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85)
러스트 [RUST]-485
가속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인지, 잘린 팔에서 피가 팍 튀었다.
마루는 팍 튀는 핏방울을 검면으로 툭툭 쳐내곤 뒤로 물러섰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보기엔 잔상처럼 보이는 움직임.
지금 핏방울을 쳐낸 건가?
바로 코앞에서?
그 장면을 본 버지니아 요원이 자기도 모르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까득-
일본에서 싸웠던 영상,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 영상, 중국 공략 영상 그 어느 것도 지금 같은 움직임은 아니었다. 빨랐어도 지금처럼 컷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저건 뭐지? 정말 블라디마루 칼린인가?’
알고 있는 능력자 가운데, 대인전으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들 가속능력자가 에릴린 뉴먼이었다. 근데 초 단위로 팔이 썰려?
‘맙소사.’
노린 게 오른팔이 아니라 머리나 몸통이었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삐질삐질 솟아나는 땀방울.
저런 괴물이 본부에 들이닥친다면?
‘막을 수 있을까?’
막기는 개뿔.
이지스함 털린 해군이 병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저걸 막으라고? 아마 저게 올라탄 배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방법밖에 없었을 거다.
“영상. 영상은?”
“EMP 때문에 안됩니다.”
조금 전에 EMP 터졌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렇지.”
작게 욕설을 내뱉은 그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보고서로 표현할 수 없었다. 뭐라고 묘사할 것인가?
‘솨칵! 소리와 함께 가검으로 크로스 가드를 자르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오른팔도 함께 잘랐습니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무섭지도 않아.
‘그냥 총 쏘면 되겠네.’ 이 정도 위협으로 느껴져. 그게 아닌데.
이건 직접 봐야 알 수 있는 위협이었다.
그리고 그 위협을 바로 몇 야드 앞에서 본 장교는 다리가 풀릴 것만 같았다. 1초? 아니 1초도 아니었다. 무언가 흔들리며 불꽃이 두 번 튀더니 에릴린의 팔이 잘렸다.
언제 잘렸는지도 모르게, 공중에 튄 불꽃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잘린 팔. 모든 계획이 뒤죽박죽됐다.
세포확보?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를···.
당장 외팔이 미인계가 될 판인데 병신 같은.
설마. 블라디마루 칼린이 결손 장애 쪽이 취향일까? 그럴 리 없잖아.
‘어떡하든 이번 기회를 잡아야 해. 어떡하든.’
장교는 필사적으로 쥐어짰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에릴린의 모습. 자기도 모르게 잘려버린 팔을 보고 우두커니 서 있던 그녀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까무룩 기절해 버렸다.
“위생- 간호사! 간호사! 어디 의사 없소!!”
선량한 촌장이 팔이 잘린 마을 처녀를 살리기 위해 애타게 도움을 구하는 모습을 쥐어짠 장교였다. 혼신의 열연.
‘그래 이거다.’
블라디마루 칼린과 친위대가 같이 왔다는 건 위생병도 같이 왔다는 뜻. 이곳에는 의료시설이 열악해 접합수술을 할 수 없었다.
‘블라디 아크 타워로 데려가 접합수술을 받도록 하면?’
생각을 바꿔보니 팔이 잘린 건 최고의 기회였다. 자연스럽게 침투할 기회.
잘린 팔을 수술해 접합하고 재활 치료에 들어가면 최소한 4~6개월은 잡아먹을 수 있었다.
막말로 4~6개월 동안 눈맞지 못하면 틀린 거지.
“이 마을 근처도 그렇고 가까운 도시에도 접합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이 없습니다. 병원도 의사도 없습니다. 부디 마을 최고의 검사를 이렇게 잃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절절한 애원이 마루의 발 앞에 쏟아져 내렸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촌장의 애절함이 어쩐지 찝찝하고 껄끄러운 느낌.
뭐라고 딱 꼬집을 수 없는 미묘함에 마루가 손에 든 가검을 습관처럼 휘둘러 털어냈다.
후두둑-
사선으로 떨군 칼끝에 보인 잘린 팔뚝. 멀리서 보면 깨끗하게 썰린 것 같지만, 찢어발긴 것처럼 분리된 팔뚝이었다.
‘봉합 수술로는 원래대로 회복하긴 힘들겠는데?’
적당히 일상생활을 하는 정도까지야 가능하겠다만, 섬세한 젓가락질을 하거나 한계에 달하는 운동 같은 건 어렵지 싶었다.
‘급속 치료제를 쓴다면 모를까.’
쯧-
대련하자고 해놓고 첫판부터 장난질을 치면 손모가지 날아가야지 어쩌겠나.
그나저나 능력자 섭외할 기회라고 생각해서 왔더니, 이거 참. 여러모로 귀찮아지게 된 마루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기절한 여자의 팔을 붙잡고 지혈하는 촌장의 모습.
응?
그러고 보니, 확실히 이상했다.
이 여자가 트루와 마을 최고의 능력자라면서?
능력자 때문에 겨울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마을 최고의 능력자를 병신으로 만들었는데,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멀뚱멀뚱?
비명 지르는 사람도 없고, 팔이 잘렸을 때 탄식 정도?
촌장이 애절하게 도와달라고 눈물 콧물 뽑고 있는 판에 문 열고 나오는 사람도 없어?
‘찝찝함의 정체가 이거였나?’
최소 7개월 혹한기 동안 ‘가족’같이 지냈든, 가-‘족’같이 지냈든 이렇게 미인이라면 마음을 뺏긴 사내가 하나둘쯤은 있는 게 일반적이었다.
여자의 팔이 잘리는 순간, 애정을 품고 있던 남자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쳐나왔어야 정상 아닐까?
아니면 여자가 뭣 같은 성격이라 그런 남자가 없다고 치자, 그래도 최소한 친한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개같이 울부짖는 촌장과 맹숭맹숭한 다른 사람들이라니.
“전부 무기 버리고 엎드려.”
마루가 대련용 가검을 쭉 뻗어 마을 목책 위에 있는 사람들을 겨누며 말했다.
“뭐냐? 너희들.”
“······?”
“······.”
갑자기 무슨 소릴? 뭐냐니?
대답을 기다린 것도 잠시, 마루가 가검을 휘둘렀다.
콰지지지지직!
두툼한 통나무로 만들어진 마을 정문이 수수깡처럼 쪼개졌다.
“친위대 마을을 제압한다. 반항하면 처분하도록. 실시.”
[옛.] [마을 제압 명령이다.] [포메이션 델타로. 진입한다.]갑작스러운 명령임에도 친위대원들은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움직였다.
팔뚝이 잘린 여자를 지혈하느라 여기저기 피칠한 촌장이 마루의 발 앞으로 기어왔다.
“오- 오해이십니다.”
“내가 무슨 오해를 했는지 알고.”
시리도록 차가운 마루의 눈빛이 촌장으로 위장한 장교의 폐부를 꿰뚫는 것 같았다.
“말해봐. 내가 무슨 오해를 한 거지?”
“······.”
항복한 마을에 엑소슈트로 중무장한 친위대를 밀어 넣으면서 오해가 아니라고?
아니. 씨발.
이미 항복한 마을인데 상식적으로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냥 들어가서 분위기 좋게좋게 하면 되는 걸 왜 이러는 건데?
아무리 고민해봐도 블라디마루 칼린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왜 이러는 거야?’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문제라는 걸 알 수 없었던 장교는 그저 엎드렸다.
“마을 사람들 전부 항복하겠다고 했습니다. 친위대를 투입하지 않으셔도 다들 무장 해제할 겁니다. 이렇게 강압적으로 하지 않으셔도···.”
“그러니까···. 말로 해도 될 일이다?”
[무기 버려. 깍지끼고 머리 위에 손.] [거기 엎드려. 손 보이게 머리 위로.] [깍지 끼라고 새끼야!] [무기 버린 사람은 마을 중앙에 있는 공터로 간다.]친위대원들이 무기를 치우고 사람들을 중앙 공터로 내모는 소리.
“그래서 지금 말로 하고 있잖아.”
“······.”
이렇게 마을에 진입하면 사람들은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기 마련이었다.
개기다가 처맞고 항복한 마을 사람들은 분노, 공포, 절망 같은 감정을.
처맞기 전 항복한 마을 사람들은 불안, 초조, 기대 같은 감정을.
근데 이 마을 사람들은 그런 게 없네.
이 빌어먹을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들인데.
그러니까 말이지.
생각할수록 이상하다고. 너희들.
“마지막으로 묻지. 너희들 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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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순발력 하나는 좋네.’
군부에서도 촉망받는 장교라고 하더니, 여자의 팔이 잘리자마자 블라디 아크 타워에 넣게 수를 쓰고 있었다.
‘대련 중에 다친 거니까. 치료해달라? 저거 입만 잘 털어도. 가능하겠는데?’
연기도 제법이었고. 팔이 잘린 게 어쩌면 전화위복이 될지도 몰랐다.
‘어?’
그래야 하는데 이상했다.
‘눈앞에서 애원하고 있는데 무시한다고?’
최소한 친위대에게 말해서 팔 잘린 여자를 응급처치하라고 해야 하지 않아? 대련하다 다친 거잖아. 여자가 대련을 핑계로 급발진했다고 하더라도 그랬다.
그래도 왕이라면, 대련에서 팔을 잘랐다면, 보는 사람들이 눈이 많이 있다면.
일단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응급조치는 해주는 게 정상적인 대응 아닐까? 그런데 쌩 무시?
‘씨발 뭐야.’
EMP 터질 때 세-하더니, 시작부터 팔목 자르는 것도 그렇고.
이거 좋지 않았다.
이쪽 업계에서 살아남아 팀장까지 가려면 나름 촉이 좋아야 했다.
그런데 그 촉이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블라디마루 칼린의 분위기가 변했다?’
버지니아 컴퍼니 요원은 그걸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굵직한 통나무로 만든 정문이 칼질 한 방에 썰려버렸다.
‘걸렸나?’
도주를 떠올렸지만, 하늘에서 들리는 까마귀 소리.
까아악!
까윽? 까으윽?
고개를 들자 까마귀들이 하늘을 배회하고 있었다.
마을에 대한 전방위 감시와 포위가 끝났다는 뜻.
“FUCK!”
욕설을 내뱉기 무섭게 엑소슈트로 무장한 친위대가 순식간에 난입했다.
[목책 위 거기.] [전부 무기 내려놓고 내려와.] [팔 머리 위로.] [손가락 깍지 낀다.]엑소슈트로 중무장한 친위대원들이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계단 막혔습니다.’
수신호를 보내는 부하직원들. 다가오는 적 친위대.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팔 머리 위!]씨발-
불발을 우려해 전자식 기폭장치와 기계식 기폭장치를 이중으로 설치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수신호가 떨어졌다.
‘C 포인트에서 집결한다. 눌러!’
‘비상탈출. C 포인트로. 폭파!’
‘C 포인트에서 집결. 폭파!’
투박하게 생긴 기폭장치를 발로 밟아 내리누르자, 여기저기 설치한 폭탄이 폭발했다.
쾅!
그 작은 폭발에 유폭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앙!
쿠르르르릉—-
거대한 불꽃과 함께 커다란 충격파가 마을을 반쯤 날려버렸다.
그렇게 폭발을 틈타 도주하려던 놈들은 까마귀와 늑대의 추격으로 전부 잡혔다. 그들은 현장 요원이 늘 하던 선택을 했다. 독약을 물고 자살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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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의 파편과 불꽃을 막아준 두꺼운 목책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2차 폭발에 휘말려 확인 어렵습니다.]“우리 애들부터 챙겨. 나머지는 나중이다.”
[옛.]마을 사람들 가운데 생존자가 있든지, 부상자가 있든지 그건 나중일. 마루는 친위대부터 챙기라고 명령했다.
‘능력자 섭외하나 싶었더니.’
일이 빌어먹게 됐다.
마루는 바닥에 늘어진 촌장을 발끝으로 툭 밀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는데 이미 식어버린 촌장이 힘없이 뒤집혔다.
“에이-
폭음과 불꽃에 잠깐 주의를 돌린 사이 자살한 것.
아마 독약이겠지.
[도주하는 적들 잡았지만, 전부 자결했습니다.]“시체는 전부 보존 처리하도록. 돌아갈 때 가져간다.”
마루는 고개를 돌려 비행선을 바라봤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시체에 사이코메트리를 쓰게 하는 건 좋지 않았다. 최근 계속 혹사하기도 했고.
쯧-
마루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자, 작게 오르내리는 가슴이 보였다.
팔이 잘린 여자는 아직 살아있었다.
스윽-
마루가 의식을 잃은 여자의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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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릴린은 비몽사몽 어지러웠다.
‘······.’
어쩐지 오른쪽 팔뚝이 너무 아팠다.
꿈이었나?
꿈이라면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
블라디마루 칼린의 가검에 팔이 잘리는 꿈.
‘악몽인가?’
연습용 칼로 사람 팔뚝을 싹둑 자르다니 개꿈이 분명했다.
흐릿했던 의식이 점차 선명하게 변하면서 느껴지는 통증.
오른팔을 꽉 조인 것 같은 아픔이었다.
촉각이 먼저 살아나고, 이어 후각과 청각이 돌아왔다.
무언가 불타는 소리, 매캐한 냄새.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건 블라디마루 칼린이었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선 블라디마루 칼린의 얼굴.
‘어?’
이게 무슨?
왜 이렇게 가까이?
‘이것도 꿈?’
그러니까 꿈속의 꿈 같은 건가?
에릴린이 잠시 멍한 사이, 그가 자신의 입을 벌렸다.
부드럽게 자신의 혓바닥을 희롱하는 블라디마루 칼린의 손가락.
‘아- 역시 이것도 꿈이다.’
그렇게 입안 이곳저곳을 유린하던 마루의 손가락이
콰직!
그녀의 어금니를 뽑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