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9
9화 이무기(3)
“키샤악─!”
마치 쇠를 긁는 것 같은 괴성을 지르며.
세 마리의 그린 고블린이 현우를 향해 빠른 속도로 동시에 달려들었다.
고작 세 마리의 그린 고블린 따위.
창천신공만 운용할 수 있다면. 눈을 감고도 상대할 수 있는 잔챙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스읍······!”
우선은 가장 앞의 한 마리.
현우는 짧게 앞으로 전진하며 지면에 거의 밀착하다시피 몸을 낮추었다.
그리곤 지면을 박차며 주먹을 당겼다.
그린 고블린은 마족.
아무리 D급 수준의 하급 마족이라곤 하지만, 단순한 주먹질로 쓰러트릴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주먹의 경우지.’
현우의 주먹에서 푸른 불꽃이 용솟음쳤다.
“흡!”
짧은 기합과 함께. 선두의 그린 고블린 한 마리를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창염으로 휘감긴 주먹이 녀석을 향해 총탄처럼 치달았다.
뻗은 주먹이 닿은 순간.
울린 것은 타격음이 아닌 파육음.
창천신공의 위력이 그대로 실린 주먹은, 그린 고블린의 머리통을 두부처럼 관통해버리는 살벌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아악─!
주먹을 감싸고 있던 창염이 폭발했다. 그린 고블린의 머리통은 물론이고. 녀석의 신체 절반이 순식간에 검은 숯으로 화해 허공으로 흩어졌다.
“키이익─?”
단순히 조금 늦게 달려들었다는 이유 덕분에 살아남은 두 마리의 그린 고블린이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두 녀석의 흉측한 얼굴 위로.
당황한 감정이 퍼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현우 역시, 약간은 놀라움을 느꼈다.
회귀 전에 고생했던 기억이 남아있어서 그런걸까. 그가 기억하던 것 이상으로. 그린 고블린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었다.
“감촉은 조금 불쾌하네.”
현우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단숨에 숯으로 화해버린 그린 고블린의 잔해가 허공 위로 흩날렸다.
“안 덤비냐?”
이윽고 현우의 시선은 남은 두 마리의 그린 고블린에게로 향했다.
주양태 회장의 기억 속의 적이지만.
정말로 살아 있는 그대로의 그린 고블린을 옮겨놓은 듯. 녀석들은 현우를 경계하며 좀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현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5년가량.’
주양태 회장의 암살까지 남은 시간.
현우의 첫 목표는 그 안에 샤오 가문을 완전히 박살 내. 사건 자체가 일어날 일이 없게 하는 거다.
시간은 적지 않게 주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여유롭지도 않다.
“그럼 내가 먼저 간다.”
그 짧은 시간 만에 샤오 가문을 박살 낼 정도의 힘과 준비를 하기란.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코어의 무한한 마나······.
그리고 미래의 지식이라는 두 가지 카드가 손안에 있는 한. 불가능한 일은 절대 아니다.
“네깟 놈들에게 들이는 시간이 아깝거든.”
공포를 느꼈던 걸까.
그 자리에서 바로 등을 돌려 달아나려는 두 마리의 그린 고블린, 이번엔 반대로 현우가 녀석들을 향해 지면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
“그래서.”
기대감이라곤 하나 없는 담담한 표정으로 주양태 회장은 입을 열었다.
“현우 그것의 성취는 어떻느냐? 내게 당당히 창천무의 비급을 요구한 만큼의 성과는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게······.”
류한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입술을 핥았다.
그 모습에 주양태 회장은 그녀의 대답이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주양태 회장이 본가의 일원에게 창천무의 습득을 허가하는 기준은 간단했다.
실전에서 분명한 성과를 거둘 것.
실전 경험이 부족해서는 어차피 창천무 18초식 중, 기수식의 습득조차 어려울 게 분명하기에 세웠던 조건이었다.
“이미 녀석의 수준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배짱이나 잠재력은 뛰어난 편이지만, 비급에 담긴 내 경험 또한 만만하진 않을 테니. 기수식 정도나 습득했다면 다행이겠지.”
기수식도 후하게 쳐준 거다.
천무가의 혈통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창천무는 그 대단한 천무가의 혈통에 흐르는 권능을 백 퍼센트 완전하게 활용하기 위해 주양태 회장이 직접 고안하고 비급에 저장한 스킬이다.
열여덟 개의 식 중에서.
실전 경험이 전무한 수준으로 기수식을 습득할 수 있다면. 주양태 회장의 기준에선 그나마 봐줄만한 수준이었다.
“어차피 큰 기대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첫 번째 시도에서 기수식 이상의 초식을 습득한 것은 천무가 내에서도 단 두 명뿐.
‘진석이 녀석과······.’
주현우의 아비가 되는 주일석.
그 두 명을 제외한다면, 둘째 주형석 조차 첫 번째 시도에선 기수식도 습득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형석과 주영미.
두 사람을 비롯해 몇 번의 시도 끝에 창천무를 습득한 3대째의 아이들 역시, 재능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주진석과 주일석.
오히려 그 둘이 천무가 내에서도 워낙 규격 외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말해 보거라. 그래도 현우 그 녀석 정도라면 분명 기수식쯤은 습득할 수 있었을 텐데.”
“예, 기수식은 분명히 습득하셨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고작해야 창천신공 2성의 경지.
아직 데뷔전도 치르지 못한 실전 경험이 전무한 녀석이. 창천무의 기수식을 한 번의 시도로 습득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해줄 만한 일이었다.
물론, 주양태 회장의 성격상.
그깟 일로 칭찬을 남발하는 일은 없겠지만.
“아무리 건우와 대련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는 해도. 창천신공에 입문한 이래로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 경험이 미천한 것만은 어쩔 수 없겠지.”
재능과 경험은 다르다.
심지어 현우의 대련 상대였던 건우는 아직 창천무도 익히지 못하고 2성의 경지에 발이 묶여 있던 애송이다.
그걸 실전 경험이라고 하긴 어려우리라.
“현우 도련님께선─.”
그러나 한나에게 나온 대답은······.
그야말로 주양태 회장의 예상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것이었다.
“모든 초식을 습득하셨습니다.”
도합 열여덟 개의 초식.
그렇다면 기수식에 해당하는 제1초식 재천(在天)부터, 제18초식 유운비천(流雲飛天)까지 습득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뭐라?”
주양태 회장의 눈이 커졌다.
한나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는 제아무리 주양태 회장이라고 해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정녕 사실이냐?”
가능하리라곤 생각지도 않았던 일.
그러나 류한나가 거짓을 고하진 않았을 터.
“확실합니다.”
“하!”
헛웃음을 흘린 주양태 회장.
그는 이루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녀석······.”
이런 건 기대도 않았는데.
예상 이상으로 무서운 성장력을 보여주는 현우의 모습에, 주양태 회장조차도 놀라움을 금하기 어려웠다.
짐짓 제 턱을 쓰다듬으며.
주양태 회장은 일전 현우에 대해 내렸던 평가를 조심스럽게 수정해야만 했다.
‘사자도 뱀도 아니었군.’
이무기.
아직 확실하게 판단하긴 너무 이르지만.
적어도 현재의 주현우는 앞으로 용이 될지도 모르는 이무기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적당한 평가가 되리라.
“내 본디 녀석에겐 1년 정도는 시간을 주려고 했건만. 그랬다가는 괜히 훌륭한 원석을 손 안에서 썩히는 꼴이 되겠구나.”
이윽고 주양태 회장은 줄곧 고민하고 있던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아무래도 예정되어 있던 데뷔전을 모조리 앞당겨야겠다. 건우 녀석과 영우 녀석까지 현우와 함께, 정확히 한 달 후로 예정을 잡도록 해라.”
“한 달 후에 말씀이십니까?”
한나는 당황한 나머지 되묻고 말았다.
본래 한 번 이야기한 내용을 되묻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주양태 회장이었지만, 이번만은 기분이 좋기 때문인지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확히 한 달 후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즉흥적으로 결정된 주양태 회장의 계획은 아직 한 가지가 더 남아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번 데뷔전은 가문의 모든 일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할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모든 천무가의 일원이 본가에 모이는 자리에서, 주양태 회장은 주현우의 진면목을 다시 한 번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
“한 달 후에 데뷔전이라······.”
현우는 슬쩍 뒷목을 매만졌다.
시기가 조금 앞당겨질 거라곤 짐작했지만, 이 정도로 빠르게 잡히리란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크게 상관은 없지.’
어차피 천무가의 데뷔전은 D급 던전에서 진행된다.
창천무를 전부 습득한 지금의 현우라면, D급 던전의 솔로 공략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장소는요?”
“2주 전에 강릉 근처에서 발견된 D급 던전입니다. 회장님 명령에 따라 저희가 독점 공략권을 확보해둔 곳이죠.”
“······강릉.”
현우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류한나의 말에서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시기에 강릉에서 발견된 D급 던전이라면 한 군데 짐작이 가는 곳이 있긴 한데.’
현우는 마른 침을 삼켰다.
만약에 이 짐작이 맞아떨어진다면, 이번 데뷔전에선 모두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따로 정보를 알아볼 수는 없을까요?”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회장님께서 데뷔전을 치르는 당사자들에겐 최대한 정보를 흘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각자 나름대로 알아보긴 할 텐데.”
쩝, 입맛을 다신 현우.
주양태 회장이 그렇게 이야기는 했어도.
함께 데뷔전을 치를 주건우나 주영우, 두 사람은 각기 제 부모를 통해 최대한 데뷔전 던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것이다.
천무가 내에서 의지할 만한 부모가 없는 현우는 애초에 정보 싸움에서부터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한나 씨가 죄송하실 건 없죠.”
약간 아쉽긴 하지만 그뿐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정보 면에서 다른 두 사람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쪽은 현우였으니까.
정보를 확인할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강릉 쪽의 D급 던전 말입니다. 이번 데뷔전을 위해서 독점 공략권을 확보했던 건가요?”
“아닙니다.”
한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 정도라면 괜찮다고 판단한 걸까.
“원래 대로라면 데뷔전 용도가 아니라 공략팀에게 기회가 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회장님께서 갑작스럽게 용도를 변경하신 겁니다.”
“음,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현우.
이걸로 추측에 확신이 생겼다.
‘데뷔전 덕분에 공략팀이 목숨을 건졌군.’
전문 공략팀조차 전멸하게 되는 던전.
강릉 해안 동굴에서 발견된 ‘세이렌의 둥지’는 최초 D등급 판정을 받았지만, 이후 공략의 까다로움 때문에 C+등급으로 조정을 거친다.
“그렇게 안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류한나의 말대로였다.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겠지만. 신규 던전인 만큼, 잘하면 최초 공략 보상을 획득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정확히 파악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이렌의 둥지’의 최초 공략 보상이 ‘세이렌의 눈물’이란 아티팩트라는 것 또한 현우는 알고 있었다.
현존하는 모든 종류의 독에 대한 강력한 내성을 제공하는 유일 등급의 아티팩트.
‘인류를 배신하는 세 가문 중 하나이자. 조부님의 암살에 깊게 관여한 샤오 가문을 상대하려면. 내게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아이템 중 하나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세이렌의 눈물’은 아티팩트 중에서도 쥬얼 종류에 속하기 때문에. 웬만한 실력을 가진 장인도 엄두를 못 낼 정도로 가공이 까다롭다는 점일까.
그러나 현우는······.
‘일단 손에 넣기만 하면 세공을 맡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세이렌의 둥지’를 공략하는 완벽한 공략법을 알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공략 보상인 ‘세이렌의 눈물’을 최고의 상태로 가공해줄 수 있는 미래의 명장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
그렇게 며칠이 지나.
주양태 회장의 명령에 따라 천무가에 소속된 일원들이 본가로 하나둘,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현우의 일상에는 조금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실전이야말로 최고의 단련이겠지만.
아쉽게도 아직 데뷔전을 치르지 못한 현우에겐 던전이나 게이트 공략을 위한 팀을 꾸릴 권한은 없었다.
덕분에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체단련실에서 땀을 빼며 단련하는 일상.
오늘도 똑같은 하루가 흘러갈 예정이었다.
“야!”
누군가 그를 부르기 전까지는.
현우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너 말이야 너!”
기가 드세 보이는 소녀.
아니, 이제 막 앳된 티를 벗기 시작한 얼굴을 보아 여성이라고 해주어야 할까.
호칭이야 아무튼, 그녀가 바로 천무가의 차남 주형석이 눈에 넣어도 아파하지 않을 첫째 딸 주아라였다.
“네가 건우를 이겼다면서?”
다짜고짜 반말을 뱉으며 다가오는 주아라.
현우는 그녀에게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는 대신, 묘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주아라의 얼굴이 아닌 오른손에 꽂혀 있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군.’
아무래도 이번 데뷔전 공략.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쉽게 끝낼 기회가 스스로 찾아온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