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
1
001화 지잡대 출신의 하루
“김 선생, 정말 이 따위로···”
내 이름은 김준영. 나이는 서른하나.
직업은 동네 학원의 국어 강사다.
그러나 강의는 일주일에 두세 번··· 나머지 업무는 봉고차로 아이들 픽업, 서류 인쇄, 그 외 자잘한 시다 등.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막 졸업 했을 때만해도 깔끔한 외모와 센스로 나름 인기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정말 이딴 식으로 일 처리 할 거야?”
다른 강사들이 체크해 둔 부분까지 책을 인쇄하다가 놀라 들고 있던 인쇄용지를 떨어뜨렸다.
“잘하는 짓입니다. 아주 기특해요. 이제는 복사도 시원시원 못하나?”
“······.”
내가 입을 다물자, 원장은 혀를 끌끌 찼다.
“생기기만 멀끔하게 생기면 뭘 합니까? 지잡대 출신에 애들 성적은 쭉쭉 떨어트리고, 그렇다고 학부모들한테 알랑방귀를 잘 뀌는 것도 아니니.”
“······.”
학생들이 없는 시간이라 다행이다.
그나마 아이들 앞에서 쪽팔리는 일은 면했으니까.
‘후······.’
항상 품고 다니는 사직서를 당장이라도 던져 버리고 싶지만.
이번 달 월급날이 얼마 안 남았다. 참아야 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 주신 집을 지키기 위해선 이 개 같은 짓거리라도 버티며, 먹고 살아야 한다.
결국.
“죄송합니다······.”
이 말을 하고야 말았다.
원장은 그런 날 보며 얼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됐고, 선생님들한테 오늘 학원 끝나고 회식 있다고 연락이나 돌려요. 저번처럼 빠지는 사람 있으면 안 되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참석하라고 하고!”
“······.”
“특히 여선생들은 안 온다고 하면 김 선생이 업고서라도 데리고 와요.”
“···알겠습니다.”
학원 일이 수업 진행만 잘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혀를 끌끌 찬 원장은 뒤뚱거리며 원장실로 사라졌다.
고함 때문인지, 제1교무실 안에서 느끼한 개구리 같이 생긴 남자 한 명이 고개를 내밀고 빙글빙글 웃고 있다.
“김 쌤! 또 사고 쳤구나? 에휴, 그러게 잘 좀 하시지. 빽이고 학벌이고 뭐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럼 더 잘해야지 왜 그래요?”
제1교무실.
학부모의 총애를 받는 자들의 집단.
내가 있는 제2교무실과는 급여며, 비율이며, 기자재의 상태까지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대우를 받는 이들.
그리고 그중 하나인 박훈 저놈은 원래 내가 받기로 했던 자리를 꿰차고 나를 밀어낸 놈 중 하나였다.
“······.”
내 표정이 굳자.
“표정이 왜 그래요? 에이, 이게 기분 나빠? 아닌 말 한 것도 아니고··· 걱정 돼서 그렇지.”
탁. 탁.
놈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한마디 덧붙인다.
“선배의 충고다 생각하고! 응? 알죠, 내 맘?”
나보다 한참이나 뒤에 들어온 놈이 선배 행세를 하려는 모습을 보자 어이가 증발할 지경이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움찔거리려는 손가락을 다른 손가락으로 내리 눌렀다.
“네··· 고맙습니다.”
“알면 됐어요. 아, 회식 오라는 건 내가 은솔 쌤한테 전할 테니 신경 쓰지 마시고, 알았지?”
박훈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은솔. 저놈과 같은 제1교무실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학원의 퀸.
모델 같은 비율과 당장이라도 아이돌 진출을 하면 뭇 아이돌들을 오징어로 만들어 버릴 것 같은 고혹적인 얼굴.
국내 최고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마친.
왜 이따위 중소 학원에 남아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매혹적인 사람이다.
그때.
“제 이름 부르지 말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북풍한설이 몰아칠 것 같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은솔. 그녀가 어느새 복도에 서 있었던 것이다.
박훈은 크게 당황해 더듬거린다.
“아니··· 은 선생님. 우리 사이에 이름 정도는 부를 수도 있···”
또각또각-
등 뒤에서 다가온 그녀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곤 박훈의 앞에 서서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사이죠? 가족? 친구? 연인?”
“······.”
“제가 알기로 박 선생님과 제가 그렇게 친밀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타인에게 유난히 까칠하기로 유명하다.
여학생들한테는 또 안 그런 것 같은데······.
박훈이 그로기 상태에 빠지고 나자,
그녀는 작게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잠시 아무 말 없던 그녀.
이내 은솔의 입술이 움직였다.
“김 선생님. 아까 원장님이 학원 끝나고 여선생들 어쩌고 하는 것 같던데··· 무슨 일이죠?”
그녀는 차분한 안색으로 나에게 물었다. 원장이 했던 말을 못 들었던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가 차분해 지자 화가 풀렸다고 생각했던지,
“아 은쏠 쌤 그건 말이죠!”
그로기 상태에서 벗어난 박훈이 또다시 끼어들었다.
강사의 학습능력이 왜 저 수준일까.
“김 선생님께 여쭤 봤습니다만?”
“······.”
박훈의 말을 자른 은솔은 이내 맑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원장의 말을 전해 주었다.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장님께 참석한다고 말씀드릴게요.”
그리곤 뒤돌아서며,
“박 선생님도 수업 준비하셔야 할 시간 아닙니까? 곧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일 텐데요.”
흘끔 시계를 본 박훈이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아, 예··· 벌써 시간이 하하하하. 은 선생님 같이 가시죠!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
얼마 지니자 않아 아이들이 하교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데스크에 앉아 있는 나를 비둘기 보듯 지나쳐 제 교실로 스며들었다.
어느 교실에선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고 개구리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이따금 들리는 꺄르르- 웃음소리.
오늘, 내 수업은 없었다.
* * *
“어이구, 김 선생. 이리 와요. 오늘도 세 명 말아 드셨으니 제가 세 잔 따라 드려야죠!”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 가는 와중에 술 취한 원장의 목소리가 나를 찔렀다.
이내 까르르 소리와 함께.
“원장님 센스는 정말 아무도 못 따라 간다니까 정말!”
마귀할망구처럼 짙은 화장을 한 국어선생이 비음 섞인 목소리로 웃으며 받아주었고, 원장 주변에 있던 제1교무실 인원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원장의 유머 센스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게 그리도 기분 좋았던지 불콰하게 술이 오른 원장이 소주병을 흔들며 재촉했다.
“김 쌤. 기분 더럽겠지만 꾹 참고 잠깐 다녀와. 얼른 끝내고 우리끼리 한잔하면서 털자고 내가 살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지성 형님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조용하게 말했다.
내가 있던 테이블은 원장과 제일 멀리 떨어져 있는 곳.
이곳에 있는 강사들은 대부분은 끈이 떨어지거나, 나이가 들거나, 지병이 있는 퇴물들이었다.
그들은 저쪽 테이블과는 달리 걱정스러운 눈빛들을 하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형님 뭐 하루이틀인가요. 끝나고 한잔하시죠.”
잔을 들고 원장이 있는 상석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인사를 하며 잔을 들이밀었다.
원장은 불쾌한 웃음으로 소주를 따라 주었다.
“자, 자. 벌주니까 만땅으로 따라 드려야지! 남기지 말고 쭉쭉 들이켜요. 아직 두 잔 남았으니까! 말아 드시는 거 좋아하니 안주라도 좀 타 드릴까?”
그러자 다시 한 번 와-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원장의 옆에 있던 총무과장이 슬몃슬몃 웃으며.
“하하하. 원장님도 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친구는 진담인 줄 알아요. 워낙 성실하고 진지한 친구니······.”
하지만 원장은 이내 급정색한다.
“난 진담인데?”
억울했다.
이 테이블에서 웃고 있는 자들의 방어율은 거의 대부분 나를 밟고 만들어진 것이다.
학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학생들이 여러 강사들의 손을 돌고 돌아 다다르는 곳이 내 수업이었으니까.
모두가 맡기를 꺼려하는 학생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보다 더 열심히 자료를 만들고, 새벽까지 강의 준비를 하고 그들을 기다렸지만.
내 반으로 온 아이들은 자신들이 버림받았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하나같이 곧 학원을 그만두었다.
벌주 세 잔이 독약처럼 쓰디썼다.
“자, 다 마셨으면 가 봐요. 그리고 이제 나도 학생들 줄어드는 것 더 이상 못 봐주니까 그리 알고.”
“······.”
“갈 때 인사할 필요 없으니 조용히 가세요.”
“잘 마셨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돌아 나오는데, 여러 얼굴이 보였다.
빙글거리는 개구리, 꺄르르 웃으며 원장 옆에 달라붙는 마귀할멈, 살짝 얼굴이 굳은 총무과장.
그리고 이 자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은솔.
그렇게 쫓겨나듯 회식자리를 빠져나왔다.
* * *
“예 형님. 괜찮아요. 두꺼비 새끼 그러는 거야 어디 하루이틀인가요. 저도 포차 가서 우동 한 그릇 하고 막 나온 참입니다.”
나는 저성 형님의 전화를 끊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렸다.
차는 막차.
이 차를 놓치면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회식자리를 나와 향한 포장마차에서 소주 두 병을 내리 붓고 나와선지 시야가 흐렸다.
내뿜는 숨결을 따라 허연 김이 솟아오르고, 눈 녹아 생긴 물웅덩이 위에 달이 떠올랐다.
“카드가 어디 있더라······.”
어두운 밤이라 버스가 나를 못 보고 지나칠까 싶어 지갑을 꺼내어 버스카드를 찾으려는데.
찰박-
매정한 카드가 물웅덩이에 떨어졌다.
무심코 허리를 숙이려던 순간.
하-
다 포기하고 싶어졌다.
떨어진 카드를 줍고 싶은 생각도 들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들어있는 돈도 얼마 없는데. 버릴까?
달려오는 자동차의 불빛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때였다.
“어이 청년. 자네 카드 떨어뜨렸어!”
한 지긋한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하지만 고개를 돌릴 힘도 없다.
“···필요 없습니다, 이제.”
나는 힘없이 대꾸했다.
그런데?
사라지리라 생각했던 인기척이 내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새하얀 코트를 입은 노신사가 한 손에는 단장(短杖)을 들고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예전에 자네 같은 청년을 본 적에 있지. 나무를 하던 청년이었는데. 참 성실하고 정직했어.”
그리곤 갑자기 물에 젖은 카드를 불쑥 내 앞으로 내민다.
“가져가게. 자네 카드.”
빗물 웅덩이에 떨어져 버린 걸 굳이 다시 주워서 돌려주는 저의가 뭘까?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노인의 손에는 세 장의 카드가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황금색, 은색, 그리고 내가 떨어뜨린 카드.
“뭡니까 이 카드들은?”
“자네가 떨어트린 카드가 무언가? 골라 보게.”
빙글빙글 웃고 있는 모습이나, 흰 정장을 입고 있는 모습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신종 잡상인인가?
꾸벅.
“죄송합니다, 어르신. 제가 돈이 없어서 못 사겠네요.”
노인의 손에서 내 카드를 받아들고 일어났다. 이 불편한 곳에 그대로 있느니 택시를 타는 것이 나아 보인다.
그런데?
“잘 선택했네. 정직하군.”
선택?
그때는 몰랐다 노인이 했던 말의 뜻을.
버스에 오르고 난 후에야, 내가 들고 있던 것이 내 체크카드가 아니라 카드형 USB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