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 RAW novel - Chapter 515
515
제 515화
513.
그렇지 않아도 페이드 제국은 크라누스 때문에 골치가 쑤시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 크라누스가 암당의 지원까지 받고 날뛴다면?
로일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아니에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던걸요.”
바로 그때 수혁이 말했다.
로일은 수혁의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수혁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근데 녀석의 수급은 챙기셨습니까?”
로일이 물었다.
수혁은 로일의 물음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녀석이 크라누스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예,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볼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혁이 죽였다고 했다.
그러니 크라누스가 죽은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로일은 두 눈으로 크라누스의 죽음을 보고 싶었다.
“……예.”
수혁은 순간 수급을 꺼내야 하나 고민을 했다.
너무나 흉측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황제의 집무실.
집무실에서 수급을 꺼내는 것이 껄끄러웠다.
그러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집무실의 주인인 로일의 부탁이었다.
거기다 초롱초롱한 로일의 눈빛을 보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수혁은 인벤토리를 열어 잘 보이지 않게 인벤토리 구석으로 옮겨놓은 크라누스의 수급을 꺼냈다.
“……녀석이 맞군요.”
크라누스의 수급을 본 로일이 확신에 가득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일이 놀라지 않을까 생각했던 수혁은 예상외 반응에 생각했다.
‘역시 황제인가.’
황제라는 위치는 평범한 정신으로는 결코 오래 있을 수 없는 위치였다.
오히려 놀라는 게 이상했다.
“수혁 님.”
로일이 수혁을 불렀다.
수혁은 로일의 진중한 목소리를 듣고 무언가를 부탁하려는 것을 느꼈다.
“녀석의 수급을 저희에게 넘겨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리고 이어진 로일의 말에 수혁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수급을요?”
“예.”
로일은 수혁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이게 마지막입니다.”
수혁은 인벤토리에 있던 크라누스 살인마의 마지막 수급을 꺼내 내려놓았다.
“감사합니다.”
페이드씬의 수장 베르벳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아닙니다.”
수혁은 베르벳의 감사 인사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그럼 전 이만…….”
그리고 로일에게 인사를 한 뒤 집무실에서 나왔다.
집무실에서 나온 수혁은 황궁 도서관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자정이 넘었네…….’
예상보다 집무실에서 시간이 많이 소모됐다.
도서관에 도착한 후 로그아웃을 하기로 결정한 수혁은 로일의 설명이 끝난 후 나타났던 퀘스트를 떠올렸다.
‘이렇게 진행이 될 줄이야.’
퀘스트 완료 조건은 로일에게 수급을 넘기는 것이었다.
물론 완료 조건이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퀘스트 보상이었다.
퀘스트 보상은 놀랍게도 일곱 번째 메인 에피소드의 진행이었다.
‘5일이면 시작된다니.’
로일이 크라누스의 수급을 원했던 이유는 바로 암당 때문이었다.
크라누스의 수급을 통해 녀석들의 토벌을 알리고 암당과의 관계까지 공표를 해 다시 한번 암당에 압박을 넣는 것.
이것이 바로 로일의 계획이었다.
퀘스트 보상대로 5일 뒤, 일곱 번째 메인 에피소드 ‘대륙의 혼란, 크라누스’의 마지막 챕터가 시작될 것이다.
‘만약 안 줬으면 어떻게 됐으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수혁이 수급을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진행이 끝없이 미뤄졌을까?
아니면 또 다른 챕터가 기다리고 있었을까?
-연중 : 여, 황제는 잘 만나셨나?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연중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수혁 : 그래, 잘 만났지.
-수혁 : 5일 뒤, 마지막 챕터가 시작될 거야.
-연중 : 일곱 번째?
-수혁 : 응, 넌 어때? 잘돼 가냐?
-연중 :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연락했어.
“……?”
연중의 답을 들은 수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연중 : 퀘스트 끝냈다. 내일 아침에 7천계로 넘어갈 거야.
그러나 이어 날아온 연중의 귓속말에 수혁은 미소를 지었다.
-수혁 : 혹시 막히는 곳 있으면 연락 줘. 바로 갈 테니까.
-연중 : 오케이~ 쉬어라!
수혁은 연중과의 귓속말을 끝냈다.
그리고 황궁 도서관에 도착한 수혁은 바로 로그아웃을 했다.
캡슐에서 나온 수혁은 책장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당분간은 책이나 읽어야지.’
퀘스트 ‘잔당 토벌’을 진행하자니 녀석들의 위치를 모른다.
천계는 연중과 사냥왕이 진행할 것이다.
그리고 크라누스 역시 시간이 필요했다.
그나마 가장 빨리 다가올 일은 물의 길과 환상의 길, 그리고 빠르게 준비가 된 바람의 길이었다.
‘4시간이면 되겠지?’
수혁은 바로바로 도전할 생각이었다.
넉넉잡아 4시간이면 물의 길, 환상의 길, 마지막으로 바람의 길까지 전부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책장 앞에 도착한 수혁은 판게아에 대한 생각을 끝냈다.
그리고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아소멜은 초조한 표정으로 방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초조해하는 이유는 바로 크라누스 때문이었다.
크라누스의 은신처로 보급을 보냈다.
그런데 보급을 전달하고 보고를 해야 할 당원들이 보고를 하지 않았다.
당원들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알게 된 아소멜은 크라누스에게 연락을 했다.
보급을 받은 뒤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그 전에 생긴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크라누스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고 확인을 위해 정예 당원들을 보낸 상황이었다.
이제 곧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똑똑 끼이익
얼마 뒤 노크와 함께 기로스가 들어왔다.
기로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은신처에서 전투 흔적이 있었습니다.”
보고가 시작됐다.
“엄청난 마력의 흔적도 발견됐습니다…….”
말끝을 흐린 기로스는 아소멜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수혁으로 추정됩니다. 아무래도 전부…….”
기로스는 다시 한번 말끝을 흐리며 말을 마쳤다.
“…….”
아소멜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말뿐만이 아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쾅!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아소멜이 이내 책상을 내리쳤다.
정신을 차린 아소멜은 이를 악물며 생각했다.
‘수혁 이 새끼는 도대체!’
몇 주가 지난 게 아니다.
며칠도 아니었다.
고작 하루였다.
작전을 시작한 첫날에 작전이 박살 났다는 것, 그리고 오랜 친구 크라누스가 죽음을 맞이한 것 등 아소멜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기로스는 눈치를 살피며 아소멜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이내 분노를 가라앉힌 아소멜이 말했다.
“전부 접어.”
작전의 중심은 크라누스의 정예 살인마들이었다.
그들이 죽은 이상 페이드 제국, 독의 마탑, 빛의 마탑을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게림 공국의 일도 접습니까?”
“음…….”
아소멜은 기로스의 물음에 침음을 내뱉었다.
크라누스가 페이드 제국, 독의 마탑, 빛의 마탑을 흔들어 대륙에 혼란을 가져다줄 때 암당에서도 일을 벌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크라누스가 수혁에게 와해되며 문제가 생겼다.
‘접을 수는 없어, 접어서도 안 되는 거고.’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고 게림 공국의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해피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었다.
* * *
-인간 죽인다! 취익!
-취익! 동족의 복수를 위하여!
오크들이 흥분을 하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20초만 막아줘!”
도라는 오크들을 보며 테르킬에게 외쳤다.
테르킬은 도라의 외침에 바로 오크들에게 달려들었다.
오크들은 테르킬을 향해 몽둥이, 도끼 등 무기들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테르킬은 방패를 들어 오크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파이어 스톰.”
도라는 테르킬에게 어그로가 끌린 것을 확인하고 파이어 스톰을 시전했다.
캐스팅 바가 나타났고 도라는 초조한 표정으로 오크들과 캐스팅 바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직 이동 캐스팅을 배우지 않은 도라였다.
만약 오크가 다가온다면?
파이어 스톰 캐스팅 실패는 물론이고 물리 방어력이 약한 도라는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됐다!’
그러나 오크들이 도라에게 오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캐스팅이 끝났다.
스아악!
오크들의 발밑에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오크들의 공격을 받아내며 발밑을 주시하고 있던 테르킬은 재빨리 뒤로 몸을 날렸다.
테르킬이 몸을 날린 순간 마법진에서 불의 회오리가 나타났다.
오로지 마법 공격력에만 투자한 도라의 파이어 스톰은 강했고 오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다.
[레벨 업!]“나이스!”
오크들이 죽으며 레벨이 올랐고 메시지를 본 도라는 활짝 웃으며 외쳤다.
“축하한다.”
“감사링! 엠탐 좀 하자!”
도라는 테르킬의 축하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MP가 빠르게 회복됩니다.]그리고 자리에 앉아 명상 스킬을 시전했다.
명상 스킬을 시전한 후 도라가 말했다.
“근데 지금쯤이면 시작하셨으려나?”
“……뭘?”
테르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수혁 님!”
“……오늘 뭐 하는데?”
“카페 안 들어갔어? 오늘 수혁 님 도전하는 날이잖아!”
“뭐? 그게 오늘이었어?”
“그래!”
“그럼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너 직접 보고 싶어 했잖아. 사냥 접고 갈까?”
“에이, 마탑까지 가려면 비용이 얼만데!”
도라와 테르킬이 사냥을 하고 있는 피의 초원은 게림 공국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게림 공국은 마탑과 정반대에 위치해 있었다.
게림 공국에서 마탑까지 워프하려면 수많은 워프 게이트들을 이용해야 하는데 비용이 어마무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거기다 간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관문 통과하는 거 중계 안 해.”
“왜? 빛의 길 때는 보여줬잖아?”
“그건 빛의 대회라서 보여준 거고.”
만약 마탑에 도착한다고 해도 수혁을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엠탐 끝! 가자.”
도라의 말에 테르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통과하셨을까?’
도라는 테르킬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며 수혁을 떠올렸다.
빛의 길도 그렇고 독의 길도 그렇고 엄청난 속도로 돌파를 했다.
‘카페 한번 슬쩍 확인하고 올까…….’
지금쯤이면 물의 길을 통과했을 가능성이 상당했다.
바로 그때였다.
저벅!
테르킬이 걸음을 멈췄다.
쿵!
“악!”
수혁을 생각하며 멍하니 걸음을 옮기던 도라는 반응하지 못했고 테르킬의 등에 부딪히며 짧게 비명을 내뱉었다.
“왜 그래?”
그리고 물었다.
“……앞에.”
테르킬이 조용한 목소리로 답했다.
“……?”
도라는 테르킬의 답에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앞을 보았다.
“……!”
그리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수상한 자들이 수십이나 보였다.
“튀어야 할 것 같은데.”
테르킬이 말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테르킬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학살에서 벗어나라!’가 생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