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우리는 불쌍한 놈들이 아니다.
“……하오문주!”
먹을 것은커녕 한 모금의 물도 찾지 못했는데 객잔 바깥에서 누군가가 나를 애타게 불렀다.
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로 객잔에서 세 사람을 쳐다봤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민심이 우리에게 없으면 동호에서 물 한 모금 마시기도 어렵겠다고.
솔직히 이런 싸움이 될 줄은 몰랐다. 실력으로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고, 마시고, 잠을 자는 것도 겨루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의 싸움이라는 것은 항상 민심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하오문주!”
색마가 낄낄대다가 나를 바라봤다.
“애타게 부른다. 대답 좀 해주라.”
내가 끝내 대답하지 않자, 바깥에서 본론이 나왔다.
“……나는 비객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귀룡(鬼龍)이다. 나와라. 일대일이다. 사도제일인과 무관하게 그대가 죽인 비객의 복수를 위해 생사결을 청한다. 그대와 본래 관련이 없었던 흑향을 때려 부순 짓보다 내 은원이 더 깊은 것 같은데. 방해나 간섭없이 일대일을 할 것이니 나오너라.”
나는 세 사람에게 분위기를 대충 설명했다.
“기습이 없다는 것은 믿을 수 없어. 기관장치 암기라도 등장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다. 내키지 않으면 내가 먼저 싸우마.”
나는 휴식을 멈춘 다음에 일어났다.
“비객은 내가 죽였는데 그럴 수는 없지.”
바깥으로 나가보니 거리가 한산해서 객잔 앞이 그대로 넓은 비무장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조금 떨어진 곳이나, 건물 이곳저곳에서 반짝이는 눈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홀로 서 있는 귀룡을 바라봤다.
나이는 서른이 넘어 보이고 휘어지는 칼을 허리에 찼으며 실력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주변도 살폈다.
어디에서 암기가 날아올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구경하는 자들이 곳곳에 있었다. 거리가 조금 있긴 했으나 어차피 고수들에겐 별 의미가 없는 거리였다.
나는 객잔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주변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귀룡을 타일렀다.
“비객은 내가 죽인 게 맞다. 그전에 무림공적에 올랐더군. 무림공적이 되기가 쉽지 않아.”
자하객잔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 옆에 대충 앉는 사대악인들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공적은 온갖 염병할 짓을 다 해야 명단에 오를 수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무림맹의 고수들에게 잡혀서 죽었을 거다. 그대는 정말 비객의 친구인가? 그럼, 애도를 표한다. 그러나 친구라는 표현이 비슷한 악행을 저질렀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친구 곁으로 보내주마. 어때? 죽이기 전에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알아야지. 사도제일인과 싸우려고 왔는데 왜 자네가 나섰나. 정말 복수 때문이야? 용기가 대단하네.”
눈앞에는 귀룡이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사도제일인과 민심을 겨뤘다.
“싸우다가 나한테 화살이라도 날아오는 거 아니야? 그럼 곤란한데. 혹시 그거 믿고 지금 나한테 도전하는 것은 아니지?”
귀룡이 대답했다.
“개소리 그만하고 나와라.”
이때, 가만히 있었던 검마가 입을 열었다.
“이보게…….”
귀룡이 검마를 바라보자, 검마가 단조로운 어조로 물었다.
“죽을 셈인가? 예, 아니요, 로만 대답을 듣고 싶구나.”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이제 살려주고 싶어도 살려줄 수가 없었다.
귀룡이 휘어진 칼을 뽑아서 검마를 겨눴다.
“당신은 빠지도록.”
귀룡의 말에 색마와 귀마도 짤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쯧.”
검마는 아무런 말 없이 일어나서 귀룡에게 걸어갔다.
맏형이 나선 터라,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간 검마가 어느 정도 발전한 것인지는 나도 감이 오질 않았다. 여기서 전력을 노출하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어쨌든 지켜보는 눈이 많았기 때문이다.
검마는 그저 귀룡을 향해 걸어가기만 했다.
짧은 시간이었으나 귀룡의 표정은 그야말로 다채롭게 변하다가 창백해졌다.
그래도 용기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귀룡이 무어라 버럭 소리를 내지르더니 아직 검을 뽑지 않은 검마에게 휘어진 칼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검마는 광명검을 아주 자연스럽게 뽑아서 걸어가던 자세 그대로 귀룡의 복부에 박아넣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동시에 귀룡의 칼을 왼손으로 정확하게 붙잡았기 때문이다.
“끄아아아아악!”
돼지 한 마리가 우물에 떨어지는 것 같은 괴성이 들리더니 광명검에 뚫린 귀룡이 공중에 뜬 채로 허우적대다가 축 늘어졌다.
순간 검마가 고개를 좌측으로 기울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미세하게 반짝이는 무언가가 이미 죽은 귀룡의 이마에 꽂혔다. 죽은 귀룡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검마가 광명검을 뽑아서 시체를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돌아서서 우리의 좌측 건물 어딘가를 덤덤한 표정으로 올려다봤다.
“…….”
검마의 신형이 공중으로 빛살처럼 튀어 나가더니 이내 굉음이 터졌다.
콰아아아아아앙!
나는 굳이 일어나서 구경하지 않았다.
건물의 벽이 박살 나는 소리가 나더니 비명이 터지고, 무언가가 자꾸만 잘려서 바깥에 떨어지는 소리, 이를 아우르는 요란한 소리가 몇 차례 이어지다가 어느새 고요해졌다.
잠시 후에 툭― 소리와 함께 검마가 다시 바닥에 떨어지더니 우리가 있던 곳으로 귀환했다.
귀마가 말했다.
“고생하셨소.”
검마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색마는 그 와중에도 검마의 눈치를 보다가 헛기침을 한 다음에 말했다.
“역시 기습하려는 놈들이 있었군요. 암기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검마가 대답했다.
“작은 독침이었다.”
검마는 광명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다음에 칼날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가 고프면 이따 동호에 나가서 낚시라도 하자꾸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딱히 전력 노출이랄 것도 없었다. 죄다 한칼에 죽이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에 숨어 있는 자들에게 들으라는 것처럼 말했다.
“……들어라. 우리가 고작 네 명이긴 하나 사도제일인은 수하를 보내거나 고용된 낭인, 동맹 세력, 잡다한 살수들도 지금 사태를 해결할 수가 없다. 그럴 수가 없지. 동호에 뛰어들어서 살아있는 물고기만 요리해서 먹을 거라 우리에게 독도 소용없다. 식수도 그때 해결하마. 밤새 자객을 보내서 수면을 방해하려는 작전도 별 의미가 없다. 나는 애초에 수면 장애가 있기 때문이야. 잠을 원래 잘 못 잔다는 말씀이지. 무엇보다 나는 수하들의 목숨을 일일이 때려죽이는 것을 원하지 않아. 너희들은 아직 명령을 따르면서 사는 삶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왔으니 그것을 벗어나길 바란다. 이 싸움은 사도제일인이 죽어야 끝이 난다. 고민해 보도록 해. 너희까지 모조리 죽을 이유는 없다.”
객잔 주변이 심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쉰 다음에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나 누구랑 얘기하냐.”
색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맨날 혼자 중얼대. 대답해주는 사람도 없는데.”
이때, 우리는 동시에 우측을 바라봤다.
“음.”
등에 커다란 봇짐을 진 사내가 씩씩한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는데, 사내는 우리를 쳐다보지 않은 채로 전방을 노려보면서 걸었다.
얼굴은 황토색에 가깝고 체구는 작았으며 눈빛이 날카로운 사내였다.
복장과 분위기가 참으로 기이했다.
마치 옛 전쟁터에서 수백 일 동안 전령 일을 하다가 지금 막 도착한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 앞까지 도착한 사내가 갑자기 멈추더니 절도 있게 좌향좌로 돌아섰다.
나는 이 사내도 여기서 죽으려나 싶어서 내심 놀랐다.
“……!”
하지만 우리의 정면에 선 사내가 포권을 취하더니 검마, 귀마, 나, 색마에게 차례대로 예를 올렸다가 자신의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대체 어디서 등장한 정신 나간 놈일까.
사내가 느닷없이 서책 한 권을 꺼내더니 새카맣게 칠해진 겉표지를 올려서 우리에게 보여줬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저는 등량입니다. 동맹의 표시로 저와 같은 것을 보여주세요.」
자신을 등량이라고 밝힌 사내가 품에서 시커먼 비수 한 자루를 꺼냈다. 나는 저것이 묵가비수임을 알아보고 품에서 똑같은 것을 꺼내서 보여줬다.
그러자 등량이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책의 다음 장을 보여줬다.
「여러분의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서책과 묵가비수를 재빨리 품 안에 숨긴 등량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우리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탁자 옆에서 봇짐을 주섬주섬 풀어냈다.
“음.”
등량이 손으로 탁자 두 개를 가리키더니 손수 이어붙였다.
그러더니 봇짐에서 작은 보자기를 계속 꺼냈다. 어떤 건 동그랗고 어떤 것은 길쭉했다. 등량이 손으로 풀어보라는 시늉을 하더니, 봇짐 안에 있는 나머지 보자기들을 두드리면서 객잔 안을 가리켰다.
나머지는 안에 보관하겠다는 뜻인 것 같아서 내가 대답했다.
“그러시오.”
등량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으로 들어가서 구호물품을 내려놓는 와중에 색마와 내가 보자기를 주섬주섬 풀었다.
보자기 안에는 다시 대나무 잎이 나왔는데, 그 안에 정성스럽게 만든 아기자기한 주먹밥이 들어있었다. 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두만큼 작은 만두와 소금을 살짝 뿌린 고기, 부피가 작은 과일도 있었다.
예술미가 돋보이는 죽엽 단사(簞食, 도시락)였다.
귀마가 길쭉한 보자기를 열자 여러 개의 죽통에 물과 술이 나뉘어 담겨 있었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정성스러운 배달 음식은 처음 봤다.
검마마저 살짝 감탄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단사호장(簞食壺漿)이다.”
색마가 물었다.
“사부님, 무슨 뜻입니까?”
“대나무에 담은 밥과 병에 담은 음료수로 군대를 환영한다는 뜻이다. 뜻하지 않은 동맹의 보급이구나.”
“예.”
등량이 안에서 나오더니 서책을 다시 펼쳤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맛있게 드십시오. 배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연히 배웅할 생각으로 일어났다. 동시에 검마가 말했다.
“필요하지 않아도 우리 마음이 불편하니 배웅을 받으시오. 몽랑아, 네가 안전한 곳까지 동행했다가 돌아와라.”
색마가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먼저 드십시오. 기습이 있으면 이것도 못 먹습니다.”
나는 일어난 김에 등량에게 포권을 취했다.
등량이 우리를 한차례 둘러보더니 씨익 웃었다. 이어서 탁자를 손으로 척 가리켰다.
우리의 시선이 탁자로 향했을 때.
등량은 색마가 따라붙을 틈도 주지 않은 채로 경공을 펼쳐서 순식간에 달아났다.
바람이 한차례 시원하게 불었다.
“…….”
손짓으로 시선을 돌린 다음에 치고 빠지는 속도를 보아하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귀마가 감탄했다.
“그것참 귀신 같은 행보로군.”
살짝 놀란 색마도 등량을 바라봤다.
“제법 빠른데요? 꼼짝없이 당했네.”
색마가 침을 꿀떡 삼키면서 바라보자, 검마가 말했다.
“밥 먹자. 갔으니 어쩔 수 없지.”
“예.”
보자기를 다 풀어보니 끝이 뾰쪽한 쇳덩이로 만든 젓가락까지 들어있었다.
아니, 이렇게 꼼꼼할 수가?
나는 강철로 된 젓가락을 보면서 감탄했다.
“암기까지 주고 가네. 와, 이건 대단할 정도로 꼼꼼하다.”
색마가 내게 물었다.
“그냥 젓가락 아니냐? 과대 해석인데.”
“못난 놈, 젓가락을 굳이 왜 이런 강철로 보내냐.”
굳이 등량이 목소리도 내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묵가라는 말을 아예 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사대악인도 묵가라는 말은 입에 담지도 않았다. 대신에 우리는 재빨리 작은 주먹밥을 입에 먹고, 죽통에 담긴 물도 나눠 마셨다.
세상에 이런 맛이 있을까.
가끔 누군가가 기습하진 않을까 걱정했으나…….
앞서 너무 끔찍하고, 허망하게 죽은 자들의 시체가 아직 식지도 않은 터라 추가로 목숨을 내던지는 불쌍한 놈들은 없었다.
여기서 또 싸우면 죽으러 오는 놈들도 불쌍하고, 밥을 먹다가 일어나야 하는 우리도 불쌍해진다.
우리는 나쁜 놈들이지 불쌍한 놈들이 아니다.
색마가 작은 만두를 강철의 젓가락으로 집으면서 말했다.
“이거 완전 꿀맛인데요.”
귀마가 대답했다.
“안에 꿀이 들어있다.”
“뭐?”
“꿀이 들어있다고. 꿀 만두야.”
“지랄.”
개소리가 한참 어긋나는 것 같아서 직접 확인해보니 만두 중앙에 진짜 꿀이 들어있었다.
세상에, 꿀이 들어간 만두라니.
나는 무심코 검마와 눈을 마주쳤다가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서로 고개만 끄덕였다.
검마도 꿀이 들어간 만두를 씹으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대단한 동맹이로군. 문주가 강호를 돌아다닌 보람이 있군.”
“그러게 말이야.”
새삼스럽게 먹고 사는 문제가 이렇게 인연으로 해결되었다. 그러고 보면 묵가는 수성의 달인들이다. 굳이 우리가 싸울 때는 나타나지 않고, 보급이 필요할 때 적절한 것을 주고 빠져나간 상태였다.
살행에는 동참하지 않으나 아군을 돕고 있었으니 실로 묵가다운 대처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묵가가 준비한 단사를 깨끗하게 비워낸 다음에 죽통에 담긴 술을 한 모금씩 나눠 마시면서 동호의 번화가를 물끄러미 구경했다.
전쟁 중이었지만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죽통에 담긴 술도 두강주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