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351
상남자 351화
유현은 남자에게 다가가 막 탄 커피를 내밀었다.
밀짚모자 챙에 눈이 가려져 남자의 정확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커피 한잔 드시겠습니까?”
“거기 내려놔.”
“네.알겠습니다.”
유현은 답한 후 옆에 걸터앉았다.
대뜸 반말조의 말이 기분 나쁠 만도 하건만,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남자의 나이가 꽤 들어 보여서가 아니었다.
그보단 격이 느껴져서라는 게 더 합당한 이유였다.
대체 이 누추한 차림의 남자에게 왜 그런 느낌이 드는 걸까?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이유를 대 봤지만, 답을 찾진 못했다.
그냥 특별했다.
수많은 사람을 겪은 유현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유현의 시선 때문인지 남자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그렇게 산만하니 물고기 하나 못 잡지.”
유현은 욱하는 마음을 누른 채 답했다.
“그럼 제가 그 낚싯대 한번 잡아 봐도 됩니까?”
“그건 커피 값으론 안 되겠는데.”
“제가 라면을 대접하겠습니다.”
“그러든지.”
낚싯대를 내려놓은 남자는 땅에 놓여 있는 종이컵을 집어 들었다.
그가 커피를 입에 대고 있는 사이, 유현은 휙 하고 나무 낚싯대를 들어 봤다.
이상하게도 갈고리에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
유현이 힐끔 남자를 봤지만, 남자는 대답 없이 커피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그의 눈은 밀짚모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유현은 묻지 않고 일단 낚싯대를 던졌다.
그러곤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찌에 집중했다.
지금까지는 그냥 태평하게 낚시했다면, 지금은 아니었다.
온 신경을 낚싯대에 쏟았다.
뛰어난 유현의 집중력과 관찰력이 찌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잡아냈다.
일렁이는 물결 위로 찌가 휘청거렸다.
휙.
유현이 낚싯대를 빠르게 드는 순간이었다.
기대와 달리 낚싯대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대신 남자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쯧쯧.머릿속이 그렇게 복잡해서야.”
“미끼도 없는데 어떻게 잡습니까?”
“변명거리도 참 많군.이리 줘 보게.”
종이컵을 내려놓은 남자는 낚싯대를 잡은 후 가볍게 던졌다.
굳이 멀리 던지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툭 하고 물에 빠졌다 올라온 찌를 보던 유현이 남자를 살폈다.
그의 모습에서 허세 따윈 절대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유현은 속마음을 감춘 채 남자의 행동에 집중했다.
처음엔 낚싯대를 잡은 손의 떨림을 살폈고, 좌우로 흔들리는 상체와 미세하게 끄덕이는 고개를 눈에 담았다.
곧이어 그의 맥박을 느끼며, 깊은 호흡을 따라하기도 했다.
한없이 편해 보인 그의 동작이 일렁이는 물결과 닮아 있었다.
휘우웅.
살랑거리는 바람에 물결이 일자 그의 몸도 움직였다.
유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늘어뜨리고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취적비취어(取適非取魚)라고 했네.”
물론 유현도 아는 말이었다.
낚시를 하는 이유가 고기 잡는 데에 있지 않고, 세상 생각을 잊고자 하는 데에 있단 말이었다.
그건 굳이 시간 내서 낚시를 하는 유현의 목적과도 일맥상통했다.
“저도 물고기 잡을 생각은 없었습니다.머릿속을 비우려 낚시를 하는 거죠.”
“비우는 척을 하려는 거겠지.”
“…….”
돌아오는 남자의 답에 유현은 할 말을 잃었다.
동시에 김현민 팀장이 뱉은 말이 유현의 뇌리를 스쳤다.
-유현이 넌 너무 여유로운 척하려는 게 티 나.
별것 아닐 수도 있을 상사의 말을 유현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여유롭고 싶은 바람이야말로 어느새 유현의 삶에 작은 지표가 된 탓이다.
유현은 진정으로 여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래서 더 비우려 했다.
전출에 순순히 응한 것도, 이곳에서 일부러 편하게 지내려 한 것도, 그리고 낚시를 하려는 것도.
비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덕분일까?
쉬는데 전보다 어색하지 않았다.
이젠 제법 여유를 즐길 줄도 알았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분명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자는 아니라고 했다.
척하는 것뿐이라 했다.
유현이 따지려던 찰나, 남자가 낚싯대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파닥파닥.
어김없이 물고기 1마리가 걸려 나왔다.
유현이 놀라기도 전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릿속이 엉켰는데 비워질 리가 있나.”
순간 유현의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쳤다.
그 한마디가 머리 한쪽에 꽉 들어서 있던 생각의 타래를 꿰뚫은 탓이다.
놀란 유현이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해야 할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게 바꿀 수 있습니까?”
“이제는 자신의 인생까지 남에게 물어보려 하나? 허허.”
“…….”
남자의 선문답에 유현은 선뜻 다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깨를 한 번 으쓱인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며 말했다.
“별로 재미없구만.라면은 나중에 먹기로 하지.”
정신을 차린 유현이 재빨리 일어나 그의 옷깃을 잡았다.
평소 절대 하지 않던 유현의 행동에서 절실함이 묻어 나왔다.
“어르신, 잠시만 더 시간을 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안 돼.”
남자는 냉정하게 돌아섰다.
유현은 다시 잡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허공에 손을 뻗은 채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바람에 펄럭이는 셔츠 때문이지 그의 등이 유난히 커 보였다.
발걸음을 잇던 남자가 잠시 멈칫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마디를 툭 던졌다.
“세상 고민 다 가지고 살아봐야 머리만 아파.”
“…….”
멍하게 있던 유현이 정신을 차렸을 땐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봤지만 남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남아 있는 낚싯대와 포대만이 남자의 흔적을 증명했다.
다음 날도 유현은 낚시터를 찾았다.
하지만 밀짚모자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툭.
유현은 전원을 끈 휴대폰을 텐트에 내려놓았다.
전기포트에 물을 받거나 라면을 끓여 먹지도 않았다.
그저 자리에 앉아 낚시에 집중했다.
로라파커를 만날 때처럼, 스티브 잡스를 상대할 때처럼.
집중력을 한없이 끌어올렸다.
휙.
하지만 결과는 다를 바 없었다.
대체 왜 안 되는 걸까?
침착하게 숨을 고른 유현은 어제 봤던 남자의 동작을 복기했다.
“이렇게 했었지?”
어설프게나마 남자가 했던 것처럼 낚싯대를 다시 던졌다.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시선을 앞으로 뒀다.
물결의 흐름대로 손끝에 떨림이 전해졌다.
아주 깊은 호흡을 하며 슬며시 눈을 감았다.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느껴졌다.
풀 냄새, 물 냄새가 코끝을 적셨다.
살아나는 감각에 집중하며 의식적으로 생각을 비웠다.
분명 한결 몸이 편해진 것 같은데, 물고기는 잡히지 않았다.
남자 때문에 물고기에 집착이라도 하게 된 걸까?
어제까지만 해도 별 신경 안 썼던 일이 이제는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입에서는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하아.”
순간 유현의 귓가에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쯧쯧.머릿속이 그렇게 복잡해서야.
고개를 세차게 저은 유현이 낚싯대를 휙 들어 올렸다.
집중해도 안 잡힐 고기가 이런다고 잡힐 리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하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린 유현은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밀짚모자 남자는 볼 수 없었다.
그를 너무 의식해서일까?
낚싯대를 잡고 있을수록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더는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무의미하단 결론을 내린 유현은, 결국 낚시를 내려놓았다.
판단이 끝난 후의 행동은 언제나처럼 빨랐다.
유현은 정리한 낚싯대를 가방에 담은 후 한쪽 어깨에 멨다.
묵직한 무게감이 꼭 지금 유현의 마음을 보여 주는 것만 같았다.
비우러 왔다가 혹을 달고 가는 기분이라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터벅터벅.
발걸음을 잇던 유현은 얼마 전 남자가 앉아 있던 포대 앞에서 잠시 멈칫했다.
순간 남자가 떠나면서 뱉었던 말이 들려왔다.
-세상 고민 다 가지고 살아봐야 머리만 아파.
그 말이 좋은 핑곗거리가 됐다.
“그래.굳이 낚시에 목 맬 필요 없어.”
피식 웃던 유현은 이내 발걸음을 이었다.
어쩐지 그의 표정이 한결 더 편해 보였다.
낚시를 나가지 않으니 유현의 오후 일과가 텅 비었다.
숙소에서 뒹굴뒹굴하던 유현은 다음 날 오전 일과를 맞이했다.
유현은 휴게실 마루 위에서도 똑같이 뒹굴뒹굴했다.
별것 아닌 일상이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그런 유현에게 강종호가 물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얼이 빠져 보여?”
“아뇨.그냥요.커피 한잔 드실래요?”
어슬렁거리며 일어난 유현이 정수기 앞으로 슬리퍼를 끌며 걸어갔다.
“아니, 됐어.내가 타 먹으면 돼.”
“알겠습니다.”
쪼르르.
유현은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받다,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늘 머릿속에 뭔가 채워져 있던 유현에겐 생소한 일이었다.
어떻게 했더라?
유현이 고개를 갸우뚱할 때였다.
삐삐삐삐삐.
휴게실에 알람이 크게 울렸다.
황급히 몸을 일으킨 강종호를 따라 유현의 시선도 TV를 향했다.
화면엔 막 입구를 지난 파란 승합차의 전면이 보였다.
강종호가 바로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감사 떴습니다.빨리 모이세요.”
옆에 있던 유현이 툭 하고 말했다.
“드디어 감사가 떴네요.”
“넌 어째 좋아 보인다?”
“궁금했거든요.”
“뭐라고?”
유현의 답에 헛웃음을 짓던 강종호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눈에 비친 유현은 아직도 종잡을 수 없었다.
그 시각.
마을 이장 이영남 이장은 승합차 뒷자리에 타고 있었다.
옆에 앉은 복덕방 사장 배용환이 이영남 이장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오늘 함께 둘러본 다른 마을 낚시터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장님, 다른 마을처럼 캠핑장과 낚시터를 엮는 건 좋은 거 같긴 한데요.”
“그런데?”
“우리 마을은 유동 인구가 없다 보니 잘될까 싶어서요.”
이영남 이장은 대답 대신 운전석에 있는 배용석에게 물었다.
“용석이, 한 주임이 요즘 낚시터에 안 나온다고 했지?”
“네.엊그제부터 안 나오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영남 이장이 배용환을 향해 턱짓했다.
“거 보게.그 친구는 이미 낚시터 순찰을 끝내고 다른 방안을 찾고 있는 거야.”
“그런가요?”
“내 말이 맞다니까.조금만 기다려 봐.그 꼼꼼한 사람이 그런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을 리가 없어.”
이영남 이장은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그때, 배용석이 놀라 외쳤다.
“어? 이장님, 저기 목포 공장 놈들 차가 가고 있는데요?”
그의 말대로 좁은 산길 위로 파란 승합차 1대가 올라가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본 그 차를 이영남 이장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 잡놈들이.”
이를 으득 간 그가 외쳤다.
“용석이, 빨리 따라가.”
“네.알겠습니다.”
승합차가 힘차게 길을 따라 올라갔다.
어느새 이영남 이장의 손에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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