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548
548화. 워터인프라 (3)
그 뒤로도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다.
벤 브라이언은 확실한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있고, 이를 실행할 명확한 계획이 있었다.
“배우를 하면서 워터인프라 활동을 같이 하는 게 부담되지는 않나요?”
“천만에요. 양쪽 다 즐겁습니다. 워터인프라 일을 할 때면 제가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활동을 알릴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직접 만나 얘기해 보니, 그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루 씨 덕분에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처럼 의욕이 넘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그가 열심히 할수록 컨티뉴 캐피탈의 기부가 빛을 발하겠지.
트리시는 슬쩍 말했다.
“워터인프라에 대해 자세히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괜찮으세요?”
그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제가 오후에 가족들과 여행을 가기로 해서요. 다녀와서 온라인으로 해도 괜찮을까요?”
만나고 헤어지고, 결혼하고 이혼하고를 반복하는 일부 할리우드 스타들과는 달리, 그는 가정에 충실하고 사생활이 깨끗하고 유명하다.
따로 일이 없을 때는 항상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정말이지 존경할 만한 남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먼저 기사에 실을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트리시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역시나 배우는 배우인지 카메라 앞에 서자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왔다.
우리는 헤어지기 전 연락처를 교환하고 악수를 나눴다.
“다음에 또 봬요.”
“언제든 연락 주세요.”
* * *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벤 브라이언을 만나기 위함.
하지만 이것 말고도 트리시에게는 중요한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벤 브라이언과 코리 덩컨이 떠난 지 얼마 안 돼, 이번에는 벤자민 디아민디 감독이 달려왔다.
그는 우리를 보고 반가워했다.
“또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에 봤을 때에 비해 좀 초췌해진 것 같은 모습이다.
머리는 안 감았는지 떡졌고,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다.
“뭐 하다 오셨어요?”
“아! 집에서 각본 작업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는 ‘리버티’의 차기작으로 게임스타트 사태를 점찍어놓은 상태. 현재는 열심히 각본을 집필 중인 모양이다.
그는 다리안이 건네준 물을 벌컥벌컥 마신 다음, 트리시를 보며 물었다.
“지난번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안이요?”
“네. 각본을 공동 집필하자는 제안 말입니다.”
게임스타트 사태는 개인투자자들이 힘을 합쳐 월스트리트 헤지펀드를 무너뜨린 초유의 사태.
1회차 때 흐지부지 끝났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결말까지 완벽했던 만큼, 많은 제작사들이 흥미를 갖고 있었다.
이런 흥미로운 소재를 놓칠 할리우드가 아니지.
어차피 실화인 만큼, 먼저 가져다가 쓰는 사람이 임자.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실화인 만큼 현실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트리시는 이를 가장 가까이서 취재한 기자다.
트리시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말씀은 감사한데, 제가 각본은 써본 적 없어서요.”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최종 감수는 제가 할 테구요.”
거장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표정을 보니 해보고는 싶지만 자신이 없어서 망설이는 듯하다.
“한번 해봐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은데.”
“그렇긴 한데…….”
조금만 설득하면 넘어갈 것 같은데.
난 일단 디아민디 감독에게 물었다.
“혹시 페이는 어떻게 되나요?”
“아! 그러고 보니 그 얘기를 안 했군요. 이번 영화는 제작비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라, 각본비가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200만 달러 책정된 상태니, 둘이 나누면 인당 100만 달러겠네요. 흥행에 따른 개런티는 따로입니다.”
“오.”
생각보다 각본도 꽤 받는구나.
하긴, 한국 드라마만 해도 A급 작가의 경우 회당 1억 원씩 받는다고 하니.
좀 더 설득을 해보려는데, 트리시가 재빨리 말했다.
“할게요.”
디아민디 감독은 반색했다.
“정말입니까?”
“예. 부족한 실력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금액을 들으니 갑자기 없던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다.
난 슬쩍 한마디했다.
“기부 좀 더해도 되겠는데요.”
그러자 트리시는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살짝 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마요.”
“……네.”
* * *
지난 몇 주간.
인도 증시는 혼란 그 자체였다.
수니르 그룹주들이 폭락을 멈추고 간신히 반등하긴 했지만, 여전히 주가는 이전 대비 절반 이하로 하락한 상태였다.
게다가 주가 조작과 정경유착의 각종 증거들이 드러나며, 기업 이미지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수니르 그룹은 언론을 동원해 이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 자본의 인도 증시 공격!] [거짓 정보를 유포하는 공매도 세력!] [약탈적 공매도 시스템, 정부가 나서서 개선해야!]언론들은 수니르 그룹과 정부의 잘못은 덮어둔 채, 이 모든 일들이 헤지펀드들의 잘못인 것처럼 몰아갔다.
특히 컨티뉴 캐피탈에 대해서는 돈밖에 모르는 쓰레기 기업이라 몰아붙였다.
이를 통해 수니르 그룹에 대한 비난 여론을 무마하려는 속셈이었고, 이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어쨌거나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자국 기업 대 외국 기업의 대결 구도라면 자국 기업의 편을 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WST) 컨티뉴 캐피탈, 워터인프라 펀드에 56억 달러 기부!](전략)
워터인프라는 할리우드 유명 배우 벤 브라이언과 월스트리트 출신의 라제쉬 나이어가 빈곤퇴치와 물 부족 해결을 위해 공동으로 설립한 비영리단체다.
56억 달러를 기부한 이유에 대해 컨티뉴 캐피탈 관계자는 ‘우리는 워터인프라의 비전과 운용 능력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그들의 활동이 확대되고 지속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벤 브라이언은 ‘물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후 위기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구하기 힘들어지고 있는 만큼,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며 컨티뉴 캐피탈의 기부 결정을 환영했다.
워터인프라 펀드의 투자를 책임지고 있는 라제쉬 나이어 대표는 ‘이번에 기부받은 56억 달러는 전액 인도의 빈곤 퇴치와 인프라 사업에 활용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중략)
다리안 헤럴슨과 코리 덩컨 역시 각각 500만 달러를 기부했고, 두 사람은 벤과 함께 워터인프라의 홍보대사를 맡기로 했다.
세 사람이 함께 찍은 영상은 다음 달 공개될 예정이다.
이 기사는 큰 이슈가 됐다.
-벤 브라이언이 저런 활동을 하고 있었어?
-그냥 이름만 걸어놓은 게 아니라, 15년 넘게 졸라 열심히 활동 중! 촬영 없는 날이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홍보하고 기부를 요청함.
-우와! 영화만 찍는 줄 알았는데, 이런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니!
-ㅎㄷㄷ 56억 달러! 금액 미쳤네~
-컨티뉴 캐피탈에게는 푼돈 아닐까?
-ㅋㅋㅋ 인도에서 실컷 돈 벌더니, 그래도 기부하네.
-컨티뉴 캐피탈이…… 기부?
-인도에서 벌어먹은 거 생각하면 캐시백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ㅎㅎ
-양심은 좀 있는 듯?
-뭔 헛소리야? 양심 있는 놈들이 수니르 그룹을 그렇게 털어먹나?
-근데 왜 하필 56억 달러야?
-그러게? 50억도 55억도 60억도 아니고.
-아! 이거 컨티뉴 캐피탈이 딱 수니르 모터스 채권에 투자한 금액 아닌가?
인도에서도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속보) 컨티뉴 캐피탈, 인도 빈곤 퇴치를 위해 56억 달러 기부!] [민간 기업 기부 액수 중 최대 규모!] [벤 브라이언, 컨티뉴 캐피탈 덕분에 수억 명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어…….]인도 내에서 컨티뉴 캐피탈의 이미지는 웬만큼 기부를 한다고 해서 쉽게 뒤집힐 정도가 아니었다.
때문에 처음 기사가 나왔을 때만 해도 오히려 ‘기부로 생색내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조차도 금액을 듣고는 입을 다물었다.
욕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컨티뉴 캐피탈을 비난하던 이들은 태도를 바꿔 칭찬했다.
반면, 수니르 그룹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일었다.
-세계 부자 순위에서 알렌 에버하트를 제쳤다고 자랑하면서도 기부 한 푼 안 하던 모 회장님과 너무 비교된다.
-지난번 모교에서 ‘가난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주옥같은 연설을 하심.
-그러고 보니 수니르 엔터프라이즈가 얼마 전 공장 짓고 도로 깐다고 빈민가 싹 밀어버리지 않았나?
-빈곤 퇴치를 위해 빈민가를 없앴습니다!
-언론에서 수니르 그룹이 자랑스러운 인도 기업이라고 계속 빨아주는데, 그래서 정작 국민들에게 해준 게 뭔데?
-아! 정치인들에게 뇌물 뿌릴 돈은 있어도 기부할 돈은 없다고 ㅎㅎ
-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 지을 돈은 있어도 기부할 돈은 없다고 ㅎㅎ
비난은 인터넷뿐 아니라, 회사로도 쏟아졌다.
아누팜 수니르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놈들이…….”
하필 기부한 금액은 딱 56억 달러.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저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컨티뉴 캐피탈은 소송 합의에 대한 대가로 그에게서 56억 달러를 뜯어갔다.
이는 그동안 그가 주가조작과 횡령으로 알뜰살뜰 모은 돈이었다.
공매도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긴 것도 모자라, 개인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간 것이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그 돈을 기부해서 이미지를 세탁했다.
‘니가 기부한 그 돈. 그 돈이 내 돈이었어야 해!’
그에게서 가져간 돈을 기부한 셈이니, 따지고 보면 그가 기부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
그러나 기부 안 한다고 사방에서 욕을 먹으면서도 이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소송 합의를 위해 몰래 56억 달러를 지불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테니.
‘그게 다 내 돈인데!’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자다가도 발로 이불을 걷어찰 정도였다.
뭐라도 해야지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어떻게 복수하지?’
그 순간, 일전에 보고 받았던 내용이 떠올랐다.
그는 비서를 불러서 물었다.
“한미루가 인도공과대 봄베이 캠퍼스를 방문했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무슨 일 때문이었나?”
“한 학생을 만나 스노우 크래시에 취직하라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보고를 받았을 때는 컨티뉴 캐피탈을 상대하는 게 우선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꽤 중요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미루가 직접 만나러 갔을 정도면 대단한 인재인가?’
주가가 폭락했을 뿐, 수니르 그룹은 여전히 건재하다.
조건이야 얼마든지 맞춰줄 수 있다.
“당장 내 앞으로 데려와.”
“알겠습니다.”
아누팜 수니르는 한미루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네놈에게서 뭐 하나라도 빼앗아 주마!’
하지만…….
“오전에 미국으로 출국했다고 합니다.”
비서의 보고를 받은 그는 깜짝 놀랐다.
“뭐!? 벌써?”
“네. 알아보니 일단 관광비자로 먼저 출국한 것 같습니다.”
“…….”
이렇게 서둘러 데려간 걸 보면, 그만큼 중요한 인재였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손쓸 것을 미리 예상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아누팜 수니르는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커억!”
“회,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