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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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될 것인가?(2)
나는 안가로 돌아왔다.
모두들 무사했다. 다행히 위기의 순간에 그들을 구해야 하는 상황은 없었다.
이게 바로 갈사량이나 백표 같은 똑똑하고 뛰어난 수하를 거느리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다. 예상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능력과 충성으로 포장된 멋진 선물이다.
이 난리 통에도 그들이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일에 나서지 않아서다.
갈사량은 마교로 몰린 다른 문파를 구할 시도를 하지 않았다. 수하들을 단속했고 안가를 떠나지 않았다.
옳은 판단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들을 구하겠다고 나섰다면, 이미 놈들에게 행적이 들켜 벽씨검문과 송가장 역시 함께 멸문을 당했을 것이다.
아무리 백표와 흑표대가 있고, 양쪽 가문의 검대가 있다 하더라도, 벌떼처럼 달려드는 상대를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설령 그들을 막아냈다 하더라도 천소선 일파를 상대할 수는 없었으리라.
돌아온 후 가장 먼저 아버지와 송우경을 만나서 인사했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송장주님.”
“잘 왔다.”
“고생했네.”
두 분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셨다.
이후 여러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대부분 걱정과 분노를 자아내는 작금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가 죽고, 누가 생각지도 않은 모습을 보였고, 또 누가 본색을 드러냈는지.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어차피 이번 일에 대한 여러 결정은 갈사량과 의논해서 내려야 했으니까.
방에서 나오려는 데 아버지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돈 좀 빌려다오. 한 삼십만 냥 정도.”
“알겠습니다.”
“큰돈인데 너무 쉽게 수락하는 것 아니냐?”
“제가 이득인데 당연히 빌려드려야죠.”
“네가 이득이라니?”
“우선 이자를 확실히 받을 겁니다. 주실 거죠?”
“당연하지.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잘 챙겨야지.”
“아버지께서 이자 밀릴 분이 아니잖습니까? 돈 떼먹을 일은 더더욱 없을 테고. 이렇게 든든한 증인도 함께 계시고요. 저야말로 앉아서 돈 벌 기회 아닙니까?”
“하하하.”
아버지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래, 돈 많은 아들 둔 덕도 보셔야지. 마음 같아선 천만 냥도 빌려드리고 싶지만, 그것은 아버지가 원하시는 바가 아닐 것이다. 괜히 돈 많다고 설레발칠 필요도, 이자를 받지 않겠다고 괜한 부담을 줄 필요도 없다. 딱 원하시는 만큼 빌려주고 이자를 받으면 된다.
무엇보다 아버지에게 고마웠다. 성격상 돈 빌려달란 말을 꺼내기 어려웠을 터인데, 이렇게 편하게 말해주다니. 나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와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혈육으로서도, 또한 같은 무인으로서도.
송우경은 그 모습을 조금 부러운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너무 그렇게 부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따님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곧바로 공총관을 통해 돈을 보내겠습니다.”
“어디에 쓸 것인지 묻지 않느냐?”
“고객님의 비밀을 지켜드리기 위해서 묻지 않겠습니다.”
“뭐? 하하하!”
아버지가 다시 한 번 크게 웃은 후, 돈이 왜 필요한지를 말해주었다.
본격적으로 검대에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 더 좋은 무기들을 사고, 보호갑과 영약도 사겠다고 했다.
그리고 남은 돈은 검대원들과 그 가족들을 챙겨주겠다고 했다. 고향을 떠나 있는 상태이니, 다들 많이 보고 싶을 것이다.
아버지는 이번 일로 느낀 바가 많으신 듯 보였다.
“바쁜데 어서 나가서 일 보거라.”
“네, 그럼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두 분이 함께 계셔서 안심이 되었다. 어려울 때 친구가 함께 있어준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든든한 힘이 될 것이다.
안채에서 나오는데 마당에서 광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쁘실 텐데 재회의 기쁨에서 전 빼셔도 됩니다.”
오랜만에 보는 녀석의 너스레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이런. 애정이 식은 것인가?”
“인간관계가 성숙한 것이겠지요. 한 걸음 떨어졌을 때 가장 편안하고 좋은 관계임을 알게 된 거죠.”
잠시 녀석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내가 소리치듯 말했다.
“맙소사! 너 실연당했구나!”
다음 순간 광두의 두 눈썹이 축 처지면서 울상을 지었다.
“어흐흐흑. 도련님!”
송화린을 호위하는 수란과 좋은 분위기였다. 한데 그것이 잘 안 된 모양이다. 근래 광두의 애정사는 실패의 연속이다.
“어쩌다가?”
“도련님 때문에요!”
“나 때문에? 왜?”
“그녀가 그러더군요. 도련님과 송소저와의 관계가 있으니, 우리가 서로 좋아하면 안 된다고요. 공사구분을 못 해 두 분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고요! 이게 다 도련님 때문이라고요!”
“그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믿는 것은 아니지? 너 그 정도로 미성숙한 판단력의 소유자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순진함을 넘어 멍청함으로 가는 거야.”
“역시…… 아닐까요?”
“진짜 사랑하면 너와 떠나자고 했겠지. 진짜 사랑에 미치면 나와 린이에게 사랑을 포기하라고 했겠지.”
“정말 미쳤군요.”
“그래, 그런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상황이 이러니 우리 두 배로 더 노력하자고 했겠지.”
“흑흑. 맞아요. 제가 생각해도 그래요.”
광두가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옆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잤냐?”
“저급해요.”
“저급하지만 중요해. 잤냐?”
“……아뇨.”
“음, 어쩌면…….”
“뭐가요?”
“아니다.”
“왜 말씀을 하시다 마세요? 말씀해 주세요.”
“네가 자꾸 사랑에 실패하는 것이 시기를 자꾸 놓쳐서가 아닐까?”
“그…… 사랑을 나눌…… 시기요?”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때론 그것도 아주 중요하거든.”
“전 다만…… 확신이 있을 때 하려고 했는데.”
“어떤 확신?”
“그야 그녀가 내 여자다라는 확신이 있을 때죠.”
“그렇다면 아직은 확신이 없다는 말이잖아? 아마 그녀들은 그런 너의 감정을 읽어냈을지도 모르지. 너는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겠지만, 상대는 고리타분하고 답답하게 여겼을지도 모르지.”
“아!”
뭔가를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는 녀석을 두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세요? 흑흑, 매정한 진실폭행으로 제 마음에 갈가리 찢어 깊은 상처만 입히고 그냥 떠나시면 너무 비정…….”
“어머니 뵈러 간다.”
“넵!”
* * *
여인들이 있는 섬의 안가로 가기 전에 갈사량과 백표를 먼저 만났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 기쁩니다.”
두 사람 모두 안도하며 기뻐했다.
갈사량이 초췌해 보였다. 내가 없던 사이 마음고생을 좀 한 듯 보였다. 효능 좋은 영초라도 한 뿌리 달여 먹여야겠다.
갈사량이 지난 일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단순한 소문이나 짐작이 아닌, 정확한 정보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진과 수를 통해 은밀히 알아본 바에 따르면 배후세력의 수장이었던 천왕군은 채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 무림맹을 장악했다고 합니다.”
“일다경 만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지금은 노인이 아닙니다. 마철군이나 천소선보다 더 젊어져서 다시 등장했습니다.”
“젊어졌단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놈들이 준비해오던 대법이 성공한 모양입니다.”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 무림맹을 장악했다는 것은 놈의 무공 역시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의미다.
내 실력이 올라간 만큼 적의 실력도 올라간 것이다. 문득 그 신비노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늘은 선의 편도, 악의 편도 아니라네. 언제나 강호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 움직이지.”
그딴 소리 집어치우라며, 한 방에 다 해치워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들어보니 놈의 실력을 정확히 알아봐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여러 문파들이 참변을 당했습니다.”
무림맹의 회합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마교로 몰렸다. 그야말로 마녀사냥을 당한 것이다.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자책하지 말게. 군사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네.”
“문제는 놈의 의도입니다. 그 문파들을 멸문시킨 것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란 점입니다.”
갈사량은 평소보다 더 불안해했다. 그것이 얼굴에 드러날 만큼 표가 났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모른 척 차분히 그의 말을 들었다.
“단지 모두에게 공포심을 심으려고 죄 없는 문파들을 희생시킨 것입니다.”
만약 그런 이유라면 놈은 악질 중의 악질인 것이다.
“게다가 일부지만 같은 정파 문파들이 저리 득달처럼 달려들어 칼잡이 노릇을 한 것을 보니, 어떤 약점을 잡은 것이 분명합니다.”
“내부분열까지 유도했군.”
“그렇습니다. 이번에 천망회도 위험했습니다.”
“어떻게 위기에서 벗어났나?”
“제가 천망회주에게 조언을 했습니다. 무림맹의 초대에 응하지 말고, 조직과 함께 수면 아래로 깊이 잠수하라고. 다행히 회주는 제 조언을 받아들였고 이번 환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갈사량은 생색을 내기 위해 이 말을 꺼낸 것이 아니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만약 제가 그런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면? 만약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갈사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와 다른 긴장의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를 보며 웃었다.
“왜 웃으십니까?”
“우리 군사께서도 이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오셨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주는 남자들의 세상으로.”
잠시 멍하게 있던 갈사량이 화들짝 놀랐다.
“어이쿠! 그런 것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후후후.”
내 농담 반 진담 반에 갈사량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장난치실 때가 아닙니다. 감히 드리는 말씀이지만 절대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놈은 아주 악독한 놈입니다. 게다가 엄청나게 강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두려운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이런 적은 제 평생에 처음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강했던 적은 역시 혈천신교였다. 하지만 천마 역시 이렇게 강력한 무위를 드러내진 못했다.
내가 백표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넨 어떤가?”
그는 지금까지 말없이 우리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맹주님을 다시 뵙기 전까진 저도 군사님과 같은 심정이었습니다만…….”
“지금은?”
“불안했던 마음이 다소 차분해졌습니다.”
역시 무공이 경지에 이른 백표는 내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럼 자넨 내가 이 말을 해도 크게 놀라진 않겠군. 내가 한번 놈을 만나고 오겠네.”
갈사량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안 됩니다! 맹주님!”
* * *
갈사량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놈을 보러 갔다. 내 실력을 자만하는 것도, 놈의 실력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종의 정찰이었다. 놈이 어떤 놈인지 내가 직접 확인해야 제대로 된 작전을 세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번 싸움의 핵심은 내가 놈을 죽일 수 있느냐, 없느냐다.
만약 죽일 수 있다면 복잡하게 길게 끌 필요 없다. 놈을 죽이고, 다음으로 암흑대상을 찾아내서 죽일 작정이다.
분열책이고 이간책이고 다 필요 없다. 그냥 내가 다 죽여 버릴 작정이었다.
말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자들과의 싸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생자들만 계속 나오게 될 테니까.
무림맹 맹주전.
예전에는 잠입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하지만 나는 환한 대낮에 그곳에 잠입해 있었다. 놈이 순식간에 맹주전까지 들어가서 무림맹을 장악한 것처럼, 나 역시 손쉽게 이곳에 와 있었다. 철통같은 경계망은 더 이상 내게 그 어떤 구속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놈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 굳이 누군가를 족칠 필요가 없었다.
저 멀리 맹주전 건물에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느끼는 그 순간, 뭔가가 엄청난 속도로 이쪽으로 다가왔다.
* * *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사람이 빠르게 내려섰다.
맹주전에서 이곳까지 불과 한호흡만에 날아온 그는 바로 천왕군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함께 있었던 천소선이 뒤늦게 도착했다.
천왕군은 주위를 돌아보며 누군가의 은신을 찾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기척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곳에 뭔가가 있었다.”
맹주전 창가에 서 있었는데 저 멀리 뭔가 신경을 거스르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도 굉장히 강렬하게 신경을 거슬렀다.
동시에 창문을 부수며 그대로 이곳까지 날아왔다. 정말 찰나라 할 만큼 순식간에 도착했는데,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위에도 느껴지는 기척이 없었다.
‘착각이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천소선이 다급히 말했다.
“수하들을 풀어서 수색 작업을…….”
하지만 천왕군은 천소선의 말을 다 듣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맹주전으로 향하는 냉정한 뒷모습을 보며 천소선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점점 멀어지는 지금의 이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고 있었다.
* * *
나는 하늘 위에 있었다.
그가 날아온다고 느끼는 순간 마신부운으로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금 있는 곳은 놈이 나를 느끼지 못할 만큼 높은 곳이었다.
놈의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다. 맹주전의 건물만이 자그마하게 보였다.
당장이라도 내려가서 놈의 머리통을 부셔버릴까 생각했다. 분명 이길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망설여지는 마음도 있었다. 날아드는 속도로 볼 때, 놈의 실력은 어마어마했다.
그래, 일말의 망설임이라도 있다면 일단은 참아야 되겠지.
번쩍하는 순간 나는 십 장 밖 하늘에 있었다. 마신지로를 응용해서 하늘에서 펼쳐낸 것이다.
순식간에 그곳을 벗어나면서 나는 최대한 빨리 마신결의 대성을 이뤄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신결의 성취가 오르면 오를수록 놈을 죽일 확률도 함께 올라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