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보상, 그리고 전쟁(1)
‘빌어먹을···!’
버서커.
그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주현우에게 정체를 들켰다는 것. 그건 이미 녀석이 처음부터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였다.
격렬한 분노가 치밀었지만.
이내 빠르게 머리가 식으며 이성적인 판단이 돌아왔다.
여기서 감정에 휘둘려 행동해봐야 득볼 것이 없다.
그래봤자 티폰처럼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가능성만 높아지리란 사실을, 버서커는 뼈에 사무치도록 알고 있었다.
‘일단은 팔부터 해결하자.’
팔 한 쪽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로 녀석과 대치하는 건 불리하다. 버서커는 주현우를 경계하며. 슬며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꾸드득! 빠드득! 뼈와 살점이 뒤틀리는 소리. 기괴한 방향으로 뒤틀렸던 버서커의 왼팔이 본모습을 되찾는다.
포션을 복용한 것도 아닌데.
거의 엘릭서를 들이부은 것과 비슷한 회복 속도. 성녀의 권능보다야 훨씬 못하지만, 솔직히 놀라운 광경이었다.
“후우.”
심지어 바로 팔을 한 바퀴 돌리는 꼴을 보아하니.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완벽하게 회복시킨 모양이었다.
‘과연, 블랙 가문의 사흉 중에서도. 무력 면에선 가장 강하단 평가를 받는 녀석 다운 모습이군.’
현우는 그 과정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포션이나 치유의 권능이 아닌.
순수히 자연 치유력의 극한 가속을 통해 만들어내는 결과.
녀석이 ‘버서커’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대부분의 고통에 둔감하며.
웬만한 상처는 이렇듯, 바로 회복하여 다시 전투에 뛰어든다.
현우 또한 서울 방어전을 치르며, 녀석이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몇 번이고 목격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아쉽게도 지난 생에선 녀석과 제대로 붙어볼 기회가 없었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물론, 지금 현우는 전생에서 녀석에게 느낄 수 있었던. 위압감이나 긴장감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
조용히 가는 시선으로 버서커를 노려보는 현우. 오가는 말이 없이 침묵만 감돌자. 먼저 입이 열린 쪽은 긴장과 위압에 이기지 못한 버서커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가···.”
그는 입을 반쯤 벌리고.
이 상황을 어찌 모면해야 할지. 빠르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 갑자기 공격이라니. 아무래도 우린 처음 보는 사이인 것 같은데.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오!”
눈을 몇 번 데굴데굴 굴린 후에야.
제대로 열린 녀석의 입에선, 그런 어처구니없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나마 찾아냈다는 것이 저런 궁색한 변명이라니.
“아, 그런가.”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담담한 반응에 버서커의 눈썹이 움찔 떨렸다.
‘아, 그런가’라니.
얼굴을 마주치기도 전에 팔을 병신으로 만든 미친놈의 입에서 나온 대답 치곤.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강했다.
“처음 보는 건 맞긴 하네.”
“아니···.”
버서커는 쓰읍, 입맛을 다셨다.
대체 지금 뭘 하자는 건지. 녀석의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걸 그가 깊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주현우가 한 걸음 다가왔다.
고작 그것뿐인데. 버서커의 직감이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쉽게 이 자리에서 도주라는 선택을 하긴 어려웠다.
‘무조건 잡히겠군.’
이건, 심각한 외통수였다.
이미 녀석에게 존재를 들킨 순간부터.
도망갈 절호의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린 셈이었다. 버서커는 흘러나오려는 침음성을 삼키며 주현우를 바라봤다.
“근데 너, 방금 나를 알아봤잖아. 그리고 다짜고짜 반격도 하려고 했고. 아무래도 진짜 초면은 아닌 것 같은데.”
비죽 웃는 현우.
버서커가 뭐라 입을 열려는 찰나.
현우가 슬쩍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안 그래? 블랙 가문의 버서커.”
“···!”
버서커는 어깨를 떨었다.
역시, 저 녀석은 자신을 알고 있다.
물론, 그는 블랙 가문 출신의 무인으로서. 각종 전장을 전전하며 명성을 떨친 바가 있었기에 여기저기 얼굴이 깨나 알려진 편이긴 했다.
‘그래, 나는 헌터로서 인도적인 지원을 나온 것뿐이다. 이상할 구석은 전혀 없는 이야기지.’
변명 거리가 없진 않다.
그러나 과연, 녀석에게 통할 지는 미지수. 버서커가 신중히 대답을 고르려던 찰나. 현우가 한 발 앞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너랑 초면인 것은 맞는데. 사실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야. 네가 이번 게이트 브레이크를 기획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 그걸···.”
어떻게.
그렇게 물으려다 말고. 버서커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설령 놈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제 입으로 인정해서 좋을 것이 없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그렇게 나올 줄도 이미 알고 있었어. 마침 내게 기억을 되살리는 아주 좋은 기술이 있거든.”
다시 한 걸음 가까이.
현우가 가볍게 발을 떼며 다가오려던 순간. 이번에 먼저 움직인 쪽은 버서커였다. 그는 진한 적색을 띄는 강기를 흩뿌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잡히면 끝이다.’
버서커는 최악 중에서도 그나마 가장 나은 차악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잡히면 단순히 그의 목숨 하나만 잃게 되진 않을 테니까.
그러나 허망하게도.
그의 주먹은 현우의 손에 가로막혔다. 그것뿐이었다면, 어떻게든 다음 초식으로 이어 발악을 해보았겠지만.
이미 손목은 녀석에게 붙잡혀 있었다.
거리를 내준 것으로도 모자라. 이렇게 또 손을 붙잡히고 말았다. 이건, 그와 주현우 사이에 넘기 어려운 실력의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크으윽···!”
심각한 상처를 감내하더라도.
이곳에서 도망쳐 세계급 유물과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는 것이 이득이다. 버서커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오른손을 번쩍 추켜올렸다.
‘공격···.”
그렇게 생각했지만.
현우는 불과 몇 초 후에 황당한 결과를 눈앞에 맞이해야 했다. 녀석이 치켜든 손이 현우가 아니라 엄한 곳을 향했던 것.
─퍼억!
살점과 뼈가 끊어지는 소리.
녀석은 망설임 없이 제 왼팔을 스스로 잘라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러나 그는 과연 버서커라는 별호답게.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지면을 구르며 현우에게서 최대한 멀어졌다.
그리고···.
혈화폭인(血化爆引)
솟구친 피에 깃든 마나가 일순 요동친다. 스스로의 혈액과 생명으로 빚어낸 기습적인 구명절초.
콰과과─!
짧은 순간.
현우의 눈앞에서 붉은 폭발이 일었고. 직후 혈무(血霧)를 동반한 강렬한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반경 3미터 가량을 말 그대로 휩쓸어버렸다.
평범한 인간.
아니, 웬만한 SSS급 헌터라도. 이 일격을 정면에서 맞는다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하물며 이렇게 기습적인 상황이라면 더더욱 멀쩡하긴 어렵겠지.
그러나 버서커는 결과를 확인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필사적으로 두 다리를 놀려 멀어졌다.
주현우의 무위를 그의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으므로. 혈화폭인을 정면에서 맞고도 멀쩡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옳았다.
혈무가 잦아든 자리.
그곳엔 머리칼이 조금 흐트러졌을 뿐인 현우가. 이전과 같이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생각보다 미친놈이었군.”
무슨 도마뱀도 아니고.
현우는 손에 남은 버서커의 왼팔을 보며.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한편···.
시칠리아의 란다쪼.
에트나 화산의 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이곳은, 방금 전까지 티폰과의 전투가 한창 벌어지던 곳이었다.
“이건, 정말로···.”
교황, 그레고리오 12세.
바티칸에서 시칠리아 섬까지. 그는 최대한 빠르게 이동했으나.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모두 끝나 있었다.
그는 거대한 티폰의 시체를 보며 작은 탄성을 흘렸다.
“···예지가 바뀌었군요.”
시칠리아의 재앙.
성녀 아그네스 그레고리오는 이번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을 그렇게 예지했다. 그런데 설마, 정말로 예지한 미래가 이렇게 바뀌게 될 줄이야.
예지한 미래가 바뀐 것도 놀라운 일이었으나.
이 거대한 마족을 거의 혼자만의 힘으로 쓰러트렸다니. 그건 더욱 경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정말로 이걸 주현우님···.”
교황은 꿀꺽 침을 삼켰다.
그리곤 아그네스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바꾸었다.
“···그러니까 천무그룹의 잠룡. 그분께서 단신으로 토벌했다는 겁니까?”
“네, 엄밀히 따지면 완전히 홀로 토벌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그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녀는 이런 일로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교황의 가슴 속엔 놀란 감정이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그분을 꼭 한 번 봬야겠군요.”
샤오 가문에서 열린 마지막 가문 회의에 불참했기에, 그는 주현우라는 이를 직접 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고작해야 20대의 젊은 인재라고 들었는데. 대체 무엇이 그를 성녀의 예지마저 뛰어넘을 수 있도록 만드는지.
반드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아, 마침 저기 오고 계십니다.”
“오···.”
입을 열려던 교황이었으나.
그는 도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현우의 손에는, 일반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물건이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저건···?”
“팔··· 같습니다.”
같은 게 아니었다.
현우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누가 봐도 팔. 기묘한 문신이 잔뜩 그려져 있는, 성인 남성의 것으로 보이는 팔꿈치 근처까지 떨어져 나간 팔이었다.
교황은 두 눈을 깜빡였다.
지금 이게 대체 무슨 황망한 상황인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해할 여지를 찾기 어려웠다.
“교황님이시군요.”
그렇게.
현우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교황은 순간 당황했고.
입을 반쯤 벌리고 돌려줄 대답을 찾다. 이내 그저 고개를 끄덕, 한 번 위 아래로 흔들었다.
상대의 입장에선 상당히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는 대처였으나. 현우는 크게 개의치 않는 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밀어왔다.
“반갑습니다. 천무그룹 주현우입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바로 그 손에 잘린 팔이 들려 있었다는 점일까.
“어, 예···?”
성직에 입문한 후로.
아니, 난생 처음으로 교황은 입에서 멍청한 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체면이 바닥에 떨어지는 행동이었으나.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모두 현우가 불쑥 내민 팔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받으시죠.”
“···이걸 말입니까?”
“저, 주현우님. 아무래도 이건···.”
곁에 있던 성녀 아그네스 또한.
지금 이 상황이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뭐라 말을 이으려 했지만. 현우는 그녀의 말을 끊듯 재차 팔을 내밀 뿐이었다.
“도움이 될 겁니다.”
교황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팔을 받아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잘린 팔이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걸까.
그 의문은 금방 해결되었다.
“이번에 발생한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 이건 절대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팔은, 이번 사건의 흉수가 남기고 간 거죠.”
남기고 갔다니.
무슨 물건도 아니고 팔을···.
연신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던 교황 대신. 이번엔 아그네스가 입을 열었다. 당연히 그녀 역시도 현우의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자른 것은 아니니. 녀석이 남기고 간게 맞겠죠.”
“아, 아니. 그런 질문이 아니라···.”
그녀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주현우님께서는 지금, 이번 일에 저희가 알지 못하는 배후가 있다는 겁니까?”
“네, 정확합니다.”
현우는 교황이 받아든 팔을 가리켰다.
“저게 바로 그 증거죠.”
“아아···.”
과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단순히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으나. 주현우가 저리 주장한다면 반드시 조사해야 했다.
“그럼, 주현우님께서는 방금 흉수를 직접 목격하고 오신 거군요.”
“예.”
고개를 끄덕이는 현우.
“블랙 가문의 버서커. 그 녀석이었습니다.”
“블랙 가문···.”
교황과 아그네스.
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정말 흉수의 정체가 블랙 가문일 경우. 이건 더욱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확실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라고 드린 겁니다.”
지문이든 뭐든.
이 정도의 물증이 남아 있는 이상. 블랙 가문이 이번 일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
그리고···.
“그럼 이제, 이번 일의 보상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볼 차례군요.”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현우는 계산만큼은 철저한 사람이었다.
***
그런데 막상.
교황청의 총본산,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현우가 먼저 꺼낸 이야기는 단순한 보상 요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사소한 것으로 생각되게 할 만큼. 더욱 중요하고 놀라운 제안이 현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러니까.”
아그네스는 꿀꺽 침을 삼켰다.
“주현우님이 말씀하시는 바는···.”
“예, 맞습니다.”
이제는 여러 요소와 각종 노력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현우가 알고 있던 미래도 꽤나 많이 변화했다.
그러니 슬슬 때가 되었다.
“블랙 가문과 전쟁을 시작할 겁니다.”
단 하나의 목표이자.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미련.
블랙 가문과 본격적인 충돌을 개시한다.
놈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하고 있던 거대한 전쟁. 그 도화선에, 녀석들이 준비를 마치지 못한 이 순간. 한 발 앞서 불을 붙일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