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107
상남자 107화
마음은 정말 그랬겠지.
정말 좋아하니 이렇게 긴장하는 걸 테다.
어떻게 한다?
유현은 적당히 거리를 두며 필요할 때만 손을 내밀려고 했다.
강준기도 그걸 원했었다.
“아, 미치겠네.후우, 후우.”
“…….”
그런데 강준기의 불안한 눈빛이 자꾸 도움을 요청하는 것만 같았다.
그냥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려 해도 자꾸 그의 결혼식장에 못 갔던 과거의 일이 어른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식장 갈걸.
이미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 이번 한 번만 눈 딱 감고 도와준다.
“준기야, 이리 와 봐.”
“무, 무슨 일이야?”
“이렇게 해 보자.뭐냐 하면…….”
마음을 다잡은 유현은 강준기에 몇 가지 당부를 전했다.
툭툭.
그러곤 할 수 있단 듯 어깨를 토닥여 줬다.
찰싹.
가볍게 뺨을 때려 정신을 차리게 해 준 건 덤이다.
“할 수 있어.”
“해볼게.”
강준기가 애써 목소리에 힘을 담았다.
조용히 지켜보던 유현은 이소현이 있는 자리로 성큼성큼 걸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건 유현이나 강준기만이 아니었다.
여기 있는 대부분 친구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게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주최자인 이용오도 아직 오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끼리끼리 모여 있는 게 당연했다.
그 사이에 갑자기 툭 끼어들면 어떨까.
“안녕.오랜만이야.”
유현이 의자 끄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자 끼리끼리 앉아 있던 여자들 무리의 시선이 유현에게 향했다.
가벼운 인사를 던진 유현은 답을 듣지 않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앉아 있는 유현이 아니라 서 있는 강준기 쪽으로 쏠렸다.
강준기가 꾸미는 걸 못 해서 그렇지 결코 못난 얼굴이 아니었다.
특히나 눈웃음이 매력적이었다.
“어? 너 준기 맞지?”
“어.안녕.”
한 여자가 묻자 강준기는 눈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반가워.멋있어졌다.”
“너도 너무 예뻐졌는데?”
“호호호.”
몇 마디 말이 오가는 사이 유현은 여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눈썹 움직임, 눈동자의 떨림, 입가에 지어진 미소, 상체의 기울기, 손동작의 변화, 다리의 방향 등.
속을 감춰 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그들의 몸짓언어에서 정보를 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강준기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이소현은 고개를 돌려 강준기를 바라보기까지 했다.
관심이 있으면 볼 수밖에 없듯, 자주 보다 보면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고개를 돌렸을 땐 그 효과가 배가 된다.
이 모두 유현이 의도한 작전이었다.
일부러 이소현의 정면 자리가 아닌 측면 자리를 선택했다.
그녀의 좌측으로 넘긴 머리칼과, 왼손으로 턱을 괴는 습관을 고려해 우측을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기분이 좋아진 유현이 강준기를 불렀다.
“준기야.”
“응.나 음식 좀 가져올게.”
“그래.난 좀 있다가.”
유현이 테이블 아래에서 손짓하자 강준기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빠졌다.
뷔페가 이래서 좋았다.
긴장해서 숨을 고르러 잠시 빠져도 티가 나지 않았다.
그사이 유현에겐 할 일이 있었다.
테이블에 앉은 여자아이들은 5명.
아직 친해지지 않아서인지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 있다.
메인 이벤트가 시작되면 이렇게 대화할 시간이 줄어들 게 분명하다.
그 전에 분위기를 풀어야 함은 당연하고, 그 중심에 강준기가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건 유현 본인이 되어선 안 된다.
스윽.
유현이 테이블 중앙에 놓여 있는 맥주병을 가져오자 옆에 있던 한 여자가 병을 낚아챘다.
“내가 따라 줄게.”
“고마워, 현주야.”
“어? 내 이름 기억하네?”
“당연하지.”
어떤 무리든 중심은 늘 있는 법이다.
이 테이블에서 대화를 주도하는 건 김현주였다.
유현이 굳이 언급한 건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었다.
또르르.
김현주가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진짜 오랜만이다.”
“10년 조금 넘었지?”
“호호, 그래.시간 진짜 빨리 가네.너 서울에서 계속 공부했다며.안 힘들었어?”
“조금.그래도 너 음악 하는 거보단 덜 힘들었을 거 같은데?”
손가락 끝에 새겨진 굳은살을 보고 악기를 다루겠단 짐작을 했다.
그녀의 대화 속에서도 음악 학원이 나온 걸 보면 그 추측이 잘못되지 않았단 건 알 수 있었다.
“어? 내가 음악 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
“손가락에 굳은살 보고.그거 바이올린 열심히 했을 때 새겨지는 굳은살이라던데?”
유현의 말에 김현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바이올린은 그녀가 다루는 주 악기가 맞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대박! 유현이 너 진짜 대단하다.”
“별거 아냐.”
휴대폰 고리에 뻔히 바이올린 모형이 걸려 있어 말했을 뿐이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김현주의 이목을 사로잡았다는 게 중요했다.
“아냐.대체 어떻게 안 거야? 애들아, 유현이가 글쎄…….”
봐라.단번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주지 않나.
들썩거리는 반응하며 활달한 제스처하며, 역시 나팔수로는 제격인 성격이다.
‘예전 T모바일 CEO가 저랬었지?’
그가 나팔수 역할을 제대로 해 준 덕분에 북미시장 통신 업체들과 괜찮은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상황은 완전히 다르지만 핵심은 같았다.
여기서 살짝 강준기를 띄워 주자.
“아니, 아까 준기가 귀띔해 준 거야.”
“아, 진짜? 대박.준기 대단하네.”
유현은 자연스럽게 강준기를 대화의 테이블로 올렸다.
다른 여자아이들의 관심사에도, 유현의 소개에도 강준기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유현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김현주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직접적으로 자랑하는 것만큼 못난 건 없다.
하지만 친구를 통하면 달라진다.
그게 정말 친한 친구라면 어떨까?
강준기의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나오자 이소현의 눈썹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강준기가 음식을 뜨고 왔을 때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호호호호.”
“하하하.”
마치 자주 만나는 친구 사이처럼 살가운 분위기였다.
“준기야, 어서 앉아.”
“어.그래.”
심지어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않은 아이들이 이름을 부르며 손짓했다.
“어? 준기 너도 샐러드파야?”
“그냥.채소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릇에도 관심을 가져 줬다.
그러다 슬쩍 고개를 돌린 이소현과 눈이 마주쳤다.
일부러 같은 걸 떠 온 게 들킨 걸까.
쿵쾅쿵쾅.
심장이 뛰어 온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머리가 하얘진 기분이다.
그때 말총머리를 한 여자가 입을 열었다.
“준기 너 엔지니어라며?”
쟤 이름이 뭐더라…….김현주였나?
“응.어.”
“휴대폰 같은 거 만드는 거야?”
휴대폰? 목업이니까 비슷하긴 하지.
“비슷하지.”
“이야, 진짜 대단해.유현이 회사도 너네 회사 없으면 일 못 한다고 하더라고.”
“……그 정도는 아니야.”
고개를 돌리자 이미 유현이 자신을 향해 엄지를 척 내밀고 있었다.
고마운 자식.
이제야 상황을 알겠다.
유현이 판을 만들었다.
5분 사이에 마법을 부리기라도 한 것일까?
대체 어떻게 했는지 분위기가 참 신기하게 돌아갔다.
마치 이 자리에 자신이 주인공이라도 된 듯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고 보니 준기랑 소현이랑 썸 있었던 거 아냐?”
심지어 이렇게 정곡을 파고드는 질문도 있었다.
장난스러운 질문이었기에 그냥 넘기려 했다.
“에이, 아…….”
그때 옆에서 발끝을 툭 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대답은 아니라는 사인이다.
이소현의 시선이 느껴졌다.
-농담으로라도 말할 기회가 생기면 절대 놓치지 마.그렇다고 오버하진 말고.그냥 솔직히 말해.
유현이 녀석은 이런 상황이라도 예측한 걸까?
강준기는 떨리는 목소리를 장난기에 실었다.
“내가 그냥 좋아한 거지.”
“오오, 진짜? 소현이 너는?”
“현주야, 그만해.”
“…….”
분명 거절의 대답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잘되고 있단 사인이었다.
유현의 사인을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긴장이 많이 풀렸나 보다.
말이 술술 나오고 자신감도 생겼다.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이소현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또르르르.
술을 따라 주는 것도 이소현이었고.
“그럼 사는 곳이 이 근처겠네?”
“어.가까워.”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소현이었다.
그렇게 오매불망하던 이소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척 친근한 눈빛이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기분 좋게 진정되며 눈웃음이 지어졌다.
어? 이소현도 지금 눈웃음을 지은 거 맞지?
챙.
잔이 부딪혔다.
그녀가 인형 같은 입술로 말했다.
“원샷.난 시원시원한 남자가 좋더라.”
“내 별명이 강시원이야.”
“정말.”
“보여 줘?”
그대로 술을 쭉 들이켰다.
“크, 시원하다!”
일단 시작은 좋았다.
근데 한 번씩 툭툭 튀어나온 쓸데없는 농담이 문제다.
다행인 건 이소현이 관심을 놓진 않고 있단 거다.
다리 방향이 아직 강준기 쪽을 향하고 있다.
대화의 거리도 적당하다.
죽이 잘 맞는 거겠지, 뭐.
이쯤이면 유현이 할 몫은 했다.
그때 옆에 있던 김현주가 발그레해진 볼을 하며 물었다.
“무슨 생각 해?”
“아니, 그냥.”
“넌 여자 친구 없어?”
“좋아하는 사람 있지.”
“누군데?”
아직 모임 시작도 안 했는데 얘가 술이 많이 됐나 보다.
유현은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번쩍이는 시계를 차고, 쫙 빠진 정장을 입은 제비 같은 차림이다.
그는 마치 뒤늦게 등장한 주인공처럼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반갑다, 친구들아!”
“어? 용오야!”
“이야, 멋있어졌네.”
방 전체가 울리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에 단숨에 분위기가 입구 쪽으로 쏠렸다.
어색하게 따로 놀던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이용오는 입구 근처에 서 있던 웨이터를 손짓으로 불렀다.
그러곤 팁으로 만 원짜리 몇 장을 찔러 줬다.
“여기 테이블마다 와인 두 병씩 세팅해 줘.”
“감사합니다.잘 모시겠습니다.”
그러자 웨이터가 상전이라도 모시는 듯 90도로 허리를 접었다.
툭툭.
어깨를 치며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용오 엄청 대박쳤나 본데?”
“잘나가나 봐.저 가방 발리 거잖아.드라마에서 나온 거.”
“정장도 명품인 거 같아.”
“대박이네.대체 어떤 일 하지?”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술렁일 만했다.
아직 사회생활을 제대로 시작조차 해 보지 못한 녀석들이 태반이다.
설령 사회생활을 했다손 치더라도 와인을 시키고, 팁을 주는 모습이 익숙할 리가 없다.
이용오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테이블을 돌며 아이들에게 명함을 건넸다.
-미라클 인베스트 차장 이용오
“오, 용오 너 차장이야?”
“그냥 직함이 그런 거지, 뭘.”
이용오는 별것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거기에 기름을 부은 건 옆에 따라온 녀석이었다.
“야, 나 오늘 용오 차 타고 왔는데 뭔 줄 알아? BMW야.”
“오오오.”
“그런 차는 너도 탈 수 있다니까?”
“진짜? 어떻게?”
“좋은 데 투자하기만 하면 되는 거지.”
살살 꼬드기는 게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장소하며, 모임하며.
예측컨대 중3 모임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고등학교 모임도 그가 주선할 건 뻔했다.
왜?
짧은 시간 내에 분석을 마친 유현이 강준기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기꾼이네.”
“진짜냐?”
강준기가 놀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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