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86
86
46.국개(3)
서울 강남의 어느 한정식.
그곳에서 오늘 야3당과 여당 대표가 모여 현재 일어나는 정치 상황과, 앞으로 어떤 식으로 나라를 이끌어 갈지 토의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드디어 미쳤소.”
제1 야당인 대한당의 대표 이규태가 결연한 목소리로 운을 띄웠다.
대한당은 제1 보수당으로서,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제헌국회를 구성,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 때부터 명맥을 이어온 당이었다.
그동안 여러 번 이름이 바뀌고, 세력이 통폐합되면서 겉모양은 계속 바뀌었지만 그 속내는 전혀 바뀌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만큼 색채가 짙은 당답게, 색깔-진영 논리로 그동안 많은 후보가 대선과 총선에서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2년 전 등장한, 색깔도 불분명한 어중간한 당이 갑작스럽게 등장해 한국을 집어삼켰다.
선진중립당.
대한민국에서 중립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웃긴 단어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한데, 드디어 그렇게 눈엣가시 같던 세력을 몰아낼 기회가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세력 전체가 아니라 대가리. 즉 대통령을 쳐낼 기회가 온 것이다.
“최근 대동그룹에게 무얼 얼마나 받아 처먹었길래 영양제를 건보료로 지급한다는 미친 소리를 하겠소? 이거 특검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대한당 박규태의 말에 한누리당 차동규 대표 또한 한목소리로 거들며 그렇게 외쳤다.
그가 당 대표로 있는 한누리당은 대한당에서 갈라져 나온 중도보수파였다.
과거 대한당에서 대통령 탄핵 사건이 있었을 때, 미친 대통령 후빨하는 당은 더 이상 보수가 아니라며 박차고 나온 국회의원들과 함께 꾸린 당이었다.
하지만, 결국 같은 보수로서, 또 정치적 이익을 제일로 추구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이들은 다시 뭉쳤다.
선진중립당이라는 거대한 적 앞에서.
“맞습니다. 최종환 그 자식이 뒷돈으로 수백억을 받아 챙긴 게 아닌 이상, 무언가 구린 게 있는 게 분명하지요. 아니면, 최종환 딸이 그렇게나 반반하다던데, 대동그룹 회장에게 스폰서라도 대줬을 지도 모르지·····.”
새천년당 양모찬 대표가 혀를 날름하며, 야비한 눈동자로 그렇게 말했다. 새천년당은 대한당에서 갈라져 나온 보수당의 한 갈래인데 현재 좌파도 우파도 아닌 여러 세력이 마구 뒤섞인 정체불명의 당이었다.
이념을 떠나, 정치-경제적 이득을 최우선으로 하는 당이라서 받아 처먹는 뇌물도 엄청난 양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유리할 때만 보수, 진보의 양 진영에 들러붙었다가 단물이 빠지면 또 다른 곳에 붙으며 박쥐 같은 처세 판단을 선택했다.
그래도, 국민들은 그들의 보여주기식 정치에 속아서 새천년당이 정치를 잘하는 줄 알고 매번 뽑아줬다.
아예 새천년당이 나오는 지역구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우리 당에서 배출한 대통령이긴 하지만, 저도 절레절레합니다.”
세 야당 대표의 뒷담화에, 마지막으로 선진중립당 대표 김병걸이 첨언하듯 그렇게 덧붙였다.
그는 겉으론 대통령의 편을 들어주는 척 언론플레이를 펼치면서, 속으로는 자신이 다음 대권을 쥐기 위해 최종환 대통령을 견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슨 수를 내야 하지 않겠소?”
대한당 대표 박규태는, 가제는 게 편이라고 여긴 김병걸 대표가 오히려 대통령을 힐난하자, 화색을 띄우며 그렇게 물었다.
이참에 대통령이 물러난다면, 차기 대선에서 대한당에게로 무조건 승기가 돌아온다고 여긴 것이다.
“수라······. 수는 많지요.”
그러면서, 김병걸은 들고 온 서류 가방에서 두툼한 a4용지 한 뭉치를 꺼냈다.
“이게 뭡니까?”
다른 대표들의 물음에 김병걸이 씨익 웃었다.
“최종환에 대한 그동안의 스캔들입니다.”
“오오······.”
“스캔들.”
“확실한 정보입니까?”
새천년당 양모찬 후보의 물음에, 김병걸 대표가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하고 안 하고가 중요합니까?”
“······그건 아니지요. 의혹만 나와도, 언론에서 집중포화만 넣으면 대통령 하나 몰아내는 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우니까요.”
“그렇지요, 하하하······.”
당 대표들이 자신이 넘긴 자료들을 훑어보며, 흡족한 얼굴로 침을 삼키는 걸 본 김병걸.
김병걸 대표는 호탕하게 웃어 재끼며, 입가심으로 나온 음식들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어차피 이 정보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김병걸은 그 말을 속으로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최종환 대통령의 업적이 깎여야 그의 입지가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진중립당까지 망해선 안 됐다.
그래서 당에 대한 정보는 일절 배제하고, 최종환에 대한 스캔들만 넘겼다. 예전부터 당 대표인 자신이 언론에서 누차 의혹을 흘리던 얘기들이었다.
물론 개중에 사실인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직, 기회가 왔을 때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비장의 카드일 뿐.
실상이 없는, 허상의 불분명한 카드이지만 효과만큼은 확실한.
아무튼, 과거 박 대통령의 탄핵처럼, 대통령은 갈아 치우더라도 당의 생존만큼은 어떻게 해서든지 지켜내야 했다.
이름을 바꾸든, 아니면 내부 사람을 갈아 치우든. 당이 어떤 옷을 갈아입든 일단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야 그 이후도 있는 거니까.
선진중립당 대표 김병걸은 본인이 직접 이 자리를 개최했다. 그는 청와대에 대통령의 최측근 세력에게 자신의 사람을 많이 박아놔서 현재 청와대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잘 알고 있었다.
‘현재 대통령은 힘이 없다. 아니, 없었어야 했다. 하지만, 갑자기 대동그룹 산하의 마탑그룹이 확 떠오르면서 급작스럽게 대통령까지 덩달아 힘을 받는단 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원래 김병걸이 짜놓은 시나리오는, 레임덕에 허덕이는 병신 같은 대통령을 자신이 구제하는 스토리로 가야 했다.
그럼으로서 국민들에게 확실히 눈도장도 찍고, 차기 대선후보로서의 역량도 멋있게 보여줬어야 했다.
하지만, 대동그룹이란 웬 듣도 보도 못한 녀석들 때문에 자신의 계획이 모두 망가져 버렸다.
최종환은 그저 의욕만 넘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대통령의 이미지로 남은 2년을 채우고 떨어져 나가면 되는데, 일이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절대 최종환이 4년 더 연임하게 내버려 둬선 안 돼······.’
그것은 김병걸 대표로서는 정말 끔찍한 대참사였다. 그동안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과 오찬 자리를 가질 때마다 최종환 후보를 쪼고, 개무시했었다.
그래도 최종환은 자신의 앞에서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자신 대신, 당내에 차기 유력 당대표 후보인 정사열 의원을 밀어주고 있었다.
정사열 의원은 이번에 서울시 시장에 역임된 파격적이고 진취적인 인물이었다. 나이도 40대 중반으로 젊었다.
게다가, 그는 한국을 뿌리째 바꾸려는 최종환과 죽이 잘 맞아서 친 대통령 파로서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다.
김병걸은 당 대표로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가, 자신이 내세운 당대표 파 의원이 정사열 의원에게 경선에서 깨지고, 서울시장까지 빼앗겨버려서 속이 말이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대통령의 태도도 예전 가지가 않았다. 예전엔 자신이 기침 소리만 내도 쩔쩔매던 사람인데, 이제는 아니었다.
당당히 자신의 눈을 쳐다보며 할 말 다 했던 것이다.
김병걸은 그것이 아니꼬웠다.
그동안 자신의 힘에 짓눌려 찍소리도 못하던 철없는, 의욕만 넘치던 대통령이 이제 슬슬 날개를 달 것 같으니까 자신에게 아부를 안 한다?
자존심 상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김병걸은 이번 일을 주도했다. 직접 야 3당 대표를 만나서 이참에 2년 정도 남은 대통령을 갈아 치우고 새 대통령을 세우자고.
그리고 이 땅에 민중의 깃발을 세우자고.
명분은 거창했지만, 속내는 자신들이 쥐고 있는 기득권을 놓치기 싫다는 소리와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다른 야 3당 후보들 또한 김병걸 대표의 말에 찬동했다. 그래서 당내에 의원들을 충돌질해 국회의사당 앞에 세웠고, 곧바로 정치 공세를 이어나갔다.
덩치가 크니 때릴 곳도 많았다.
일단 영양제에 건보료를 지급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대동그룹과 대통령 간의 모종의 뇌물수수 의혹을 엮는다면 탄핵까지 스트레이트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
그래서 4당 대표들은 기꺼이 손을 잡았다. 선진중립당 김병걸 당대표는 이제 공식적으로도 대통령과 선을 긋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언론에도 그렇게 떠들고 다닐 것이라고. 무능하고 능력은 쥐뿔도 없는 대통령이 의욕만 넘쳐서, 헌법을 수호해야 할 사람이 정작 헌법을 위반하고 제멋대로 일을 자행하고 있다고.
그런식으로 공세를 펼쳐서 대통령을 쫓아 내고, 차기 유력 당 대표 후보인 정사열 서울시장도 이참에 갈아버릴 생각이었다.
운 좋게 대국민 신드롬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된 정사열이었지만, 능력에 비해 아직 지지 세력이 미비했다.
업무 능력은 탁월하나, 국회의원들 간의 미묘한 정치 스킬은 아직 많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렇게 대통령과 차기 당대표를 날려버리고, 당 이름을 바꾼 후 탄핵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국민들 앞에서 마음껏 발휘해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다질 생각이었다.
“자, 앞으로의 건승을 위해 우리 건배합시다.”
“좋지~!”
“자자, 건배!”
“건배!”
김병걸 대표의 선언에, 다른 야 3당 대표들 또한 술잔을 들며 거나하게 건배를 외쳤다.
어느새 그들의 양쪽엔 쭉쭉빵빵한 여자들이 끼어 있었고, 이미 바쁘게 손을 놀리는 대표들도 있었다.
*
-안녕하십니까. kbn 뉴스 리포터 정주리입니다. 현재 마탑 영양제에 대한 추가 건보 지원 특별법 표결을 앞두고 야3당 의원들이 전원 표결을 보이콧했습니다. 그럼으로 인해 표결은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계속 지연되고 있습니다. 현재 여당은 친 대통령파만 본회의장에 남은 채 여당까지 등을 돌린 상황입니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입구.
그곳에서 한 리포터가 현재 국회에서 일어나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촬영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대통령은 당장 특별법 법안을 취소하고, 민생이나 신경 써라!”
“나라가 다 죽어간다! 재벌들을 한국에서 몰아내서 일자리가 실종해 한국 경제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이상한 짓거리 하지 말고 그냥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라!”
“탄핵이 답이다!”
국회의원들은 일반 시민들이 하는 것처럼 피켓을 들고 의사당 입구에서 대통령 탄핵 시위를 벌였다.
야3당을 포함해, 선진중립당에서도 적지 않은 의원들이 피켓을 들고 당외투쟁중이었다.
모두 당 대표인 김병걸 의원의 따까리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있었다.
이미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이런 경력이 있었고, 또 한 번은 성공도 해봤기에 그들은 이번에도 성공하리라 믿었다.
감히 기득권의 목을 죄면, 어떻게 되는지 단단히 보여줄 심산이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여야가 모두 합심해서 대통령이 하는 일을 막는다면, 최종환 대통령으로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쐐액, 퍼억ㅡ!
“으악!”
한 국회의원의 얼굴로 계란 한 개가 날아와 그의 얼굴에서 무참하게 터졌다.
“탄핵은 너네가 당해야지 새끼들아.”
광화문 광장 쪽에서 계란을 든 성난 군중들이 국회의사당으로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대통령이 아닌, 국회의원들을 탄핵하라!”
“탄핵하라!”
겉보기에도 수십, 아니 수백만 명은 되어 보이는 엄청난 군중의 파도. 모든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국회의사당역으로 몰려 들어오는 광경.
그것은 가히 ‘장관(壯觀)’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을 전율하게 만드는 엄청난 숫자의 파도였다.
“저, 저게 대체······.”
국회의사당 앞에 진을 치고 보이콧에 한창이던 수백 명의 의원들이 찔끔찔끔 뒷걸음질 치며 중얼거렸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동안 바닥을 기던 최종환 후보의 지지율이었는데, 어디서 저런 지지자들이 갑자기 나타나 최종환을 감싸 돈단 말인가?
“혹시 최종환 쪽에서 시위 알바라도 모집한 게 아닐까요?”
“대동그룹에서 자금을 댄다면 충분히 저 정도 숫자쯤은······.”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많은 것 같은데······.”
그들은 서로 갑론을박을 벌이며 어찌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쐐액, 퍼석ㅡ!
“으아아악!”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국회의원들에 대한 계란 투척 세례는 멈추지 않았다.
계란 뿐만 아니라 밀가루, 캡사이신,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등등······ 역대 시위에 쓰였던 각종 시위 도구들이 컬렉션으로 등장했다.
국개들로서는 생전 처음 당해보는 엄청난 굴욕이었다. 그동안 품위유지비다 활동비다 뭐다하며 나랏돈을 물쓰듯이 쓰면서 여기저기 치장하기에 바빴던 그들이었다.
그들이 지나가면, 시민들은 물론이고 모든 공무원, 심지어 국회의원이나 검찰들까지 허리를 접으며 벌벌 떨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의 위세란 그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한 권력의 신화가 지금 이 자리에서 처참하게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