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5
5화 벽을 넘어서다(2)
“창천무를 원한다고?”
주양태 회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창천무(蒼天武)는 최상급 스킬.
총 18개의 식(式)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로 불리기도 하는 천무가의 대표적인 절기 중 하나였다.
주양태 회장의 혈족이 하나같이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까닭이 바로 창천신공과 창천무라는 스킬의 조화에 있었다.
같은 창천신공을 습득했다고 해도.
오직 천무그룹 오너 일가에게만 전해지는 창천무의 습득 유무에 따라. 개인의 무력은 천차만별로 갈리니까.
‘그리고 똑같은 창천무를 사용한다고 해도. 몇 개의 식까지 습득했느냐가. 천무가 일원 사이에서 강함의 척도로 작용하지.’
총 18개의 식을 전부 사용하는 건.
현재 천무가에서 오직 주양태 회장과 주진석 부회장 두 사람뿐이다.
“고작 대련 하나 이기는 것으로 창천무를 원한다니. 상당히 건방진 소리를 할 수 있게 되었군.”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주양태 회장의 입꼬리는 휘어져 있었다.
“본디 창천무는 데뷔전에서 제 가치를 증명해야 허락되는 보상. 내 평소라면 잡소리로 치부했겠지만······.”
짐짓 턱을 쓸어내리는 주양태 회장.
“지금까지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성급의 벽을 넘어서는 놀라운 결과로 제 가치를 증명하겠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에게도 현우가 내민 조건은 충분히 흥미롭게 느껴질 만한 것이었다.
‘이걸로 아주 좋은 기회를 손에 넣었어.’
회귀 전의 현우 역시. 창천무를 제18 초식까지 습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습득과 사용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창천무는 위력이 뛰어난 만큼. 모든 초식이 막대한 양의 마나를 소모한다. 창천신공이란 기반이 없던 현우에겐.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던 스킬.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그동안 아쉽게 포기해야 했던 모든 것들을, 더욱 쉽게 거머쥘 기회와 능력이 현우의 손안에 쥐어져 있었다.
“네 제안을 받아들이마. 하지만 감히 내게 건방진 제안을 한 만큼. 추한 꼴을 보인다면 그에 합당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야.”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좋다.”
고개를 끄덕인 주양태 회장.
“하지만, 고작 1성의 경지로 일주일 만에 건우를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추태를 부리지 않는 수준에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야 할 것이다.”
성급을 뛰어넘는 건 불가능하다.
고작 일주일 만에 2성의 경지로 올라서는 것 역시 가능할 리 없다. 이미 주양태 회장도 그렇게 단정 짓고 있었다.
“흠.”
그는 짐짓 턱을 쓸어내리더니.
“천무가의 비고를 개방해주마. 대련에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져가라. 단, 비고 전체가 아닌 1구역의 출입 권한만 허용해 주겠다.”
처음 대련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이상으로 놀라운 선언을 했다.
“아버님······!”
화들짝 놀란 주영미.
“뭐냐?”
“현우에게 비고를 개방해주시겠다니. 그건 너무 불공평해요. 최소한 건우에게도······.”
“하!”
고개를 터는 주양태 회장.
“1구역에 보관된 스킬북이나 아티팩트 따위로는 성급 하나의 차이를 넘을 수 없다. 고작해야 약간 좁히는 수준에 그치겠지.”
그 말은 사실이었다.
천무가의 비고에 보관된 각종 스킬북과 아티팩트는 비록 1구역이라 할지라도 모두 평범한 헌터들에겐 꿈만 같은 물건.
그러나 제아무리 대단한 아이템이라도 창천신공의 1성과 2성 차이를 뒤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영미 네 말은 상당히 거슬리는구나.”
주양태 회장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다.
“고작 비고 1구역 따위를 개방하는 것이 불공평하다면. 네게 공평한 대련은 건우가 한참 모자란 상대를 가지고 노는 것이란 말이냐?”
“그, 그건······.”
애초에 불리한 대련이다.
고작 비고의 1구역에 보관된 아이템으로 대련의 판도가 바뀔 거라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알아들었다면 입을 다물 거라.”
주양태 회장의 날카로운 말에 주영미는 저절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주현우.”
다시금 현우를 돌아보는 주양태 회장.
“네가 자신 있게 제안한 일이다. 천무가의 혈통답게. 어디 한 번 최선을 다해서 나를 놀라게 만들어 보도록.”
“예.”
어렵지 않은 요구였다.
현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대체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미묘하게 격양된 목소리.
평소 본인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류한나였지만, 지금 그녀는 진심으로 현우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뭐가요?”
“아무리 회장님께서 대련을 요구하셨다곤 해도. 도련님께서는 이제 막 1성의 경지에 입문하셨을 뿐입니다.”
1성 입문으로부터 고작 일주일.
사실, 겨우 그 정도의 숙련도로는 주건우와 몇 합의 공방을 나누는 것도 어려울 게 분명하다.
“다행히 회장님께서 비고의 출입을 허가해주셨지만. 지난 몇 년간 벌어진 건우 도련님과 실력 차이는 절대 만만하게 볼 정도가 아닐 겁니다.”
창천신공 자체의 경지 차이도 있지만.
신공을 제외한 영역에서도 지금의 현우는 주건우에게 미치지 못한다.
1성에서 2성의 경지를 향해 올라가는 데에 결리는 시간만 해도, 최소 4년이 걸리는 게 보통이니까.
“이번 대련에서 제가 건우에게 이기는 거. 한나 씨는 어려운 일이라고 보시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천무그룹이 뒤집어질 겁니다.”
“천무그룹이 뒤집어진다라.”
하지만······.
오히려 그건 현우가 바라는 바였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 저는 그게 바로 힘과 능력의 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조부님께서 세운 천무그룹에서 그건 진리와도 같죠.”
힘은 곧 논리다.
현우는 무엇보다 강한 논리로 천무그룹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서서히 펼쳐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천무그룹 내에서 내 입지를 제대로 다져나가려면 평범한 방법으론 어려울 테니까요.”
서자의 사생아.
참으로 기구한 출생이 아닐 수가 없다.
적어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살아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현우는 제 부모의 얼굴도 한 번 본적이 없는 천애 고아였다.
“설령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이것저것 가려먹을 처지가 아니란 거죠.”
천무가의 일원이라곤 하나.
단지 주양태 회장과의 피만 이어졌을 뿐.
실상 천무그룹 내에서 의지할 만한 사람 하나 없는 현우의 신세는 여전히 고아나 다름없었다.
그 입장을 반전시키기 위해서. 무조건 눈에 보이는 뛰어난 결과를 낼 필요가 있다.
“이번 대련에서 저는······.”
목표는 명확했다.
주양태 회장에게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김과 동시에, 천무그룹에 소속된 인원 전체에게 주현우가 누군지 일깨워 주는 것.
“주건우를 뛰어 넘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천재.
이번 대련을 통해 현우는, 그 인식을 모든 이들에게 심어줄 계획이었다.
***
“김 실장!”
날카로운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에서 나타나듯이 주영미는 지금 굉장히 심기가 불편한 상황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그, 그게······.”
“주현우 그 녀석이 대체 무슨 수로 신공에 입문했느냐고 묻는 거에요. 분명 지난 주까지만 해도 그럴 기미는 없지 않았던가요?”
김태훈 실장은 마른 침을 삼켰다.
요 며칠간 신체단련실에 드나든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단순히 이제 창천신공을 포기한 거라고 짐작했던 게 문제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본래 단련한 코어를 소멸시키지 않고서야. 새롭게 창천신공의 코어를 형성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죠?”
태훈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코어를 소멸시키는 건.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아무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만약, 성공했다고 해도 둘 중의 하나.
죽거나 병신이 되거나.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태훈 역시도 짐작이 가는 바가 전혀 없었다.
“하아, 됐어요.”
이걸 책망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으니까.
그리고 진짜 문제는 그쪽이 아니었다.
‘아버님도 너무하시지.’
이제 막 1성에 입문한 주현우와 대련.
그건 주건우의 실력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처사였다.
주영미는 저도 모르게 손톱을 깨물었다.
그녀의 아들, 주건우가 창천신공 2성에 오른 것도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주건우에게 온갖 값비싼 영약을 들이부으며, 3성의 벽을 빠르게 넘을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취했던 그녀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뛰어난 효능을 지닌 영약이라고 해도, 기본이 뛰어날 때에나 제대로 흡수할 수 있는 법.
‘적어도 건우가 더 상급의 영약을 섭취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아버님이 돌아오시기 전에 3성을 이루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무척이나 아쉬운 일.
영약 효능을 부작용 없이 온전히 흡수할 수만 있다면 모르겠지만, 역량을 넘어서는 영약은 독약이나 다름없으니까.
“참, 청금단은 어떻게 된 거에요?”
문득, 선물을 떠올린 주영미.
그녀의 물음에 태훈은 자신있게 고개를 저었다.
“아마, 청금단은 사용하지 않았을 겁니다.”
“확신할 수 있어요?”
“이사님도 아시다시피 청금단의 효능을 부작용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선. 고작 1성의 경지로는 부족하지 않습니까.”
잘못 섭취했다간 1년은 앓아눕는다.
지금까지 현우가 멀쩡하다는 건. 그가 아직 청금단을 섭취하지 않았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였다.
‘어차피 현우 녀석이 우리 건우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아무리 재능과 뛰어난 아티팩트가 있다고 해도. 1성과 2성의 벽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니까.’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최대한 여유롭게 기한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승리했을 때의 조건까지 걸었으니.
주영미로서는 왠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김 실장.”
“예, 이사님!”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대답하는 태훈.
“앞으로 일주일간 현우의 모든 행동을 철저하게 감시해서 내게 보고하세요. 또, 비고에서 어떤 아이템을 챙겼는지도 빼놓지 말고.”
“알겠습니다.”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 주현우가 정말로 그녀의 아들과의 대련에서 이기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금 당장 건우를 불러오세요. 절대 이번 대련에서 추태를 보일 수 없게. 내가 직접 교육해 놓을 거니까.”
***
그렇게 이틀이 지났지만······.
정작 현우의 일상은 똑같았다.
체력 단련과 청금단의 기운을 소화하기. 그 두 가지로 매일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정작 마음이 급해진 쪽은 류한나였다.
“도련님.”
결국 삼 일째 되는 저녁.
“계획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한나가 물었다.
그러나 그 대답으로 현우의 입에서 나온 것은 구체적인 계획이 아니었다.
“계획이라면 이미 모두 끝났어요.”
“네?”
“대련에서 이길 준비를 마쳤단 거죠.”
자신 만만한 대답.
한나는 순간 턱하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1성의 경지로 2성을 뛰어넘을 준비라니. 하지만 지난 이틀간 따로 특별한 준비를 하는 것 같진 않았는데.’
대체 그 준비라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한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거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였다.
“······자신이 있으신 것 같군요.”
“네.”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현우.
“물론, 단순한 자신감은 아니에요. 처음부터 이번 대련은 저한테 불리한 조건이 아니었으니까.”
“예?”
한나는 어깨를 으쓱하는 현우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윽고 그녀의 미간에 얄팍한 주름이 잡혔다.
“죄송하지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설명보단 직접 보는 게 빠를 겁니다.”
현우는 천천히 주먹을 뻗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단한 스킬도 아니었고, 그냥 단순하게 앞으로 주먹을 뻗었을 뿐이다.
그러나 놀라운 광경은 바로 지금부터였다.
앞으로 뻗은 그의 주먹에서.
옅지만 분명하게 보이는 푸른 불꽃이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류한나는 그 불꽃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창염(蒼炎)!’
그녀의 눈이 커졌다.
아무리 그녀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창천신공을 통해 발현되는 권능.
2성의 경지에 도달해야 비로소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이 현우의 주먹 위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벌써 벽을 넘으신 겁니까?”
한나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현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모님이 주신 선물이 큰 도움이 됐죠.”
청금단의 효능 덕분일까.
아니, 그래도 불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청금단의 효능은 육체에 한정된다.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나. 최소 4년 이상 단련해야 가능한 코어의 분열을 불과 며칠 만에 이룰 정도는 아니다.
‘불가능한 일······.’
그런데 대체 불가능한 일이란 게 뭘까.
요 며칠 현우의 행보를 떠올린 한나는, 스스로에게 그런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봐온 현우의 모습은 모두 잊고. 이제는 그를 완벽히 다른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