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6
6화 벽을 넘어서다(3)
천무그룹의 비고 입구.
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 중년 남성이 현우를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그는 깍듯한 자세로 현우와 한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비고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문용준 과장입니다. 회장님께서 오늘 제게 직접 비고의 안내를 맡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손을 내미는 현우.
문용준 과장은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이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한나 씨는······.”
“저는 도련님의 수행원이니. 도련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도련님께서 제게 동행을 원하시는 경우에만 함께 내려가겠습니다.”
문용준 과장의 시선이 현우를 향했다.
현우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문용준 과장의 뒤를 따라 탑승한 엘리베이터는 한참을 아래로 내려갔다.
“천무가의 비고는 지하 2km에 있습니다. 본래는 핵 공격에 대비해 만든 공간입니다만, 70년도에 발생한 대전이 사건 이후 방치된 것을 회장님께서 사들여 이렇게 비고로 사용하기 시작했죠.”
“그렇군요.”
내려가는 길이 조용하진 않았다.
문용준 과장이 딱히 관심이 없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떠들어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제1구역에 보관된 아이템의 희소성은 사실 그리 높은 편은 아닙니다.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죠.”
그 돈이 얼마인지가 문제겠지만.
천무그룹의 기준으로 본다면, 돈으로 구매가 가능한 물건은 희소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희소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해 방치하고 있는 아이템 중에서도, 가치에 비해 상당히 저평가된 물건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제2구역쯤은 되어야 천무그룹의 진정한 보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천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어야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겠네요.”
현우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껏 시간을 들여서 안내를 해주는 문용준 과장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굳이 들을 필요도 없이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아이템은 하나뿐이다.’
주건우와 대련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두고두고 유용하게 사용할 만한 아이템은 이미 비고에 들어오기 전에 생각해두었다.
사실 가장 궁금한 점은······.
비고의 더 깊은 구역.
가장 보안이 삼엄하고, 천무그룹 내에서 회장 본인 정도만이 출입이 가능한 구역에 보관되어 있던 아티팩트.
시간을 되돌리는 아티팩트가.
과거로 되돌아온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였다.
“여기서 본인의 정보를 등록하면 됩니다.”
문용준 과장의 이야기를 반쯤 흘리며 듣다 보니. 어느새 거대한 비고의 문 앞이었다.
“도련님께선 창천신공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되셨을 테니. 이번이 처음이 되겠군요.”
“그렇죠.”
사실 처음은 아니다.
이미 회귀 전에 한 번 경험해본 일이니까.
“이쪽에 손을 올려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창천신공을 운용하시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현우 도련님을 등록할 겁니다.”
현우는 문용준 과장의 말에 따라.
비고의 문 위에 살포시 오른손을 올리고 창천신공을 운용했다.
다만, 사용하는 것은 두 개의 코어가 아닌 하나의 코어.
“네,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1성으로 등록된 현우의 정보.
곁에 있던 류한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현우의 행동에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별다른 반응 없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구구궁─!
육중한 소리를 내며 비고의 문이 열렸다.
여기서부터가 제1구역.
지하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바람을 타고. 골동품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문 과장님, 죄송하지만 여기서부터는 한나 씨랑 둘이서 조용히 둘러보고 싶네요.”
“예? 하지만······.”
“이것저것 설명을 들으면서 쇼핑하기 보단. 본능적으로 이거다 싶은 아이템을 골라볼 생각이거든요.”
문용준 과장은 순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음, 알겠습니다.”
결국 고개를 끄덕인 문용준 과장.
“저는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혹시 설명이 필요하시거나. 제 도움이 필요할 때엔 언제든 호출해주시면 됩니다.”
***
“도련님.”
둘만 남은 것을 확인한 후.
류한나는 조용히 현우를 불렀다.
“방금, 왜 천무그룹 데이터 베이스에 본인의 성취가 1성으로 등록되도록 힘을 조절하신 겁니까?”
“아, 그거요.”
대단한 이유는 없다.
그저 아직 자신이 2성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밝히기엔 적합한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
“여기서 창천신공의 2성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알려버리면. 분명히 오늘 저녁이 되기도 전에 고모님 귀에 들어갈 테니까요.”
“어차피 주영미 이사님께서도 대련 당일엔 알게 되실 겁니다. 차라리 지금 2성의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을 회장님께 알려서 이득을 취하시는 편이······.”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2성의 경지를 이룬 것만으로도 주양태 회장을 놀라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 굳이 보고하는 건.
너무 속이 보이는 일이었다.
“회장님께서 제게 명령하신 건. 건우와 대련을 펼치라는 것뿐이었죠. 지금은 그 대련에서 이기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그래봤자 어차피 대련에서 주건우를 이겨야 한다는 목적에는 변함이 없을 테니까.
사실 현우가 원하는 것은 단순했다.
그건 바로 그가 2성의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을 대련 중에 드러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극적인 효과.
“그리고 건우 녀석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이번 대련은 오로지 저를 위한 무대가 되어주어야 해요.”
“무대······.”
류한나는 멍한 표정으로 현우를 바라봤다.
대체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지만.
고작 며칠 만에 2성의 경지로 올라서는 데에 성공하며, 현우와 주건우의 격차는 상당히 좁혀졌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좁혀졌을 뿐.
‘이걸로 승리가 확실시된 건 아니야.’
여전히 두 사람의 간극은 존재한다.
주건우가 창천신공 2성에 도달한 이후로 4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니.
같은 2성의 경지라고 해도.
주영미의 지도와 각종 영약을 들이부으며 보낸 4년의 세월은, 단순히 재능만으로 좁힐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잠깐.”
그때, 현우의 걸음이 멈췄다.
언제 찾아낸 건지 알 순 없지만. 어느새 그의 손에는 한 쌍의 묵빛 팔찌가 들려 있었다.
“이게 마음에 드네요.”
사용자의 힘을 흡수해 성장하는 아티팩트.
지금은 제1구역에 방치된 레어 등급에 불과하지만, 성장시키기에 따라서 비고의 심부에 엄중히 보관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이템이다.
“그럼 관리자를 부르겠습니다.”
“아뇨, 그럴 필요는 없어요.”
이게 어떤 아티팩트인지.
관리자인 문용준 과장보다 현우가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도련님. 제1구역에 보관된 아이템들이 상대적으로 희소성은 떨어진다고 해도. 찾아보면 더 뛰어난 물건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뭐, 감으로 고르는 거죠. 아까 말했잖아요. 본능적으로 촉이 오는 아이템을 고르고 싶다고.”
자세히 설명할 이유는 없다.
여기서 굳이 류한나를 이해시켜야 할 필요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언제나 현우는 설명보다 행동이 편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한나의 입이 채 떨어지기도 전.
이미 현우는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촤라락─!
철끼리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묵빛의 권갑이 현우의 두 주먹을 눈 깜짝할 사이에 휘감았다.
피부 위로 느껴지는 묵직하고 서늘한 감각.
“······오랜만이네.”
흑린갑(黑鱗甲).
전생에서 애용했던 병기가.
다시금 현우의 손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
주양태 회장과 약속한 일주일이 지났다.
천무그룹 본가의 연무장.
대련 시작까진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벌써 많은 사람이 연무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람이 꽤 많이 모였네요.”
“당연한 일입니다.”
류한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회장님께서 직접 주관하시는 대련이니. 천무그룹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전부 모였다고 봐도 될 겁니다.”
한나의 뒤를 따라 연무장에 나오자.
천무그룹에 소속된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한 번에 쏟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광대라도 된 기분인데.’
이윽고 현우의 시선은 연무장 가운데로 향했다. 아무래도 상대는 한 발 앞서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오, 오랜만이네. 현우 형.”
멋쩍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청년.
단정한 무복을 입은 그가. 바로 천무그룹의 이사 주영미의 애지중지하는 하나뿐인 아들 주건우였다.
“그래 반갑다.”
반갑다는 이야기는 진심이었다.
회귀 전, 최후까지 현우의 곁에 남아. 서울 방어선을 수호하던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주건우였으니까.
‘이렇게 심약했던 녀석이.’
팔이 박살 나고 다리가 부러졌음에도.
며칠에 걸친 전투로 메마른 마나 대신 생명력을 불태우며. 몰려오는 마족을 향해 최후까지 항전하던 녀석의 모습을, 현우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컨디션은 좋아 보이네.”
“응.”
고개를 끄덕이는 주건우.
“형도 이번에 신공에 입문했다고 들었어. 설마 대련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일단 진심으로 축하해. 나도 형처럼 끈기가 있으면 어머니가 좋아하실 텐데······.”
영악한 주영미와는 다르게.
아들인 건우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순박한 분위기를 풍기는 구석이 있었다. 물론, 그게 천무가의 일원으로써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아, 아무튼 오늘은 최대한 안 다치게 노력해볼게. 아무리 대련이라고 해도. 우리는 피가 이어진 가족이잖아.”
“글쎄, 손대중하면 네가 질 텐데.”
주건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그의 입이 다시 열리려던 찰나.
주양태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정말 간단한 한 마디였다.
“시작해라.”
대련 시작의 신호.
한발 빠르게 움직인 쪽은 주건우였다.
***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천무그룹의 이사 주영미.
현역으로 일선에서 뛰기 시작한 이래로 벌써 30년 이상이 지난 그녀였지만, 이런 광경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미친.”
그녀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경험이 있는 그녀라도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공방을 나누고 있는 두 사람.
전투의 흐름은 주건우에게 기울어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주건우가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쪽이라고 이야기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까.
“흐읍!”
짧은 호흡과 함께.
주건우가 곧게 내뻗은 주먹이 파죽지세로 현우의 안면을 향해 치달았다.
“······!”
순간 고개를 꺾으며 피한 현우였지만.
균형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움직인 탓에, 그대로 자세가 무너지는 상황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조금 이상하지 않아?”
“마침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얼핏 보면 건우 도련님이 유리한 것 같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공격이 닿질 않았잖아.”
수근 거리는 사람들.
무너진 자세에도 불구하고.
연달아 날아온 주건우의 무릎팍을 현우가 또다시 아슬아슬한 자세로 피하는 것을 보며, 주위의 의심은 조금씩 확신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 대련······.
언뜻 보면 일방적으로 주건우가 몰아붙이고 있는 양상이었지만, 주목할 점은 누가 공세를 취하고 있냐가 아니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은 주영미 또한 마찬가지였다.
‘건우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기엔 너무 이상해. 어떻게 단 한 번의 유효타도 허용하지 않는 거지?’
아슬아슬하게 피하거나 막히는 상황.
이건 주건우는 물론이고, 현우를 극도로 경계하던 주영미가 예상했던 대련의 양상도 아니었다.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익! 왜 안 맞는 거야!”
주건우는 이를 악물며 속도를 높였다.
공세를 취하는 입장에선, 그야말로 약이 바짝 오를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현우에게 퍼부은 공격이 빗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조부님께서 보고 계셔.’
평소라면 침착함을 유지했겠지만.
이 자리는 심성이 굳세지 못한 주건우에겐 너무나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대련이다.
가슴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조바심.
그 불합리한 감정이 주건우의 시야와 행동에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누적되는 허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몇 번의 공방이 더 이어진 후.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미약하지만 분명하게 주건우의 공세는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체력이 다한 것은 아니었다.
창천신공의 2성에 이른 주건우의 체력은 웬만한 상위 헌터들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다.
문제는 체력이 아니라 마나.
창천신공의 호흡을 유지하며. 계속 공세를 펼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양의 마나가 소모된다.
그건 현우도 마찬가지.
주건우의 공격을 흘리고 회피하며. 그 또한 마찬가지로 창천신공을 운용하고 있었다.
‘이상해······!’
하지만 지치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성급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이미 진작에 현우의 체력과 마나가 모두 바닥이 났어야 정상이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러나 주건우가 이변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대련의 흐름이 엎질러진 물처럼 돌이킬 수 없게 흘러가기 시작한 후였다.
타탁─!
지금껏 회피와 방어에 전념하던 현우가. 짧게 창천신공의 기본 보법을 밟으며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짧고 빠른 발경.
주건우는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최대한 허리를 뒤로 꺾어 회피할 수밖에 없었다.
“헉······!”
현우의 주먹이 코끝을 스쳤다.
만약 0.1초만 더 반응이 늦었다면, 그의 주먹에 안면을 정확하게 강타당했을 것이다.
‘뭐, 뭐야?’
당혹감이 등골을 타고 찌르르 퍼졌다.
그러나 주건우가 이 상황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기도 전에, 더 놀라운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피했네?”
주현우의 입꼬리가 휘어지는 게 보였다.
‘······권갑?’
어느새 팔을 덮고 있는 묵빛의 권갑.
그리고 그 위로 서서히 피어오르는 푸른 불꽃이, 놀란 주건우의 눈동자에 선명하게 비쳤다.
마치 용의 수염처럼.
선명하게 휘날리는 푸른 불꽃.
“창염이다!”
누군가 쐐기를 박듯 외쳤고.
연무장 내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이런 미친······!”
창염은 창천신공 2성의 증거.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목격한 주영미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