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98
97화. 대망(大蟒) (4)
강운은 강하다. 단리우와 막상막하의 인내심과 끈기,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을 지녔다. 또한 그와 단리우의 검술은 종이 한 장 차이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막상막하였다. 하지만 지난 달포의 훈련 동안 그는 단리우를 이기지 못했다. 그 아주 미세한 차이. 그것이 바로, 재능이었다.
“헉헉…….”
그는 강했지만, 눈앞의 상대는 그가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다른 재능을 지닌 이였다.
“다른 똥개들보다는 그나마 낫네.”
숨을 몰아쉬는 강운을 보며 히죽 웃는 진윤. 그가 준결승에 오르기까지 만난 종영관도, 즉 무영문도는 둘이었다. 연진과 황철. 그 둘 모두 그에게 단 한 수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당했다. 하지만 강운은 조금 달랐다. 물론 이때 다르다는 말은, 그에게 단 일격이라도 날렸다기보다는, 그의 첫수를 막아냈다는 의미였다.
“세상 사람들은 이제 알게 될 것이다. 과거의 천하제일가가 다시 당대의 천하제일가로 우뚝 서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 첫 번째 제물이 됨에 대대손손 영광으로 여기도록, 하하.”
그는 압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러 더욱더 압도적인 무위로 상대를 농락하고 있었다. 백도 무림에 다시 그들의 출현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무영문에 복수하기 위해.
“이제 끝이로군.”
강운은 많이 버텼지만 결국은 그의 발아래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털썩.
마지막 한수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강운.
“원신관의 진윤 승! 진윤 관도가 압도적인 무위를 뽐내며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그의 시선이 정무를 향했다.
‘네놈이 백도 무림 최고의 기재라고?’
그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소저.”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여인. 그 여인에게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각인시켰다. 그 뿌듯함에 한껏 어깨가 치켜 올라갔다.
* * *
“얼씨구? 쟤 눈빛 봐봐.”
유화를 바라보는 진윤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정천은 느낄 수 있었다.
“아주 그냥 빠져들겠는데?”
“닥쳐……요.”
한숨을 푹 내쉬는 유화.
“뭐야? 그전에 무슨 일 있었어?”
이에 정무가 답했다.
“저자가 유화소저에게 혼인을 청했소이다.”
유화가 도끼눈을 뜨고 정무를 쏘아봤다. 평소에는 과묵한 그가 왜 정천 앞에서 저리 쫑알거리는지.
“푸하하. 진짜로? 재밌는 녀석이네.”
재능은 넘쳤지만, 아직 미숙한 놈이었다. 만약 한 단계만 더 사방기를 발전시켰다면 유운의 봉황기를 눈치챘을 테니까. 더불어.
‘내 존재를 알아차렸겠지.’
아직 실력이 미천하다는 반증.
“그런데…… 우야가 저자를 이길 수 있을까요?”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심정.
“검은 맞대봐야 알겠지?”
유화와는 반대로 정천의 얼굴에는 별걱정이 없어 보였다.
“만약 우야까지 저자에게 진다면…….”
무영문의 자존심이 뭉개지는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아직 결승에 오르지도 못한 놈을 뭐.”
이제야 비무대에 오르는 단리우.
“눈앞의 상대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너무 멀리 내다보는 거 아니야?”
“아…….”
유화의 시선이 이제 막 시작되는 대결로 향했다.
“저놈도 진가 놈인데 생각보다 만만치 않겠어.”
정천의 시선이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앳된 모습의 사내를 향했다.
* * *
“원신관의 진호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단리우.”
예의를 차리고 꾸벅 고개 숙이는 상대를 보며 단리우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는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 누구보다 예의 바른 사내였다.
‘어디서 또 수작을 부리려고.’
이미 진윤이라는 자를 겪어봤다. 오만과 광기로 가득한 인물. 자연스레 화용진가에 대한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대결, 시작!”
진행자의 외침과 함께 두 사내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이자는 발이 빠르지 않아.’
탐색전은 필요 없었다. 단리우는 상대의 이전 경기들을 봐왔기 때문에 상대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순식간에 짓쳐 들어간 단리우가 검을 들어 상대의 가슴팍을 향해 찔렀다.
타앗!
검속이 그리 빠르지 않았기에 막히는 건 당연했다. 단리우는 예상했다는 듯 이번에는 발을 굴려 상대의 왼편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하단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뒤로 물러서는 진호준. 순간, 단리우의 눈이 빛났다.
“……!!”
한순간 시야에서 사라진 단리우. 그의 기척을 느낀 진호준이 뒤로 돌았지만, 늦었다.
퍼억!
왼쪽 어깻죽지를 가격당한 진호준.
“크윽!”
간신히 몸을 틀어 충격을 최소화했지만, 뼈가 으스러진 듯 왼쪽 어깨가 축 늘어졌다.
“승부는 난 것 같은데?”
단리우의 말에 진호준이 얼굴을 굳혔다.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호준의 시선이 비무대 외곽에 앉아 있는 원신관의 관주를 향했다. 한숨을 푹 내쉬더니 끄덕이는 그.
“무슨 꿍꿍이지?”
눈빛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의미였다.
“왜? 암기라도 날리려고?”
“아닙니다! 그런 비겁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호오, 그래? 이미 승패가 난 싸움에서 상대의 사지를 몽땅 부러트리고 정신을 완전히 잃을 때까지 두드려 패놓고서?”
“저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네놈이 하지는 않았지. 네놈 가문의 누군가가 했지.”
“…….”
물론 눈앞의 사내가 벌인 짓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끼리끼리라고 여겼다.
“…… 그건 진윤 형님을 대신해 제가 사죄드리겠습니다. 너무 심한 처사였다는 것, 저도 인정합니다.”
고개까지 꾸벅 숙이는 진호준.
“…….”
단리우는 무안함에 뒷머리를 벅벅 긁을 뿐이었다.
“이게 아닌데…….”
그가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 대결에 진지하게 임하겠습니다.”
철컥- 철컥-
쿵-! 쿵-!
“…….”
그가 양 발목에서 육중한 묵환 두 개를 탈착했다. 떨어져 내리는 소리만 들어도 그 무게가 짐작이 갈 정도로 묵직했다.
‘여태껏 저런 묵환을 발목에 착용하고 싸웠다고?’
단리우 또한 무거운 철환을 사지에 달고 수련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수련이었다. 실제 대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검을 들어 올리는 진호준. 좀 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제 다시 시작하시죠.”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은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쉬잉-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두 사내의 검극이 서로를 향해 뻗어졌다.
* * *
“이야, 저건 무게가 적어도 삼관(三貫)은 되겠는데?”
대결을 지켜보던 정천이 말했다. 삼관. 고기로 치면 열여덟 근의 무게였다.
“봐봐. 아까랑은 움직임 자체가 다르다니까.”
종영관에서 다리가 가장 빠르다는 연진과 비교해도 월등한 속도의 보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쉽지 않겠어.”
진호준. 화용진가의 직계는 외자 이름을 사용한다. 말인즉슨, 그는 방계라는 의미였다.
“안타깝네. 잠재력만 보면 저놈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화용진가는 모든 권력이 직계에 치중되어 있다. 방계는 아무리 잘나고 뛰어나도 기회 자체가 오지 않는다. 결국 저 잠재력은 만개하지 못한 채 직계의 수련 상대나 될 뿐이었다.
[칠공자.]
그때 양곤의 전음이 들려왔다. 비무대 외곽에 무관의 관도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정천.
[대공자가 당했습니다…….]
그의 전음에 정천이 얼굴을 굳혔다.
[무슨 말입니까?]
[잠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정천.
“음? 왜 일어나……요?”
여전히 존대가 불편한 유화를 보며 씨익 웃음 지은 정천이 별거 아니라는 듯 기지개를 쭉 폈다.
“잠깐 산책 좀 다녀올라고.”
“지금? 갑자기?”
“그러니까 저 칠칠이 좀 잘 지켜보고 있어.”
어쩌면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었다.
“결승은 사흘 뒤라고 했나?”
고개를 끄덕이는 유화.
“그럼 다녀올게.”
그 말만을 남기고 떠나는 정천. 유화의 마음속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 * *
형문산의 지맥을 따라 이어진 야산. 이곳의 사람들은 양산이라 부른다. 양산 인근에 사는 대부분은 산에서 약초를 캐거나 산짐승을 사냥해 생계를 유지한다. 이곳에서 대대손손 살아온 장 씨 또한 오십 년째 약초를 캐며 지내왔다. 그리고.
“어이구야! 이게 뭔겨?”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비비며 둥글게 자란 다섯 잎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무엇에 홀린 듯 미친 듯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오…… 오……!”
인간의 형상을 한 뿌리를 캔 장씨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시, 심봤다!! 심봤다!!”
양팔을 머리 위로 뻗은 채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장 씨. 그의 인생 첫 번째 산삼이었다.
“이번 해는 먹고 살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먼!”
산삼 하나만 제값에 팔아도 한 해는 거뜬히 먹고 살 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여. 천신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연신 감사를 외치는 장 씨.
“……!!”
그때 그의 앞에 천신이 나타났다.
“어……어…….”
기척도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내. 그야말로 천신이었다.
“노인장, 길 좀 물읍시다.”
“어버버버…….”
천신이 길을 묻고 있었다.
“급히 의창으로 가야 하는데 가장 빠른 길이 어디요? 아아, 사람들 다니는 길 말고. 험해도 상관없으니.”
장씨는 천신의 물음에 한곳을 향해 손짓했다. 인근에서는 진양봉이라 불리는 깎아지른 듯한 산봉우리. 웬만해서는 그곳을 향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 저기를 넘으면 된다고요?”
사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장씨.
“고마워요! 이건 사례.”
사례라면서 건네는 인간 형상의 뿌리.
“……!!”
또 산삼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건네고는 떠나는 천신을 멍하니 바라보다 장씨의 정신이 번뜩 들었다.
“처, 천신님 감사합니다!”
* * *
한숨을 내쉬는 정천. 그의 앞에는 밑이 보이지 않는 절벽이 있었다. 절벽을 사이에 두고 솟아있는 반대편 봉우리. 한눈에 봐도 백 장은 떨어진 거리였다.
“후우, 노인네 길을 잘못 알려준 것 같은데…….”
그의 잘못이었다. 험해도 상관없다고 했으니. 물론 장 씨 노인은 그가 하늘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천신이라 여겼기 때문에 이쪽 방향을 알려준 것뿐이었지만.
“좋아, 어디 한 번 가 볼까.”
모든 공력을 양발에 집중해 무영신보(無影神步)를 극성으로 끌어올린 채 도약하는 정천. 그의 두 발이 허공을 차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무림인이 이를 본다면 전설의 허공답보(虛空踏步)를 실제로 본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겠지만, 사실 정천이 구사하는 보법은 허공답보가 아니었다.
‘역시 자연기를 축기한 건 신의 한수였어!’
공기 중에 머금고 있는 자연의 기운을 유형화해 그것을 밟고 도약하고 있는 것이었다.
터억!
결국 백 장의 허공을 넘어서 도착한 정천. 그도 힘에 부치는지 숨을 헐떡거렸다. 해는 이미 산 너머로 숨어들고 있었다.
– 고운당(高雲堂)입니다. 대공자는 고운당의 당주에게 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주도 아닌 당주에게 당했다.
‘당주가 그렇게 강했다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가주도 아닌 당주에게 대사형이 당할 정도라면 가주라는 인간은 얼마나 강할까?
‘가서 보면 알겠지.’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겠는가. 그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