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668
상남자 668화
이들의 관계를 확인한 유현은 조금 더 깊게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어떤 부분이요?”
“최근에 협력 업체들에 자금 문제가 있다는 소리가 들려서요.기술력이 있고 경쟁력이 있는데, 왜 타 업체보다 자금 사정이 안 좋은 건가요?”
“그건…….”
정다혜가 침착하게 답하려 할 때였다.
잭 크루지가 여유 있는 척 웃음 지으며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하하.스티브,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오해라니요? 제가 오판하고 있다는 겁니까?”
“아뇨.당신이 그럴 리가 없죠.그게 아니라, 자금은 일시적인 문제였을 뿐입니다.바로 해결될 겁니다.”
유현의 강한 어조에 잭 크루지가 납작 엎드렸다.
그 과정에서 그의 말실수가 나왔다.
이걸 놓칠 유현이 아니었다.
“어떻게요?”
“어떤 말씀이신지요?”
“방금 말씀하셨지 않습니까.자금 문제를 바로 해결할 거라고요.그 방법이 궁금하네요.”
“…….”
“왜 갑자기 말을 삼가십니까?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유현이 꼬투리를 잡으며 차근차근 조여 가자, 잭 크루지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여기서 아니라고 했다간?
얼마 안 되는 돈 때문에 대어를 놓칠 수도 있다.
당장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터라, 그는 과감하게 질렀다.
“아닙니다.안 그래도 저희가 자금을 출자하려고 했습니다.”
“에너텍스에서 자금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거죠?”
“그럼요.기술력 있는 협력 업체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저희의 역할이죠.에너텍스가 괜히 셰일오일 업계의 선봉에 선 게 아닙니다.”
잭 크루지의 뻔뻔한 말에, 협력 업체 사장들이 어이없어 했다.
가장 황당한 건 이 문제로 고통 받아 온 정다혜였다.
물론 프로답게 금세 표정 관리를 했지만, 어떤 생각인지 훤히 보였다.
유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확인차 물었다.
“그렇군요.그럼 언제까지 가능한 겁니까?”
“언제까지요?”
“네.일정이 있으니 말씀하셨을 거 아니에요.”
“아마…… 차주 안으로 정리될 겁니다.”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던 잭 크루지는 스스로 무덤을 팠다.
유현의 압박이 그를 성급하게 만든 까닭이다.
유현은 태연한 표정으로 마무리 도장을 찍었다.
“차주라…….알겠습니다.그때 확인해 보죠.”
“확인…… 해야죠.당연히 그러셔야죠.”
“역시 말이 통하시네요.”
“…….”
유현은 살짝 입꼬리를 올려 준 것으로 대화를 갈무리했다.
꽃놀이패를 손에 쥔 것만으로 얻을 건 제대로 얻었다.
무엇보다 정다혜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만든 게 컸다.
유현은 황망한 표정의 잭 크루지를 뒤로하고 정다혜에게 물었다.
“에너텍스가 자금력을 확보한다면 가장 먼저 뭘 해야 할 것 같습니까?”
“당연히 셰일오일 추출 영역을 더 넓혀야죠.”
“채산성 문제가 있을 텐데요.그럼 빚을 더 지는 거 아닌가요?”
“시기의 문제일 뿐, 결국 극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기술의 발전 속도가 이대로 진행되면, 2년 내에 채산성은 60달러 이하로 낮출 수 있어요.”
에너텍스에 정이 완전히 떨어졌을 만한데, 그녀는 긍정적인 답을 했다.
이건 에너텍스를 감싸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감정을 배제한 채 순순히 일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의지를 확인한 걸로 유현의 목적은 끝났다.
유현은 슬슬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굉장히 인상적이네요.영역을 넓히는 얘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얼마든지요.”
“굳이 다 모인 자리에서 할 필요는 없을 거 같네요.현장을 보는 게 더 좋을 거 같기도 하고요.엘리스, 따로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유현의 제안에 잭 크루지가 화들짝 놀라 끼어들었다.
“그런 거라면 저도 같이 돕겠습니다.”
“아뇨.괜찮습니다.유능한 컨설턴트의 의견을 조금 더 깊게 듣고 싶어서요.”
“그래도 따로 이야기 나누는 것보다 같이…….”
“왜요? 그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유현의 차가운 눈빛에, 잭 크루지가 정다혜를 핑계 삼았다.
“그런 게 아니라, 엘리스가 좀 부담스러워할 거 같아서요.”
“아뇨.제가 대응하겠습니다.”
정다혜는 잭 크루지의 말을 딱 잘랐다.
쌓인 게 제법 있는지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현이 윌리 톰슨을 가리키며 상황을 정리했다.
“투자 논의는 윌리가 남아서 추가로 진행할 겁니다.저와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시죠.”
“당연히 그러셔야죠.그럼 저, 잠시만 엘리스에게 말 좀 건네도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뜻은 맞춰야 할 거 같아서요.”
“네.그러시죠.”
잭 크루지가 무슨 속셈인지 뻔히 보이지만, 굳이 그것까지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유현은 두 사람이 대화하도록 내버려 둔 후, 밖으로 나섰다.
빨리 끝내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유현의 돌발 행동에 잭 크루지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엘리스, 제발 부탁인데 스티브 한에게 말 좀 제대로…….”
“…….”
평소 날 선 대치만 했던 그가 정다혜에게 애걸했다.
정다혜는 어이가 없어 대꾸할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저벅저벅.
회의실에서 나온 유현은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계단으로 돌아 내려갈 때쯤, 정다혜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옆에 선 그녀는 황당한 마음을 드러냈다.
“유현 씨, 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유현 씨가 여기 왜 있어요?”
“엘리스, 지금은 업무 시간일 텐데요?”
“…….”
유현이 영어로 답하며 선을 긋자, 정다혜가 할 말을 삼켰다.
어느새 그녀의 턱에 버릇처럼 호두 주름이 잡혔다.
내심 미소 지은 유현이 표정 관리 하며 입구 쪽으로 안내했다.
“일단 따라와요.같이 갈 곳이 있어요.”
“대체 어딜…….”
다시 물어보려던 그녀가 눈을 껌뻑였다.
입구 앞에 서 있는 하얀 리무진 때문이다.
설마 했는데 유현의 차가 맞았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노신사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마스터.”
“로버트, 귀한 손님이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요.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노신사 로버트 에반은 빙긋 미소 지은 후, 정다혜를 안내했다.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일까?
얼떨떨해하는 사이, 정다혜는 어느새 차에 타 있었다.
부우웅.
차가 묵직한 엔진음을 내며 출발했다.
유현은 뒷자리의 냉장고에서 녹차를 꺼내 건넸다.
“이거 마셔요.”
“괜찮아요.그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유현 씨 보고 너무 놀랐잖아요.”
“일단 목부터 축여요.”
“하…….”
정다혜는 답답함을 못 이긴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입술이 마르는지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가 유현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이제 유현 씨가 왜 여기 있는지 말해 줘요.”
“폴 그레이엄의 대리인 자격으로 투자 검토하러 왔죠.”
“네? 유현 씨는 한성에 있잖아요.”
“그건 얼마 전이었죠.지금은 아니에요.”
유현이 손을 내젓자, 정다혜가 화들짝 놀랐다.
“아니, 왜 그런 이야기를 이제 하는 거예요?”
“다혜 씨가 워낙 바빴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그렇게 중요한 일을 왜 말 안 했어요?”
“그럼 다혜 씨는 왜 말 안 한 거예요?”
“뭘요?”
의아해하는 정다혜에게 유현이 조금 전 대화를 끌고 왔다.
“협력 업체 사정이요.보니까 엉망이던데, 그거 때문에 고생한 거 아니에요?”
“그런 일 없어요.저랑 직접 연관된 일도 아니고요.그리고 잭이 말했듯 자금 문제는 해결될 거예요.”
직접 연관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협력 업체의 부도 문제는 손해배상 명목으로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앞에서는 잭 크루지가 그녀를 압박했고, 뒤에서는 내부 배신자가 칼을 꽂았다.
회사는 모든 책임을 정다혜에게 지웠다.
협력 업체 자금 문제가 풀린다 한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힘든 상황이었건만, 그녀는 유현이 걱정할까 봐 둘러대고 있었다.
‘뻔히 아는데.’
유현은 더 다가갈까 하다가 말았다.
힘든 속사정을 꺼내는 건 유현이 아니라 그녀의 몫이다.
유현은 그저 옆에 있어 줄 생각이었다.
“알겠어요.어쨌든 제게 좋은 기회가 와서 갑자기 수락하게 됐어요.”
“그걸 지금 믿으라고요?”
“믿지 못할 건 뭐 있나요?”
“폴 그레이엄이 갑자기 온 사람한테 대리인 자격을 준다고요? 그것도 셰일오일 업무를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요?”
미국 컨설팅 회사에서 오래 일해 온 정다혜가, 업계 전설인 폴 그레이엄을 모를 리 없었다.
어떤 이유를 덧붙여도 지금의 상황은 말이 안 됐다.
단언하는 그녀에게 유현이 역으로 물었다.
“그럼 폴 그레이엄이 아무에게나 일을 맡겼겠어요?”
“그건…….”
“그것도 투자자 자격으로요?”
생각해 보니 유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스티브가 내건 투자 금액이 10억 달러(1조 2,000억 원)야.그거면 지금의 자금난을 싹 정리할 수 있어.엘리스, 내가 정말 미안했으니까 제발 한 번만 들어줘.
잭 크루지가 말했던 것처럼, 유현이 가용하려는 돈은 엄청났다.
폴 그레이엄이 이 돈을 그냥 지원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유현을 크게 인정한 게 분명했다.
유현이 이 모든 걸 자신을 위해 계획했다는 걸 알 리 없는 정다혜는, 이해되지 않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유현 씨 말 믿을게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쉬세요.피곤해 보여요.”
“저 안 피곤해요.괜찮아요.”
“가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그래요.”
뒤늦게 차 방향을 확인한 정다혜가 갑자기 물었다.
“근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일단 식사부터 하려고요.”
“제게 투자 자문을 구하고 싶다면서요.”
“배고픈데 먹으면서 얘기해요.”
식사는 에너텍스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걸 떠나, 날이 지면 현장을 둘러보기 어려웠다.
“아니, 굳이 멀리서 식사를…….”
따지려는 정다혜의 어깨에 유현이 손을 올렸다.
그러곤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봤다.
“남은 이야기는 식당에서 해요.전 눈 좀 붙이려고요.”
“알겠어요.”
정다혜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먼발치를 바라봤다.
유현은 그녀가 쉴 수 있도록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다.
금세 차 안이 조용해졌다.
몇 분쯤 지났을까?
슬쩍 눈을 뜨니 투명한 창으로 머리를 꾸벅거리는 정다혜가 비쳤다.
아닌 척해도 꽤 피곤했던 모양이다.
피식 웃은 유현은, 가까이 다가가 불편해 보이는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댔다.
툭.
불편하진 않은지 그녀는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다행이다.
해 줄 수 있는 게 있어서.
지이잉.
순간 뒷자리 유리창에 암막 커튼이 쳐지며 햇살을 가렸다.
룸미러로 보이는 로버트 에반이 한쪽 눈을 깜빡였고, 유현은 그의 센스에 미소로 화답했다.
어깨에 기댄 정다혜의 숨소리에 편안함을 느끼며, 유현도 잠시 눈을 붙였다.
잠시 후, 차는 미들랜드 공항을 지나쳤다.
창밖으로 미들랜드 도심의 풍경이 보였다.
황무지 속에 있다 와서인지, 이 작은 도시도 꽤 번화하게 느껴졌다.
넓은 길 양쪽으로 호텔을 비롯한 여러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