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315
상남자 315화
그리고 다음 날.
인현대 앞에 도착한 유현은 황당했다.
정문 입구 안쪽에 걸려 있는 현수막 때문이다.
-한성전자 한유현 선배님의 살아 있는 면접 강의 실시.경영학과 학생회 일동.
현수막이 끝이 아니었다.
대자보에도 유현의 면접 강의 소식이 좌르르 붙어 있었다.
학생들이 만들어서인지 퀄리티가 그리 높진 않았지만, 열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유현은 박두식 과장의 말을 떠올리며 헛웃음 지었다.
“부담 없이 아주 가볍게 몸만 오면 된다며.”
그때였다.
대자보 앞에 있던 유현에게 누군가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오빠.”
“어? 예슬아, 넌 여기 웬일이야?”
국밥집 아주머니의 딸이자, 인현대 2학년을 앞두고 있는 정예슬이 활짝 웃고 있었다.
놀란 유현에게 정예슬이 콕 집어 말했다.
“웬일이라뇨? 오빠 왔는데 당연히 와야죠.”
“카메라는 또 뭐고?”
“제가 ‘대학내일’ 기자잖아요.그래서 오빠 강의하는 거 좀 찍으려고요.”
“아니, 그냥 선배의 말인데 찍을 게 뭐 있어?”
“걱정 마세요.소소한 것에서 멋진 분량을 뽑아내는 게 진정한 기자니까요.”
마냥 어린 꼬맹인 줄 알았던 정예슬이 이제는 오은비 기자처럼 넉살도 부렸다.
유현이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이번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현 오빠.”
돌아보니 학교 후배이자, 홍보팀에 막 입사한 조은아가 있었다.
“은아야, 넌 웬일이냐?”
“오빠 면접 강의 하는데 와야죠.”
너무나 당연하게 내뱉는 그녀의 말에 유현이 실소를 뱉으며 물었다.
“그럼 회사는?”
“이것도 출장차 온 거예요.오빠 면접 강의를 사업부 홍보물로 쓰려고요.”
“뭐? 갑자기 홍보물이 왜 나와?”
강당에서 하는 강의도 아니고, 그냥 강의실에서 하는 작은 강의였다.
강의라기보단 말 그대로 선배와의 간담회와 비슷했다.
그런 자리에 홍보팀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조은아는 마냥 좋은 표정이었다.
“에이, 인사팀에서 이야기 다 해 줬어요.저도 이참에 학교 구경도 하고 좋죠, 뭐.”
“…….”
유현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두 여자에게 둘러싸인 유현 앞에 한 남자가 다가왔다.
제법 단단한 인상의 그가 느닷없이 허리를 팍 접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어, 한수야, 너 회사는 어떻게 하고?”
과거 회사에서 채용 설명회를 했을 때, 유현이 도움을 줬던 후배였다.
한성전자에 입사한 그는 지금 김포 공장에 있어야 했다.
유현의 물음에 그가 기합 들어간 대답을 내놓았다.
“선배님 뵙기 위해 휴가 냈습니다.”
“뭐? 그럴 거면 그냥 따로 연락하지.”
“아닙니다.이렇게 다른 후배들에게도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이한수 뒤로 후배들이 주르르 섰다.
그 모습만 봐도 교내에서 이한수의 입지를 알 수 있었다.
“얘들아, 인사드려라.한유현 선배님이시다.”
이한수가 턱짓하자 후배들이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그야말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은 너무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찰칵.찰칵.
정예슬은 그 상황에서도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다.
조은아는 이에 질세라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정문 안 대자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었다.
유현의 황당함은 강연이 열리는 장소에 도착해서도 계속됐다.
소강당 앞에 선 유현이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강의실이 아니라 강당이었어?”
“네, 선배님.처음엔 강의실이었는데, 한성전자에서 지원해 준다고 해서 급히 장소를 바꿨습니다.”
이벤트를 준비한 과 학생회 회장이 바로 답했다.
한성전자의 지원?
머릿속에 물음표가 뜨기도 전에, 유현의 눈에 소강당 입구 앞에 우르르 모여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다들 손에 뭔가를 하나씩 들고 밝게 웃고 있었다.
소강당 안쪽으로 들어가니, 복도 가판대 앞에 익숙한 남자가 보였다.
바로 인사팀 동기 서창우였다.
“창우 형, 형이 왜 여기 있어요?”
“아, 유현아, 너 강의한다고 해서 지원 나왔지.”
“형이 왜요?”
“나만 나온 게 아냐.인사팀 사람들 몇몇 나왔어.”
서창우가 턱짓하는 곳을 보니, 책자를 나눠 주는 사람들이 보였다.
유현의 이름이 나와서인지, 무리 지어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 아는 체를 했다.
“어? 선배님이신가 보다.”
“맞아.여기 책자에 실린 얼굴이랑 똑같잖아.”
민망한 상황에서 유현은 일단 인사했다.
“네.안녕하세요.”
“선물 잘 쓸게요.”
“그냥 면접 강의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잘 챙겨 주는지 몰랐어요.”
“한성 최고.”
많은 선물이 뿌려졌는지 다들 표정이 밝았다.
학생들이 점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몰려온지라, 이한수가 팔을 뻗으며 나섰다.
“후배님들, 죄송하지만 거리 좀 벌려 주세요.”
꼭 연예인을 지키는 매니저 같은 모습에 유현이 실소를 뱉던 찰나였다.
인사팀 후배에게 자리를 맡긴 서창우가 유현의 팔을 끌었다.
“유현아, 잠시만.”
그러자 이한수가 눈치껏 말하며 강당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선배님, 제가 조용한 자리로 안내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센스 있는 대응에 서창우가 엄지를 내밀었다.
유현이 헛웃음을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과 학생회장과 정예슬, 조은아가 그 뒤를 따랐다.
소강당 단상 쪽에는 한성전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200석 정도 되는 자리는 아직 시작하기 한참 전인데도 대부분 차 있었다.
이한수의 안내를 따라 소강당 대기실에 들어간 유현이 서창우에게 말했다.
“형,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사실 말이야…….”
서창우의 말을 들어 보니 점입가경이었다.
모바일 그룹장 여태식 전무가 선물을 지원하자, 제품 4담당인 고준호 상무와 영업마케팅 담당인 조찬영 상무도 거들었다.
면접 강의가 한성전자 공식 행사가 된 데다, 선물까지 뿌려 대니 학생들이 마다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이거 과 행사 아니에요? 사람이 너무 많잖아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서창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할 때였다.
뒤에 있던 정예슬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말했다.
“제가 이미 학교에 소문 쫙 퍼트렸죠.”
이에 질세라 뒤따라온 학생회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선배님, 저희가 최대한 홍보했습니다.”
현수막을 걸고 대자보까지 붙였으니 그럴 만했다.
유현은 고개를 내밀어 소강당 안을 다시 한 번 둘러봤다.
잠시 이야기하는 사이, 이미 강당 안이 가득 찼다.
자리를 못 잡아 바닥에 앉은 학생들도 있었다.
유현의 입에서 걱정이 절로 나왔다.
“이래서야 할 수 있을까?”
“자리가 비좁긴 해.”
서창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과 학생회장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이미 다른 강당들이 다 차 있어서요.”
“아냐.네가 죄송할 건 없지.”
유현의 말이 딱 끝난 순간이었다.
대기실에 들어온 한 학생회 후배가 학생회장을 불렀다.
“선배님, 공대 쪽에서도 인원들이 계속 몰려오는데, 어쩌죠?”
“왜? 오늘 공대에서 일성전자 행사하는 거 아니었어?”
학생회장의 물음에 학생회 후배가 답했다.
“펑크가 났나 봐요.”
그 시각.
인현대 경영학과 전상현 교수는 박두식 차장과 마주했다.
과거 같은 학교 조교수와 학생으로 만났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전상현 교수가 다시 한 번 지원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이렇게 신경 써 줘서 고마워.덕분에 제자들 앞에서 체면이 섰어.”
“아닙니다, 교수님.저보단 한유현 대리가 고생하는 거죠.”
“하하.그래.한유현 군에게 그런 재능이 있는지 몰랐어.”
전상현 교수는 타 과에서 전과한 유현을 그리 인상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 행사에 참여하기보다는 학점 관리에만 매달리던 학생 정도로 기억했다.
“네.제가 면접을 봤지만 정말 뛰어납니다.”
“안 그래도 제자들이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하더군.”
제자들뿐만이 아니었다.
만 2년이 채 안 된 직원을, 회사에서 전폭 지원했다.
전상현 교수 입장에서는 호기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과 학생회장이 얼굴을 드러냈다.
그가 흥분한 표정으로 다짜고짜 말했다.
“교수님, 공대 쪽 인원들까지 몰려와서 소강당에 자리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공대 측에서 이번에 일성전자 행사를 열었는데…….”
이야기를 듣던 전상현 교수와 박두식 차장이 눈을 마주쳤다.
한편, 공대 학생회장은 속이 타 죽을 맛이었다.
일성전자 지원 행사에 참여하러 온 학생들에게서 볼멘소리가 나온 까닭이다.
사전 경품까지 지원하기로 했는데, 일정이 확 밀려 버렸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게다가 뒤늦게 이벤트를 준비한 경영학과 쪽에서는 선물 공세였다.
듣자하니 벌써 발표자가 와서 준비 중이란다.
그간 치러진 일성전자 행사에서는 절대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젠장.아무리 선배라도 그렇지, 이건 너무 갑질이잖아.”
공대 학생회장이 뱉은 짜증 섞인 말에, 옆에 있던 공대 부학생회장이 말했다.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또 그러네요.일성전자 인사팀 선배는 뭐래요?”
“뭐라긴, 그냥 대기하라고 하지.이젠 미안하단 소리도 안 해.”
“에휴.이젠 일성 행사는 안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차라리 과감하게 엎고 싶다.갑질에 똥침이라도 좀 놓게.”
공대 학생회장이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보고 있을 때였다.
지이잉.
기다렸던 전화가 걸려 왔다.
일성전자 인사팀에서는 이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좀 늦으면 뭐 어때.갑은 우린데.”
담당자가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부하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측에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나중에 볼펜 같은 거 좀 더 주면 되지.아, 근데 한성에서도 뭐 한다고 하지 않았나?”
“소강당에서 하는 작은 행사입니다.선배와의 대담 같은 건가 본데요.”
“별일은 아니군.그나저나 회사에서는 언제 지원 오려나.”
남자가 느긋한 표정으로 말할 때였다.
전화를 받은 부하 직원이 화들짝 놀라 말했다.
“과장님, 공대 학생회 측에서 일정을 취소하겠다는데요?”
“뭐라고?”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니 결정은 순식간이었다.
소강당 단상에 올라선 경영학과 학생회장이 크게 소리쳤다.
“행사 장소가 대강당으로 바뀌었습니다.모두 빨리빨리 이동해 주세요.”
학생회 인원들은 현수막과 대자보를 강당에 옮기느라 분주했다.
행사 지원을 나온 한성전자 인사팀 직원들도 짐을 들고 자리를 이동했다.
찰칵.찰칵.
정예슬은 재미난 기삿거리라도 발견했는지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 댔다.
조은아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진행 상황을 기록했다.
이한수가 또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배님, 가시죠.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괜찮아.”
유현이 손바닥을 내밀자, 그는 한 걸음 떨어진 채로 유현을 보호하며 걸었다.
그 모습이 더 부담스러웠다.
대강당 입구에선 공대 학생회 인원들이 붙어 있는 일성전자 행사 안내표를 떼고 있었다.
그 대신 유현의 면접 강의 현수막을 걸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 일인데, 학생들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인사팀 직원들도 소강당에서 떼어 온 포스터를 대강당에 붙였다.
일부는 선물을 나눠 주고 있었다.
한성전자 로고가 붙은 티셔츠, USB, 볼펜, 노트, 가방, 달력 등이 빠르게 팔려 나갔다.
덕분에 옮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대강당 앞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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