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28)
28_미신 VS 과학(4)
런던 교회의 중심지, 캔터베리 대성당.
그 성당의 앞, 아름다운 신설 분수가 놓인 광장에는 평소보다 몇 배는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 세기의 대결이 벌어지는 날이었으니까.
“다들 제 얘기를 듣고자 이리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먼저 앞으로 나선 것은 존 디.
헤르메스라고 불리는 위대한 마법사였다.
“흥! 누가 네놈의 말을 들으러 왔단 말인가!”
반대편의 사람 중, 가장 먼저 앞으로 나온 것은 아무래도 세가 높은 성직자들이었다.
“대중목욕탕? 웃기는 소리 말게. 예수께서 영혼의 청결이 육체의 청결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걸 듣지 못했나?”
시작하자마자 날 선 공격이 몰아쳤다.
존 디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것은 육체보다 영혼을 더 신경 쓰라는 것일 뿐, 육체를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실제로 예수님 또한 흐르는 물로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까?”
그는 이날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다.
그리하여 오늘 그가 내세우기로 한 논리는, 이랬다.
“물은 하늘을 비추는 그릇입니다. 바다가 그토록 새파란 것은 이 때문이지요. 따라서 몸을 씻는 것은 곧 하늘에 가까워지는 행위입니다!”
사실 논리라기도 뭣하긴 했다.
차라리 사이비 종교의 교리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지만 상관없다.
결국, 시민들이 보기에 조금이라도 일리 있어 보이면 이기는 싸움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늙은 신부가 눈을 파르르 떨며 나섰다.
“그런 말은 성경에 없소. 그대의 말처럼 편향적인 해석은 이단이나 할만한 것임을 명심하시오!”
10년 전쯤에는 큰 울림이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시기가 좋지 못했다.
영국은 성공회로 돌아선 지 오래였고, 늙은 신부 역시 이제는 성공회 신부였다.
아직 성공회도 이단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상대를 이단이라 몰아봤자 별 재미는 보지 못한다.
성직자도 이걸 알았는지, 곧장 화제를 돌렸다.
가장 자극적이면서도 먹힐만한 소재.
즉, 목욕탕에서 자행되는 음행에 관한 내용이었다.
“벌거벗은 사람들이 서로의 몸을 만지고 추잡한 짓거리를 하는 것이 바로 대중목욕탕 아니오. 매춘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는 더러운 곳. 그딴 걸 사방에 설치하면 이 영국은 소돔과 고모라 꼴이 될 것이오!”
여기저기서 ‘옳소! 옳소!’하는 호응이 들려왔다.
여왕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헛소문은 장기적으로 좋지 못했다.
“내 웬만하면 그대들의 토론에 끼어들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겠군. 치명적인 오해가 있다네. 내가 관리하는 목욕탕에선, 내 맹세하건대 어떠한 음행도 일어나지 못할 것이네. 남성과 여성은 분리된 탕에서 목욕하게 될 것이고, 목욕 중의 성행위도, 먹고 마시며 즐기는 행위도, 전부 금지될 것이네.”
여왕의 말에, 성직자 진영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어떻게 하지?”
“글쎄··· 여왕 폐하께서 보장하신다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목욕은 사실 종교적 금기가 아니었다.
당장 가톨릭이 주류 종교였던 로마에서도 온 사방에 목욕탕을 설치하고 즐겨대지 않았는가.
다만 목욕탕의 타락을 걱정했던 건데, 이 부분을 여왕의 이름으로 보증한다면 달리 할 말은 없었다.
결국, 성직자들은 한 걸음 물러나기로 했다.
그 자리를 대신해 나선 것은 학자들의 무리였다.
한 늙은 학자가 안경 너머로 눈을 번뜩이며 이리 말했다.
“미리 말해두지요. 저희는 여왕 폐하를 거스를 생각이 없습니다. 여왕 폐하의 뜻이 확고하시다면, 대중목욕탕 건설을 반대할 생각도 없고 말입니다.”
언뜻 보면 과도할 정도로 몸을 낮추는 행동이었다.
여왕에게 충성하는 듯해 보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럴 리 없지.’
여왕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여기서 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불장군처럼 굴어봤자 여왕의 평판만 떨어질 뿐이다.
그렇게 해서 일이 잘 진행될 리도 없다.
저들은 대중목욕탕의 ‘건설’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건설 후, 사람들의 이용은 아주 적극적으로 막고 나서겠지.
그들의 그 잘나신 학설에 따라서.
그러니, 여왕으로선 이 대결이 필요했다.
반드시 대중 앞에서 저들을 꺾어야 목욕탕이 이 땅에 자리 잡을 수 있다.
“나는 이 대결의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네. 그러니 그대들 또한 그래야 할 것이야.”
늙은 학자가 만족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대화가 오가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존 디를 쳐다보지 않았다.
마치, 그딴 하찮은 존재와 말을 섞기도 싫다는 듯이.
무리 사이에서 젊은 학자가 나와 시민들을 향해 연설하듯 외쳤다.
“목욕은 일시적 쾌락을 주고 청결하다는 착각을 심어줄 뿐, 실제로는 그대들의 몸을 해치는 독이오!”
존 디가 빠르게 반박했다.
“문제는 목욕이 아니라 고인 물이오! 더럽고 탁한 물이 질병의 원인이 된 것이라 말입니다!”
“하!”
듣고 있던 학자 하나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건 이교도들의 교리 아닌가!”
이슬람의 성전, 코란에 그 비슷한 구절이 있었다.
학자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팔을 벌리며 외쳤다.
“더러운 물이 질병의 원인이라니. 내 평생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이군요. 반면, 목욕의 문제는 이미 수백 년 간 증명되어온 학설이지요. 이처럼 이 자의 말은 하나같이 이단적이며 근거 없는 주술이니, 이 자의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푸흡.”
그 순간, 논의가 잠깐 중단되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여왕이,
입을 가리고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아, 미안하군. 그대들의 말이 웃겨서. 계속하게.”
사실 여왕에게는 꽤 우스운 소리였다.
더러운 물이 위험하다는 건 주술.
목욕이 위험하다는 건 과학이라니.
덕분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한참이나 깔깔거리는 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여왕이 간신히 웃음을 멈추자, 정적이 감돌았다.
‘으음, 여왕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졌군.’
학자 하나가 은근슬쩍 여왕에게 원망의 시선을 보였다.
존 디를 몰아갈 절호의 기회였는데 하필 여왕이 웃어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어, 어쨌든.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이 존 디라는 돌팔이가 목욕을 통해 몸의 보호막을 벗겨내려 한다는 게 문제라는 말입니다!”
한 중년 의사가 열변을 토했다.
“목욕으로 보호막이 없어지면, 병은 너무나 쉽게 우리의 몸으로 침범할 수 있습니다. 씻지 않고 방어막을 쌓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길입니다. 실제로 갓 태어난 어린아이들은 이런 방어막이 없어서 쉽게 죽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 피부 보호를 위해 위생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이 문제지.
얻은 이익에 비해 피해가 너무 컸다.
게다가 반박하기도 애매했다.
이 주장을 학문적으로 논파하려면, 영유아의 사망 원인을 제시해야만 했다.
그게 쉬울 리가 없지만.
‘어렵지. 어려운 걸, 굳이 할 필요가 있나?’
존 디는 씩 웃었다.
그는 한 손으로 작고 검은 공을 굴리며 생각했다.
저들은 자신을 제멋대로 정의한 지 오래였다.
그들에게 자신은 학자가 아니라 사기꾼이었다.
그렇다면 좋다. 사기꾼답게 굴어주도록 하자.
“그대들의 말대로라면 어린아이를 물에 넣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어딘가 의미심장한 말에 노회한 학자들이 멈칫할 때, 혈기 넘치는 젊은 놈이 그 말을 받아버렸다.
“그야 물론이지요!”
“그렇다면 갓 태어난 아이에게 주는 세례 또한 잘못되었다는 것이군? 이제 보니 그대들이야말로 진짜 이교도였어!”
“뭐, 뭣?”
야유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하지만 존 디의 선동과 날조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그러면 갓난아기를 억울하게 잃는 경우는 어떠한가. 그 아이가 세례를 받은 아이라면, 그건 어린 나이에 일찍 세례를 준 부모들이 잘못한 건가? 자네는 자식 잃은 슬픔에 젖은 부모들 앞에서 정녕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건가?”
존 디는 학자들이 반박할 틈도 주지 않고 외쳤다.
“또 신께서는 대홍수 이후 무지개를 세워, 다시는 물로 인간을 멸하지 않겠노라 말씀하셨는데, 어찌 물에 들어갔다는 것만으로 사람이 죽는다는 말인가? 신께서 정녕 사랑하는 자식들을 그리 연약하게 창조하셨단 말인가?”
장내가 술렁거렸다. 분위기는 거의 반반.
존 디는 여기서 결정적 한 방을 준비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손에 들린 공을 만져보았다.
살짝 힘을 주니, 손이 미끌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좋아. 예정대로 간다.’
존 디가 대중을 향해 연설했다.
“다시 말하겠습니다. 성경에 적혀있듯이, 신께서는 불도, 번개도 아닌 물로 사람을 벌했습니다. 이는 물이 곧 하늘의 의지를 담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물이 푸른 것이 곧 그 증거입니다. 따라서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은 곧 하늘에 더욱 가까워지는 길이지요.”
듣고 있던 시민 하나가 존 디에게 외쳤다.
“이보시오! 그걸 신학자도, 학자도 아닌 당신이 어찌 안다는 말이오!”
존 디는 잠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희번뜩 눈을 뜨며 위엄있게 외쳤다.
“왜냐하면, 별이 내게 그리 속삭였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별을 보며, 그들의 속삭임을 듣고 있다.”
존 디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게 빛났다.
별은커녕 달도 보이지 않는 푸른 하늘이었다.
그렇지만 존 디는 마치 별이 보이는 것처럼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여기저기서 조롱이 쏟아져나왔다.
“하하! 이 벌건 대낮에 무슨 별이 보인다는 거야?”
“마법사라더니, 무슨 환각이라도 보나?”
그러자 존 디가 한심하다는 듯 고래를 흔들었다.
“그대들은 현상만 볼 뿐, 본질을 보지 못하는군. 별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네.”
“우우, 헛소리.”
“이제 학자 행세라도 하려고 하나?”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야유.
존 디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하는 순 없군. 내 그대들의 눈을 뜨게 해주지.”
존 디가 검은 공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분수를 향해 그것을 힘차게 집어 던져버렸다.
-팡!
검은 공이 한차례 물을 튀기며 수면에 부딪혔다.
그러더니, 빠른 속도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어?”
누군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물은 순식간에 변화하고 있었다.
마치 잉크가 퍼져나가듯, 물색이 남청색으로 변했다.
그 위로 은색 반짝이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난생처음 보는 하얀 거품이 곳곳에서 올라온다.
거품은 꼭 구름 같았고, 반짝이는 은색 빛은 별 같았다.
몇몇 사람들이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한순간에 해가 져버려서, 분수에 밤하늘이 비춘 것은 아닐까 확인하는 듯한 눈치였다.
그러나 하늘은 여전히 파랬고, 그런데도 물속에는 구름과 별이 박혀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광장에 정적이 돌았다.
헤르메스가 지상에 하늘의 것을 담아냈다.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졌노라.”
한 성직자가 신음과도 같이 중얼거렸다.
성경의 구절이자, 점성술의 근원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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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데? 이걸 설마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나는 존 디의 능력에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저 거품 내는 법은 내가 알려준 것이었다.
어차피 베이킹 소다랑 식초만 넣어도 만들 수 있는 게 거품이니, 어렵지 않게 알려줄 수 있었다.
물론 이 시대에 베이킹 소다는 없었지만, 존 디는 유능한 연금술사였다.
내 대략적인 설명만으로도 뚝딱 나트론이라는 걸 구해와 거품을 만들어내더라.
“하지만 설마 그 거품을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난 기껏해야 거품 목욕 정도나 생각하고 한 말이었다.
설마 색소와 글리터를 이용해 저런 광경을 연출할 줄은 몰랐다.
마치 현대의 입욕제와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현대인인 나도 예쁘다고 느낄 정도면, 이 시대 사람들에겐 어떨까.’
흘깃 고개를 돌려보니, 과연 분수 속 밤하늘을 보고 얼빠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들의 앞에서 존 디가 외쳤다.
“이제 아시겠소? 여기 하늘의 의지를 보시오!”
밤하늘처럼 너울거리는 물결.
그것이 곧 하늘의 의지다.
사람들은 하나하나 존 디의 말을 믿기 시작했다.
만약 하늘이 그걸 틀렸다고 여겼다면, 존 디의 마법은 실패했을 것 아닌가.
“다, 다들 정신 차리시오. 이건 다 연금술사의 수작···!”
안타깝게도, 학자들의 말은 먹히지 않는다.
민중들은 존 디의 마법에 완전히 홀린 상태였다.
“헤르메스···.”
한 남자의 작은 중얼거림은 이내 사람들을 타고 점차 커졌다.
“헤르메스!”
“헤르메스! 헤르메스! 헤르메스!!!”
승부는 더 뒤집을 수 없는 상태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마침내 소리 높여 선언했다.
“존 디가 대결에서 승리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항의하는 학자들과 헤르메스를 연호하는 시민들.
흐느끼듯 몸을 떨며 환호하는 존 디.
나는 이 모든 광경을 보며 순간을 즐겼다.
이리하여.
드디어 영국에 대중목욕탕의 보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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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벌어진 놀라운 소식은 곧 전 유럽을 강타했다.
여왕이 부리는 궁정 마법사가 놀라운 마법으로 학자들을 굴복시키고 목욕탕을 짓게 했다는 이야기였다.
많은 이들이 이 세기의 대결 소식을 재밌어했다.
각 계급에 따라 보이는 반응은 달랐지만 말이다.
“아무렴, 한낱 학자들이 건방지게 군주의 길을 방해하면 찍어눌러야지.”
이게 프랑스의 기사왕, 앙리 2세의 반응이었고.
“이제 영국에서 비누가 잘 팔리겠군!”
이게 네덜란드의 호른 백작의 반응이었다.
“믿을 수 없군! 대체 어떻게 그런 참사가 벌어진다는 말인가!”
그리고 여기에, 비탄에 빠져 한탄하는 이가 있었다.
“내 평생 미신과 맞서 싸우며 학문으로 사람들을 치유하려 했건만, 저 야만인의 나라에서는 미신이 학자의 등을 짓밟고 섰구나.”
한탄하던 이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영국에 가서 직접 확인해야겠다. 그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여왕의 뜻을 돌리기 위해 힘써 봐야겠다.”
의사가 아니라 주술사의 말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이면 남는 것은 질병에 신음하는 사람들뿐일 것이다.
그리하여 남자는 의사의 사명감으로 오지를 향해 발을 돌리기로 했다.
남자의 이름은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해부학의 아버지이자, 현 유럽 최고의 외과 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