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27)
27_미신 VS 과학(3)
“헤르메스의 마법서는 이리 말하고 있지. 새벽의 찬물 목욕은 곧 영혼의 정화로 이어진다고.”
와이어트는 경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반응을 보아, 아무래도 그는 오컬트에 심취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시대 오컬트는 대중적인 믿음이었다.
왕이 믿겠다는 것을 거짓으로 치부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와이어트는 내 말을 직접 반박하는 대신, 내게 헛소리를 불어넣은 범인을 찾으려 했다.
“혹시 존 디가 그런 소리를 했습니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존 디?”
그게 누구냐는 뜻의 되물음이었다.
안타깝게도 와이어트는 다르게 이해한 것 같지만.
“예. 그가 헤르메스라고 불리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자의 본명은 존 디 아닙니까?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도 결국은 이 런던의 평범한 시민이고요. 그가 마법적인 재능은 있을지라도 의사보다 의학을 잘 알지는 못할 겁니다.”
그가 헤르메스라고?
헤르메스는 일종의 칭호였다.
대마법사나, 전설적 연금술사 정도의 의미.
그런데 이 런던에 헤르메스라고 불리는 이가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이거 와이어트가 오해할 만도 하군.’
충분히 오해할만한 상황 같았다.
하지만 이해와 용납은 별개의 문제.
내가 주술에 심취했다는 오해는 괜찮다.
하지만 특정한 마법사에게 홀렸다는 건 곤란하다.
비선실세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이미지는 좋을 게 없다.
“발언을 삼가게. 이 내가 고작 마법사의 요설에 홀려 국가 정책을 진행할 것이라 보는가? 나는 오로지 나 자신의 주관에 의지해 모든 것을 결정하네.”
“···실례했습니다. 몇 번이나 겪었는데도 여왕 폐하가 어떤 분인지 잊어버리는군요. 제가 섣불리 말했습니다.”
와이어트가 고개를 숙였다.
‘어휴, 어쩌겠어. 저런 성격인 것을.’
나를 걱정해서 한 말인 것은 알았기에,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나저나 마법사라···’
와이어트를 돌려보낸 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헤르메스라고 불릴 정도로 인지도 있는 마법사.
그런 마법사가 이 시대 런던에 있었는지 몰랐다.
‘잘 쓰면 쓸모가 있을 것도 같은데?’
그를 이용해서 대중목욕탕을 정착시켜 보면 어떨까?
‘내가 직접 나서는 것보단 정치적 부담이 훨씬 줄어들겠지.”
대중목욕탕 보급은 이 시대의 상식에 어긋난다.
학자들의 불만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
시민들 역시 거부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여기서 주술사를 대리인으로 내세운다면?
불만은 내가 아니라 주술사에게 향하니, 정치적 부담은 훨씬 더 줄어든다.
와이어트처럼 어처구니 없는 오해를 하는 사람도 없을테고, 일의 효율도 올라가겠지.
대중목욕탕을 이용할 시민들은 주술사의 말을 신뢰하니까.
“좋아. 이보게!”
나는 시종을 불렀다.
“존 디라는 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가져오게.”
결심한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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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디의 방 안은 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바닥엔 알 수 없는 금속 덩어리가 떨어져 있었고, 병에는 색색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사면의 벽은 복잡한 문자가 새겨진 종이로 덮여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동화 속 마법사의 집.
이곳이 바로 마법사, 존 디의 집이었다.
‘사실 궁전으로 불러오는 게 더 편하긴 했을텐데.’
하지만 존 디는 자신의 마법을 보려면 그의 집을 방문해달라는 전갈을 보냈다.
다른 놈이면 가만두지 않았을 무례지만, 마법사라고 불리는 자이니 한 번은 봐주기로 했다.
신비로 먹고사는 직업이니 별수 있겠는가.
흠, 그런데 대체 무슨 마법을 보여주려고 나를 부른거지?
사실 별 기대는 안 됐다.
마법이라고 해봤자 진짜 마법은 아닐테지.
아마 적당한 속임수를 곁들인 마술일 텐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메마른 감성의 21세기 현대인이었다.
이 시대 사람들이 놀라 자빠지는 마법이라고 해봤자, 내게 무슨 감흥이라도 줄 수 있을까?
멋있게 등장해서 염력으로 숟가락을 구부리거나, 손에 든 카드의 문양을 맞추는 마술 따위를 하면 어떻게 하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시답잖은 상상이나 하고 있던 그때.
“이런,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군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존 디가 나타났다.
화려한 등장은 없었다.
그는 평범한 복장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혜성의 기운을 타고난 여왕 폐하께서 저를 찾아주시다니, 이보다 영광이 있을까요. 아, 물론 저는 미리 이날이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사기꾼 냄새를 가득 풍기는 말투.
느끼한 눈웃음만 빼면 뭐하나 특이할 것 없는 얼굴.
어딜 봐도 그냥 평범한 런던의 중년 남성이었다.
대체 이 남자의 뭐가 그리 대단하길래 헤르메스라는 과분한 칭호가 붙은 거지?
“···그래, 그대가 백성들 사이에서 무척이나 명망이 높다던데?”
내가 떠보듯 말을 걸었다.
“하하, 제 보잘것없는 허명에 관심을 주시다니. 그저 영광이군요.”
으윽, 느끼한 말투.
이거 마법사가 아니라 제비 아냐?
내가 못 미더운 눈으로 바라볼 때, 남자가 돌연 말했다.
“아, 제 정령들이 여왕 폐하를 반기러 나오는군요.”
남자가 극적으로 팔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열린 창문과 문틈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일사불란하게 행진하는 그것은 딱정벌레였다.
아니, 정확히는 기계로 만들어진 딱정벌레였다.
딱정벌레는 마치 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속속들이 아는 것처럼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고 복잡한 방 안을 헤매고 다녔다.
마치 저들끼리 춤을 추듯 정교한 움직임이었다.
남자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마법이 어떠하십니까, 폐하?”
나는 말 없이 금속 딱정벌레 하나를 손에 들어 올렸다.
“역시···”
내가 아는 형태보다 많이 복잡했지만, 확실하다.
이건 태엽 장난감이었다.
아까 이 시대 마법에는 어떤 감흥도 받지 않을 것 같다고 했던가?
아무래도 정정해야겠다.
솔직히 말해서, 엄청나게 놀랐다.
이렇게 정교한 태엽장치라니.
이 시대에 정말 이런 게 가능했던 건가?
“폐, 폐하. 제 정령들을 놓아주시지요.”
남자가 당황한 듯 말했다.
나는 그런 남자의 손을 덥석 낚아챘다.
“으헉!”
남자의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매끈하게 생긴 얼굴과는 달리, 그 손은 투박했다.
우둘투둘 굳은살이 박힌 손에는 화상 자국이 있었다.
여기에 손끝을 물들인 새까만 기름때까지.
나는 벌떡 일어났다.
이전과 다른 눈으로 방안을 둘러보자, 눈치채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정교한 금속 기계장치들.
자세한 수치가 빽빽이 새겨진 도면들.
색색의 액체 옆에 부착된 정교한 조합식까지.
확실했다.
이 자는 그럴듯한 흉내를 내는 마술사 따위가 아니다.
이 남자는 진짜 제대로 된 과학자였다.
“폐하! 이제 정령들을 놓아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대지의 정령이 분노해 땅이 울게 될 것입니다.”
···조금 정신 나간 마법사 행세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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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가 분노할 일은 없어. 그건 정령이 아니라 기계장치일 뿐이니까.”
존 디는 딱 잡아뗐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뭐, 상관없다. 말하게 해주면 그만이지.
나는 성큼성큼 유리병 근처로 다가가, 도구들을 뒤적거렸다.
“폐, 폐하. 지금 뭘 찾고 계시는 겁니까?!”
“칼.”
때마침 날카로운 단검이 손에 잡혔다.
딱 좋군.
“지금 뭘 하시려는 겁니까!”
“그야 물론, 대지의 정령을 해부하려 하고 있네만. 항상 궁금했거든. 정령의 속은 무엇이 들어있는지.”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는지, 내 손에 들린 기계 딱정벌레의 바퀴가 힘없이 헛돌았다.
어디 보자, 제대로 된 공장도 없는 이 영국에서 이거 하나를 만드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려나?
그것도 이렇게 정교하게 태엽장치를 조율하려면 진짜 장난 아니게 고생했겠는데?
뭐, 내가 만든 것도 아니니 상관없지만.
어차피 마술로 사기치는데나 썼던 도구이기도 하고.
-콰직.
칼날이 딱정벌레에 박혔다.
설마설마하며 지켜보던 존 디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어디 보자. 정령도 칼을 맞으면 죽나보군. 그런데 정령이 이제 몇 마리 남앗지? 하나, 둘, 셋··· 아홉 마리인가?”
내가 막 다른 기계 딱정벌레 한 마리를 집어든 순간.
“그만!”
마침내 존 디가 항복을 선언했다.
“그래요. 맞습니다. 이건 기계장치입니다. 그러니 제발 그만둬주세요.”
“그리고 자네는, 마법사인가 학자인가?”
“저는···.”
이걸 망설인다고?
내가 칼날을 날카롭게 치켜들었다.
“학자입니다! 제길, 학자 맞아요! 누구도 그렇게 불러주지는 않지만요. 어때요. 이제 속이 다 시원하십니까?”
존 디는 울분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던 모양인데?
“자네를 학자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없다고?”
“그래요. 저는 아무리 노력해봐야, 저잣거리 포목점 주인이나 요설로 사람을 홀리는 마술사밖에 될 수 없습니다. 어떤 학계에서도 저를 인정해주지 않으니까요.”
물어봐 줄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 존 디의 한탄이 시작되었다.
“사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학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스 시대의 실전된 책들을 모아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요. 구할 수 있는 모든 책을 모아, 그 내용을 파고들었죠.”
제대로 된 도서관도 없던 시절에 사설 도서관을 만들었다는 건가?
이건 좀 대단한데.
“성장한 뒤에는, 배움을 위해 세계를 떠돌아다녔습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프랑스. 저명한 학자가 있다면 어떤 나라라도 좋았습니다. 저는 그 어떤 오지라도 찾아가 배움을 청했습니다.”
그가 자신을 가르친 스승의 이름을 나열했다.
젬마 프리지어스, 페드리코 코만디노, 지롤라노 카르다노.
그 외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름들.
하나같이 당대 최고로 이름 높은 석학들의 이름이었다.
“그 정도로 유명한 사람들의 제자라니. 당연히 학계에서도 자네를 환영했을 듯한데?”
“물론입니다. 환영했고 말고요. 제게 옥스퍼드의 교수 자리를 약속했지요.”
존 디가 씹어뱉듯이 말을 내뱉었다.
“제 주장을 듣기 전에는, 말이지만요.”
사람들은 존 디를 가르친 스승들의 명성을 원했다.
그러나 존 디는 그것을 내줄 수 없었다.
“저는 제가 경험한 것만을 믿습니다. 제가 실험해본 것, 제가 눈으로 본 것만을 믿고요. 스승님이 주장한 가설도, 스승님의 스승님이 주장했던 근거 없는 학설도, 저는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전통이 아니라 자신의 직관을 믿는 학자.
21세기에는 훌륭한 정신일지 몰라도, 이 시대에는 결코 인정받을 수 없는 사상이었다.
그래서 모두에게 비난당하고, 학자가 아니라 오컬트 분야의 최고봉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는 건가.
“제 이야기는 이것이 다입니다. 별 볼 일 없는 마법사의 별 볼 일 없는 사연이지요. 자, 이제 속이 시원하십니까?”
“흠, 한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뭡니까?”
“그대가 부정했다는 학설이란 게 대체 무엇인가?”
“···4 체액 설입니다.”
4 체액 설이라.
인간의 몸은 4가지 액체로 이루어져 있고, 이 액체의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병에 걸린다는 이야기인가.
그리스 시대에 처음 등장했던 낡아빠진 학설이다.
‘이거 좀 웃긴데?’
내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태엽의 원리를 이용해 금속을 움직이고, 그들의 동선을 정교하게 짜 맞출 수 있는 기계 공학자다.
그 반대편에는 목욕하면 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그리스 시대의 헛소리나 반복하는 이들이 있고.
그런데 앞사람은 저잣거리에서 사람을 현혹하는 주술사, 뒷사람은 전통을 존중하는 학자라고?
이게 말이 되나?
나는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잠깐 상기했다.
대중목욕탕의 보급을 위해, 민중 앞에 세울 내 대리인.
학자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대중을 설득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기왕 하는 것 좀 제대로 해보면 어떨까?
“이 봐, 존 디. 그대를 무시한 학자들에게 복수하고 싶지는 않나?”
존 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듯 희미하게 웃었다.
“복수는 무슨 복수입니까. 제 주제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군. 젠체하는 것밖에 모르는, 그대를 내쫓은 멍청이들의 콧대를 눌러주고 싶은 생각이 정녕 없다고 할 셈인가?”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제게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일단 의지가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 전에 자네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네. 만약 공중목욕탕을 도입하려고 한다면, 그래서 모든 대중이 이곳을 이용하도록 하게 한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학설을 어기게 되는 건가?”
난데없는 주제에 존 디는 잠깐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이내 시키는 대로 줄줄이 열거를 시작했다.
“모공을 막아야 병마로부터 안전하다는 학설, 물이 병을 옮긴다는 학설, 목욕이 흑사병의 원인이 된다는 학설.”
존 디가 잠깐 말을 멈췄다.
내가 채근했다.
“그리고?”
“···4 체액 설을, 어기게 되겠지요.”
“이들은 강력한 학설인가?”
“당연합니다. 벌써 몇백 년 동안이나 이어져 온 학설입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해서도 안 되는-.”
“거기에 나도 포함되나?”
“···”
“내가 부정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존 디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치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어,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대는 이 여왕이. 에스파냐 왕자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오만한 프랑스를 협상장으로 끌어오고, 반역자들의 목을 모조리 친 이 여왕이. 한낱 학자들의 펜조차 꺾지 못하리라고 보나?”
존 디가 주저하며 대답했다.
“···강제하신다면, 가능하기야 하겠지요.”
“그래서는 쓸데없는 피를 봐야 하지 않겠나. 차라리, 대리인을 내세워 새로운 학설을 세우는 것이 낫겠지.”
아직 내 손엔 날카로운 단검이 들려있었다.
내가 단검으로 존 디를 가리켰다.
“바로 그대.”
단검은 그와 멀찍이 떨어져 있건만,
존 디는 그 칼날에 꿰뚫린 것처럼 몸을 움찔거렸다.
“···저는 보잘것없는 주술사입니다. 그런 제가 다시 학자가 되라고요? 제게 학계로 돌아가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럴 리가.”
나는 그를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그대는 그대가 잘하는 것을 하게. 헤르메스.”
헤르메스.
내가 그를 그렇게 불렀다.
“그대의 보잘것없는 주술로, 견고하고 찬란한 이 시대의 학문을 눌러버리게.”
그의 눈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나는 그에게 악마처럼 속삭였다.
“그리고 비웃어주게. 고작 보잘것없는 주술에 눌려버린 그들의 모습을.”
그 말에, 존 디가 마침내 무너졌다.
헤르메스가 내 앞에 무릎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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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며칠이 지났을까.
한 소문이 온 런던을 파다하게 뒤덮었다.
여왕이 대중목욕탕을 보급하고자 한다는 소문이었다.
성직자들은 목욕탕의 도덕적 타락을 걱정했다.
학자들은 목욕이 일으킬 위험을 설파했다.
그러나 아무도 감히 정면에서 여왕에게 대항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은밀히 그들의 추종자에게 대중목욕탕에 가지 말 것을 권고할 뿐.
그리고 그때.
또 다른 소문이 런던을 강타했다.
존 디가 대중목욕탕 보급을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런던의 광장 한복판에서 난상토론을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 것은 그 자신과 대중목욕탕을 반대하는 나머지 모두의 대결이었다.
놀랄 만큼 도발적인 제안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여왕이 기름을 퍼부었다.
“재미있겠는데? 좋아. 존 디와 학자들의 대결에서 만약 학자가 승리한다면, 나는 대중목욕탕의 보급을 중단하도록 하지. 하지만 존 디가 승리한다면, 반대파 중 누구도 다시는 이에 대해 입을 열어서는 안 될 것이야.”
여왕이 공인한 세기의 대결이었다.
그 유명한 주술사 헤르메스와, 런던의 학자들.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이 흥미로운 소식에 런던의 민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때는 1554년 7월의 어느 날.
바야흐로 런던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16세기의 학계-
당시의 학계는 아직 교조적인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새로운 발견을 인정해주지도, 경험론적인 학설을 지지해주지도 않았지요. 유명 학자의 학설을 반박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다만 이 시기는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 등 기존의 저명한 학자들을 향한 비판이 시작된 과도기적인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를 넘긴 뒤, 유럽에서는 경험론에 힘을 입은 과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