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orge the Streak RAW novel - Chapter 61
연록흔 – 61화
“저……, 송괴합니다만…….”
대류아였다. 그는 순한 눈을 까막대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슨 일입니까?”
“혹, 저희 궁주님을 뵙지 못했는지…….”
록흔은 그제야 사란이 이곳에 없음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사형께서도…….”
유장이 두리번거리자, 기리단이 시큰둥한 얼굴로 툭 뱉듯 말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댁네 궁주께선 몹시 바쁠 거요. 우리 대사형 주위에서 얼씬대느라.”
“저 그럼, 대협께서 계신 곳이라도…….”
“지금 가면 판만 깰걸. 괜히 치도곤 당하지 말고 예 있으쇼. 문궁주, 보통 성깔이 아니던데. 대담하기도 하고 말이야.”
“어이, 기리단.”
아진이 외눈을 꿈쩍댔다. 기리단이 어젯밤 일까지 토설할까 저어되는 표정이었다.
“아무튼, 유장. 어디에 걸 텐가?”
“걸다니?”
“문사란이 대사형을 유혹한다에 난 은자 열 냥 걸었다만. 자고로 미희 마다하는 호걸은 없으니깐. 어느 쪽으로 할 테냐? 접…….”
접두께서도 거시라 하던 말이 쏙 들어갔다. 착 가라앉은 눈에 기리단은 저도 몰래 입을 다물었다.
“접, 이사형. 그러면 제가 가볼까요? 전 절대 안 넘어가신다에 걸었는지라.”
창해만 여전히 우쭐우쭐 신이 나 있었다. 다들 록흔의 눈치만 살피는데 그는 물색 모르고 허허실실 웃어댔다.
“모시러 가야지. 어죽도 익었고…….”
아진이 어물어물 이야기를 꺼내며 록흔을 살폈다. 어디 먼 곳에 간 듯, 생각에 골몰한 눈은 여기에 없었다. 그는 더욱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또 날도 어두워졌으니…….”
“아진, 걱정도 팔자다. 뭐, 대사형께선 어죽보단 신선놀음 하시느라. 하하하!”
사내란 그런 거였나? 창해가 웃는 소리가 록흔에게는 저를 비웃는 소리로 들렸다. 곱고 향긋한 꽃이면 꺾고 보는가? 하루 온종일 전전긍긍하던 것이 헛되다 여겨졌다.
부지불식간, 그는 부정하고 매도하며 저를 위한 담을 쌓았다.
탁!
타닥!
록흔은 삭정이 하나를 불 속에 던져 넣었다. 바싹 마른 것이라 붉은 꽃불을 피우며 잘도 탔다. 불기운은 해쓱한 얼굴을 발그레하게 핥았다.
“내가 다녀오마. 죽 식기 전에 올 테니, 은자나 꺼내 놔.”
“창해.”
록흔의 음성에는 물기가 하나도 없었다. 창해는 커다란 눈을 댕그랗게 떴다. 지금껏 상관의 입에서 저리 메마른 소리는 듣지 못했다.
“접두…….”
“놓인 자리가 달라진다 해서 사람이 달라지나? 모두 기강이 해이하다.”
작금, 록흔은 제 안의 화를 수하들에게 돌렸다.
“저흰 다만 재미로…….”
“이 이상 나가면, 불경죄로 다스릴 터.”
차게 굳은 얼굴이 상관은 아닌 듯. 부접들은 록흔에게 새로운 면을 보았다. 단정하나 야멸친 어투라 더 생경했다.
“창해, 앉아라. 내가 간다.”
바삭하게 마른 옷자락이 맵차게 걷혔다. 록흔이 표한하게 일어서자, 모두 고개를 숙였다.
“면목 없습니다.”
“…….”
이구동성으로 쏟아진 말에도 록흔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사로운 것을 공적으로 풀었으니, 그 행위가 상관답지도 않고 정당치도 않았다. 그러나 그 또한 사람이라 어찌할 수가 없었다. 미움인지, 화인지, 서러움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마구 뒤끓어 심산하기만 했다. 그는 등을 꼿꼿이 세우고 어둠을 향해 걸었다.
“혀가 재앙의 근원이라더니…….”
유장이 중얼대는 소리에 하균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리단, 창해, 우리끼리야 괜찮지만…….”
사강이 한 마디 하자, 둘의 얼굴이 벌게졌다. 내기 소리가 상관을 격분케 했다 믿어서였다.
“엎질러진 물이다. 앞으론 삼가자.”
“흠.”
큰 잘못을 한 어린애 모양, 창해는 낯을 붉혔다. 염치없기는 기리단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먼 곳, 그들에게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푸른 옷자락이 뵀다.
산해진미가 눈앞에 있는데 식욕은 없었다. 가륜은 사란을 무심히 내려 봤다. 발그레한 뺨도 곱고, 보랏빛 눈도 곱고, 절묘하게 빚은 듯한 입술도 고왔다. 농익은 여체는 그야말로 탐스런 수밀도 같았다. 그러나 감흥은 조금도 일지 않았다.
“여긴 무슨 일이지?”
사란은 촉촉한 눈으로 가륜을 올려 봤다. 목욕 직후, 연홍빛으로 물든 얼굴이 곱다랬다.
“목욕 시중이라도 들어 달란 건가?”
“아니요, 저는…….”
달빛에 자수정이 일렁였다. 돌이 아니라 살로 된 것이라 더욱 신비로웠다.
“듣고 있잖나.”
가륜은 입귀를 비틀었다. 다슨 빛은 하나도 없고, 냉소만 야멸치게 뱄다.
“공자님…….”
잠든 사제에게 읊조리던, 그 다사함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저 가슴에 안기고픈 마음은 버릴 수 없었다. 사란은 냉대에도 불구하고 한 발 더 다가섰다. 가까워진 체향에 그녀는 저도 몰래 손끝을 바르르 떨었다. 이내, 부여잡은 옷깃이 조금 벌어졌다.
“너무하시어요.”
난초덩굴이 곱게 수놓인 소매단과 옷깃은 진보랏빛, 다른 곳은 연보랏빛……. 사란은 자색 대수삼 외엔 걸친 것이 없었다. 그녀가 움직일수록 비단은 점점이 얼룩졌다. 젖은 몸과 달라붙은 곳일수록 색이 탁했다.
“글쎄, 오뉴월에 눈 내릴 일이라도 했던가?”
가륜 역시 입은 게 많지 않았다. 상의는 벗은 채, 하의는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강건하고 준미했다.
차르륵.
사란은 온천 한가운데 솟은 너럭바위로 더 가깝게 다가갔다. 돌아오는 것은 무심한 시선이나, 그게 되려 연정을 자극했다. 샅을 어루만지는 더운 물에 그녀는 붉은 입술을 야틈하게 벌렸다.
스륵.
대수삼을 묶은 허리띠가 풀렸다.
사라락!
비단천이 미끄러지고 백옥보다 더 흰 알몸이 드러났다.
사륵.
탐스러운 유방은 높이 부풀고 팽팽히 당겨져 파란 실핏줄까지 비쳐 보였다.
“저를…….”
사란이 가락거리니 진분홍 유두가 꼿꼿이 돋았다.
츠륵.
대수삼 자락이 잠시 허리께에 감겼다가 물 아래로 잠겼다. 달빛 아래 드러난 불두덩은 도도록이 부풀어, 그 욕정이란 뉘에게든 확연했다.
“취하라?”
“예, 전 공자님 것이어요. 안아 주세요.”
사란은 바위를 타고 올랐다. 차가운 돌에 섬섬옥수가 닿고 살진 젖가슴이 닿았다. 그 섬뜩함이 마치 사내의 어루만짐 같아서, 그녀는 달뜬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검남빛 눈에 담긴 것은 하얗게 벗겨진 여체였다. 그러나 그뿐, 탐하는 빛은 바이없었다.
“아, 공자님……. 공자님, 제발…… 손을…….”
애원하고 청해도 가륜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반쯤 내리뜬 눈으로 바라볼 뿐, 그는 점점 가까워지는 향에 입귀를 조금 틀었다.
“하아…….”
사란은 무아지경이었다. 그녀는 열에 달떠 풍만한 엉덩이를 출렁이며 바위를 탔다.
촤륵.
기다란 머리칼이 수면에서 온전히 빠져나왔다. 반들거리는 나신 위, 너울인 양 쏟아진 머리칼이 달빛을 받아 하르르했다. 사란은 교인 같았다. 사내를 바라는 아름다운 인어처럼, 그녀는 는실난실 몸을 틀었다.
“입술을…….”
새빨갛고 달금한 것이 탐스럽게 벌어졌다.
“하아, 공자님…….”
사란은 가륜의 입술을 핥고, 목을 빨아 내렸다. 가픈 호흡이 적막을 깨뜨렸다.
“이대로는, 저는…….”
본능이었다, 더 가깝게 닿고픈. 사란은 가륜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산산이 부서질 만큼, 넋 나가게 자지러질 만큼……. 끝없이 안기고 또 안기고 싶었다. 또 제 안에 품고 싶었다. 그녀는 정신없이 널따란 가슴팍을, 단단한 복부를 마구 헤집었다.
바스락.
무언가 마른 나뭇가지를 지르밟았다. 이어, 뉘라도 들을 수 없는 잔약한 신음 소리가 돋았다.
‘……!’
가륜은 눈시울을 바짝 좁혔다. 이내, 싸늘한 눈동자가 칼금처럼 빛났다. 굳게 다물린 입술에 연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아아, 저를…….”
욕정으로 번들거리는 보랏빛 눈동자, 가륜은 사란을 깊다랗게 들여 봤다. 그리고 야드르르한 머리타래를 한 줌 그러쥐었다.
“내가 탐나나?”
“그래요, 몹시…….”
사란은 잠긴 목으로 간신히 대답했다.
“선심 한번 정도야 어려울 것도 없지.”
가륜은 말과 동시에 서슴없이 사란을 잡아챘다.
“아아…….”
한 손 가득, 유방은 풍염하게 찼다. 보드레한 것은 희롱할수록 양감이 커져 커다란 손조차 작다 했다. 가륜은 피긋 웃다가, 그 끝에 꼿꼿이 일어선 돌기를 한입 가득 머금었다. 그리고 긁듯 씹듯, 말캉말캉한 살덩이를 험히 다뤘다.
“하악!”
부풀대로 부푼 욕정은 단 한 번에 터졌다. 사란은 오그라지고 우그러졌다. 보랏빛 눈이 금세 갈쌍해졌다.
“아아…….”
그저 앓는 듯한 교성이나, 분명 다른 소리가 섞여 있었다. 가륜은 날캄하게 눈을 빛냈다.
“공자님, 저는…….”
사란은 헐떡였다. 더 깊고 더 묵직한, 그녀가 바라는 바는 더 컸다. 보랏빛 눈은 색탐에 더욱 탁해졌다.
“주고받는다는 것, 만고의 인리다. 받는데 익숙한 자는 더더욱 그러해, 득 될 게 없는 일은 시작조차 않지.”
애초부터 취할 것은 바이없었다, 그저 미끼일 뿐.
“무슨……?”
가륜은 사란을 야멸치게 밀쳤다. 그리고 표한하게 떨쳐 일어나 한곳으로 몸을 틀었다. 발치에 하얗게 벌여진 나신 따위는 이미 안중에 없었다. 그는 손끝으로 맵차게 허공을 그었다.
피릿!
파리우리한 기운이 바람을 긁었다. 그것은 수풀 새, 어느 곳으로 곧게 꽂혀 들어갔다.
달삭…….
잔약하게 연한 소리였다. 필시 몸피가 작다랄 터, 무언가가 힘없이 쓰러졌다. 가륜은 차게 웃었다. 그 미소라 함은 야만의 빛, 그 역시 뭇 사내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목적한 곳을 향해 날파랍게 몸을 날렸다.
찰람.
수적이 듣고, 이어 수면 위에 잔금이 그어졌다.
스삭…….
수풀이 작게 부스댔다. 바위 위, 사란만 홀로 남았다.
***
시륵시륵.
풀벌레가 섧게 울었다. 놈은 그냥 내는 소리건만, 대류아는 그리 들었다.
‘궁주님…….’
장발이 군데군데 가렸어도 적나라한 알몸이었다. 대류아는 사란은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모로 비틀었다. 뉘 신세인 양, 물속에 처박힌 대수삼이 처량했다. 그는 말없이 젖은 옷만 건졌다.
‘이놈이 보기엔 궁주님…….’
정신이 되돌아오면 몹시 수치스러워할 터. 대류아는 대수삼으로 사란을 가렸다.
‘그분, 버겁게 높습니다.’
처음 뵌 그 순간부터 몇 날을 사모했는지 며칠을 받들었는지……. 대류아는 행복하나 섧던 날들을 기억할 수 없었다. 입 밖에 낸 적은 없어도 깊게 은애했다. 소중히 모시고, 평안히 지켰다. 뭇 나비가 지나도 꽃은 한결 같아 항시 우러렀다. 사란은 그에겐 여신, 그러나 작금은 그저 여인 같았다. 되지 않을 일에 집착하니 어쩌면 그게 인간다움이었다.
‘세상은 녹록찮습니다.’
대류아는 안쓰러움에 눈을 좁혔다. 아름다움에 뉘든 먼저 숙이니, 사란은 어려움을 몰랐다. 이번 일로 터무니없이 긍지 높은 성정에 흠이 갔지만, 얻는 것도 없잖아 있을 터였다. 그는 기진하듯 잠든 이를 소중히 보듬어 안았다.
차륵.
차르륵.
이런 순간만큼은 제 사람인 듯. 대류아는 씁쓰레하게 웃었다. 축축하니 열이라도 오를까, 그는 사란의 옷자락을 더 단단히 동여맸다.
“혼절이라도 했소?”
대류아가 물가를 밟고 섰을 때,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솟았다. 그윽한 음성이 아까 듣던 노랫소리와 같았다.
“예, 가끔 이러십니다.”
사형제들끼리 부를 때 하균이라 했던가? 대류아가 무인보다는 문인에 가깝다 여긴 이였다. 그는 문덕 높은 군자인 양 어투부터 남달랐다.
“문궁주……, 홀로 계셨소?”
묻는 말에 대류아는 고개만 끄덕였다. 빛접게 잘난 대협은 보지 못했지만, 상황은 명백했다. 그러나 저 아래 불 곁에서 내기 얘기를 들었던 차라, 될 수 있으면 제 주인의 허물을 덮고 싶었다.
“혹 올라오는 길에 사형을 뵙진 않았소?”
“못 뵈었습니다.”
“그러면, 둘째 사형은…….”
“역시, 뵙지 못했습니다만.”
이내, 사려 깊은 눈이 조금 어두워졌다. 하균은 물끄러미 온천을 보았다.
“외람되지만, 두 분 걱정은 따로 안 하셔도 될 듯합니다만.”
“그렇소?”
“예. 대협께서 극강이시니…….”
생각하는 듯, 하균이 눈을 조프렸다.
“그래요, 내려갑시다.”
결단은 짧았다. 저만치서 하균이 앞서갔다. 대류아는 곧 뒤따르다 잠시 섰다. 행여 속살이 보일세라, 그는 사란을 고쳐 안았다.
사샥.
수풀 새, 미약한 바람이 돋았다.
온몸의 혈이 막혀 운신할 수 없었다. 커다란 기에 옴쭉도 못하게 눌려 전신이 먹먹했다. 아혈까지 당해 목소리도 잃었다. 눈동자만 조금 굴릴 수 있을 뿐, 록흔은 철저하게 무력했다.
“우선, 덜 끝낸 이야기부터.”
온천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가륜이 입을 열었다. 어투는 부드러우나, 날캄한 안광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
록흔은 하늘을 향해, 가륜은 그녀를 향해……. 둘은 이끼의 군집 위에 있었다.
“마무리 져야겠지.”
순수한 협위였다. 록흔은 하릴없이 가륜을 보았다. 제발 놔 달라, 소리 없는 애원이 연한 눈동자 안에 그득 담겼다.
“어림없다.”
누운 자세도 아프게 꽂히는 시선도 꿈과 같았다.
‘미련타…….’
록흔은 눈을 감았다. 문사란과 무엇을 하던, 그대로 돌아섰어야 옳았다. 그러나 후회는 이미 늦어, 오롯이 묶여 버렸다. 피할 곳 역시 바이없었다.
“이선이 아니라 대답은 불가하다 했었지.”
“……!”
소리는 바로 귓전에서 들렸다. 귓불이 홧홧했다. 록흔은 감은 눈을 반짝 떴다. 목전에 가륜이 보였다. 그녀는 이미 함정 안에 있었다.
“그렇다면 록흔, 내가 화무라면 어땠을까?”
록흔은 도리질을 칠 수도 없었다. 검남빛 눈에 들은 제 모습에 하얗게 질릴 뿐. 가륜은 눈으로써 그녀를 먹어치웠다.
“…….”
반벙어리 소리도 아니 나왔다. 록흔은 갈쌍해진 눈만 애참하게 조프렸다.
타악!
턱 아래가 맵차게 잡혔다. 목이 꺾이는 듯, 극심한 통증 뒤에 록흔은 밭은 숨을 뱉었다.
“화무가 아니고 내가 아니니, 불가하단 소리는 말고. 어찌했을 것 같나?”
“폐하…….”
겨우 트인 말문으로 록흔은 그 말밖에 하지 못했다.
“네 생각은?”
가륜이 좨쳐 물었다.
“도대체……, 왜 제게 답을 구하십니까?”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도타할 곳도 없으면서 록흔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내가 당신의 이선이었노라, 그리 말할 수는 없었다. 제 몫이 아닌 것을 탐해서는 안 됐다.
“무관한 일이다?”
“예.”
가륜이 느긋하게 일어나 앉았다. 속박은 헐거워졌으나, 록흔은 여전히 그의 몫이었다.
“잔금 없다 생각했더니, 의외롭군. 그럼 대신 말해 주지.”
네 당당함이 좋다, 아무한테나 고개 숙이지 마라. 항시 듣던 말이 록흔을 괴롭게 했다. 그러나 작금은 비굴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진화무였다면, 친우로 알던 이선이 사실은 몸 사위도록 그린 여인이라면…….”
가륜이 하는 말은 칼과 같아서, 여린 심장을 마구 발겼다. 록흔은 일언도 할 수 없었다.
“이리 했겠지, 연록흔.”
쫘아악!
천이 올올이 찢겼다.
치익!
록흔은 애참하게 발겨졌다. 상의도, 가슴을 동여맨 깁도 순식간에 나달해졌다. 연약한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녀린 어깨도 하얗게 벗겨졌다. 그녀는 험히 다루는 대로 섭슬렸다.
“단번에 잡아채.”
딱딱 끊어지는 말이 예민하게 선 가슴 끝에 닿았다. 록흔은 입술만 섧게 물었다.
“앗고 또 앗아…….”
가륜이 토해내는 말은 불과 같았다.
“도타는 생각조차 못하게.”
“흐윽…….”
입술 끝이 깊게 팼다. 금세라도 핏빛이 비칠 성싶었다. 록흔은 목안으로 울었다. 숨죽여 흐느끼며 눈물만 떨궈냈다. 아릿하게 부푼 입술이 애참하게 붉었다.
“널.”
가둔다. 야멸친 안어가 록흔 앞에서 번득댔다.
“폐하……, 전…….”
“말 따위, 더는 마라.”
록흔에게는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어깨를 훔켜쥐는 악력이 그녀를 바술 지경이었다. 설백빛 가슴에도 이미 피꽃이 돋았다.
“하아…….”
가륜이 삼킨 것은 그저 가슴 끝에 돋은 살덩이였다. 그러나 록흔은 뇌전이라도 맞은 듯했다. 핥고 빠는 힘이 강할수록, 숨소리도 가늘어졌다. 앗겠다는 말대로 그는 철저히 그녀를 취했다.
사륵.
가륜은 벼려진 검, 록흔을 마구 벴다. 그가 그러잡는 대로, 그녀는 당겨졌다. 그리고 혈이 조금 풀려났다. 최소한 수동적인 반응이 가할 만큼, 그러나 저항은 불가할 만큼. 왠지 서러워 그녀는 입술만 윽물었다.
“흐윽…….”
눈물이 솟았다. 울지 않으려 애를 써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록흔은 눈귀를 애참하게 일그러뜨렸다.
타악.
돌아보지 않을 거라고, 이대로 물리지 않을 거라고. 록흔은 반쯤 체념했다.
스윽.
눈물이 흐른 대로, 다슨 손가락이 따라 올라왔다.
“슬픈 눈물은.”
축축한 눈귀에 뜨거운 숨이 닿았다. 이어 매끈한 것이 간기 밴 자리를 쓸었다.
“죄 말려야지.”
가륜이 깊다랗게 속삭였다. 야멸치게 사납던 기세는 간데없고 어르는 소리만 남았다. 록흔은 눈을 더욱 질끈 감아 버렸다. 눈물이 작게 돋아 그녀의 뺨을 적셨다.
“꽃솜인 양 항시…….”
록흔에게 뒷말은 닿지 않았다. 가륜이 귓불을 지분거려 가쁜 숨만 내쉴 뿐 사고는 불가했다. 그동안 숨기던 것이 탄로 난 지금, 어찌 반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
얕게 벌어진 입술 새, 숨은 향긋하게 스몄다. 가륜은 록흔이 내쉬는 한숨 한 자락까지 앗았다. 입술을 겹치고, 또 겹치고……. 그는 두려울 만치 느릿하게 연한 입술을 탐했다. 그 밤의 기억대로 그녀는 한없이 무름해졌다.
차랏.
머리칼이 온전히 풀렸다. 결 고우니 하르르 흘러 록흔을 덮고 이끼를 쓸었다. 그녀는 울먹이며 고개를 비틀었다. 이내, 잔약한 목덜미가 하얗게 드러났다. 가륜은 서슴없이 달빛 닮은 그곳에 입술을 내리눌렀다. 피가 터질 만큼 머금었다가, 등뼈가 시작되는 곳까지 이를 세워 긁었다.
“폐하, 제발…….”
록흔이 옆으로 몸을 뉘니, 가슴선이 탐스럽게 흘렀다. 어느 순간, 연홍빛이 감질나게 돋아 보였다 숨었다.
“……!”
소스라치든 말든, 상관없었다. 가륜은 바숴질 듯 가는 어깨를 움켜잡고 말랑한 젖무덤을 한 손 가득 쥐었다. 그 순간, 록흔은 달빛으로 바랬다.
“숨을 곳 바이없다.”
말은 거칠게 했으나, 속은 이제 연했다. 가륜은 이 온기를 이 체향을 이 감촉을 잊지 않고 있었다. 작지만 부드럽고 연한 젖가슴……. 사랑스러운 그녀다움이었다. 그는 오래도록 곱다운 몸피를 보듬었다. 소유도 지배도 아닌, 그저 확인하고픈……. 가슴 차가운 이라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그리움이었다.
“흐윽…….”
록흔은 목이 멨다. 그녀는 팔을 들어 가륜을 껴안았다.
“록흔.”
그저 부르는 소리였다. 그러나 록흔은 애가 녹았다.
바랏.
하늘 위, 황록빛 빛점이 분분했다.
바라랏.
적막 속에서 록흔은 그예 피었다, 달빛에 만개하는 어느 숨은 꽃처럼. 그녀는 가륜의 어깨에 얼굴을 깊게 묻었다. 그 순간, 그녀는 그에게 섭슬렸다. 호흡 또한 그에게 속했다.
“진작.”
문장 따위 내키지 않는 듯, 가륜은 짧게 끊어 말했다.
“너를…….”
달빛 아래 말갛게 씻겨, 록흔은 애참하게 고왔다. 가륜은 눈귀를 비틀다 가느다란 허리를 그대로 잡아채 버렸다. 그리고 수줍게 다물린 다리 틈새로 손 하나를 드밀었다. 이내, 보드라이 하얀 허벅지가 바르르 떨렸다.
“아, 안…….”
쓸리는 천 같은 것은 없었다. 살갗이 닿기에 온전히 벗겨진 것을 알았다. 록흔은 깜짝 놀라 다리를 조였다. 그러나 가륜은 물러서지 않았다. 다만, 더 천천히 더 부드럽게 그녀를 어루만졌다.
“폐……하…….”
록흔은 고통스러웠다. 가륜이 만지는 곳마다 달금하게 아팠다.
“안 된다 말하려거든.”
가륜이 비긋 웃으며 말했다. 그답지 않은 탁함에 록흔은 전율했다. 눈빛도 어투도 그녀를 삼킬 듯 어두웠다.
“이건……, 저는…….”
어깨를 지그시 누르는 힘이 강했다. 록흔은 푸른 이끼 위에 잔약하게 누웠다. 머리 위, 가까운 곳에서 달은 그녀처럼 설백빛으로 빛났다.
“가만있어.”
차게 뱉은 후, 가륜은 록흔에게서 말을 빼앗았다. 입술이 닿는 곳마다 불이 일었다. 열감은 용암인 양 흘러 그녀를 태웠다. 가한가, 불가한가……. 생각들은 점점 엷어졌다. 세상에는 오직 두 사람뿐이었다.
“……!”
비명 따윈 나오지 않았다. 록흔은 아름다운 눈만 크게 늘였다. 이내, 가륜이 그녀를 옥좼다. 그리고 억센 팔로 단단한 가슴으로 서로를 빈틈없이 밀착시켰다. 한순간, 극렬한 아픔에 연빛 눈이 반드레해졌다.
“흐읍…….”
록흔이 감당하기 어렵게 커다랬다. 꼿꼿이 쳐들어, 무자비하게 겁략해……. 처음은 아니나, 익숙지 않았다. 손끝 발끝, 아니 모든 것을 오그라뜨려 없애려는 듯, 가륜은 격렬했다. 그녀는 곱다란 몸피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그러나 고개를 꺾이게 젖혀도 그를 피하지는 못했다.
타앗!
가륜은 맵차게 록흔의 턱을 훔켜잡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어여쁜 입술이야 이미 제 것, 단번에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그녀가 가락거리든 울든 개의치 않았다. 달금하고 또 달금하니 끝없이 빨아들일 뿐, 지금은 그저 여인을 안은 사내였다. 이런 자리에서 황제의 도를 운운하는 자가 있다면 목을 벨 터. 그는 거칠 것 없이 손을 뻗었다.
“폐…….”
간신히 놓여났을 때, 록흔이 속삭였다. 일순, 가륜이 눈을 길게 찢었다. 작금은 황성의 높다란 섬돌 따윈 없었다. 따라서 그 위에 선 자도, 그 아래에 선 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순간에도 그녀가 놓지 못하는 것, 그는 몹시 역했다. 찰나, 날캄한 눈이 사납게 번득였다. 부드러운 가슴이 거칠게 잡혀, 부드러운 출렁임이 일시에 멈췄다. 그리고 매화를 닮은 봉오리가 새뜻하게 돋았다.
“그러지……, 마세…….”
“감히.”
록흔이 물릴수록 더욱 앗고픈 마음이 생겼다. 가륜은 손바닥에 닿는 보드레함에 입귀를 실긋 틀었다. 이 세상 무엇을 갖다 대도 이보다 연하지도 곱지도 않을 터. 그는 손끝으로 살꽃 하나를 비틀다 입 안에 양껏 머금어 버렸다. 이성이 바래고 야성이 들어찼으나, 조금도 불쾌치 않았다.
“하아, 하아…….”
허리가 들리고 등이 들렸다. 어언간, 록흔은 가륜의 어깨를 붙잡았다. 가슴이 먹히는 듯, 빨리고 씹혔다. 험히 다뤄지니 자연 섧고 아팠다. 그러나 눈귀는 절로 무름해져 부드럽게 젖었다. 가륜이 나직하게 토하는 신음 때문이었으리라. 그녀는 그를 보드랍게 어루만졌다. 어느 순간, 앗기만 하던 입술이 조금은 달래는 듯 변했다.
“이제.”
유두를 굴리며 하는 소리였다.
“……!”
록흔은 비명을 채 내지르지 못했다. 가륜이 어깨를 억세게 틀어쥐고 입술을 내리눌러, 그대로 삼켰다. 강하게 또는 약하게, 거듭되는 전진과 후퇴……. 그로 인해 하얗게 바랬다. 이제 끝이려니 하던 순간, 그녀 안의 빈 곳이 떨렸다. 그리고 그가 격렬히 폭발했다. 열감이 희게 녹아내렸다.
사락.
머리칼이 힘없이 처졌다. 아득해지는 의식 너머, 록흔은 날캄한 눈을 보았다. 그건 그녀가 온 마음 다해 사랑하는 빛접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