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57
57화 사례금
“아저씨. 눈 왜 그래?”
릴리는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대인의 얼굴에 생긴 멍을 쳐다봤다.
분명 어제 밤에는 없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아저씨의 한쪽 눈이 판다곰처럼 멍들어 있었던 것이다.
대인은 계란으로 퍼렇게 멍든 눈가를 슬슬 문질렀다.
기분이 영 저기압인 듯 보였다.
“···몰라도 돼.”
그때 릴리가 뭔지 알겠다는 듯 박수를 쳤다.
“아! 변장한 거다! 그치?”
“아니거든? 야! 만지지 마! 아프다고!”
대인은 멍 자국을 찔러대는 꼬마 악마의 손가락을 쳐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쳇. 마지막 공격은 통할 줄 알았는데···.”
사흘 동안, 대인은 백창수와 대련-을 빙자한 구타를 당하며-을 하며 검황비록의 무공을 몸으로 체득했다.
어제가 그 마지막 날.
대인은 벼르고 별러왔던 회심의 공격을 시도했다.
휴가 가기 전에 한방이라도 제대로 먹여줘야지, 하고 작심하고 한 공격이었다.
회심의 공격은 실패했고, 대가는 뼈아팠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도록 얻어맞았으니까.
“그 아저씨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괴물인 거야···.”
대인이 계란으로 멍을 문지르며 궁시렁거리고 있을 때, 백영희가 노크를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팀장님. 준비는 다 끝나셨어요?”
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영신이는?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잠시 후, 대인과 릴리는 각자 가방을 챙겨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건물 로비에 장영신이 기다리고 있었고, 아는 얼굴들이 그들을 배웅 나와 있었다.
왕구호. 시루떡.
7팀 조장들.
그리고···.
“하하하! 임팀장! 오늘 드디어 휴가 떠나는 날이군! 잠은 잘 잤나!”
대인은 싱글벙글 아주 얼굴에 웃음꽃이 핀 백창수를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대표님 덕분에 아주 기절하듯이 푹 잤습니다.”
백창수가 대인의 등을 팡팡팡!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대인은 진심으로 아팠다.
“내 덕분이라니 기분이 좋군! 잘 다녀오게! 목표로 한 일 다 이루고!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말고!”
대인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휴가 가서는 안 맞을 것 같네요.”
사흘의 특훈.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인은 나름대로의 성과를 이루었다.
감각은 한층 예민해졌고, 기술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예리해졌다.
대인은 배웅을 나온 사람들과 한 명씩 짧게 인사를 나눴다.
“왕구호.”
“네···.”
왕구호는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두 사람과 같이 휴가를 받지 못한 왕구호는, 혼자 팀에 남는 것이 벌써부터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대인이 그런 왕구호의 어깨를 툭 쳤다.
“내가 없을 땐 네가 7팀 대장이다. 잘해.”
왕구호는 불안한 얼굴로 대인을 바라봤다.
“제,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대인과 릴리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7팀은 길드의 다른 팀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었다.
순간 대인이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네가 호구되면 7팀이 다 호구되는 거야. 내가 돌아왔을 때 팀이 호구소리 듣고 있으면···. 그땐 알아서 해라?”
“···네, 넷!”
기가 바짝 든 왕구호의 모습에, 대인은 만족스럽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구호에게 부족한 건 자신감.
그것만 있으면, 왕구호는 이미 도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탱커였다.
대인은 고개를 돌려 시루떡을 바라봤다.
“넌 왕구호가 호구짓 하는지 잘 지켜보고.”
“옙! 형님!”
시루떡의 험상궂은 외모라면, 왕구호를 호구 잡으려는 놈들을 적당히 걸러낼 수 있을 것이다.
대인은 고개를 돌려 7팀의 조장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여러분. 저 없는 동안 모자란 애들 좀 잘 부탁해요.”
천일남, 천이남, 천설아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올 때 저희 선물도 사오세요.”
“다치지 마시고요.”
마지막으로 대인은 옆에 있는 백영희를 돌아봤다.
뭔가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백영희는 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희씨.”
“···네. 팀장님.”
그녀는 대인에게 가까이 다가오면서 수줍게 눈을 감았다.
대인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갑자기 눈은 왜 감아?”
백영희가 실눈을 뜨며 말했다.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작별의 키스 하려던 거 아니었어요? 지금 딱 그 타이밍이잖아요.”
백영희가 입술을 쭉 내밀며, 오늘따라 더 적극적으로 거리를 좁혔다.
“자아. 쪽~”
꾸욱.
대인이 손바닥으로 백영희의 입술을 밀어내며 말했다.
“영화는 혼자 찍으시고. 내가 부탁한 것들 잘 처리해줘요.”
백영희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렸다.
“맨날 부려먹기만 하고. 대신 제 선물은 제일 비싼 걸로 사 오셔야 돼요.”
“사올 선물이 도대체 몇 갠지 모르겠네.”
작게 한숨을 내쉰 대인은, 이내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튼 다녀오겠습니다.”
대인의 양 옆에서 릴리와 장영신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녀올게!”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몸을 돌려 휴가를 떠났다.
점점 작아지는 그들의 모습을, 백영희는 수심 가득한 얼굴로 바라봤다.
백창수가 그런 딸의 옆에 서며 물었다.
“우리 딸. 표정이 왜 그래?”
“···괜히 불안해서.”
대인이 떠나기 전까지 짓궂은 장난을 친 것도, 이상하게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기 위해서였다.
“꼭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괜한 걱정이겠지?”
아버지는 불안해하는 딸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걱정할 거 하나 없다. 임팀장.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사내거든.”
백창수는 딸의 어깨를 감싸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목을 매만지며 말했다.
“특히···.”
오늘 새벽에 있었던 마지막 대련을 떠올리자, 백창수는 목 아래가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그 마지막 검은 진짜 위험했단 말이지.”
사흘 동안의 대련은 백창수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오랫동안 막혀 있던 벽을 부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은 기분이랄까.
“덕분에 이 아빠도 더 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백영희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정말?”
백창수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부터 온 몸이 근질거렸다.
“임팀장이 휴가에서 돌아오면, 그땐 정말 제대로 붙어봐야겠다. 그때까지 이 아빠도 특훈이다!”
대인이 들었다면, 지구로 돌아오는 걸 심각하게 고려해 볼 만한 이야기였다.
*
*
*
대인 일행은 통제구역을 넘어, 예전에 텐트를 펼쳤던 장소에 도착했다.
텐트는 다 찢겨나가고 이제 흔적만 남아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미리 옮겨 놓은 아이언 골렘이 육중한 자태를 자랑하며 서 있었다.
“개조를 꽤 많이 했네?”
대인의 질문에 장영신이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가 말한 거, 필요한 거, 전부 달았어요.”
전보다 1.5배는 커진 아이언골렘은, 등에 자신의 몸통만한 거대한 금속 박스를 달고 있었다.
얼핏 보면, 거대한 등딱지를 달고 다니는 거대한 닌자거북이 같기도 했다.
“···이거, 변신도 할 수 있는데.”
장영신이 주머니에서 리모콘을 꺼내 버튼을 조작하자,
골렘과 그 등에 있는 금속박스가 함께 형태를 변화시켰다.
철컥철컥철컥.
드르르르르륵!
잠시 후, 그 자리에는 강철로 된 마차와 마차를 끄는 거대한 철마가 서 있었다.
릴리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소리쳤다.
“머싰어!”
장영신은 수줍은 듯 소녀의 시선을 피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별거 아닌데. 골렘 변신은 원래 있어서, 조금 바꾼 건데···.”
대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천재 꼬마를 바라봤다.
“···너도 꼬맹이 못지않게 사기캐구나.”
쾌적한 여행을 위해 이것저것 부탁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해왔을 줄은 몰랐다.
칭찬에 얼굴이 붉게 상기된 장영신이 말했다.
“···다른 변신도, 보여줄까요?”
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나중에 보자. 지금은 마차로 충분해.”
앞으로 나선 대인은 의식을 집중해 주변 마나의 흐름을 읽었다.
약 1년 후, 이곳에 연결될 차원 간 고정 게이트.
가이아 대륙과 지구를 잇는 게이트가 열리는 정확한 위치는···.
“···여기네.”
마나의 흐름이 인위적으로 일그러진 장소를 찾아낸 대인은 그 자리에 진법을 그렸다.
진법을 완성하고, 그 중심에 서서 영혼석을 꺼내 들었다.
아직 마나가 절반이나 남은 영혼석을 바라보며 대인은 입맛을 다셨다.
“여행경비 치고는 너무 비싸지만···.”
영혼석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을 주자, 쩌적- 하고 영혼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저적-!
“그만큼 뽕을 뽑고 와야지.”
영혼석을 부순 대인은 진법 밖으로 재빨리 빠져나왔다.
그릇을 잃고 터져 나온 막대한 마나가 사방으로 폭주했다.
-푸화아아아아악!
그릇을 잃으면 자연으로 흩어지는 것이 마나의 법칙.
그러나 그 순간, 대인이 설치한 진법이 마나가 흩어지지 못하도록 일정 공간 안에 마나를 묶었다.
그 반발작용으로 좁은 공간 안에서 마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어마어마한 마력의 폭풍이 진법 안에서 휘몰아쳤다.
대인은 꼬마들과 함께 뒤로 물러나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지금도 통로는 연결 돼 있는 상태거든. 하지만 문이 닫혀서 들어갈 수가 없는 거지. 문은 원래는 시간이 지나야 열리지만···.”
콰콰콰콰콰콰콰콰!
집중된 마력 폭풍이 쉴 새 없이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영혼석이 품고 있던 강대한 마력이, 닫혀있는 문고리를 강제로 잡아 비틀었다.
결국,
찌이익-.
허공에 균열이 벌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대인은 웃었다.
“계속 두드리면 잠깐 동안 문이 열려.”
찌이이이이익-!
균열이 넓게 찢어지며 이내 시커먼 구멍으로 변했다.
치직, 치지지직!
강제로 열린 게이트는 불완전하게 일렁였다.
계속 형태를 조금씩 변화시키며 불길한 느낌을 자아냈다.
“으···.”
릴리가 몸을 덜덜 떨었다.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 떠오른 듯, 소녀는 몸을 웅크리고 겁먹은 눈으로 게이트 너머를 바라봤다.
“싫어···.”
릴리가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으려는 순간, 대인이 릴리의 허리를 안아 옆구리에 끼웠다.
그리고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그 목소리가 무척 안심이 돼, 릴리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응.”
세 사람은 마차를 타고 게이트를 넘었다.
그들이 게이트를 넘자마자 본 것은, 불타고 있는 마을이었다.
*
*
*
“싹 다 뒤져서 찾아내라!”
도적 두목의 외침에 백 명이 넘는 도적떼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도적들은 무자비했다. 집안에 숨어있던 사람들을 끌어내고, 살림살이를 모조리 박살내면서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사, 살려주세요!”
“아이는 해치지 마세요!”
도적들은 마을 주민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사정없이 칼로 찔렀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을 질렀다.
화르르르륵!
마을 곳곳에 불이 붙고, 사방에서 피냄새가 진동했다.
마을을 지키는 자경단이 있었지만, 그들은 도적들이 길들인 전투오거 한 마리에게 모조리 찢겨나간 이후였다.
으적으적.
마을 광장 한가운데서는 전투오거가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도적 두목이 인질로 잡아온 촌장의 머리채를 콱 틀어쥐며 물었다.
“순순히 말해. 어디다 숨겼어?”
이미 심한 고초를 겪었는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늙은 촌장은 증오가 가득 담긴 눈으로 도적두목을 노려봤다.
“모른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순간 도적 두목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맺혔다.
“계속 그렇게 나오면 곤란할 텐데.”
도적 두목이 부하들에게 눈짓을 보내자, 그의 부하들이 붙잡고 있던 인질 중 하나를 전투오거에게 던져줬다.
그는 촌장의 친척이었다.
크르르르···.
“사, 사, 살려주세요! 끄아아악!”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전투오거가 촌장의 친척을 위아래로 찢어버렸다.
촤아아악!
“이 천벌을 받을 놈들-!!”
나무 말뚝에 몸이 묶인 촌장이 온 몸을 버둥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도적 두목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다음은 당신 자식이고 그 다음은 손주야. 살리고 싶으면 뭐라도 알아야 할 거야.”
마을에서 벌어지는 그 끔찍한 광경을, 호킨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호킨이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 끝난 것인가···.”
겨우 몸을 숨겼다고 생각했건만, 결국은 이렇게 되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호킨은 앞으로 나설 마음을 먹었다. 은인인 촌장을 저대로 죽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놈들을 유인해서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자.’
허공에 게이트가 열린 것은, 호킨이 그렇게 마음먹고 도적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이놈들! 내가 바로···!”
우우우우우웅!
하늘에 불길한 검은색 게이트가 열리고, 그 안에서 거대한 마차가 떨어졌다.
쿠―웅!
상당히 크고 무거운 마차였다. 땅에 떨어진 순간 주변 땅이 다 흔들릴 정도였다.
더구나 보통 말보다 세배는 큰 철마가 마차에 매여 있었다.
모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 범상치 않은 마차와 철마를 바라봤다.
도적 두목이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뭣들 하는 거냐! 당장 조사해!”
그 순간 마차 문이 열리고 검은 머리의 청년이 얼굴을 드러냈다.
마을을 슥 둘러본 대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 타이밍이 영 안 좋네.”
그때였다. 전력을 다해 마차로 달려온 호킨이 마차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도와주십시오!”
대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왜?”
“사례하겠습니다!”
“···얼마나?”
일단 들어나 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