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내가 소문낼 거야.
나는 양해조를 업은 놈에게 물었다.
“살아있나?”
“숨은 쉽니다.”
“그래? 뺨 한 대 맞고 죽은 놈이 될 뻔했네.”
“…….”
나는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문파 이름이 왜 만상문인가? 삼라만상의 그 만상인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너희는 제대로 아는 게 뭐냐.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일해서 벌어먹는 양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는 전부 나랑 비슷한 것 같은데. 병신 같은 동네 흑도에 속해서 일하는 사람들의 돈이나 뜯고.”
“…….”
“너희는 만상문이라서 사고 쳐도 별걱정 없지?”
걸으면서 흑도에 속한 놈들을 갈구니까 다들 조용히 내 이야기만 들었다. 몇 명이 길을 걷다가 찢어진 눈으로 나를 힐끔 바라봤다.
“왜? 그래도 남자라고 병신 같은 소리 들으니까 속이 부글부글 끓어? 못 참겠으면 한바탕하든가. 없어? 흑도가 왜 이래? 여긴 경쟁 흑도 세력도 없나?”
“있습니다.”
“어딘데.”
“북문 쪽에 벽력문(霹靂門)이 있고 동문에는 천응방(天鷹幇)이 있습니다.”
“안 싸워?”
“요새는 안 싸웁니다. 구역이 나뉘어 있어서.”
“평화로운 흑도네. 사이좋게 지내면서 각자의 지역에서 상인들 쥐어짜는 것으로 만족하다니. 상권이 발달한 모양이야. 나름대로 보호도 해주고. 대체 무엇으로부터 보호해주겠다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떠들다 보니 만상문에 도착했다.
양해조를 업은 놈이 내게 물었다.
“들어갑니까?”
“열어.”
담벼락 너머에서 한가로운 음악과 웃음이 뒤섞이고 있었다. 딱히 문을 지키는 놈도 없어서 수하들과 함께 만상문에 진입했다. 불을 여기저기 훤히 밝혀 놓았는데 정면의 건물 이 층에서 춤을 추고 있는 그림자가 바깥에서 보였다.
술과 무희, 음악이 있는 저녁이었다.
너무 팔자가 좋아 보여서 보는 나도 당황스러웠다. 나는 양해조의 수하들을 따라 걷다가 공중으로 솟구쳐서 이 층의 창호지 부분을 박살 낸 다음에 입장했다.
무희 두 명이 짤막한 비명을 지르면서 춤을 멈추고.
좌우에 둘러앉아 있었던 사내들이 일어섰다. 정중앙에 있는 사내가 손을 들자, 그제야 음악이 멈췄다.
나는 만상문주로 추정되는 사내를 주시했다.
“만상문주?”
좌우에 나뉘어서 대기하던 사내들이 검을 뽑자, 만상문주가 다시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다들 앉아라. 누구신데 갑자기 이렇게 등장했나?”
여기까지 올 때는 살짝 졸린 상태였는데 만상문주의 분위기를 보자마자 잠이 확 달아났다. 동네 흑도의 우두머리가 앉아 있을 줄 알았는데 산전수전을 다 겪은 흑도 사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짤막하게 소개했다.
“하오문주.”
“하오문주셨군. 소문 자주 들었소. 자리 내어드리고 무희들은 들어가.”
만상문주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자그마한 다탁이 놓이고, 무희들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만상문주가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문주에게 잘못한 것은 없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문을 박살 내면서 등장하셨소.”
나는 저절로 눈이 커졌다.
‘뭐야? 신선한데?’
나이는 많지 않은 상대였지만, 오랜만에 보는 흑도여서 다탁 앞에 앉았다.
아래에서 누군가가 급히 올라오더니 말석에 있는 간부에게 고했다. 전해 들은 간부가 다시 만상문주에게 말을 전했다.
“문주님, 양해조 조장이 하오문주에게 따귀를 맞아서 기절했는데 아직 못 일어나고 있답니다.”
만상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양 조장이 실수했나 보군.”
만상문주가 나를 보면서 자신부터 소개했다.
“순우진(淳于振)이라 하오. 양 조장이 명성이 자자한 하오문주에게 무슨 일로 따귀를 맞았소?”
질문에 딱히 빈틈이 안 보였다.
“약초꾼이라고 소개했더니 봇짐을 탐내더군.”
나는 대충 대답한 다음에 벽에 걸린 장검과 벽에 걸린 그림, 다탁과 의자의 모양, 전체적인 색감과 수하들의 얼굴, 분위기를 둘러본 다음에 질문했다.
“문주는 군부 출신인가?”
간부 일부의 생김새가 다소 이질적이었는데 그것은 만상문주도 마찬가지였다. 보기 드문 순우 씨가 제법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씨족에서 출발한 흑도 세력이었다.
만상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조께서 잠시 나라에서 녹을 받은 적이 있소.”
“장군가 출신이 왜 이런 흑도 문파를?”
“그 선조라는 분이 패장이었는데 코와 귀, 손가락을 잘린 다음에 조리돌림을 당하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후에는 출세가 막혔고. 딱히 역적 가문은 아니었으나 역적 가문에 버금가는 비난과 조롱을 받다 보니 이렇게 흘러왔소. 대답이 되었소?”
“그렇군.”
“문주께서 무림맹주와도 친하시고 제천맹주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는 사내라 들었소. 무공도 분명 뛰어나시겠지. 수하가 잘못한 것은 내가 대신 사과하리다. 원하는 게 있으시오?”
흑도의 수장이라서 그런지 대화의 전개가 시원했다.
“몇 곳에서 상납을 받나?”
만상문주가 대화의 핵심을 알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다 합치면 백여 개가 넘소.”
“그 돈은 어디에 쓰고.”
“성벽은 사라졌으나, 이곳은 본래 막성이라 불렸소. 막성 전체는 천응방에게 상납하는 구조였고. 내가 천응방 세력을 조금 밀어내고 내 쪽에 있는 상인들에겐 천응방에게 바치던 돈의 절반만 받고 있소. 본래 이곳에는 놀고먹는 사내들이 많았는데 거둬서 밥을 먹이다 보니까 가문의 돈만으로는 유지할 수가 없소.”
“받지 않으면?”
“받지 않으면 꽤 많은 자를 만상문에서 내보내고. 우리끼리 벽력문과 천응방을 상대해야 하는데 거기까진 아직 결정하지 못했소.”
“벽력문과 천응방의 평판은?”
“우리와 비슷하오. 말씀하셨다시피 흑도라서.”
“선을 넘은 사업은?”
“우리는 없소.”
나는 만상문주 순우진을 위아래로 살폈다.
똑똑한 사내라서 짧은 질문도 대부분 정확하게 이해한 것처럼 대답했다. 당장 내게 덤빌 정도로 무모하지도 않고, 기본적으로는 대화로 풀어나가려는 기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허접하게 싸움질을 하는 사내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일단 벽에 걸린 장검만 해도 평범한 사람은 휘두를 수가 없는 무게였다.
물론 사람은 오래 지켜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인근의 상인들을 하오문도로 받아들이려는 내 결정이 아예 만상문을 하오문으로 영입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할 문제가 되었다.
내가 뜬금없이 막성 지역에 정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굳이 효율을 따지자면 만상문주가 내 뜻을 따르는 게 가장 낫다.
지금까지 만상문주의 수하들은 입 한 번 뻥긋하지도 않은 상태.
만상문주가 물었다.
“술이나 차를 드려도 괜찮겠소? 참고로 나는 적에게도 독은 쓰지 않소. 가풍이오.”
“그렇다면 두강주로.”
“두강주로.”
만상문주의 말 한마디에 바깥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독이 있으면 두강주를 얼린 다음에 만상문주에게 던지면 그만이다. 수하들이 끝까지 입을 닥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만상 문주 좌측에 있는 사내가 말했다.
“하오문주께서 마교와도 싸웠답니다. 들으셨습니까?”
만상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이때, 계단 아래에서 누가 올라오더니 만상문주에게 보고했다.
“양 조장이 깨어났는데 사과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오라고 해.”
“예.”
곧장 얼굴 한쪽이 부어오른 양해조가 들어오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릎을 꿇었다.
“문주님, 죄송합니다.”
만상문주가 물었다.
“하오문주께 무슨 잘못을 했나? 얼굴이 많이 부었군.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어볼 테니 변명으로 빠져나가지 말게.”
양해조가 대답했다.
“……그게 그러니까 황학객잔에서 제가 약초꾼으로 오인하고 불렀다가.”
“불렀다가.”
“봇짐을 좀 보려고 했습니다.”
갑자기 만상문주의 얼굴이 시뻘겋게 돌변하더니 양해조에게 말했다.
“하오문주에게 사과하고 나가서 대기해.”
“예.”
양해조가 나를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문주님.”
나는 고개를 든 양해조를 바라봤다.
“양 무인.”
“예.”
“황학객잔의 가격표는 그대가 손을 댔나?”
양해조가 놀란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자, 간부 한 명이 일어나더니 양해조의 뒷덜미를 붙잡은 채로 질질 끌고 나갔다. 계단 쪽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간부가 다시 헛기침하면서 자리로 돌아왔다. 계단 밑으로 집어 던진 모양이었다.
만상문주가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도 굴러들어온 돌이라 상인들 상대는 이곳 출신에게 일부러 맡겼는데 이것도 내 불찰이오.”
그 와중에 작은 다탁에 두강주와 술잔이 놓였다.
중간쯤에 있는 사내가 갑자기 만상문주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문주님.”
“시끄럽다.”
양해조의 직속상관인 모양이었다.
나는 만상문주에게 물었다.
“만상문, 벽력문, 천응방이 모여서 협의한 다음에 세 곳 다 상납을 받지 않으면 세 문파가 굶어 죽나?”
“그렇지 않소.”
“그럼 그렇게 하자고.”
“일단 의사라도 전달하려면 막성 중앙에 있는 수월정(水月亭)에서 모여야 하고. 지금까지 수월정에서 모였을 때 싸우지 않은 적이 없었소. 사마외도 고수를 불러와서 나를 공격한 적도 있소. 그러니까 기본은 대놓고 한쪽의 수장을 죽이고자 했을 때. 알면서도 그것을 받아칠 준비가 되었을 때 셋이 모였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상문주.”
“말씀하시오.”
“내가 근래 무림공적들을 때려죽여서 받아야 할 현상금이 아주 많아.”
“음.”
“그 액수면 막성에 무림맹 지부를 자그맣게 하나 만들어도 부족하지 않을 돈이야. 연락해서 하오문주가 보잔다고 전해. 무림맹 지부를 이곳에 만들 것인지. 하오문 지부를 만들 것인지 선택들 하라고.”
간부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참고로 나는 무림맹에 여러 차례 도움을 줬지만, 지금까지 대가를 받은 적이 없어서 맹주께서 진지하게 고려하겠지. 맹과 제법 멀어서 운영하는 게 부담스럽겠지만 내가 도와주겠다고 하면 분명히 이곳에 지부가 생길 거야.”
나는 만상문주를 바라봤다.
“임 맹주 성격이면 일단 세 문파의 수장들을 잡아다가 가둬 둔 다음에 일을 진행하겠지. 수월정에 모이라고 해. 강호에서 내 근래 평판이 어떠한가? 내가 이렇게 평화로운 해결 방법을 제안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야. 남악녹림맹이나 이런 동네의 흑도나 나한테는 비슷비슷하다고. 말로 할 수 있을 때 말로 하자고. 문주 생각은 어떠신가?”
순우진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물었다.
“만약 두 수장이 앞에서는 알겠다고 하고 문주가 떠나시면 전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할 수도 있소.”
나는 순우진의 말에 웃었다.
“그것참 이상하네. 그 돈을 조금 더 벌겠다고 목숨을 포기한다는 뜻인가? 상인들이 일해서 버는 돈이 애초에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는 거 아니야? 음식을 만들어서 팔고, 봇짐에 든 물건을 팔아서 챙긴 돈이 어찌 너희들의 것이냐? 흑도가 천하 곳곳에 너무 많아서 나도 일일이 죽여댈 수가 없다. 하지만 가끔은 나 같은 놈도 있어야지. 남의 돈 뺏어가면서 사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건 내가 차차 알려줄게. 하지만 그거 알았을 때는 곧 뒤질 때야.”
“…….”
“나 바쁜 사람이야. 지금 연락해서 수월정으로 오라고 해. 안 오면 쳐들어간다. 흑도 새끼들 다 밤에 늦게 자잖아? 아니야? 밤에 늦게 자서 흑도라고 알고 있는데 아님 말고.”
나는 그제야 두강주를 술잔에 따랐다.
두강주가 또르륵― 소리를 내면서 술잔에 떨어지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나는 두강주로 된 뾰족한 빙주(氷酒)를 뜯어낸 다음에 말석에 있는 간부에게 내밀었다.
간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빙주를 받았다.
나는 간부에게 말했다.
“빨아. 독이 있는지 없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간부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빙주를 빙당처럼 빨아먹었다. 나름대로 맛이 있는지 눈을 크게 뜬 채로 빙주를 쪽쪽 빨다가 내게 말했다.
“독이 없네요. 문주님, 편히 드십시오.”
내가 얼어붙은 두강주의 술병을 염계로 녹이자, 술이 다시 쏟아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순우진이 간부에게 말했다.
“서찰 좀 준비해라.”
“예.”
“한 시진 후, 수월정에서 긴급하게 모이라고 전달하고. 모이지 않는 문파는 하오문과 만상문이 연합해서 공격하겠다고 전해. 하오문주께서 직접 와 있다고 적어. 이 밖의 전달 사항은 전령이 말로 경고해라. 무림맹 지부가 설립될 수 있다는 것도 반드시 전달하고.”
“알겠습니다.”
내가 무공이 아무리 강해져도 이런 일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애초에 무공을 익힌 목적이 이런 행태를 보고 지랄하기 위해서 익힌 것이기 때문이다. 내 객잔은 불에 탔지만, 그때 당한 게 너무 억울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비슷하게 당하는 것은 눈 뜨고 넘어가지 못할 일이었다.
나는 시종일관 침착하게 응대하는 순우진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런데 문주는 내 실력이 대충 보이나?”
“정확하게는 모르겠소.”
“그런데 협조적으로 나온 까닭은?”
“본래 무림맹의 남쪽 흑도에서는 제천맹주에게 대든 사람과는 부딪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소. 대표적으로는 문주가 그렇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제천맹주에게 대들었다니 그건 좀 논란이 있겠는데? 나를 너무 낮춰 보는 발언이야. 내가 제천맹주 아랫사람도 아니고.”
“정정하리다.”
“어떻게 정정할 건데?”
“가르침을 주시오.”
“만나는 흑도마다 전해. 제천맹에는 내가 혼자 쳐들어갔어. 제천맹주와 겨루는 와중에 개방 방주가 등장하셔서 중재하셨기 때문에 싸움이 도중에 멈췄지. 대들었다니? 기분 나쁘게.”
나는 뒤끝이 있는 남자라서 앞서 만상문주가 했던 말도 정정했다.
“그리고 나랑 연합하겠다고 올려치지 마. 나 혼자 가도 벽력문하고 천응방은 몰살할 수 있어. 그놈들이 뭐 맹주 급의 고수야? 아니잖아.”
“아니외다.”
나는 그제야 경계하는 눈빛으로 두강주를 살피다가 결국에 입은 대지 않았다. 대신에 생각나는 대로 흑도를 한 번 더 협박했다.
“하여간 가장 병신 같은 놈들은 앞으로 하오문주와 의형제라고 내가 소문낼 거야. 그럼 어떻게 되겠어?”
만상문주와 간부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는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정답을 알려줬다.
“마교한테 암살당하겠지.”
나는 웃지 못하는 놈들을 보면서 홀로 웃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대답하는 놈이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