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네크로맨서, 미래(2)
“너는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네크로맨서.
그녀가 붉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대체 무엇이 안 된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현우는 대충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는 묘하게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적어도 저건···.’
그가 알고 있는 네크로맨서가 아니다.
지금 당장 현우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였다.
그리고 또 하나.
녀석은 현우를 ‘광룡’이라고 했다. 그건 아직 이번 생에서는 한 번도 불린 적이 없는 별호였다.
‘이상한데.’
이해를 벗어난 상황이었다.
분명 성녀가 예지했던 미래는 키메라의 등장이었고. 현우가 아는 미래의 사건이 당겨진 것이 맞다면, 여기선 우선 키메라가 먼저 나와야한다.
그런데 네크로맨서라니.
“아직 마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할 시기일 텐데. 이쪽은 뭔가 달라지기라도 한 건가. 이 정도면 예측했던 변수는 한참 넘어선 거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네크로맨서.
“너, 뭐야?”
“···몰라서 물어보는 건가?”
현우는 질문에 질문을 돌려줬다.
도통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성녀의 예지와 그가 알고 있는 미래.
둘 모두에 네크로맨서의 등장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광룡’이라 부르며 마치 처음 만난 것 같은 태도까지.
‘나와 같은 회귀자인가.’
그러나 현우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이미 미래는 많이 바뀌었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전혀 벗어나지 않는 방향으로만 나갈 것이라는 전재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흐음.”
네크로맨서가 제 입가를 매만졌다.
그녀의 가늘고 붉은 두 눈이 요사스런 사기를 흩뿌리며 현우에게 고정되었다.
“일단, 다른 의문은 그렇다 치고. 우선 이곳의 광룡께서는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아는 모양이고···.”
찢어진 공간이 닫힌다.
허공에서 천천히, 네크로맨서가 이쪽을 향해 내려왔다. 그녀의 주위로 끈적하고 불쾌한 죽음의 마나가 피어올랐다.
“다니엘, 그 재수 없는 녀석의 예측이 정확했다면. 분명히 여긴 10년 정도 전의 세계일 텐데···.”
이윽고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본 그녀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여전히 여유로운 분위기였으나. 방금 전과는 다르게 뭔가 석연찮은 눈빛이었다.
“이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
그러나 그와 반대로.
현우는 녀석이 조심성 없이 흘린 단서를 통해 머릿속을 모호하게 떠들던 추측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제 입으로 시인하는군.’
10년 정도 전의 세계.
그 이야기는 곧, 녀석이 미래에서 온 존재라는 가능성에 확인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은 하나.
저 녀석은···.
현우가 알고 있는 미래.
천무그룹이 서울 방어전에서 패배하고. 블랙 가문의 계획이 모두 성공한 그곳에서 왔을 거라는 것.
지금으로부터 무려 9년.
아니, 최소 9년이 지난 후의 네크로맨서.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정보도 있다.
녀석은 이쪽의 주현우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같은 회귀자라고 해도. 지금의 주현우는 녀석에겐 완벽한 미지의 변수 그 자체로 작용하고 있단 소리였다.
“···네년, 네크로맨서인가.”
주진석.
그가 날카롭게 그녀를 쏘아보며 물었다.
“그래, 맞아.”
비죽 웃는 그녀.
사실 물으나 마나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주진석은, 불쾌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내며 위협적인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이건 천무그룹과 블랙 가문 사이의 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거다.”
“지금 위협하는 거야?”
곧 네크로맨서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위협이 아닌 경고다. 천무그룹 전체와 전쟁을 벌일 생각이 아니라면. 아직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지금, 꼬리를 말고 물러나는 것이 좋을 거다.”
“주진석 회장···.”
네크로맨서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여기서는 부회장이었던가. 아무튼 당신다운 말이네. 미래의 유럽지부에서 만났을 때에도. 지금 그거랑 비슷한 말을 했었는데.”
“···.”
주진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미래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 네크로맨서가 내뱉는 모든 말은 그저 광인의 헛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미친 소리는 그만 두고. 결계를 해제한 후 꺼져라. 마지막 경고를 듣지 않겠다면 다음엔 네년 머리통을 박살내주지.”
“흐으음···.”
네크로맨서는 제 턱을 매만졌다.
“하필이면 이 시점에 떨어진 이유가 있을 텐데. 광룡이 여기에 있는 것도 신경 쓰이고. 이거, 이대로 계속해도 괜찮은 건가···.”
작은 혼잣말.
“뭐, 상관없어.”
이윽고, 어깨를 으쓱하는 네크로맨서.
그와 동시에 현우의 직감이 경종을 울렸다.
“그래봤자 어차피 몇 년 뒤에는 전부 죽을 녀석들인데. 조금 빨리 죽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겠지.”
그녀의 주위에 죽음의 마나가 침전하더니. 이윽고 기괴하게 뒤틀린 살덩이로 화해 허공을 빙글빙글 돌았다.
‘저건 위험하다.’
이곳에서 오직 현우만이.
녀석이 지금 무엇을 하려는 건지. 정확하게 예측하고 한 발 앞서 지면을 박찼다.
플레쉬 익스플로전.
부패한 살점을 소환해 폭발시키는 마법. 설명은 굉장히 단순하지만, 그만큼 위력과 범위는 무시무시하다.
“다들 제 뒤로 오세요!”
현우는 그렇게 말하며.
그 즉시 인피니티 코어의 마나를 짜내듯 끌어올렸다. 주진석이야 충분히 막아낼 수 있겠지만. 여기, 다른 헌터들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퍼엉─!
형상화된 죽음.
그렇게밖엔 표현할 길이 없는 거센 폭발이 네크로맨서를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부패한 살점과 피.
그 끔찍한 광경 속에서···.
일순, 푸른 섬광이 번뜩이며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바로 현우가 발한 우레불꽃이었다.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12초식 와류(渦流)
현우의 전신에서 끓어오른 푸른 번갯불이 마치 해파(海波)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터져 나온 뇌기가 네크로맨서가 만들어낸 섬뜩한 폭발과 충돌했고. 쿠르르! 고막을 흔드는 거대한 폭음과 함께. 폭발을 붙잡아 그대로 증발시켰다.
“···응?”
네크로맨서가 미간을 좁혔다.
일격으로 주위의 헌터 절반은 휩쓸어 버릴 생각이었으나. 이건 그녀가 예상했던 결과와 큰 차이가 있었다.
“와··· 방금 이거. 광룡 네가 한 거야?”
입을 반쯤 벌리고 놀라는 그녀.
그러나 자세히 물어볼 필요도 없이.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은 일목요연했다. 그녀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그건···.
주현우라는 존재가 전생과는 다르게.
쉽게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변수임을 분명히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
“흐응.”
네크로맨서.
그녀는 콧소리를 내며 현우를 바라봤다.
“그냥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조금 달라진 과거인 줄로만 알았는데. 여기의 광룡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네.”
히죽─
그녀의 입꼬리가 휘어졌다.
“역시, 가지고 싶어졌어.”
언젠가···.
이번 생의 네크로맨서도 현우에게 했던 말.
그만큼 현우의 신체나 무위가 탐난다는 소리겠으나. 아무래도 당사자로서는 그저 기분 좋은 칭찬으로만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미친년이군!”
주진석은 으득, 이를 갈며 말했다.
그의 눈빛엔 분노가 가득했다. 아무리 지금 유럽지부가 혼란스런 상황이라고는 하나. 이곳은 엄연한 천무그룹의 영역이다.
최대한의 배려로 물러날 것을 권유했다.
이건 경고를 무시하고 정면에서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 이제는 더 이상 말로 좋게 끝낼 범위를 넘어섰다고 밖엔 볼 수 없었다.
“큰아버지.”
그때, 현우가 입을 열었다.
주진석은 잠시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무작정 싸우면 저희가 불리합니다.”
“불리하다니?”
“여기서 시체가 늘어날 수록, 녀석의 전력은 보충될 테고. 우리 쪽의 전력은 약화될 테니까요.”
과연 맞는 말이었다.
“그럼, 어찌하려는 거냐.”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
“예.”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네크로맨서는 제가 맡겠습니다. 큰아버지께선 성녀님과 함께 피해를 줄이는 데에 집중해주시죠.”
“···확실한 방법이겠지?”
“제가 왜 갑자기 유럽지부에 방문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현우는 일단 그렇게 주진석을 설득했다.
‘물론, 이건 나로서도 예상 외였지만.’
아주 대책이 없지만은 않다.
일단 녀석은 미래에서 왔다.
현우의 사후 시점에서 넘어왔을 테니. 당연히 가지고 있는 미래의 지식 역시도 현우가 알고 있던 것 이상이겠지.
하지만, 그게 맹점이다.
앞으로 일어날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만큼. 녀석은 지금 그 지식에 매몰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이 상황 또한 마찬가지.
네크로맨서에겐 알고 있던 과거와 조금 달라진 것일 뿐. 진심으로 경계하고 있진 않는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녀석에게 있어서 주현우를 비롯한 이 자리의 모든 인물들은, 이미 블랙 가문이 짓밟았던 과거의 인물에 불과할 테니까.
‘저 녀석은 지금의 나를 모른다.’
녀석은 과거, 전생에서 다니엘 블랙에게 패배하고 말았던 주현우를 알고 있는 것뿐이다.
현우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역시, 광룡 네가 나서는 거야?”
“나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서.”
“이쪽 세계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르긴 다른 모양이네. 아직 별 볼 일 없어야 하는 네가 제법 희한한 기술도 쓰고 말이야.”
“흠,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네크로맨서는 현우의 회귀를 모른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 미래의 다니엘 블랙은 아자토스의 모래시계에 대해. 녀석에겐 알리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배경이야 어찌 되었든.
이건 녀석의 패배 요인이 될 것이다.
“나를 너무 원망하지는 말란 거지.”
그녀는 큭큭 웃었다.
“어차피 미래에서도 죽을 텐데. 기왕 죽게 되는 거. 이번엔 조금 빠르고 허무하게 가는 것뿐이니까.”
“헛소리.”
“물론 그런 자신감도 아주 좋아. 나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면 즐겁거든.”
히죽, 비틀린 미소를 머금는 그녀.
이번 생에서 만난 네크로맨서는 저 정도로 망가진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현우는 복잡한 감정으로 혀를 찼다.
“자, 그럼 광룡. 지금 보여주는 그 자신감이 얼마나 가는지. 어디 한 번 실험해보도록 할까?”
그녀가 손을 들어올렸다.
지면이 잠시 요동치더니. 땅이 갈라지며 무언가 솟아올랐다. 그건 기괴하고 끔찍한, 응집된 시체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둥이었다.
‘···콥스 타워.’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네크로맨서의 시그니처.
전생의 서울 방어전 당시. 얼굴도 보지 못한 네크로맨서가 현우와 동료들을 괴롭힌 가장 까다로운 기술이었다.
끊임없이 언데드를 소환하며.
주위의 언데드들을 강화하는 능력을 지닌 구조물. 그게 바로 콥스 타워의 정체다.
‘일단 저 기둥에는 신성, 혹은 화염 계열의 공격만 먹힌다. 심지어 완전히 파괴하기 전까진. 주변의 시체를 빨아들이며 스스로 재생하기도 하지.’
그러나 대처법 역시 명확했다.
세상에 결점이 없는 기술은 없는 법. 콥스 타워의 결점은 자체적인 방호 능력이 전무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런 씹···!”
주진석의 곁에 서 있던 아들.
주태우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의 예리한 기감이 심상치 않은 결과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예감은 맞았다.
콰앙─! 쾅─!
연달아 지면이 흔들리더니. 처음 솟아오른 것에 더해. 두 개의 콥스 타워가 추가로 생성되었으니까.
‘역시, 예상 이상이군.’
현우가 알기로 콥스 타워는 하나 밖엔 소환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걸 한 번에 세 개나 소환해 내다니.
그러나 마냥 감탄할 여유는 없었다.
죽음의 마나가 콥스 타워를 휘감았고.
그 기능이 활성화 되는 순간. 수백은 족히 넘어가는 것으로 보이는 대량의 언데드가 동시에 일어났다.
최하급의 스켈레톤부터.
스팩터나 구울, 와이트 그리고 본 서펜트와 창백한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데스 나이트까지.
[우오오오···.]기분 나쁜 울음소리.
그리고 이어 사방으로 퍼지는 죽음의 향취가. 이 자리에 있는 헌터들에게 공포와 긴장감을 더해주었다.
“이, 이쪽으로 온다!”
그 수를 미처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언데드의 군단. 그건 분명 웬만한 베테랑 헌터라도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현우는 공포를 느끼진 않았지만.
순간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허.”
쏟아지는 언데드 사이로.
한 눈에도 익숙한 실루엣을 하나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가슴에 뚫린 주먹만 한 구멍.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이었으나. 누구보다 현우는 그 얼굴을 정확하게 알아봤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데스 나이트는···.
다른 누구도 아닌, 현우 본인이었으니까.
“어때, 이건 조금 놀랐으려나?”
네크로맨서의 이죽임이 들려왔다.
그러나 현우는 그녀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놀라기 보다는 되려 씁쓸한 감정을 삼키고 있었다.
‘네크로맨서, 결국 내 시체를 손에 넣긴 했군.’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아자토스의 모래시계를 사용한 이후.
저쪽 세계가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몰랐지만. 아무래도 현우의 정신만 과거로 왔을 뿐. 시체는 저쪽에 남아 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현우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지금 취해야할 행동과 목적을 분명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일단 알아두고 넘어가야 할 건···.’
대체 왜.
지금 여기에 네크로맨서가 나타난 건지. 녀석의 수단과 목적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건 단순히 이 하나의 예외적 사 건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는 핵심 요소가 되어줄 테니까.
계획은 간단하다.
‘일단은 전부 박살낸다.’
자신의 시체로 만든 데스 나이트를 포함해.
콥스 타워를 모조리 부숴버린다면. 녀석도 더 이상 언데드 군단 뒤에 숨을 수 없을 테니까.
그 방법 역시 간단하다.
녀석에겐 운이 없는 거겠지만.
현우에겐 운이 좋게도. 지금 이 상황에 딱 알맞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 손에 들어와 있었으니까.
‘그저 만만한 과거가 아니라. 잘못된 시간에 도착했다는 것을, 이제부터 똑똑히 알려주지.’
잠시 후, 현우의 손에서.
성화를 가두고 있던 결정이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