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은혜 갚으러 온 까치들
-한국과 동맹이 결렬되면 미국을 떠나겠다!
폭탄선언을 한 미국 최강의 히어로 헤라클레스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유명한 초인들이 하나둘 LA에 있는 마왕성으로 집결했다.
그들은 수십 개국에서 모여든 기자들 앞에서 소신 발언을 펼쳤다.
“지금은 정치가 아닌 오직 전쟁에서의 승리만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아군끼리 서로 견제하다가 적에게 기회를 주는,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저는···.”
두 번째로 마왕성에 도착한 손님은 세계 최강의 염동력 능력자로 알려진 류 웨이(중국)였다.
그녀는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자랑스러운 조국이 눈앞의 이익이 아닌, 인류 자체를 위해 옳은 선택을 할 거라고 믿습니다.”
바다를 직접 날아서 건너온 그녀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발언함으로써, 미국과 함께 한국을 압박하던 중국 주석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세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오늘도 피스! 신주쿠 레인저는 세계 평화를 위해 언제나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트럼보 대통령님. 고집 좀 그만 부리시면 안 되겠습니까?”
반년 만에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을 만든 신주쿠 레인저-최근 활동무대가 전 세계로 넓어지면서 이름을 ‘지구방위대’로 바꿔야 하지 않냐는 논의가 있었다-도 LA에 도착해 인터뷰를 했다.
네 번째.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미국은 동맹에서 빼는 게 어때? 우리는 아쉬울 거 없는데.”
러시아의 괴물, 이반 세르게이도 공항에 입국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기자들에게 담배 연기를 뿜으며 킬킬 웃었다.
다섯 번째.
“···한국은 지난 반년간 다가올 재앙을 경고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막아낸 재앙, 구해낸 인명을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한 남자, 아니 한국에 큰 빚을 졌습니다.”
그 강함만큼이나 아름답기로도 유명한 프랑스의 초인, 올리비아 플레는 눈시울을 붉히며 인터뷰를 했다.
올리비아가 실수로 언급한 ‘한 남자’가 누구냐를 두고 프랑스에서는 연일 추측성 기사가 쏟아졌다.
여섯 번째.
“저는 한국을 지지합니다.”
아프리카의 영웅이라 불리는 무킬라 이갈로.
그는 무뚝뚝하게 인터뷰를 마친 뒤 마왕성을 향해 날아갔다.
일곱 번째.
“그 친구에게 입은 은혜를 갚으려면 목숨을 줘도 모자라지···. 아, 이거 말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방금 말한 거 취소! 기사에 내보내지 마!”
멕시코에서 온 사령술사, 까를로스 호세는 황급히 인터뷰를 마치고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갔다.
위에 언급한 초인들은 전부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초인들이었다.
BBC에서 선정한
그들은 자국 내에서 국가 지도자보다도 큰 명성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나섰다.
“미국의 요구는 터무니없습니다! 한국이 왜 자신들의 기술을 공유해야 하죠?”
“한국이 지금껏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 게 얼만데···. 그동안 다른 나라들은 뭘 했습니까?”
“이건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강도질을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트럼보 인성···.”
“이 동맹에 미국이 꼭 필요한가요?”
“붉은 머리의 소녀를 만나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초인들, 정치인들, 종교인들, 영향력을 갖춘 기업인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미국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전 세계의 여론이 들썩이기 시작했고, 트럼보 대통령의 안색은 하루하루 나빠지고 있었다.
“우리의 지난 7개월의 시간이···.”
“헛된 게 아니었네요.”
주상욱과 백영희는 TV에 나와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로운 표정을 지었다.
스크린에 비치는 사람들 중에는 그들이 아는 사람도 있었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지난 7개월 동안 세계를 돌아다닌 ‘누군가’를 만나서, 그에게 평생 갚아도 갚기 힘든 큰 은혜를 입었다는 것.
그리고 그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기자들 앞에 나서거나, 또는 직접 이곳으로 찾아왔다는 것.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누군가’의 이름은 단 한 번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백영희는 꿈을 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기해요. 부대표님은 이곳에 있지도 않은데, 저 많은 사람들이 다 그분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말에 주상욱은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세상 모든 곳에서 그의 이야기가 끝없이 회자되다니···. 이젠 전설 속 영웅이 되어가는군요.”
그 영웅에게서는,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
미합중국 대통령이 백기를 드는 데는 그로부터 며칠 걸리지 않았다.
트럼보 대통령은 똥 씹은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아메리카 합중국은···. 헬게이트 사태의 중대성을 깨닫고 세계회의에 적극 협력하기로 결의했습니다.”
플래시가 그의 얼굴을 새하얗게 물들일 정도로 쉴 새 없이 터졌다. 전 세계 방송이 ‘트럼보 항복’, ‘백기’ 등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그 장면을 생방송으로 송출했다.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날이 갈수록 여론은 그에게 불리해졌고, 시민들은 최강의 히어로인 헤라클레스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극도로 불안해했다.
심지어 일부 도시에서는 폭동의 조짐마저 보이는 상황.
트럼보 대통령은 한국에 요구했던 ‘기술 공유’ 발언을 전면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눈치를 보던 중국 주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연합 사령부 내에서의 파워 게임은 끝났고, 지지부진했던 세계회의는 급물살을 타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모두 아시다시피, 저희가 이곳 LA에서 세계회의를 개최한 데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마왕성 내 대회의실.
각국 정상들과 국가를 대표하는 초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만장일치로 연합 사령부 사령관으로 추대된 김수호 대통령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게이트 분야 최고 권위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마왕급’ 헬게이트가 열리는 것은 대략 50일 이후. 게이트 발생 범위는···. 지구 전체입니다.”
김수호 대통령 뒤편으로 거대한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다.
스크린 위로 대륙 전체가 표시된 지도가 나타나더니, 지도 곳곳에 점점 붉은 점이 하나둘 생겨났다.
곧 세계 지도의 대부분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아···.”
회의실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다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데이터로 접하자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사실은, 저 붉은 점 전부가 마왕급 헬게이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왕급 헬게이트는 총 18곳입니다.”
지도 위 붉은 점 대부분이 사라지고, 18개의 커다란 표식들만 남아 불길하게 반짝였다.
“마왕급 헬게이트에서 등장할 마왕과 괴수들의 예상 데이터는 보내드린 자료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잠시 후, 자료를 확인한 사람들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뭐야. 이 말도 안 되는 수치는···.’
‘하나하나가 대재앙급이잖아···.’
지난 7개월 동안 이야기는 숱하게 들었어도, 헬게이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이렇게까지 자세히 접한 것은 대부분 처음이었다.
솔직히 그들은 방심하고 있었다.
퍼스트 게이트가 끝나고 4년 가까이 지난 시기.
대부분의 국가가 안정을 되찾았으며, 초인들은 성장을 거듭해 놀라울 정도로 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
기존에 인류가 가졌던 과학 기술에, 마정석 에너지와 몬스터 신소재 연구가 더해졌다.
나날이 개발되는 신무기들과 노련해진 사냥꾼들. 인류는 과거보다 더 강해졌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 나라의 전력이면, 퍼스트 게이트가 다시 온다고 해도 막을 수 있다.’
‘마왕이라는 놈들이 강해 봤자 얼마나 강하겠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고 오만이었다.
하지만 김수호 대통령이 그들에게 전송한 자료는, 객관적인 수치로 그들의 자신감을 산산조각 내기에 충분했다.
“마왕은 하나하나가 대륙을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가 동시에 열여덟이나 지구로 쳐들어온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
순간 대회의실 전체에 내려앉은 정적.
벌써부터 얼굴색이 흙빛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저 중 하나만 우리 나라에 열려도···.’
‘피해 규모를 상상도 못 하겠군.’
‘젠장. 왜 우리 나라에 저런 게 2개나!’
김수호 대통령은 그들의 생각을 짐작한다는 듯 장내를 죽 둘러봤다.
“다들 고국을 걱정하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각자의 고국만 지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의 국가를 멸망시킨 마왕들은 경쟁하듯 진군할 겁니다. 결국에는 한 국가가 마왕을 둘이나 셋씩 상대해야 합니다.”
“······.”
사실 이 모든 이야기는 지금까지 한국이 여러 번 해왔던 경고의 반복이었다.
다만 이 정도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데이터를 얻은 것은 한국도 최근의 일.
‘한국이 전 세계에 게이트를 설치하기 위해 일부러 공포감을 조장하는 줄 알았는데···.’
‘저 중의 반만 사실이라고 해도···.’
뜬구름 잡는 줄 알았던 괴담이 현실성을 갖추자, 거대한 공포가 국가 지도자들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김수호 대통령은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구에서 마왕을 하나 이상 상대할 수 있는 국가는 일곱 정도입니다.”
김수호는 그 일곱 개 국가가 어디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다들 자신들의 객관적인 전력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까.
“마왕 둘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국가는 셋 정도겠지요.”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등 강대국 지도부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서로를 의식하고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마왕 셋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뿐이지.’
김수호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상에 없습니다.”
“······.”
그 순간 내내 못마땅한 표정이었던 트럼보 대통령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침음했다.
“4개라니···.”
김수호 대통령 뒤편에 있는 스크린에 펼쳐진 세계 지도. 미국 영토에 표시된 붉은 점은 4개였다.
50일 후.
마왕 넷이 동시에 미국 영토 위에 나타난다는 의미였다.
“믿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전부 사실입니다.”
김수호 대통령은 덤덤한 표정으로 회의장 안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는 일부러 이 순간까지 정보 공개를 미뤘다.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은 상황에서는 혼란만 더 키웠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세계 각지에서 온 초인들이 한국에 힘을 실어줬다. 한국이 회의를 주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미국은 백기를 들었다.
전부, 이 자리에 없는 한 청년 덕분이었다.
‘임대인 부대표.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몇 번이나 해야 될지 모르겠군.’
“그래서 첫 번째 전투가 더욱 중요합니다.”
김수호 대통령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거신(巨神) 김수호.
그는 퍼스트 게이트 당시 서울 사태를 수습하고 대통령이 된 인물로, 정치인으로서 수완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서울을 지켜낸 뛰어난 군인이자, 초인들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높기로 유명한 한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였다.
고오오오오···!
김수호가 기세를 드러내자, 자리에 참석한 초인들이 눈을 빛냈다. 상상했던 것 이상의 마력에 다들 동요를 금치 못했다.
김수호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본론이었다.
“약 30일 후, 마왕급 헬게이트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에 거의 육박하는 대규모 게이트가 현상이 미국에서 발생할 예정입니다.”
지이잉.
스크린 위의 세계 지도가 미국 영토의 한 부분을 확대하더니 멈췄다.
위치는 그레이트 베이슨 사막(Great Basin Desert)
“예상되는 게이트는 숫자는 3천 개 이상이며,”
드넓게 펼쳐진 황량한 사막 위로, 가상의 게이트들이 수없이 발생하며 마수들과 악마들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7개월간 모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시뮬레이션이었다.
“저희는 이 게이트 현상을 적의 선봉군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꿀꺽.
회의장에 있던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그만큼 모두가 김수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앞으로 시작될 전쟁의 전초전인 셈입니다. 이 싸움에서 패하거나 큰 피해를 입으면, 마왕들은 물밀 듯이 지구로 쳐들어올 겁니다.”
마족들의 특성상, 첫 전투에서 얕보이면 적의 공세는 몇 배로 거칠어질 것이 뻔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첫 전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야 합니다.”
반면 인류는 전쟁을 준비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필요했다.
‘버텨야 한다. 임대인 부대표가 돌아올 때까지.’
사실 김수호 대통령은 거짓말을 했다.
‘인류의 힘만으로는 지구를 지켜낼 수 없습니다. 대통령님. 대표님. 제가 돌아올 때까지 연합군을 지휘해서 최대한 시간을 벌어주세요.’
한 달 전, 대인은 김수호 대통령을 찾아와서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었다.
‘마왕군의 규모를 축소해서 알리세요. 다 같이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절대로 못 이길 정도로 적이 강하다는 걸 알면, 지하 벙커로 숨어버리거나 마왕 편에 붙으려는 인간들이 생길 테니까요.’
지구로 쳐들어올 마왕은 열여덟이 아니라 서른여섯이고, 각국 지도부에게 전달한 헬게이트의 수치는 절반으로 축소했다.
상황이 무척 어렵지만, 그래도 싸워볼 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느끼도록.
‘가끔은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잖아요?’
그 의견에 동의하며, 김수호는 진심을 담아 모두에게 말했다.
“전 인류가 힘을 합치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