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294
상남자 294화
딱 두 걸음 옮겼을 때, 화장실에 다녀온 박승우 대리가 손을 흔들었다.
특유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함께였다.
“유현아, 고생해.내가 아이스크림 사 들고 올라갈게.”
“죄송하지만 외부인 출입 금지라서요.”
“야, 내가 외부인이냐?”
“그건 그룹장님께 여쭤봐야 할 거 같은데요.”
눈을 껌뻑이던 박승우 대리가 뒤늦게 돌아가는 사정을 눈치챘다.
“뭐야, 그럼 같은 건물에 있어도 보기 힘들겠네?”
“아마 그럴 거 같아요.”
“전화는 되지?”
너무나 당연한 질문인지라 유현이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당연하죠.언제든 연락 주세요.”
“그래.회식은 참석할 거야?”
“그럼요.무조건 가야죠.”
유현의 시원한 답에, 잠시 굳었던 박승우 대리의 얼굴이 다시 펴졌다.
“그럼 됐어.”
“네.다녀오겠습니다.”
돌아 선 유현을 보며 박승우 대리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제 정말 자주 못 볼 텐데…….”
그의 얼굴엔 아쉬움이 한가득이었다.
유현이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애린이 타이밍 좋게 다가와 인사했다.
“유현 씨, 올라가는 거죠?”
“네.이제부터 열심히 해야죠.”
“자, 이거 가지고 가세요.담당님께서 준비해 주신 거예요.”
그러곤 유현에게 큰 봉지를 건넸다.
거기엔 과자와 음료수가 가득했다.
비닐봉지를 받아 든 유현이 인사했다.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접 올려 드리고 싶은데, 15층에 전달해 드리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요.”
“이 정도도 과하죠.너무 감사해요.잘 먹을게요.”
“발표 준비 잘해요.파이팅.”
이애린이 주먹을 쥐며 응원하자 유현은 미소로 화답했다.
몇 마디 대화 속에서 깊은 동료애가 느껴졌다.
참 반갑고 가슴 따뜻한 느낌이었다.
비단 이애린뿐만이 아니었다.
떨어진 지 불과 반년 조금 넘은 거 같은데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
동기들도 있었고, 이번에 홍보팀에 입사한 조은아도 있었다.
그리고 또 확인하고 싶은 후배 1명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고개를 저은 유현은 발걸음을 이었다.
막 마케팅팀 자리를 지날 때쯤,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장준식 씨.지금 이게 대체 뭐 하자는 짓이야? 대체 왜 딴지를 걸어?”
“죄송합니다.하지만 전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허.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신입 사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선배에게 맞서고 있었다.
그냥 눈 딱 감고 넘어가면 될 일인데, 괜히 한마디 했다가 더 깨질 처지였다.
유현은 잠시 발걸음을 멈춰 신입 사원을 바라봤다.
과거 유현의 후배였던 장준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아직 마케팅팀에서 상품기획팀으로 옮기기 전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유현이 헛웃음 지었다.
“자식, 여전하네.”
유현이 향한 곳은 15층 VIP 접견실이었다.
고급스러운 회의실을 유현과 김영길 과장이 일주일 동안 전세 냈다.
이곳에서 앞으로 애플 품평회가 있기 전까지 발표 준비를 할 예정이었다.
먼저 와 있던 김영길 과장이 유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한다.”
“네.잘해 보시죠.”
유현이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김영길 과장은 진짜 이 악물고 준비했다.
유현도 지금껏 자료를 모아 서포트했다.
“유현아, 여기서…….”
“네.그 부분은…….”
고급 자재로 만들어진 벽엔 종이가 덕지덕지 붙었다.
화이트보드엔 빽빽한 글씨가 채워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품평회 발표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네, 잠시만요.”
대답한 유현이 창이 막혀 있는 두꺼운 문을 열었다.
그러자 여태식 전무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친히 양손 두둑하게 뭔가를 들고 왔다.
“그룹장님.”
깜짝 놀란 김영길 과장이 목소리 높였고, 유현은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온 건 아니지?”
여태식 전무의 물음에 유현이 넉살 좋게 답했다.
“다음부턴 미리 연락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헐.”
순간 김영길 과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여태식 전무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 모습에서 소탈한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곧이어 여태식 전무가 내민 종이가방엔 도시락이 있었다.
딱 봐도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허허.그러지.아, 그리고 이거.자네들이 좋아할지 모르겠군.”
“당연히 좋아하죠.같이 드시죠.”
유현이 반색하며 말하자 여태식 전무가 미소 지었다.
“그럼.그러려고 온 거니까.”
두 사람의 살가운 모습을 보며 김영길 과장이 눈을 껌뻑였다.
테이블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동안 여태식 전무가 이것저것 물었다.
“출장 갈 때…….”
“네.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일상에 관한 이야기는 유현이 답했다.
김영길 과장은 어색함을 달래며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그러던 중 여태식 전무의 입에서 일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 준비는 어떤가?”
그 순간, 김영길 과장이 기다렸다는 듯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물론 말투는 더할 나위 없이 딱딱했다.
“지금은 발표 준비 초기 단계로서…….”
“잘하고 있네.”
아직 초기다 보니 여태식 전무가 상투적인 칭찬으로 힘을 불어넣어 줬다.
김영길 과장이 바짝 각 잡힌 자세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그룹장님께서 지원해 주신 덕분입니다.”
“허허.내가 한 게 뭐 있다고.”
여태식 전무가 웃으며 손을 젓자, 유현이 끼어들어 분위기를 띄웠다.
“장소도 지원해 주시고, 이렇게 맛있는 것도 챙겨 주시지 않습니까.”
“이런 거야 얼마든지 가능하지.”
“지원해 주신 애플 노트북도 잘 쓰겠습니다.”
“발표자들이 요청하는데 당연히 지원해 줘야지.”
당연한 걸 당연하게 생각할 상사는 몇 없다.
발표하는데 굳이 노트북까지 바꿔야 하나 싶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태식 전무는 두말하지 않고 유현의 요구를 실행에 옮겼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유현이 그가 원하는 답을 들려줬다.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허허.그래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훈훈한 분위기에서 몇 마디가 더 오고 갔다.
식사를 마친 여태식 전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괜히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군.”
“아닙니다.오늘 너무 영광이었습니다.”
김영길 과장이 딱딱하게 말하며 허리 숙였다.
여태식 전무가 그의 어깨들 두드렸다.
“김 과장, 내 앞에서 너무 얼 필요 없어.발표 상대는 내가 아니야.”
“네.명심하겠습니다.”
“여전히 너무 긴장한 거 같은데?”
여태식 전무의 장난기 어린 물음에 유현이 넉살 좋게 답했다.
“그룹장님께서 직접 도시락을 들고 와서 그렇습니다.”
“허허.그럼 다음부턴 그냥 배달만 해야겠군.”
“아, 아닙니다.”
김영길 과장이 당황한 듯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여태식 전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제야 좀 낫군.그럼 이만 가 보겠네.”
“들어가십시오.”
유현이 문 앞까지 그를 배웅했다.
여태식 전무가 나가자마자 김영길 과장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진짜 죽는 줄 알았네.”
“사업부장님 앞에서 발표할 때보다 어째 더 긴장하신 거 같아요?”
“그건 준비한 거고, 이건 라이브잖아.”
“이건 아무것도 아니죠.이번 발표는 정말 예측 불허의 라이브입니다.”
유현이 살짝 조이자, 김영길 과장이 손을 뻗으며 숨을 골랐다.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알지.잠깐만.후우, 후우.”
“그렇다고 지금부터 긴장하실 건 없고요.”
유현이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김영길 과장은 준비를 철저히 해야만 긴장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지금껏 늘 그랬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그가 더 강하게 의지를 불태웠다.
“안 되겠다.진짜 일주일 동안 밤새워야겠어.”
“일단 오늘은 쉬시죠.파트 회식 있잖아요.”
“하루만 미루면 안 될까? 너무 불안해서 그래.”
김영길 과장다운 열정이었다.
유현도 충분히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일이 잘되는 건 아니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이번 건 상황이 다르지.”
“안 됩니다.차라리 첫날 빠지는 게 훨씬 나아요.”
유현의 말이 그럴듯했는지 결국 김영길 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휴.그래.가자, 가.”
“알겠습니다.연락해 놓을게요.”
그러곤 김영길 과장은 더 이를 악물었다.
“대신 퇴근 전까지 죽어라 달려 보자고.”
이 역시 김영길 과장다운 태도였다.
그 정도는 유현도 흔쾌히 응해 줬다.
“네.그러시죠.”
그날 저녁.
유현은 정말 오랜만에 국밥집에 들렀다.
입구에 서 있던 국밥집 아주머니가 유현을 보자마자 두 팔을 벌려 안았다.
“유현아.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잘 지내셨어요?”
곧이어 유현의 얼굴을 만지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뱉었다.
“어머, 살 빠진 거 좀 봐.요새 너무 고생하는 거 아냐?”
“아니에요.잘 먹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당연히 그래야지.우리 예슬이는…….”
국밥집 아주머니의 말이 길어지자, 뒤에 있던 박승우 대리가 헛기침을 했다.
“흠, 흠.”
그런 박승우 대리를 국밥집 아주머니가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박 과장은 얼른 자리나 잡아.여기서 뭐 해?”
“안내해 주셔야죠.”
“늘 앉던 자리 앉을 거 아냐.먼저 가서 술병이나 깔아.”
냉정하게 말을 던진 국밥집 아주머니가 다시 유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유현이 진짜 오늘 많이 먹여야겠네.”
“하하.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살갑게 대화하는 두 사람을 보며 박승우 대리가 입을 삐죽였다.
딱 봐도 삐친 표정이었다.
“매상은 내가 다 올렸는데, 유현이만 좋아하고.”
그 말을 들은 국밥집 아주머니가 즉각 답했다.
“유현이는 잘생겼잖아.”
“…….”
“하하하.”
뒤따라온 파트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박승우 대리는 축 처진 채 가게로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곤 술을 꺼내면서 중얼거렸다.
“오늘 여기 있는 거 다 마셔 버릴 테다.”
“놀고 자빠졌네.”
물론 그 말도 국밥집 아주머니가 칼같이 잘랐다.
기운 빠진 박승우 대리의 어깨는 잠시 후 한껏 치솟았다.
국밥집 아주머니의 특급 서비스 때문이었다.
방 안 테이블엔 쉴 새 없이 음식들이 깔렸다.
박승우 대리가 엄지를 척.하고 내밀었다.
“이모님, 역시 짱이십니다.”
“됐어.박 과장은 먹지 마.살 빼야지.”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박승우 대리가 우는 소리를 하자, 국밥집 아주머니가 툭 하고 말했다.
“한동안 미국 간다며? 너무 뚱뚱하면 무시당해.”
“네? 어떻게 아셨어요?”
“여기 있으면 회사 돌아가는 거 다 알아.유현이 울산에서 고생한 것도 알고.”
“그래요?”
놀란 듯 묻는 유현에게 국밥집 아주머니가 눈을 찡긋했다.
“그럼.다 듣는 곳이 있지.”
달칵.
그러곤 술병을 따 박승우 대리의 잔을 채워 줬다.
“박 과장, 그러지 말고 한 잔 받아.”
“아, 감사합니다.”
쪼르르.
국밥집 아주머니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근 뒤에서 챙겨 주는 마음이 잔잔하게 전해졌다.
“그간 고생 많았어.가서도 잘할 거야.”
“제가 뭘요.너무 감사합니다.”
박승우 대리는 살짝 감동을 받은 듯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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