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404
404화. 화산에서 논검하다.
내 머리에 든 생각은 이렇다.
‘곱게 죽이지 말아야겠다.’
나는 맏형을 바라봤다가 입을 열었다.
“죽음에 대해 논의해보자. 죽고 죽이기 전에 서로 의견은 들어볼 수 있지 않나?”
돈, 죽음, 검이 엮인 대화는 논검이다.
위 좌사는 말이 없었는데, 해남살성이 허락했다.
“해봐라.”
“통용 은자 육천 개. 많은 돈이다. 살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면 단순히 돈 때문에 살수를 하는 것 같진 않다. 강적을 죽이는 게 먼저겠지. 그러니까 기왕 죽일 거 돈도 받겠다는 거 아니냐.”
해남살성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오문주, 네가 본질을 이해하고 있구나.”
나는 해남살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바로 그것이다. 나는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너는 위 좌사의 본질을 이해하진 못하는 것 같은데.”
해남살성이 위 좌사를 바라봤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아닐 거야.”
“어떤 점이 그런가?”
“위 좌사에게 은자 육천 개는 많은 돈이 아니다. 재산에 비례해서 값을 치른다면 훨씬 많은 돈을 뱉어내야 해. 죽으면 재산도 소용없거든.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위 좌사가 그대를 파악했을 때 은자 육천 개가 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비현실적으로 많으면 의심하게 된다. 오히려 낮춘 셈이지. 네가 나를 죽이면 다행스러운 일이고. 실패해도 상관없다. 위 좌사가 내 무공을 미리 볼 생각으로 육천 개의 은자를 던진 셈이니까. 그렇다면 놀랍게도 네 목의 값도 고작 육천 개의 은자라는 뜻. 대신에 내가 판돈을 올리마.”
“뭐?”
“많이 올리지도 않겠다. 맏형과 나를 죽이면 은자 육천 개. 네가 수하들과 이곳에서 위 좌사를 죽이면 은자 일만 개. 내가 위 좌사만큼의 부자는 아니지만 그 정도 재산은 있다.”
해남살성이 위 좌사를 쳐다봤다.
“문주가 판돈을 올리는군.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잠시만, 살성.”
“말하게.”
“판돈을 제한하겠다. 당연히 위 좌사는 부자라서 판돈을 올릴 수 있어. 그렇게 되면 나랑 허풍 대결을 벌이게 돼. 협상은 여기까지. 이상의 판돈을 요구하면 내가 혼자 너희를 다 죽이겠다. 네가 고민할 것은 간단해. 내가 강한지 위 좌사가 강한지 가늠해서 결정하면 된다. 참고로 위 좌사는 자신의 힘을 온전하게 드러낸 적이 없을 것이다. 맏형이 보기에도 그렇지 않나?”
맏형이 말하기 전에 해남살성이 웃으면서 말했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 위 좌사가 강하다는 것을 말하는 의도가 무엇이지?”
나는 해남살성을 노려봤다.
“왜냐고? 네가 위 좌사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위 좌사에게 속았다는 뜻이기 때문이지. 제법 큰 도박이니까 올바르게 판단하라는 뜻이야. 실력을 잘 숨긴 위 좌사도 결국엔 내 무공을 보는 것에 너희를 희생해야 할 만큼 나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뜻이지. 누가 더 강해 보이나?”
그제야 해남살성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그러니까 위 좌사나 나보다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셈이라서 그럴 것이다.
가만히 있던 맏형이 위 좌사를 쳐다봤다.
“위 좌사.”
“왜 그러나?”
“언제까지 고양이 행세를 할 셈인가?”
위 좌사가 냉소를 머금었다.
“단 한 순간도 고양이었던 적은 없었다.”
맏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상인의 자세로구나. 결국에 늘 협상에서 우위를 가져가기 위한 조심성이자 마음가짐이었나?”
“좋을 대로 생각하도록.”
“오래전 일이다. 명천위가가 명확한 이유 없이 공동산에 있는 광성자의 후인들을 공격해서 서로 사상자가 많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미 끝난 싸움이고 후속 보고도 없었기 때문에 내버려 두었다. 이후로 명천위가 가주가 오랫동안 수련에 빠져 있고, 가솔들이 더욱 무리하게 돈을 긁어모은다는 보고를 들었다.”
위 좌사가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맏형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안다는 것은 교주도 안다는 뜻이다. 너는 교의 곳간을 채워주는 훌륭한 상인인 동시에 여러 가지 사고를 치고 다녀서 언젠간 죽여야 할 놈이었다. 네가 교주의 명령을 받아서 이 자리에 와있는 이유다. 알겠나?”
위 좌사는 별다른 타격이 없는 것처럼 웃었다.
맏형의 말이 이어졌다.
“공동산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들이 옛 무공을 복원하고, 폐쇄했던 문호를 개방해서 제자를 받아들였다. 너희 가문 때문에 백도의 한 세력인 공동파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고를 받았는데 복원이라는 뜻에 담긴 내용은 네가 더 잘 알 것이다.”
요약하면, 이 명천위가가 도가의 일맥인 광성자의 무공을 훔쳤던 모양이다.
어찌해서 마교 외당에 속한 가문이 도가 일문의 무공을 받아들인 것일까. 한편으로 이상했으나 무공이 훌륭하다면 또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마도 놈들은 어떻게 해서든 강해지려는 놈들이지, 굳이 마공만 익히려는 놈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어쨌든 간에 해남살성을 논검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살성, 들었나? 위 좌사는 강적이다. 나랑 맏형을 쳐서 육천 냥이냐. 강적인 위 좌사를 쳐서 만 냥이냐. 결정할 때가 되었어.”
해남살성이 말했다.
“문주야. 너와는 거래한 적도 없다. 네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느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벌어지는 죽음과 상관없는 사람이 자신의 목을 걸고 공증을 해야겠지. 그러면 되지 않겠나?”
해남살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다. 위 좌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의 아우들을 죽이려고 했었지. 신원이 확실한 자가 공증을 서야 할 것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해남살성을 가리켰다.
“옳다. 아까 일마조가 다녀갔었다. 일마조를 상대하느라 중상을 입은 풍운몽가의 차남이 안에 누워 있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놈을 죽여라.”
맏형이 나를 쳐다봤으나, 나는 굳이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
“그놈이라면 검마의 제자라던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맞지.”
맞긴 하다.
해남살성이 고민하자, 위 좌사가 말했다.
“이보게. 살성, 그간 자네가 그래도 우리 가문은 두려워하는지 알았는데, 아니었나?”
해남살성이 웃었다.
“위 좌사. 나는 가족이 없다. 제자도 없고, 사부도 내 손으로 죽였다. 내 한 몸만 잘 간수하면 되는데 내가 대체 어떤 가문을 두려워하겠나?”
“신교의 좌사를 공격하면 네가 교주님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해남살성이 대답했다.
“검마의 말에 따르면 너는 예전부터 눈 밖에 난 것 같은데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위 좌사가 고개를 절레절레하더니 나를 쳐다봤다.
“……이게 가능한 이간질인가? 자네 소문은 오히려 축소된 감이 있군. 왜 그간 자네를 공격했던 자들이 줄줄이 실패했는지 그 이유를 지금 확인했네. 그것은 오로지 무공 때문만은 아니었어.”
위 좌사는 다시 세세하게 셈을 하는 거상처럼 침착해지더니 해남살성과 나를 번갈아보면서 말했다.
“살성, 자네의 의견도 존중하네. 문주의 뜻도 받아들이겠네. 이렇게 약조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인지는 몰랐군. 내가 전부 수긍할 테니 한 가지만 양해해주게. 들어보겠나?”
나는 해남살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라.”
위 좌사가 말했다.
“차라리 서로 무공을 보지 않는 게 좋겠군. 살성이 나를 치겠다면 장원 바깥에서 싸우고 오겠다. 반대로 살성이 문주를 치겠다면 나도 잠시 바깥에 있다가 들어오겠네. 이것이 내 최종 제안일세. 다들 내 제안에 수긍하나?”
위 좌사는 끝까지 살성을 회유했다.
“살성, 그렇게 하게. 어차피 우리끼리 싸우면 검마와 문주의 기습을 받을 수도 있네.”
이제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해남살성이 히죽 웃었다.
“그렇게 하지. 이제 내가 고르면 되나? 너희 둘에게 사적인 감정은 없다.”
해남살성이 나를 위아래로 천천히 살피다가 예상 밖의 말을 내뱉었다.
“어쩐지 돈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군.”
“이제 깨달았나?”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해남살성이 일어서면서 말했다.
“위 좌사, 밖으로 나가자.”
해남살성이 수하들에게 걸어가더니 한데 뭉쳐서 바깥으로 나가는 동안에 위 좌사는 줄곧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문주.”
“왜?”
“아닐세. 이따 이야기하지.”
위 좌사가 일어나더니 무너진 담벼락 쪽으로 걸어갔다. 양측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맏형을 바라봤다.
맏형이 말했다.
“세상일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구나.”
맏형과 나는 장원 바깥을 주시했다. 해남살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좌사, 어디까지 걸어가나? 여기서 하지. 이봐.”
어느새 해남살성 일행도 보이지 않고, 위 좌사도 보이지 않았다. 작은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만 몇 차례 들렸는데 해남살성 일행이 위 좌사를 포위하는 것 같았다.
해남살성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죽여라.”
그렇게 감흥이 큰 명령은 아니었다. 병장기가 여러 개 뽑히더니,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합이 몇 차례 뒤섞이는 동안에 뼈 부러지는 소리, 무언가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의외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위 좌사가 병장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보기 힘든 병장기도 있는 모양인지 무언가가 붕붕 돌아가면서 바람을 일으켰다. 암기 소리,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 누군가가 진각으로 땅을 밟기도 했다.
반갑게도 해남살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죽더라도 한군데 자르고 죽어라. 가증스러운 놈이로군.”
나는 지나가는 시비를 바라봤다가 칠매를 흔들었다. 그러자 위 좌사와 해남살성이 싸우는 동안에 육매가 도착했다.
나는 육매를 맏형과 나눠 마시면서 계속 소리에 집중했다.
보법과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더욱 간략해졌으나 싸움은 끝이 나질 않았다. 허접한 자들이 죽고, 고수들이 남아서 싸움을 이어나가는 소리였다.
희한하게도 여러 차례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누구 한 명 비명을 내지르지 않았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큰 나무가 쓰러지는 와중에도 나름의 정적이 전장의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장원 바깥에 살기가 가득했기 때문에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으나 잠시 일대가 고요해졌다. 싸우다가 잠시 소강상태에 빠질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런 모양이다.
심심해지려는 찰나에 위 좌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떤가? 지금이라도 은자 육천 개를 버는 것이?”
해남살성의 웃음이 터졌다가, 타의에 의해 뚝 멈추더니 이내 살벌하게 느껴지는 장력 대결 소리와 기합, 검기와 검풍이 뒤섞이는 소리가 겹쳤다.
맏형이 내게 빈 잔을 내밀어서, 나는 점소이처럼 술을 차분하게 따라줬다.
맏형이 술을 마신 다음에 중얼거렸다.
“……위 좌사가 도가 무공과 마공을 접목하여 살성의 내공까지 흡수할 수 있을까?”
“세상일을 알 수 없다는 게 그 뜻이었어?”
“약조를 했으니 기다려볼 수밖에. 저 정도 심계라면 직접 교주를 상대할 수 있을 때까진 무조건 고개를 숙이면서 다녔을 것이다. 좌사는 좌사인 셈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좌사만 해도 세 명이다. 맏형, 색마, 위 가주까지. 평범한 사내가 좌사 직을 맡았을 리가 없다. 아무리 토사구팽당할 운명이라도 말이다. 이제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서 몇 명이 싸우고 있는지 구분이 갔다.
이제 이대일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언가 볼기짝을 때리는 것 같은 소리가 터지더니 이내 검 한 자루가 담벼락 쪽으로 날아와서 박혔다.
이어서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장력이 충돌하고. 정강이를 부러뜨리는 것인지 처음으로 “윽.” 하는 짧은 비명이 들렸다.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장력이 부딪혔다.
이대일의 장력 대결인가?
궁금했지만 약조한 게 있어서 나가진 않았다.
대신에 여태 비명도 안 지른 채로 잘 참아내던 자들의 길쭉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처음에는 당황함이 섞인 음색이었는데, 고통이 꽤 큰 모양인지 화산 전체에 메아리가 울릴 정도로 큰 비명이 이어졌다. 두 사람이 내지르던 비명은 어느새 한 사람으로 줄고, 홀로 비명을 지르던 사내가 죽음을 앞둔 것처럼 사람의 말을 내뱉었다.
“잠시만……!”
이제 와서 잠시만이라니?
그러고 보면 사람의 말 중에 잠시만이라는 말처럼 허무하고, 맹랑하고, 잘 통하지 않는 말도 드물다. 잠시만이라는 말을 내뱉어야 되는 상황 자체가 잘못된 셈이랄까.
나는 술을 마시면서 중얼거렸다.
“잠시만이라니, 인상적인 말이야.”
맏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살성이 사람을 죽여대면서 마지막에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중복되는 말이 아니었을까? 돌고 도는 인생이구나.”
아주 우렁찬 비명이 오랫동안 이어지다가 끊겼을 때.
긴 숨을 내뱉은 사내가 먼지를 조금 들이마셨는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아니면 상대의 코라도 물어뜯은 것일까?
나는 맏형과 의견을 교환했다.
“맏형이 처리했을 때의 속도에 비하면 어때?”
맏형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 비슷한 것 같구나. 너는 어떠냐?”
“나는 사실 당장 죽일 마음이 없었어. 내가 싸우게 됐으면 일단 전부 오른팔을 잘라놓은 다음에 한 차례 더 갈궜을 거야. 그때 내 마음 상태와 대답에 따라서 결정했겠지.”
허물어진 담벼락 쪽에서 엉망진창이 된 의복에 묻은 먼지를 여러 차례 털면서 위 좌사가 걸어왔다.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가까이서 확인해보니.
얼굴에 핏물이 산발적으로 튀어서 묻었는지 전쟁터를 뚫고 온 전령처럼 보이기도 했다.
위 좌사가 양손으로 장삼을 뒤로 한 차례 날리더니 본래 앉았던 자리를 차지해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위 좌사에게 물었다.
“위 좌사, 아까 하려던 말이 뭔가?”
위 좌사는 한쪽 눈에 푸른 빛이 감돌고 있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나를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까먹었네.”
맏형이 술병을 들더니 위 좌사에게 내밀었다.
“자네도 참 독한 사람일세.”
위 좌사가 술잔을 내밀면서 대답했다.
“검마. 우리 가문을 어디까지 파악했나?”
맏형이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명천(明天)이 실로 오만방자하고 시건방진 이름이라는 것까진 알고 있네. 전대 가주가 되었든, 자네가 되었든 간에 가문이 대표할 만한 신공(神功)을 만들어내면 명(明)이 일월(日月)로 나뉘고, 천(天)은 천마가 되겠지. 그렇게 되면 무공의 이름은 일월천마공(日月天魔功)인가?”
위 좌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교주는 어디까지 알고 있나?”
나도 대답이 궁금해서 맏형을 바라봤다. 맏형이 대답했다.
“교주는 사실 모든 것을 알고 있네. 아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할 필요도 없는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지.”
위 좌사는 감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것참 멋진 일이로군.”
잠시 우리는 떠들어대던 말을 멈춘 다음에 육매주를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