에는 산양자의 말문이 막혀 버렸다.
사완악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강호에 나와 유일하게 말로 이기지 못한 사람이 저 땡중이지. 당신들은 나의 말에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으니, 현종의 상대가 될 수 없겠군.”
이때 사완악은 진심으로 즐거웠다.
현종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 것도 아니었는데, 현종의 하는 말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사완악의 생각을 거울에 비춘 것처럼 대변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때 구궁지검 장완 도사가 말했다.
“그래서 지금 현종 대사는 그를 두둔하겠다는 것이오?”
현종은 말했다.
“곤란에 빠진 친우를 모른 척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장완 도사가 말했다.
“대사의 뜻이 소림사의 뜻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이오?”
현종은 그 말에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말했다.
“소림사를 대표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만, 그리 받아들이신다 해도 어쩔 수 없겠지요.”
“소림사가 사대악인을 옹호하는 셈이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소?”
“아미타불.”
현종은 다만 조용히 불호를 외고는 사완악을 바라봤다.
“조금 지쳐 보이는군.”
그러자 사완악이 어깨를 으쓱였다.
“전혀.”
현종의 입가에 어쩐지 사완악에게 옮은 듯한 개구진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빨리 떠나는 게 좋겠군. 나도 입장이 있는지라…… 네가 앞장서라.”
사완악은 현종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현종이 사완악을 돕는다 해도 같은 구파일방의 사람들에게 먼저 공격을 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여 뒤에서 따라오며 엄호하겠다는 말이었다.
“좋아, 좋아.”
사완악은 그렇게 말한 뒤 지체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태산을 내려가는 방향이었다.
“어딜 가느냐!”
무당칠자의 산양자가 검을 들고 사완악의 앞을 가로막았다.
사완악은 환요검법의 초식을 펼쳐 산양자를 공격했는데, 그 순간 아까와 마찬가지로 우측에서는 무당칠자 중 다른 도사가, 좌측에서는 화산오검 중 한 사람이 공격해 왔다.
하지만 그때였다.
“앞만 신경 쓰면 된다.”
낮고 믿음직스러운 음성이 사완악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러고는 두 줄기의 황금빛이 솟아나 사완악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뻗어 나갔다.
곧 ‘차앙!’ 하는 소리가 두 번 울림과 동시에 사완악의 측면에서 공격해 오던 무당칠자와 화산오검의 검이 튕겨 나갔다.
현종의 손에서 소림사의 절학 수공(手功)인 대력금강지력(大力金剛指力)이 발휘된 것이었다.
사완악은 애초에 현종의 말을 들은 순간, 좌우는 신경도 쓰지 않고 초식에 변화를 주며 산양자의 어깨를 찔러 가고 있었다.
산양자는 검을 황급히 움직여 사완악의 검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세 사람의 합공으로도 쓰러뜨릴 수 없었던 사완악의 환요검법을 산양자가 홀로 감당할 수는 없었다.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산양자의 검이 날아갔다.
사완악은 마룡일효의 초식으로 산양자에게 일장을 날렸다.
산양자는 무당장권(武當長拳)을 전개해 사완악의 장법을 막으려 했지만, 그 안에 담긴 강맹한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갔다.
“막아라!”
산양자의 외침에 움직인 자들은 무당칠자 다섯과 화산오검 넷이었다.
그들은 일제히 달려들어 사완악과 현종에게 검술을 펼쳤다.
화산파의 백팔식광풍쾌검, 낙영검법, 이십사수매화검법, 양오검법, 무당파의 유운검법, 현허칠성검법, 무극현공권, 육합절명도, 무당면장(武當綿掌)까지.
하나하나가 절학이라 부를 수 있는 무공들이 매서운 기세를 만들며 사완악과 현종을 덮쳐 갔다.
하지만 이때 현종은 긴 팔을 휘휘 저으며 다섯 번의 장력을 연달아 쏘아 냈다.
이는 소림사의 무인이라면 누구나 익히고 있는 나한십팔장이었는데, 현종의 손에서 펼쳐지자 가공할 위력이 나타났다.
“윽!”
“큭!”
현종의 장력과 격돌한 다섯 명은 모두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갔다.
이때 사완악은 그 장력들 사이사이로 검을 찔러 넣었다.
한 명은 어깨를 찔리며 피를 뿌렸고, 다른 세 사람은 간신히 몸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현종의 장법은 밀려오는 파도와 같았고, 사완악의 환요검은 유연하고 섬세하며 예리했다.
“하하하!”
사완악은 화산오검과 무당칠자를 물리친 다음 웃음을 터뜨리며 나는 듯이 산을 내려갔다.
현종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신법으로 사완악을 따라갔다.
산 아래로 갈수록 천라지망을 펼치며 산을 올라오던 무인들과 여러 차례 손을 섞어야만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좌우를 나누어 신경 쓰며 앞으로 나아가자 그 어떤 암습도 두렵지 않았다.
사완악은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여러 번의 대결로 지친 사완악과 달리, 현종의 장법에서는 힘이 넘쳐흘렀다.
그가 소림사의 백보신권과 대력금강장법을 펼치면 모두가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사완악은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만약 아까의 상황에서 현종이 아군이 아니라 적으로 나타났다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최상의 상태로도 감당하기 힘든 저 괴물 같은 친구가 적이었다면, 사완악이 그 어떤 재주를 부려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이젠 오히려 시시할 지경이군.”
앞길을 막는 무인들은 대부분 십여 합도 견디지 못했다.
사완악은 달리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이곳에 온 거야?”
“맹주의 시험이라는 것이 너무 미심쩍었다. 그래서 뒤늦게 따라왔는데 이 넓은 태산에서 어디로 갔는지 쉽게 찾을 수가 없더군.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내가 설린 문주에게 위급할 때 사용하라고 주었던 신호탄의 불꽃이 터져서 그 위치로 찾아갔다. 그때 너는 이미 빠져나갔고, 설린 문주와 과거 군자신검이라 불렸던 도백천 선배의 사형제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현종은 양해를 구하고 설린을 따로 불러 대강의 자초지종을 빠르게 전해 들었다.
현종은 사완악이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크게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정도 되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길러 낸 제자라면, 사완악의 놀라운 무위가 어느 정도 납득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자세한 건 생각할 틈이 없었다. 이미 많은 고수들이 태산에 천라지망을 펼치고 있었고, 너는 맹주와의 싸움으로 정상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현종의 그런 빠른 판단이 사완악을 구해 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태산의 입구가 나타났다.
사완악과 현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구에 도착해 멈추었다.
“완악, 내가 너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나는 나의 할 일이 있기에, 본사로 돌아가야 한다.”
사완악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도움받을 생각도 없었거든.”
하지만 이어지는 현종의 말은 사완악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나는 이제 완악 네가 어디로 향할지 묻지 않을 것이다.”
“음?”
“어쩌면 우리가 다음에 만날 때는…….”
현종은 사완악을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몇 번이나 말을 망설이다가 짧게 내뱉었다.
“적(敵)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적…… 이라고?”
사완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현종을 바라봤다.
이때 현종의 눈빛은 매우 가라앉아 있었는데, 사완악은 그것을 보는 순간 현종이 매우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아!”
사완악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현종을 쳐다봤다.
현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완악이 말했다.
“네가 소림 수호승이기 때문인가?”
현종은 사완악의 눈에만 보일 정도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종과 사완악 사이에는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는 어떤 교감이 존재했다.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태어나서 처음 생긴 친구였다.
그런 현종과 적으로 만난다…….
사완악도 일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현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현종아, 너는 지금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냐?”
어디선가 갑자기 노기(怒氣) 가득한 음성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