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8)
8_여왕의 독(4)
대사가 차마 음식에 포크를 대지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을 때.
여왕은 속으로 생각했다.
‘왜 안 먹는 거지? 처음 보는 음식이 낯설어서 그런가?’
그렇다.
로베르의 생각과는 달리, 이 잔인한 식탁은 여왕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왕은, 진심으로 로베르를 접대할 생각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 걸까?
여기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첫 번째는, 여왕이 아직 이 시대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왕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유럽 사람은 토마토를 좋아하니까, 대사의 입에도 맞겠지.”
유럽에 이제 막 들어와 아직 식자재로 쓰이지도 않는 토마토.
신항로 개척의 산물로 소개하긴 안성맞춤이다.
“생토마토만 내놓긴 좀 성의 없어 보이니 파스타를 준비하는 게 좋겠네.”
그렇게 준비된 토마토와 토마토 파스타.
여기에 왕궁에 있는 육두구란 육두구는 탈탈 털어 넣어 쿠키까지 준비했다.
‘많이 넣는다고 맛있진 않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맛이 아니라 부의 과시지. 이 정도 사치를 부릴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하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이렇게 오해의 단초가 마련되었다.
물론 여왕도 바보는 아니니, 시종이나 요리사의 반응을 봤다면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오해의 두 번째 이유 발생.
문제는 왕궁의 시중인들이 지나치게 완벽했다는 점이다.
“그대들 표정이 안 좋군. 내가 준비한 음식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저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왕궁 베테랑 시중들의 생존감각은 사바나의 토끼보다 예민하다.
그들은 여왕이 준비하라는 음식의 목록을 듣고 직감한 것이다.
‘우리 여왕님께서 프랑스 대사를 독살하려고 하는구나!’
한낱 파리 목숨인 시종과 요리사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여기서 섣불리 눈치 없이 굴면 대사가 아니라 그들이 죽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 목숨을 부지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안 들리는 척, 안 보이는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래서 시종과 요리사들은 필사적인 연기를 했다.
“하, 하하! 요리에는 물론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저 대사에게 귀한 음식을 대접하는 것 아닙니까?”
“무, 물론입니다! 여왕 폐하께서 친히 동방의 요리를 대접했으니 대사도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이 주방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데요?”
요리사가 떨리는 손으로 겉보기만은 그럴싸한 파스타와 쿠키를 준비했다.
이 음식들은 이를 악물고 의연한 표정을 짓는 시종들의 손을 거쳐, 마침내 대사의 앞에 순조롭게 놓인 것이다.
음식을 앞에 두고 덜덜 떠는 대사를 바라보며, 여왕은 말했다.
“하나 말해두지. 여왕은 거짓말을 무척이나 싫어한다네.”
여왕의 말은 조금 전 보여줬던 책이 위조품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이런 식탁을 차려줄 정도로 신항로에 관심이 있었다는 뜻.
그러나 이 말이 때마침 겁쟁이 대사의 오해와 겹쳐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삼박자가 맞아떨어졌다.
돌이킬 수 없는 오해가 완성된 것이다.
“왜 먹지 않는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가?”
여왕의 채근에도 대사는 식은땀만 뻘뻘 흘리며 앉아있었다.
‘기껏 준비한 걸 왜 안 먹지? 혹시 부담스러운가?’
음식이 식어가는데도 대사의 포크는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왕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토마토라는 새로운 음식이 낯설어서 손댈 엄두가 안 날 수도 있지.
그런데 내가 명색이 여왕인데 내가 준 걸 손도 안 대는 건 좀 무례한 거 아니야?
“왜, 무슨 독이라도 들었을까 봐 그러나?”
-쨍그랑!
날 선 여왕의 농담.
어디까지나 농담이었을 그 말에, 대사가 손을 떨며 와인잔을 떨어뜨렸다.
“···이런. 대사는 테이블 매너가 좋지 못하군.”
“죄, 죄송합니다. 폐하. 제, 제가···!”
대사가 허둥지둥거렸지만, 이미 잔은 깨진 뒤.
기껏 베네치아에서 공수한 고급 유리잔이 날카로운 유리파편이 되었다.
피처럼 붉은 와인은 테이블보를 천천히 제 색으로 물들였다.
“쯧.”
여왕이 한 차례 혀를 차곤, 시종들에게 손짓했다.
곧 깨진 잔의 흔적은 이내 치워졌고, 시종이 정중히 새 잔을 채웠다.
끈적한 와인이 잔을 타고 선명한 핏빛으로 출렁이며 차올랐다.
대사는 멍하니 와인이 따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대의 고향, 론 알프스의 와인이라네.”
“ㅈ, 제 고향까지 알고 계십니까?!”
알긴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다고?
여왕이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자, 대사가 뒤늦게 말을 덧붙였다.
“거참, 영민하시군요. 폐하. 하하···”
귀머거리가 봐도 대사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대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기 때문이다.
“와인 정도야 별것도 아니지.”
여왕은 여상이 넘기고는, 포크를 들었다.
대사의 반응이 궁금해 기다리고 있었지만, 정 먹지 않는다면 우선 내가 먹어 안전하다는 걸 보여주면 될 것 아닌가?
여왕은 파스타를 포크로 둘둘 말아, 입에 가져갔다.
파스타는 다소 시고, 감칠맛도 부족했지만 그래도 먹을 만 했다.
“맛이 괜찮군.”
여왕은 진심으로 흡족하다는 듯 눈까지 감고 맛을 음미했다.
한 달 만에 먹는 익숙한 맛이었다.
감동으로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자, 이제 여왕이 직접 눈앞의 음식을 먹었다.
그러면 이걸로 대사의 어처구니없는 오해는 풀렸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이, 미치광이 여왕 같으니!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나를 죽이겠다고?’
대사의 손이 벌벌 떨렸다.
벨라돈나를 소량을 섭취하는 정도로는 어지간하면 죽지는 않는다.
다만 심각한 수준의 환각과 두통을 경험할 뿐.
‘지금도 엄청나게 괴로워 보이잖아!’
여왕이 눈을 지그시 감고 몸을 잘게 떤다.
대사는 이게 고통을 애써 참기 위한 행동이라고 확신했다.
‘이 상황에서도 신음 한 번 안 내는군. 정녕 악마라도 된단 말인가?’
대사는 소름이 끼쳤다.
여왕의 악의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을 테고.
그런데도 여왕은 태연히 먹었다.
오직, 대사 자신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여왕이 직접 먹기까지 한 이상··· 나도 먹을 수밖에 없어!’
명목상, 여왕은 아직 아무 잘못도 없다.
대접한 건 벨라돈나가 아니라 신대륙의 작물.
육두구 쿠키는 대사를 위해 준비한 사치스러운 다과일 뿐이다.
여왕이 직접 먹어 이걸 증명했다. 이걸 입에 대지도 않고 거절한다?
그보다 무례할 수가 없다. 일국의 여왕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자국 프랑스에 안 좋은 영향이 가는 건 물론이고, 대사 본인의 정치 인생도 끝장이다.
`그렇다면, 먹어야 한다고···?`
여왕이 얼마큼 먹는지는 똑똑히 지켜봤다.
즉, 그 정도 먹는 거로는 죽지 않는다는 것이겠지.
그러니 정확히 여왕이 먹은 만큼만 먹으면 된다.
고통스러워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머, 먹겠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로베르는 벌벌 떠는 손으로 포크 들었다.
간신히 포크로 파스타를 집고, 마지막으로 여왕의 눈을 바라본 순간.
-쨍그랑!
대사는 그만 포크를 손에서 놓쳐버렸다.
여왕은 태연하게 말했다.
“와인잔에, 포크까지. 대사는 아무래도 수전증이 있나 보군? 자꾸 물건을 떨어뜨리는 걸 보니 말이야.”
대사의 몸이 벌벌 떨렸다. 착각이 아니었다.
여왕의 눈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독살하려는 상대가 독극물을 먹는 걸 바라보면서도, 그저 웃는다.
그냥 순수하게, 그걸 먹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는 듯한 눈으로.
아무 생각 없이 잠자리의 날개를 뜯는 아이처럼 천진하면서도 섬뜩한 눈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지?
여왕에겐 감정이라는 게 없단 말인가?
곧 시종이 달려와 대사에게 새 포크를 쥐여주었다.
하지만 도저히, 포크를 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왜 그러나? 음식이 식겠네. 어서 그 음식을 먹어야 신항로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때 또다시 이어진 여왕의 채근.
그 말에 대사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만, 이거 살 길이 있는 것 아닌가?
그래, 바보같이 잊고 있었다.
여왕이 이 독극물을 가져오기 직전 상황을.
`분명 신항로 개척을 위한 투자를 얻어내려고···!`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래, 이건 대사 자신에 대한 원한이 아니다.
아니. 원한도 섞여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본 목적은 신항로다.
대사는 빠른 속도로 자신을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왕의 신대륙 계획은 분명 모험이고 무모하다.
하지만 그게 꼭 자국 프랑스에 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가?
어쩌면 여왕의 말대로 정말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도 있지 않을까?
게다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프랑스는 귀중한 인재를 잃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우리 프랑스에 더 이득 아닐까?
욱신거리는 양심과 애국심을 생존본능과 자기애가 이겨냈다.
대사는 고개를 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먹지 않아도 됩니다. 충분히 이해했으니까.”
한차례 심호흡을 한 대사는, 이내 최후의 자존심마저 내려놓고 안쓰러울 정도로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비벼댔다.
“저희 프랑스에서는, 폐하의 신항로 계획을 전면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거참 고마운 말이군. 그런데 그대한테 그 정도의 권한이 있나?”
대사는 속으로 여왕의 뻔뻔함을 욕했다.
고향까지 알면서, 설마 이런 걸 모르진 않을 것 아닌가.
겉으로는 볼살이 터질 듯한 웃음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런 권한은 없지요. 하지만 그렇게 만들 정도의 권력은 있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반드시 일을 성사시키겠습니다.”
대사의 이름은 로베르 드 후아티에.
프랑스의 왕 앙리 2세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애첩, 디안 드 후아티에 부인의 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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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스 강의 수면은 오늘도 푸르다.
아직 오염되지 않아 물고기가 뛰노는 잔잔한 강.
그러나 오늘 이 템스 강 가녘을 가득 채운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의 비늘보다 반짝이는 옷을 입은 귀족들이었다.
오늘이 바로 프랑스에서 온 사절단 일행의 귀국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하, 그간 대사 덕분에 즐거웠는데 무척이나 아쉽군요.”
윌리엄 남작이 친근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다시 볼 일이 있겠지요.”
대사는 며칠 만에 무척이나 핼쑥해진 모습이었다.
말을 마친 대사가 뒤를 돌아 준비된 범선에 올라타려 했으나, 남작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실 좀 신기하긴 합니다. 에스파냐의 사절단 일행은 배웅하는 이 하나 없이 조용히 떠나가고, 프랑스의 사절단 일행은 런던의 귀족들은 물론 여왕 폐하마저 환송하는 가운데 떠나다니요.”
다분히 시비조의 말투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아아, 제 말을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물론 프랑스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하지요.”
윌리엄 남작이 과장된 태도로 손을 내저었다.
“플랑드르 지방의 양털 수입을 늘리는 것은 전해 들었습니다. 거참, 저희 영국에는 무척이나 도움이 되는 조건이었지요. 그야 물론 환송받을 만하고 말고요.”
신항로 개척은 이제 막 프랑스에 제안을 보낸 단계.
모든 게 불확실했고, 자칫하면 의원들의 반대를 받을 수도 있기에 여왕은 의회에도 아직 이 부분을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런 모호한 태도는 윌리엄 남작에게 의구심을 심어주었다.
“대체 여왕 폐하께서 무슨 말을 하셨기에 그런 조약을 맺게 되었나 묻고 싶군요. 혹 여왕께서 의회 모르게 어떠한 약조라도 해주셨습니까?”
장난스러운 질문이었지만, 꽤 왕실 모독적인 내용이었다.
말을 내뱉은 남작은 그러고도 태연했지만, 대사는 누가 보기라도 할까 새파랗게 질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보시오, 남작. 적당히 하시오!”
생각보다 격렬한 반응에 남작이 살짝 당황했을 때, 주변을 둘러본 대사가 남작에게 작게 소곤거렸다.
“···나는 이 조약에 대해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소. 그러나 남작을 위해 작은 충고 하나 해드리지. 부디, 그대의 여왕을 가벼이 여기지 마시오. 기필코 후회하게 될 테니.”
말을 마친 대사는 누가 붙잡기라도 할세라 황급히 배에 올라타 버렸다.
결국, 윌리엄 남작은 빈손으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쯧, 한 번 떠보려고 했더니 생각보다 입이 무겁군.’
안타깝게도 남작은, 대사의 충고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윽고, 대사와 사절단 일행을 태운 배가 출발했다.
“배가 떠나는구나.”
조금 뒤에서 배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던 여왕이 중얼거렸다.
여왕은 속이 다 시원했다.
뒤에서 자신이 프랑스 대사를 협박했니, 암살하려 했니, 별 흉흉한 소문이 도는 건 알지만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과 달리, 자신은 현대인다운 외교력과 설득력으로 프랑스 대사를 설득했다.
그리고 오늘의 설득은, 후에 막대한 돈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여왕은 항구를 등지고 선 뒤, 즐거운 기분으로 신하들에게 선포했다.
“그대들 모두 저 배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게나. 저 배가 돌아오는 날, 우리 영국은 빛나는 영광을 얻게 될 테니.”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보통 이쯤 되면 예의상으로라도 여왕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신하들은 여왕이 아니라 여왕의 등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어, 폐하. 그게 혹시 바로 지금을 말하는 겁니까?”
영문을 알 수 없는 물음이었다.
이상함을 느낀 여왕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라?”
여왕은 체통도 잊고 멍하니 프랑스 범선을 쳐다보았다.
올라간 돛이 다시 접히고, 닻이 내려지고 있다.
아니, 이게 뭐람. 배가 다시 돌아오고 있잖아?
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배를 살펴보았다.
기분 탓일까. 어째 배 안이 무척이나 소란스러워 보인다.
무슨 큰일이라도 난 건가?
한편, 범선 안.
“이걸 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밀항자를 배에 태우다니! 자네들이 여왕의 분노를 감당하기라도 할 건가?”
그곳에서는 로베르의 절망 어린 한탄이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아니, 영국 여왕이 무슨 상관입니까? 어차피 떠나면 남의 나라 여왕인 것을.”
일행의 투덜거림에 대사가 발칵 화를 냈다.
“참 쉽게도 내뱉는군! 자네는 아무것도 몰라!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라고!”
그리고 이 모든 대화를, 밧줄에 묶인 사내가 엿듣고 있었다.
‘여왕은 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프랑스 대사가 저토록 겁을 먹는단 말인가?’
사내의 이름은 존 녹스.
프랑스 배를 통해 영국을 도망치려 한, 반역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