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164
164
78.H코스
위이이잉ㅡ!
“우와아아!”
박태진이 하얀색 의사 가운을 입고, 치료를 시작하는 모습을 아리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허공에 영상이······!”
아리의 말대로, 유진광의 정면에는 초정밀 초음파로 영사한, 환자 ‘안지민’의 발목 상태가 투사되고 있었다.
“완전 실제로 내부를 들여다보듯 주사를 놓을 수 있군요.”
“맞습니다.”
굳이 살갗을 갈라서 카메라를 집어넣지 않고도, 박태진은 마탑 전자가 개발한 의료기기를 통해 3차원 영상을 보며 손쉽게 주사를 놓을 수 있었다.
“약효가 발휘되려면 최소 2-3시간은 걸립니다. 완치되려면 최소 1주일은 잡아야 하고요.”
“하지만 저는······.”
안지민은 당장 돈을 벌어야 되는 입장에서 일주일을 입원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손실이 막대했다.
게다가.
‘입원비도 없어···.’
아리가 마탑에 취직시켜주는 대가로 무료로 치료해주겠다고 했지만, 염치없이 입원비까지 달란 말이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아리는 그러한 낌새를 눈치채고 먼저 나섰다.
“태진 씨. 이분 이제 우리 마탑 직원인데 무료로 병원 신세 좀 질 수 있죠?”
아리의 말에 박태진이 입가에 흐른 침을 스윽 닦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연하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푹 누워 계십시오. 꼭대기 층의 특별실을 비워두겠습니다.”
“고마워요, 태진 씨.”
“하하하, 스읍. 뭘 이 정도 가지고요.”
아리는 원래 이런 부탁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자신이 지켜주고 싶은 사람 앞에선 늘 과감해졌다.
“그럼 부탁할게요.”
“네 걱정 붙들어 매십쇼. 사모님. 일주일 안에 완치할 수 있도록 제가 특별히 관리하고 치료해놓겠습니다.”
아리는 박태진의 장담을 들은 후, 안지민을 돌아보았다.
“자, 이제 병원비 걱정마시고 푹 쉬시는 거예요. 아셨죠?”
“흑흑. 아리 씨. 너무 고마워요. 이 은혜를 어떻게······.”
“고마우면 앞으로 마탑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줘요. 지민 씨도 이제 마탑 직원이잖아요.”
아리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눈물을 휴지로 닦아주었다. 어느새 고왔던 그녀의 눈가엔 잔주름이 가득했다.
나이는 아리와 동갑인 28살이었는데, 겉모습은 30대 후반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치료하실 동안 초율이는 저희 집에서 돌보도록 할게요. 실프도 초율이를 많이 좋아하니까요.”
“아니에요. 그럴 필요까진···.”
“괜찮아요. 저도 초율이가 좋아서 일주일 정도 맡아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도 되죠?”
아리가 애교를 부리면서 하는 말에, 안지민은 결국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몸조리 잘해요, 지민 씨. 일주일 후면, 예전 정상이었을 때로 돌아가 있을 거예요. 알겠죠?”
“네. 정말 고맙습니다. 아리 씨.”
아리는 안지민과 함께 직접 특별실까지 올라가며, 그녀의 손을 도닥여줬다.
“와, 넓다.”
1인실 중에서도 고위급 장관이나, 아니면 재벌들만 사용한다는 마탑 병원 특별실.
하루 입원비가 무려 1000만 원이나 하는, 초호화 입원실이었다.
최고급 개인 냉장고는 물론, 샤워실과 각종 편의 시설들이 최고급으로 완비되어 있었다.
“엄마엄마. 여기 되게 넓고 좋다.”
“초율아···”
안지민은 자신의 침대 주변에서 병실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 일주일 동안 여기 입원해야 돼.”
“엄마 많이 아파?”
“응. 근데, 실프네 아주머님께서 엄마를 많이 신경 써 주셔서 이제 다 나을 거야.”
“와, 다행이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초율이는 허리를 넙죽 접으며 아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아냐, 초율아. 근데, 엄마가 일주일 입원하면 초율이가 아줌마··· 집에 와서 일주일 동안 머물러야 하는데, 그럴 수 있지?”
아리는 자신의 입으로 ‘아줌마’를 발음하며 살짝 움찍했지만, 곧 멘탈을 되찾았다.
“네, 아줌마. 저 잘 지낼 수 있어요.”
초율이는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실프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얘가 참 씩씩하네요.”
아리는 초율이의 뒷모습을 보며, 실프와는 다르게 참으로 의젓한 아이라고 느꼈다.
*
“아, 오빠. 진짜 H코스로 갈 거예요?”
나와 이지수, 차수연은 전자공학 개론 강의를 끝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글쎄···.”
나는 풋풋한 두 소녀들과 나란히 걸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사실, 유하은 교수의 질문에 나는 ‘생각해 보겠다’라며 확답을 피했다.
“그런데 왠지 준혁 오빠라면 H코스로 가도 통과하실 거 같은데······.”
이지수와 나란히 걷던 차수연이 쭈뼛쭈뼛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차수연을 잠시 쳐다보았다가, 살포시 미소를 머금었다.
‘되게 귀엽게 생기긴 했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지, 지나가던 남학생들도 모두 한번씩 이쪽을 돌아보고 가거나, 아니면 멍한 표정으로 아예 대놓고 뚫어지라 쳐다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물론 그 옆에 있는 이지수에겐 다들 별로 관심이 없었다.
‘지수도 마탑 성형외과에서 수술 한번 받고 싶다고 했었지?’
최근 학교 수업 준비 때문에 마탑 포인트를 별로 못 쌓아서, 수술받으려면 한 10년 이상은 걸릴 것 같다고 징징거렸다.
‘솔직히 마탑에서 시술해주는 성형은 거의 밸붕(밸런스 붕괴)급이니까 돈을 준다고 쉽게쉽게 해주면 안 되지······.’
얼굴은 단순히 보기 좋음을 떠나서, 이제는 경제적 가치나 권력의 용도로 사용되기 일쑤였다.
‘그러니, 그러한 무기를 쉽게쉽게 쥐여 주면 안 되지.’
원래 타고나야 하는 걸, 인위적으로 완벽한 미모로 바꿔주는데 그 정도 노력의 대가가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나는 무수히 많은 봉사와, 인성의 고양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에 한해서만 그러한 결실을 맺어줄 생각이었다.
얄팍하게 노력하는 척하면서, 눈속임으로 쉽게쉽게 가려는 녀석들은 일찌감치 쳐냈다.
‘차수연을 보면 사이즈가 나오잖아······.’
나는 온몸에서 귀티가 흘러나오는 차수연을 힐끔거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얘도 어디 재벌집 딸이거나 정치인 딸이겠지······.’
이 학교에 입학하는 80% 이상의 학생들이 대부분 고위층이나 돈 좀 있는 집안의 자녀들이었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지났으니까···’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발전될수록 빈부격차가 줄어든다곤 하지만, 상대적 격차는 오히려 70·80년대보다 더욱더 극심했다.
‘고위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도, 어느 정도 사는 집안의 교육받은 애들이 아닌 이상엔 어불성설이지.’
요즘도 각 신문이나 언론사들마다 자수성가한, 개천에서 용나는 케이스를 담아서 기사에 싣곤 했지만, 글쎄······?
‘사실 걔네들도 다 까보면, 어린 시절엔 부유하게 자라면서 좋은 교육을 받다가 뒤늦게 집안이 망해서 힘들던 케이스지.’
아예 처음부터 가난해서 애초에 배우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정말 어떻게 성공해야 되는지 전혀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 자체가 없었다.
‘부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이용하고 말이지.’
부자들은 자기네들만의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해서, 정보를 독점하고 자기네들끼리만 돈 되는 정보를 공유했다.
그리고 나머지 90%의 빈민층이 평생 그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아무런 정보도 공유하지 않았다.
그러다, 개천에서 용이 되어 상류층으로 오른 빈민층도 올챙이 적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다시 밑바닥에 있는 빈민층을 개무시했다.
그것이 바로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부자들의 그러한 독점을 막아야지···.’
지금 많은 사람들이 마탑의 독주를 두려워하고, 떨고 있었다.
개중엔 일반 서민들도 있었지만, 대개 정보와 자본을 독점하고 있던 재벌들과 고위층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그놈들은 내가 이렇게 모든 업종을 통폐합하고 다니는 것이 눈엣가시처럼 보이겠지······.’
내가 만약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그만큼 마탑의 성장세는 지금껏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해왔던 최상류층에겐 무척이나 위협적인 일이었으니까.
‘그들은 새로운 강자가 등장해, 새로운 질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금의 유리한 틀이 계속해서 자손 대대로 유지되기를 바라지.’
그것이 마치 천년만년 이어질 것마냥.
‘사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백 년도 채 넘기기 어려운 모래성 같은 허상인데 말이지.’
역대 모든 왕조를 통틀어도 2000년 이상 이어온 왕조가 드물었다.
우리나라에선 신라가 993년으로 가장 길었고, 전 세계적으로는 일본의 야마토 왕조가 1750년으로 가장 길었다.
게다가, 몽고 같이 엄청난 영토확장을 펼쳤다가 100년만에 망해버린 제국도 있었다.
‘결국 인간사(人間事)라는 것도 60억 년 우주의 순환에 비하면 고작 2만분의 1도 안 되는 시간일 뿐이니까······.’
인류가 태동한 시기가 이제 막 30만 년 정도 됐다. 그동안 제대로 발전한 시기는, 빙하기 시대가 막 끝나고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1만 년 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지금처럼 문명다운 문명을 누리며 산 것은 이제 막 300년 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인간들은 절대 자만해서는 안 돼.’
자기네들끼리 도토리 키재기를 하면서,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마구 업신여기고 개무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도 나중에 그렇게 똑같이 당하게 돼 있었다.
‘인간사란 원래 돌고 도는 거니까······.’
자기가 지금 잘 나간다고, 그게 세세토록 이어진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진짜 오만이고 엄청난 착각이었다.
‘내가 보기엔 얼마든지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을 수 있는 차이니까······.’
영원불멸한 것은 없다.
그것은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권력이나 돈, 명예 등 모든 것을 포함했다.
언제나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유동적이며 계속해서 변화한다.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하고, 새로 생겨난다.
그러니, 각자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지금 상황이 매우 암울하고 힘들고 괴로워도, 언젠가는 포커판이 뒤집히듯 180도로 완벽히 뒤집히는 날이 오는 것이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이지수 또한 자신이 스스로 발전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런 윗대가리들을 재낄 수도 있는 거지······.’
나는 각 개인의 ‘재능’같은 건 애초에 보지도, 듣지도 않았다. ‘누구누구가 재능이 있다더라’하는 말은 애초에 내게 정말 우스운 말일 뿐이었다.
‘재능보다 중요한 건 바로 생각이니까.’
아무리 더럽게 재능이 없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은 뒤바뀌는 법이었다.
아무리 재능 있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자만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때에는 결국 그 사람의 미래는 추락의 길을 걷게 된다.
세상사 균형이 원래 그렇게 굴러가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없었다.
‘H코스라···. H코스······.’
유하은 교수가 단 한 명의 학생도 통과하지 못했다던 헬 난이도의 코스라고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영원불멸’한 것은 없었다.
‘헬 난이도, 어디 내가 한번 깨볼까?’
나는 신입생 환영회로 가는 길목에서, 내 대학생활의 운명을 결정할 방향을 정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