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오라버니. 스승님은 갑자기 어딜 가신 거예요?”
남궁현의 질문에 대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그는 만박노괴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걸 사실대로 말하지는 않았다.
하나를 말하기 시작하면 모든 걸 다 말해야 할 테고, 그럼 남궁현은 만박노괴를 증오하게 될지도 모른다.
-클클. 다 내가 쌓은 업보인 게지. 그 아이가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네가 알아서 하거라.
만박노괴는 그렇게 말하고 떠났다. 오늘 새벽의 일이었다.
‘망할 영감탱이···.’
대인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남궁현에게 사실을 다 말해주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용봉비무 본선을 시작하겠소이다-!”
무림맹주 야율기의 선언에 수천의 군중이 환호했다.
우와아아아아!
용봉비무 본선을 위해 마련된 거대한 특설무대를 중심으로, 수천이 넘는 관중이 자리를 꽉 채웠다.
며칠 동안 계속된 무림대회.
정파무림 최대의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무림의 후기지수들이 겨뤄 우승자를 가리는 용봉비무 결승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예선을 통과한 본선 진출자 32명.
그중 단 한 명만이 우승의 영광과 함께, 검황의 신물이었던 창선신검을 받아 마교 토벌의 선봉장이 될 것이다.
“우승은 개방의 소걸왕이 차지할 거요!”
“무슨 소리! 소림이 건재하거늘!”
“댁들은 무당잠룡의 스승이 누구인지도 못 들어봤소?”
“올해는 오대세가에서 우승자가···.”
벌써부터 누가 우승자가 될 것인지 침을 튀며 이야기하는 자들이 사방에 넘쳐났다.
소림. 무당. 개방. 그리고 오대세가.
하나같이 쟁쟁한 배경을 둔 후기지수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용봉비무의 우승자는 미래의 천하제일인 후보이기도 한 만큼, 대중의 관심은 어마어마했다. 곳곳에서 내기 도박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종종 우승 후보로 의외의 인물을 지목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라면 화산신성을 꺾고 올라온 의협검에게 돈을 걸겠소.”
“의협검? 실력이 대단하긴 했지만···.”
“그건 화산신성이 미끄러져서 이긴 것 아니었나? 물론 실력이 있으니 운도 따라준 거지만···. 다른 우승 후보들에 비하면 아무래도 부족해 보이던데.”
“작은 문파 출신이라던데 본선에 오른 것만도 대단한 거요.”
주변의 반응에, 처음 말을 꺼낸 노인이 코웃음을 치며 반박했다.
“100년 전, 검황께서 무림에 출도하셨을 때도 다들 그런 반응이었을 게요. 남궁세가에서 쫓겨난 서자 출신 검객. 그가 천하제일인이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소?”
노인의 말이 그럴듯했는지, 주변의 사내들 중 일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의협검이 우승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화산신성도 고자가 되기 전까지는 우승 후보였잖아?”
“쉿! 이 친구야 말조심해! 화산파에서 들으면 어쩌려고···.”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솔직히,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구파일방 후기지수들보다야 의협검이 우승하는 게 낫지 않나!”
“···그건 그렇지.”
“에라 모르겠다. 나도 의협검한테 걸란다. 돈을 따려면 도박을 해야지!”
사내는 몇 푼 안 되는 쌈짓돈을 의협검에게 걸었다. 그리고 처음 말을 꺼낸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장은 안 거시오?”
“나는 걸 게 없소이다. 이미 인생을 다 걸어서 도박을 했거든. 그리고 성공했지.”
껄껄 웃는 노인을, 주변의 사내들은 희한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거참. 희한한 양반이네···.”
그러거나 말거나, 진 노인은 비무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들 잘 지켜보시오.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러나 진 노인도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알지는 못했다.
*
*
*
“승자는 무당잠룡 청운이오!”
우와아아아아!
심판의 선언과 함께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 함성은 비무대 중앙에 서 있는 한 명의 사내를 향했다.
무당잠룡 청운.
그는 사방에 포권을 취함으로써 관중들의 환호에 답했다. 방금 비무에 승리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정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속 편하게 환호할 수 없는 자들도 있었다.
“굉장하군···.”
“허점이 전혀 보이질 않아···.”
본선에 진출한 후기지수들은 대기석에서 경쟁자들의 비무를 꼼꼼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청운이 보여준 실력에서 절망감을 느꼈다.
몇몇 후기지수들만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곧 비무대 위에 올라갈 후기지수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각자의 방법으로 긴장을 풀었다.
“후우···. 후우···.”
“나무아미타불···.”
대인과 남궁현도 그곳에 있었다. 남궁현이 대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오라버니?”
“왜?”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으신 것 같아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그래.”
대인은 평소답지 않게 딱딱한 표정이었다.
관중들의 환호성도, 주위에 있는 후기지수들도 그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이상해.’
다른 사람이라면 비무를 앞두고 긴장해서 그러겠거니 하겠지만, 남궁현은 대인이 긴장하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역시 새벽에 갑자기 떠나신 스승님 때문일까?’
그때 대인이 남궁현을 불렀다.
“현아.”
“네?”
“만약에 말이야. 너한테 아주 고마운 사람이 있다고 치자. 배고플 때 밥도 주고, 옷도 주고, 맞고 다니지 말라고 무공도 가르쳐주고···. 근데 그 사람이 나중에 원수를 갚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치자고. 하지만 그 원수랑은 만날 일이 없으니까 잊고 있었던 거야.”
“···네?”
“그냥 그렇다고 쳐.”
대인은 ‘대충 그런 거야.’ 하고 중얼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다 나중에 또 다른 사람을 만났어. 이 사람도 너한테 밥도 주고, 약도 주고, 무공도 가르쳐준 거야. 성격은 가끔 고약하지만 나쁜 인간은 아니야. 근데···. 알고 보니 앞에 사람이 부탁한 원수가 이 사람이었던 거야.”
“네에···?”
“심지어 이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니었어. 뭐랄까. 서로한테 집착이라고 해야 하나···.”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대인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게.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때 다부진 체격의 사내가 대인에게 걸어왔다. 사내가 대인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반갑소. 모용준이오.”
“모용세가?”
대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모용준은 상대가 자신을 경계한다고 생각하고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소. 우리 둘 다 운이 없게도, 서로가 서로의 첫 번째 상대요.”
“······.”
“화산신성을 꺾는 모습은 잘 보았소. 실력이 대단하시더이다.”
모용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예선에서 화산신성과 임대인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고, 둘 다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고 평가했다.
‘촌뜨기. 이변은 여기까지다.’
사실은 그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모용준은 명문의 후계자답게 돌려서 상대를 깎아내릴 줄 알았다.
“부디 돌아가는 길에 후회하지 않도록 가진 실력을 다 펼쳐 보이길 바라겠소.”
가진 실력을 다해봤자 넌 나한테 안 될 거라는 뜻이었다.
“이봐요!”
남궁현이 옆에서 발끈했으나, 대인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제지했다.
지금은 이런 애송이랑 대화를 나눌 기분이 아니었다. 대인은 턱짓으로 모용준에게 저리 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알았으니까 할 말 끝났으면 가 봐.”
“···방금 내게 반말을 한 거요?”
대인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내가 머리가 꽤 복잡하거든. 그러니까 좀 가라.”
“감히···!”
모욕을 받은 모용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는 검을 뽑지는 않았다. 비무대 밖에서의 싸움은 엄격히 금지돼 있어, 한 번이라도 검을 휘두르면 실격이었다.
“흥. 실력이 안 되니 격장지계를 쓰려는 모양인데···.”
“귀먹었냐? 꺼지라니까?”
으드득! 이를 악문 모용준이 대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부디 비무대 위에서는 그 혀를 조심하시오. 내 검이 잘라버릴지도 모르니.”
그리고 홱 돌아서서 성큼성큼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대인은 팔짱을 끼고 하늘을 노려봤다. 그는 아직도 생각 중이었다.
검황에 대해서.
그리고 천마에 대해서.
*
*
*
“다음 차례는 모용세가의 소가주와 의협검이군.”
무림맹주 야율기는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비무대 위로 올라오는 두 청년을 바라봤다.
한 명은 모용세가의 소가주로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유명한 기재.
다른 한 명은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었던 화산신성을 꺾고 올라온 새로운 신성,
무인으로서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비무였다.
“저 둘이 벌써 맞붙다니. 아까운 일이야.”
두 청년이 비무대 위로 올라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적당히 거리를 벌렸다. 둘 다 검을 뽑아 들었다.
그때였다.
“맹주님.”
남궁세가주 남궁정천이 야율기 곁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야율기는 두 후기지수의 비무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곁눈질을 하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남궁정천의 시선 또한 대인을 향하고 있었다.
“부끄럽습니다만, 저희가 추천장을 써준 저 청년···. 아무래도 진짜 신분을 감춘 것 같습니다.”
“···!”
순식간에 야율기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남궁정천을 돌아보며 전음을 보냈다.
“······.”
야율기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전음을 보냈다.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함구하시오. 오해로 괜한 소란이 일어날지 모르니···. 일단 비무를 지켜봅시다.] [하지만 마교의 첩자가 후기지수들을 꺾고 계속 올라가기라도 하면···.] [만약 아니라면 어쩌실 거요?]남궁정천을 바라보는 야율기의 눈빛이 형형했다. 남궁정천은 이쯤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철저히 조사한 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남궁세가에서 추천장을 썼으니, 책임지고 조사해 주시오.]남궁정천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사늘한 눈빛으로 대인을 노려보았다.
‘네놈의 운명은 여기까지다.’
놈을 마교의 첩자로 몰아갈 증거는 이미 준비해 두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야율기에게 증거를 들이밀지 않은 것은, 충분히 뜸을 들이기 위해서였다.
‘야율기는 바보가 아니다.’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고 성급하게 굴면, 오히려 이쪽이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남궁정천은 비무대 위의 대인을 노려보았다.
‘이번에야말로 싹을 뽑아버릴 것이다.’
마침 모용준이 검을 뽑아 들더니 표홀한 신법을 펼치며 대인을 찌르고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헉···!”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것은 남궁정천 혼자만이 아니었다.
*
*
*
우와아아아아아!
쏟아지는 환호성. 대인은 비무대 위로 올라가며 생각했다.
아니, 그것은 생각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작업이었다.
『고작 반 수 차이였다. 반 수!』
닳도록 읽은 검황비록에 적혀 있던 검황의 이야기와,
-클클. 녀석과 나는 실력이 거의 비등했다. 허나 내가 이겼지. 어떻게 이긴 줄 아느냐?
어젯밤 술에 취한 노인이 주절주절 떠들던 옛이야기.
두 노인은 대인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본좌가 남궁세가의 적자로 태어났다면! 조금 더 일찍 상승무공을 접했더라면···!』
-클클. 놈은 진정 천재였다. 마지막 순간, 나는 검황을 이기기 위해 역혈마공을 사용했다.
저벅저벅.
대인은 비무대 위로 걸어 올라갔다.
『···팔다리가 하나씩 없는 모습으로 세상에 나가봐야 패배자라는 멍에를 쓰고 비웃음만 살 터. 그러느니 목숨을 끊는 것이 낫다.』
-나 역시 역혈마공의 후유증으로 주화입마에 빠졌다. 신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심산유곡에 틀어박혀 주화입마를 다스려야 했지.
대인은 비무대 중앙에 서서 상대와 인사를 나눴다. 모용준이라고 했나? 놈의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본좌는 심산유곡에 틀어박혔다. 이름을 숨기고, 오가는 사냥꾼이나 화전민 마을에 사는 자들에게 부탁해 먹을 것을 얻었다. 몸이 좀 회복된 후에 동굴을 하나 찾았다. 그때부터 오직 무공을 만들었다. 천마를 죽이기 위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수십 년이 흘렀더구나. 클클. 산속에 틀어박혀 뇌까지 뻗친 마기를 겨우 다스리고 밖에 나왔더니···. 쭈그렁 노인이 돼 있었던 게야.
『천마 그놈은 아직 살아있을까? 오가는 사냥꾼을 붙잡고 물어봐도 모르더구나. 육시랄.』
-클클. 정파 놈들은 놈이 우화등선했다고 믿더구나. 그 지랄 맞은 성격으로?
대인은 모용준과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상대가 검을 뽑는 것이 보였다.
스르릉.
대인도 검을 뽑았다.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두 노인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이제 곧 죽는다. 제자야. 내 복수를 하거라.』
-···그때 역혈마공을 사용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래선 안 되는 거였어···.
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한 명은 복수를 원했고, 한 명은 그날의 일을 아직도 후회하고 있었다.
-클클. 차라리 온전하게 내 힘으로 싸웠다면, 평생 이런 더러운 기분을 맛보지 않아도 되었으련만···.
승자인 줄 알았던 그는 사실 패배자였다.
때문에 주화입마에서 벗어난 후에도 당당하게 이름을 밝히지 못했으며, 망가진 몸과 달라진 이름으로 유령처럼 무림을 배회했다.
-너희를 만났을 때는 정말 기뻤다. 클클. 검황 그놈. 역시 그냥 죽지는 않았구나 싶었지.
모용준이 신중하게 보법을 밟으며 다가왔다.
그 현란한 보법을 바라보며 대인은 인상을 썼다.
“하. 사람 심란하게 하네.”
오늘 새벽, 만박노괴는 천마신교가 있는 신강으로 향했다.
사연을 전부 알게 된 대인은 그에게 가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신강으로 향했다.
-클클. 이놈아. 나도 손주 얼굴 좀 볼 생각이다. 가는 김에 그 꼬마도 구해주마.
말은 쉽게 했지만, 수십 년을 정체를 숨기고 살아온 그가, 추해진 모습으로 천마신교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으리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아아압!”
모용준이 기합을 넣으며 검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 쾌속한 공격에 무림명숙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
반면 대인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모용준의 검이 지척에 도달한 순간까지, 대인은 딴생각에 빠져 있었다.
-앞으로도 정마대전은 계속 벌어질 게다. 신교는 척박한 땅을 벗어나 기름진 땅을 갖고 싶어 하고, 무림맹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한 계속 반복될 게야. 어쩔 수 없는 게지. 클클클.
“어쩔 수 없긴. 개뿔.”
그 순간 대인의 검이 움직였다. 그는 결정을 내렸다.
까앙!
검날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모용준의 눈이 커졌다. 그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자세를 다시 잡았다.
그 순간 눈앞에 대인이 불쑥 나타났다.
“이형환위!”
누군가가 그렇게 외쳤을 땐, 대인의 좌장에 얻어맞은 모용준이 튕겨 날아가고 있었다.
“큭!”
모용준은 검을 들어 대인의 좌장을 막았다. 그리고 허공에서 몸을 틀어 경력을 해소한 후, 바닥에 멋지게 착지했다.
그러나 모용준이 부리는 묘기는 딱 거기까지였다.
“움직이지 마라. 괜히 까불다 죽기 싫으면.”
“건방진···헉···!”
모용준의 몸이 굳었다.
대인은 비무 상대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다. 그런데 모용준은 그의 말대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우, 움직이면 죽는다.’
대인의 검에서 느껴지는 가공할 기세에, 모용준은 다리가 덜덜 떨려서 보법조차 펼칠 수 없었다.
스스스스슷!
싸구려 철검에서 검강이 피어났다. 대인은 그것을 가볍게 휘둘렀다.
검황에게 배우고, 천마에게 지도를 받아 완성된 파천신검의 1초식이었다.
-콰콰콰콰콰쾅!
내력을 견디지 못한 철검이 산산조각 났고, 비무대도 함께 박살 났다.
대인이 서 있는 곳을 제외하고 비무대 전체가 초토화되었다.
털썩.
“으···.”
바닥에 주저앉은 모용준은 멍청한 소리를 냈다. 경고대로 움직이지 않은-못한-탓에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지만, 그의 정신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저 검법은···!”
반대로 무림맹주를 비롯한 정파의 명숙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있었다. 고수일수록 놀라움은 더 컸다.
“바, 방금 그거 검강 아니야?”
“일격에 비무대를 박살 내다니···.”
“저 검법은 도대체 뭐야?”
관중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환호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저 놀라움을 드러내며 웅성거릴 뿐이었다.
대인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저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는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모두가 들리도록 말했다.
“저는 백가검문 출신이 아닙니다. 애초에 그런 문파는 없습니다. 제가 가짜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꿀꺽.
누군가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모두가 대인의 말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대인은 그들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귀찮아지는 건 질색이지만.’
전생이나 이번 생이나 자신은 팔자가 사나운 운명인가 보다.
무림에 검 하나 가지러 왔을 뿐인데 별별 일에 다 엮이는 걸 보면 말이다.
‘좀 귀찮아져도 이쪽이 훨씬 더 빠르니까. 그리고···.’
대인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남궁현을 흘깃 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검황의 진전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천마에게 무공을 배웠다. 물론 그 부분은 말하지 않았다.
“!!”
검황의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으니까.
“제 무공은 무림의 선배님들께서 알아봐 주시리라 믿습니다.”
무림맹주는 말이 없었다. 그가 침묵하는데 감히 누가 입을 열 것인가.
무대는 여전히 대인 혼자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대인은 무림맹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부터가 본론이었다.
“검황의 진전을 이은 정당한 후계자로서, 창천신검의 반환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곤란해하는 야율기를 바라보며, 대인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면 그리하겠습니다만···.”
대인은 넋이 빠져 있는 후기지수들을 슥 둘러보며 말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후기지수들은 대인의 시선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