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632
상남자 632화
하지만 유현이 보기엔 이건 조금도 문제가 안 됐다.
그 부분을 확실히 채워 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연 팀장.
그녀라면 이 멤버 구성을 본 순간, 어떤 일을 시킬지 딱 보일 터였다.
유현이 바로 떠올리는 걸 그녀라고 못할 리가 없다.
마지막으로 유현이 물었다.
“그럼 장준식 대리를 제게 붙인 건 무슨 이유입니까?”
“장준식 대리의 기질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기질이요?”
“네.장준식 대리는 과장님과 붙으면 날개를 달 수 있습니다.이유는…….”
유현은 안재경 과장의 말에 가만히 귀 기울였다.
그 속에 유현이 놓치고 있었던 장준식 대리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안재경 과장은 회의에서 나온 안건들을 따로 정리해 나도연 팀장에게 보고했다.
추가로 유현에게 말했던 방안들을 덧붙였다.
대부분 팀 운용에 관한 내용들이다 보니, 팀장 입장에선 다소 불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도연 팀장은 안재경 과장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오히려 바로 핵심을 짚고, 행동으로 옮겼다.
그 결과가 지난번처럼 메일로 왔다.
-첨부된 업무 리스트를 총 5개의 카테고리로 분할했습니다.관련해서 인원 분배를 아래와 같이 하여 업무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1.마케팅, 기획, 생산전략
담당자 : 홍승재 차장, 최규태 차장
2.생산, 품질, 유통
담당자 : 김성득 차장, 권세중 대리
3.부품 업체, 계열사
담당자 : 신낙균 과장, 정현우 대리
4.개발, 디자인
담당자 : 한유현 과장, 장준식 대리
5.조직 변경, 인원 배분, 의사 결정
담당자 : 나도연 팀장, 안재경 과장
나도연 팀장은 여기에 큰 그림을 덧붙였다.
개발, 기획, 디자인, 생산, 품질 등 관련 부서 및 계열사와 부품 회사들 중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전부 리스트업해 싹 정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각 인원들이 해야 할 일은 명백했다.
나도연 팀장이 수박 겉핥기라고 표현했던 문제점 파악부터 세부적으로 해내야 한다.
큰 방향성을 유지한 채, 해결안을 도출하는 건 그다음이다.
내용을 빠르게 훑은 유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참 과감하단 말이야.”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겠다고 하더니, 아예 조직 자체를 새로 구성해 버릴 요량이었다.
이를 위해선 기존에 하고 있던 프로젝트들을 뒤엎어야 할 수도 있다.
반발이 제법 거셀 거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나도연 팀장은 여태식 전무로부터 확인한 사항을 믿고 밀어붙였다.
시간이 부족한 만큼 안 될 거라는 생각 자체는 배제해 버렸다.
그녀의 추진력을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나같이 예상에서 벗어난 내용이어서일까?
술렁술렁.
경험 많은 사람들조차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였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조 구성도 문제였다.
어색한 공기 속에 단 한 사람만 웃고 있었다.
바로 장준식 대리였다.
장준식 대리는 유현과 꼭 붙어 일하게 된 게 마냥 좋은 모양이다.
메일을 확인하자마자 유현에게 다가와 크게 인사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랑 해서 좋을 거 없어.너 고생할 거야.”
“괜찮습니다.시키시는 건 모두 다 해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키는 걸 다 하겠다며 싱글벙글이었다.
말만이 아니었다.
그는 줄곧 맡은 일은 혼자 척척 해내 왔다.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 터라, 유현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뒀었다.
하지만 이젠 입장이 달라졌다.
장준식 대리를 돌려보낸 유현은 안재경 과장과의 대화를 곱씹었다.
-장준식 대리는 분석형에, 탐험가형이 더해진 성향입니다.이런 스타일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일을 끌고 가죠.
-저에게는 많이 의존하던데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과장님과 연결한 겁니다.틀을 깰 수만 있다면, 과장님과 큰 시너지가 날 겁니다.
안재경 과장의 직감은 유현이 보지 못한 장준식 대리의 잠재력을 보고 있었다.
이게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건, 안재경 과장과 함께한 유현의 기억이 증명했다.
만약 그의 말대로 장준식 대리가 한층 성장할 수 있다면?
분명 유현의 전력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이 사실을 뻔히 아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게 먼저였다.
유현은 그럴 수 있을 만한 사람에게 일단 전화했다.
바로 한재희였다.
퇴근 후, 집에 온 유현은 한재희를 기다리며 뉴스를 살폈다.
모니터엔 오은비 기자가 쓴 특집 기사가 떠올라 있었다.
한성 스마트폰에 단단히 실망했는지 제목부터가 비판 일색이었다.
안에 있는 내용은 더 신랄했다.
이것만 봐도 작년 한성 스마트폰이 얼마나 삽질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내용이 제법 구체적인 터라, 유현은 기사를 찬찬히 살폈다.
특히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대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봤다.
이번에 장준식 대리와 함께 담당한 카테고리가 개발, 디자인 쪽이다 보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유현은 다소 거친 말을 순화해서 요약해 봤다.
하드웨어는 기본기에 충실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특이한 기능만 추구했다.
소프트웨어는 OS 업데이트에 빈번하게 뒤쳐졌고 불안정했으며, 킬러 어플리케이션이 없었다.
외관은 너무 투박하고 무거우며, 불필요하게 두꺼웠다.
UX는 스마트폰마다 통일이 안 된 데다, 아직 컬러폰 때의 잔재가 남아 구식 느낌이다.
쓸데없고, 불안하며, 투박하고, 구식 느낌인 폰.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세간이 바라보는 한성 스마트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디자인에 대한 부분은 뼈아프게 다가왔다.
“재희가 이거 보면 난리 나겠네.”
유현이 혀를 찬 순간, 뒤에서 날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리 날 거 알면서 왜 봐? 누구 염장 지르려고 해?”
“뭐야, 언제 왔어?”
“언제 오긴, 지금 왔다.”
홱.
한재희가 마우스를 낚아채더니 내용을 다시 살폈다.
그러곤 이글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쌓인 걸 털어 냈다.
“말했잖아.이거 다 개발 센터 놈들 때문이라고.우린 제대로 했어.”
“누가 제대로 안 했대?”
유현이 대수롭지 않게 받자, 한재희가 가슴을 탕탕 쳤다.
“아오! 답답해.이번에도 또 온갖 핑계 대면서 우리한테 잘못 떠넘길 거 아냐.”
“그래서 널 부른 거야.”
“뭐?”
“네 꼬인 문제 해결해 주려고 부른 거라고.”
유현의 예상치 못한 말에 한재희가 눈을 껌뻑였다.
한재희가 스마트폰 디자인에 본격 투입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부서 간 얽힌 문제의 배경을 자세히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열정적으로 개발 센터와 부딪쳤고, 그 사이에 있는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런 그녀의 생생한 증언은, 꼬인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
유현은 현장 경험이 부족한 장준식 대리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 줄 생각이었다.
다음 날, 유현은 장준식 대리를 옆에 앉혔다.
경험만 부족한 게 아닌 만큼, 채워 줄 부분이 많았다.
그럴 요량으로 최규태 차장 쪽을 가리켰다.
“저기 홍 차장님과 최 차장님 봐 봐.”
“네.두 분이서 마주하고 계십니다.”
장준식 대리의 말대로, 늘 대치하던 두 사람이 토론을 나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협업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유현은 이례적인 모습을 보며 질문했다.
“왜 저 두 사람은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JK통신 모뎀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까?”
“모뎀이 왜?”
“그걸 차기 스마트폰에 어떻게 적용시킬지 정리하려는 거 같습니다.”
이제 막 나온 내용이다 보니 교통정리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방향성을 잡기 위해서도 이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유현은 일부 수긍하면서도 반박 의견을 내놓았다.
“그럴 수도 있겠지.근데 그렇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저렇게 의논할 필요가 있을까? 각자 정리해서 공유하면 그만인데?”
“그렇긴 합니다.”
“따로 생각나는 거 없어?”
“죄, 죄송합니다.”
단지 되물었을 뿐인데, 장준식 대리를 고개를 숙였다.
유현을 좋아하는 만큼,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서다.
가만히 두면 반복되는 문제인 터라 유현이 선을 그었다.
“죄송은 무슨.넌 이제부터 죄송 금지.”
“죄…….네.알겠습니다.”
그러곤 입을 꾹 다문 장준식 대리에게 세부적인 이유를 설명해 줬다.
예전에는 굳이 하지 않았던 행동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필요해서야.”
“필요해서요?”
“그래.조직 재정비 전까지 핵심 사안을 비밀로 하면서 마케팅, 기획, 전략 부서 직원들을 움직여야 하잖아.주어진 시간은 너무 촉박하고.”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군요.”
“맞아.게다가 두 사람은 문제 파악만 하는 게 아니라 방향성 제시를 해야 해.잘못되면 전체가 틀어지는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지.”
“아, 이해했습니다.”
나도연 팀장은 이 모든 걸 고려해 안재경 과장의 제안을 따랐다.
그 정도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장준식 대리가 완벽히 이해했을 리가 없다는 의미다.
뻔히 알지만, 유현은 굳이 따지지 않았다.
이렇게 하나씩 쌓아 가면 된다.
“좋아.그럼 저기 신낙균 과장 쪽을 보자.”
“네.정 대리님이 그 앞에 있습니다.”
“뭐 하고 있는 거 같아?”
“정 대리님이 아까부터 계속 뭘 적고 있는 거 같습니다.”
딱 봐도 신낙균 과장의 말을 정리하는 모양새였다.
“그게 뭘까?”
“잘 모르겠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상황에서 맞추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그건 생판 모르는 남이 봤을 때 하는 얘기다.
배경을 알고 있고, 주어진 임무를 알고 있다면 유추할 수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이 부품 업체와 계열사를 맡은 상황이야.네가 신 과장이라면 뭘 시킬 거 같아?”
“일단 업체 담당자에게 연락해…….”
“계속해 봐.”
유현이 손짓하자, 장준식 대리가 잠시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제안한 신규 부품 일정을 최신으로 업데이트하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항목별 리스크 상황에 대해 점검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기존 이슈들을 다 체크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은 있었지만, 70점 이상은 되는 답이었다.
유현은 바로 고개를 끄덕여 줬다.
“음, 일단 그 정도면 되겠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도 금지.네가 잘한 거야.”
“감…….네.알겠습니다.”
약간의 칭찬에도 장준식 대리는 무척 들떠 보였다.
이런 걸로 좋아하긴 이르다.
그에겐 훨씬 더 멀리 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유현은 부족한 장준식 대리의 시야를 트이게 해 주기 위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갔다.
알아서 잘하게 내버려뒀던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자, 그럼 우리 일로 가 볼까?”
“저희 일이요?”
“그래.우리는 이제 뭘 해야 해?”
“개발과 디자인을 맡았으니, 그 부분에 대해…….”
“단편적인 문제만 보지 말고…….”
유현은 장준식의 설명을 들으며 잘못된 부분을 잡아 줬다.
상상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조언했다.
더 멀리 볼 수 있게끔 상황을 몰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