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7
7화 이무기(1)
앞으로 두 걸음.
현우가 자신을 향해 전진한 것만으로. 주건우는 목덜미를 꽈악 붙잡힌 것만 같은 육중한 압박감을 느꼈다.
‘뭐야······!’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분명히 주현우의 경지는 아직 창천신공 1성에 불과하다고 들었는데.
창염을 사용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그러나 눈앞의 주현우는 선명한 창염을 두 팔에 두르고.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움찔.
주건우의 어깨가 떨렸다.
하마터면 뒤로 물러날 뻔했다.
천무그룹의 많은 이들이 이번 대련을 관전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부인 주양태 회장이 직접 보고 있는 자리.
절대 물러날 수는 없다.
혹시라도 이번 대련에서 패배한다면.
지금까지 주건우가 쌓아 올린 천무그룹 내의 입지는 물론이고, 어머니인 주영미의 위치까지도 흔들릴 것이다.
이 대련은 주현우에겐 기회지만.
주건우와 주영미에겐 오히려 반대로. 자칫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되는 위기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이윽고 주건우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미안해 현우 형.”
질끈 눈을 감은 주건우.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창천신공을 최대한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두 개로 분열된 코어가 회전. 뜨겁게 달아오르며 전신에 퍼져 있는 마나를 증폭시켰다.
“솔직히 창염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같은 2성이라고 해도. 다 똑같은 경지는 아냐. 그리고 창염이라면, 내가 훨씬 더 잘 다룰 수 있고.”
살짝 당황하긴 했다.
그러나 서로 같은 2성의 경지라면. 여전히 유리한 건 이쪽이다. 그는 주현우보다 더 오랜 시간 창염을 수련했으니까.
‘당연히 창염의 유지시간. 그리고 활용도까지 내가 훨씬 앞서 있어. 절대 불리한 싸움이 아냐.’
이윽고 주건우가 진심으로 피워낸 푸른 불꽃은, 빠른 속도로 그의 전신을 휘감으며 퍼져 나갔다.
“오.”
현우의 눈이 빛났다.
창염갑.
오직 천무가의 핏줄에서만 발현되는 권능, ‘창염’을 발휘해서 신체를 뒤덮는 간단한 원리의 기술이지만······.
‘그만큼 효과는 확실하다.’
상위의 헌터들.
그중에서도 재능이 탁월한 이들만 사용할 수 있다는 오러에 비견되는 창염을 전신에 두르는 기술이니.
그야말로 완벽한 공방 일체의 기술.
또한, 겨우 창천신공 2성의 경지로.
전신을 뒤덮을 정도의 창염갑을 만들어낸 주건우의 재능도 예사롭지 않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나와 체력의 소비가 극심하고. 창염의 형태를 고정하기 위해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편이지.’
현우도 창염갑을 못 쓰는 게 아니다.
단지 이번 대련에서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뿐.
“최대한 서로 안 다치지 않는 선에서 끝내려고 했는데. 미안하지만, 이건 내가 아니라 형이 선택한 거야.”
주건우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택은 무슨······.”
현우는 말끝을 늘리며 보폭을 넓혔다.
주건우는 유약하지만 정직하다.
그리고 성격은 둘째 치더라도. 천무가의 일원답게. 재능과 앞으로의 성장 또한 보장되어 있는 인재다.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단순히 밟고 올라서기보다는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꺾는 것으론 부족하다.
완벽하게 압도하고 동경을 심어준다.
그게 현우가 원하는 완벽한 승리였다.
“야.”
현우는 나즈막히 주건우를 불렀다.
그의 경계심 어린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자비와 아량을 배풀 대상에서. 이제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차이가 여실히 느껴졌다.
“방금 나한테 같은 2성이라도. 다 똑같은 경지가 아니라고 했지.”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주건우를 휘감은 창염갑이 일렁였다.
“아주 정확한 말이야.”
다만 위아래가 바뀌었을 뿐.
현우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현우의 곁에서 푸른 불꽃이 용솟음쳤다.
“그런 오만은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분명하게 확신했을 때에나 부리는 거야. 그래 예를 들어서······.”
주건우가 창염갑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1분에서 길어야 3분 정도가 한계.
그럼에도 바로 공세를 펼치지 않는 이유.
그건, 경계심도 있겠지만. 현우와 서로 최고의 일격으로 맞붙고 싶다는 호승심도 섞여 있었다.
“이럴 때 말이야.”
설마 창염갑인가.
잠시나마 그렇게 생각했지만. 정작 주건우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었다.
화아악─!
급작스럽게 창염의 기세가 불어났다.
순식간에 연무장 절반을 뒤덮어버릴 정도로. 거세게 타오르는 청명한 푸른 불꽃. 지금껏 주건우는 저렇게 거대하고 선명한 창염을 목격한 적이 없었다.
특별한 스킬은 아니었다.
그저 효율 따윈 생각하지 않고. ‘아자토스의 모래시계’의 일부로부터 발현되는 마나를. 모조리 창염을 발현시키는 데에 불태우고 있을 뿐.
그러나 그 광경은······.
주건우 뿐만 아니라 대련을 관전하는 모두를 경악하기 만들기에 충분했다.
‘크고 압도적이야.’
주건우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창천신공 2성의 경지. 분명히 창염을 사용할 수는 있는 수준이지만. 저 정도의 출력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주건우의 상식선 내에선 말이다.
‘저건 대체······?’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아니, 이해하려는 생각조차 포기했다.
덕분에 머리가 조금은 식었다.
그래,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마나를 다루는 재능을 극한까지 타고났다면 말이다.
‘저런 출력이면 기껏해야 10초 한계일 게 분명해. 조금만 시간을 끌면 다시 내가 유리해질 거야.’
그럼 버티면 된다.
딱 일격만 흘리거나 피하거나 막으면. 그 뒤로는 무조건 이길 수 있다.
“해봐.”
마음이라도 읽은 걸까.
연무장 절반을 덮고 있던 창염이 빠르게 모여들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현우의 오른손 위로 응집되었다.
그 순간 현우의 발이 지면을 박찼다.
주건우는 섣부르게 대응하지 않았다.
“어?”
그러나 빨랐다.
신중하게 판단하려던 선택은 실수였다. 주건우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이미 현우의 신형은 코앞까지 치달아 있었다.
“흡!”
짧게 호흡을 뱉어내는 소리.
주건우가 팔을 들어 올린 순간. 뭔가를 해볼 틈도 없이. 현우의 주먹이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치닫고 있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해!’
피할 여유는 없다.
그는 반쯤 본능에 따라 치켜든 두 팔에 창염갑을 집중시켜. 어떻게든 현우의 주먹을 막으려 했지만.
“보이는 걸 그대로 믿지 말라고.”
오히려 그게 잘못된 판단이었다.
주건우의 안면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던 현우의 주먹이 갑작스레 궤도를 틀어. 명치로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커헉!”
폐의 모든 공기를 짜내는 것만 같은 격통.
창염갑의 보호를 마치 종잇장처럼 꿰뚫은 현우의 주먹이 주건우의 명치에 정확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꽂혔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진 않네.”
상대가 나빴을 뿐.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만했다.
그러나 칭찬이 주건우의 귀에 닿진 못했다.
현우의 주먹은 정확히 급소를 타격했고. 짧은 순간 힘을 조절하긴 했지만. 절대로 멀쩡하게 버틸만한 위력은 아니었으니까.
이내 주건우의 초점이 흐려지고······.
도무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마지막으로.마치 실이 끊긴 인형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철퍼덕 쓰러졌다.
***
명백한 현우의 승리였다.
그것도 비등한 승부가 아닌. 누가 봐도 압도적이고 완벽한 승리.
“······.”
연무장은 조용해졌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유일하게 현우만이 쓰러진 주건우에게서 등을 돌리고 천천히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환호성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대련의 결과가 결정된 시점에서부터.
현우를 서슬퍼런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던 주영미 때문이었다.
현우 또한, 그걸 모르지 않았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벌써 열 번 정도는 목이 날아갔겠는데.’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예상외의 결과가 나왔다곤 하지만, 꼼수 따위는 전혀 없이 실력으로 찍어 누른 대련이었으니까.
“으으.”
꿈틀거리며 주건우가 의식을 되찾았다.
“고생했다.”
손을 내미는 현우.
잠시 정신을 잃었던 주건우는 그의 얼굴을 멍하니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방금, 무슨 일이 었었던 거야?”
“네가 진 거지.”
“······역시 그렇구나.”
푸욱 고개를 숙이는 주건우.
이대로 계속 주저앉아 있을 순 없는 법.
이내 그는 현우가 내민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졌지만 잘 싸웠어.”
“그런 게 어딨어. 그냥 진 거지.”
“짜샤,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야.”
패배로부터 시작되는 성장도 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현우는 주건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
연무장 밖으로 나오자.
가장 먼저 현우를 맞이한 건 류한나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도련님.”
감정이 없는 차분한 목소리.
그러나 앞서 현우와 주건우의 대련을 지켜보았던 한나의 눈동자는 분명히 떨리고 있었다.
“정말 훌륭한 대련이었습니다.”
창천신공에 입문한 지 겨우 2주가량.
그 사이에 2성의 벽을 단숨에 뛰어넘은 것은 물론이고, 단순히 수련 기간으로만 따져도 몇 년의 차이가 벌어진 주건우를 넘어섰다.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고 여겼던 일을 실제로 해내셨으니. 앞으로 천무그룹에서 도련님의 입지가 확실해질 겁니다.”
“그러길 바라야죠.”
“그렇게 될 겁니다.”
한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대련.
그걸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고도.
현우의 능력을 의심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회장님께서 집무실로 올라오라는 전언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찾아뵈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집무실로요?”
“예.”
연무장에서 이야기를 나눠도 됐을 텐데.
약간은 의아한 기분으로 현우는 한나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잠시 후.
“조부님을 뵙습니다.”
“음, 왔군.”
현우는 다시 주양태 회장의 집무실에서 그와 독대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방금 전 대련은 훌륭했다.”
주양태 회장의 반응은 덤덤했다.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구나. 고작 일주일로 뭔가 바뀔 거라 생각하진 않았는데. 아주 재미있는 광경을 보여줬어.”
그는 짐짓 턱을 매만지며 현우를 봤다.
자신에 비하면 핏덩이 수준에 불과한 녀석.
하지만 녀석은 자신이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정확하게 지켰다.
“보상으로 창천무를 원한다고 했지.”
“예.”
“일단은 잠시 앉거라. 내 직접 공개적인 자리에서 약조한 만큼, 약속한 것은 반드시 줄 것이다. 단지 네가 그 전에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을 뿐.”
현우가 자리에 앉자.
주양태 회장은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창천무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
“조부님과 천무가의 절기 중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부님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18개의 식을 전부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도요.”
“웬만큼은 아는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주양태 회장.
“지금까지 천무가의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있던 네가 창천무를 습득하는 거다. 그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도 알고 있느냐.”
“저를 보는 시선이 예전과 달라질 겁니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말입니다.”
“그래.”
마냥 긍정적인 변화라곤 보기 어렵다.
“이제부터는 본가의 모두가 너를 경쟁자로 볼 것이다. 같은 항렬의 아이들이야 두말할 것도 없겠고. 진석이도 널 눈여겨보기 시작하겠지.”
주진석 부회장.
주양태 회장의 장남이자.
가장 유력한 천무그룹의 차기 회장.
“그걸 감당할 자신이 있겠느냐?”
어디까지나 현우는 천무가의 사생아.
만약, 주양태 회장의 도움이 없다면.
힘이 곧 논리인 천무가 내에서, 지금 당장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극한의 경쟁에 내던져진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주양태 회장의 말에 현우는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있습니다.”
“뭘 믿고 그리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적어도 나는 절대로 네 뒷배가 되어주지 않을 거다.”
“상관없습니다. 애초에 그런 과분한 기대를 하지도 않았고요. 제가 믿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따로 있다니?”
현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미래의 지식과 정보.
그리고 첫 번째 인생을 살며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경험도 분명 믿는 구석이지만······.
지금 주양태 회장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대답은 단순하고 분명한 하나의 목적이란 것을, 현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제 첫 번째 목표. 그건 바로 조부님을 뛰어넘는 겁니다.”
“뭐라?”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스스로의 힘과 재능. 오로지 그 두 가지가 천무가의 일원으로서 제가 믿는 구석이란 이야기죠.”
당돌하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
첫 번째가 있다면.
두 번째나 세 번째도 있단 소리 아닌가.
“하! 이거 미친놈이로군!”
그러나 현우를 바라보는 주양태 회장의 입꼬리는 말과는 다르게, 기분 좋게 휘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