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166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둥지가 도둑놈한테 싹 다 털린 드래곤도 이 정도로 좌절하진 않을 거다.
상대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초월자였다. 어떻게 하겠다고 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 반항의 여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기 전에 서둘러 변명했다.
“그 부분에 관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린 점 사죄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일 순서가 있어 바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제국의 권력을 잡는 게 코앞입니다. 이후에는 단번에 마왕들을 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내 말에 그는 코웃음쳤다.
“네놈이 권력을 잡으려는 건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냐? 이 몸이 명한 마왕 척살은 부수겠지. 애초에 네놈이 진짜로 과업을 수행하고 싶었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발버둥치는 죽음의 후원을 받는 마왕이 아니라 엄한 놈들을 온통 건드리고 다니더군. 크크큭! 결국 네놈 이득이 우선이란 소리가 아니겠느냐?”
“그건!”
“긴 말 할 것도 없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왜 이 몸이 방기했겠느냐? 닭이 살찌길 기다렸던 것이다.”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의 거대한 손이 높은 곳에서 내려오더니 날 움켜쥔다. 너무 압도적인 존재감에 몸이 얼어버려 피할 수도 없었다.
“으아아아아!”
갑자기 그의 손에 쥐어서 내 몸이 고공으로 치솟았다. 어찌나 빨리 상승하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짙고 더러운 구름을 뚫고 나서야 멈췄다.
“커헉.”
구름 위에 올라서야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이 차원의 희미한 달빛을 받아 드러난 그의 모습은 공허함으로 가득했다.
크고 뻥 뚫린 눈은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마치 무저갱이 두 개 있는 것 같았다. 저런 눈으로 세상을 보면 대체 어떻게 보이는 걸까?
“네놈이 입을 잘 터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저를 버리신다면 제국에서 영향력이 줄어들 겁니다!”
“상관없다. 그 작은 세계가 어둠의 대군들의 주의를 끌었던 건 발버둥치는 죽음이 봉인된 장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관심을 갖기에 한 뼘도 안 되는 곳임에도, 온갖 모략의 각축장이 됐었지.”
하긴 우주적 존재인 그들에게 겨우 한 행성의 구석탱이인 제국은 너무나 작은 장소다. 그런데 거기에 발버둥치는 죽음이 봉인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의 관심이 쏟아졌던 거다.
“종말이 오기 전에는 인과에 의한 제약이 심대했다. 아무리 잘난 존재라도 인과율에선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그래서 네놈을 부려 발버둥치는 죽음을 견제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존재 가치가 언제까지 가는 건 아니지!”
나는 이미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상황이 이리 되자 상대가 어둠의 대군이든 뭐든 욕이 절로 나왔다.
“이런, 시발 새끼야! 그런다고 이렇게 팽하려고 해!”
“크하하하하! 정말 기세가 좋은 인간이야! 영겁의 시간 동안에도 이런 놈은 처음이로다. 보통 내 존재감에 미쳐 죽어야 정상인데 욕설을 하다니!”
크게 웃는 바람에 드래곤도 삼킬 것 같은 그의 거대한 입이 벌어졌다. 그 입 안에는 수많은 원령이 개미처럼 차서 드글드글거리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정신이 날아갈 것 같이 끔찍했다.
“발러슈테드. 지금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겠나?”
“너라면 납득하겠냐!”
“크크큭. 본래 이대로 집어 삼켜야 좋겠다만, 네놈이 너무 재밌으니 특별히 설명해주지.”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알 수도 없는 외계 차원에서, 이렇게 고공에 매달려 죽을 이유에 대해 듣게 되다니.
“이번 일은 네놈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다.”
“뭐라?”
“우리 중 누구도 설마 필멸자 나부랭이가 화신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는 몰랐지.”
현재 나 때문에 발버둥치는 죽음은 그야말로 쪽박 찬 상황이라고. 덕분에 발버둥치는 죽음을 견제할 이유가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어리석은! 놈은 언제고 봉인이 풀려날 수 있다! 수호자가 죽으면 풀려난다는 걸 모르나!”
“잘 알고 있지. 크크큭. 하지만 어둠의 대군 간의 힘이란 언제나 동일하지 않는 법이다. 멍청한 것아!”
발버둥치는 죽음은 설령 풀려나도 화신을 잃은 탓에 한쪽 팔이 없이 부활하는 셈이라 했다.
봉인 상태에서 화신을 내보냈으니, 단순히 화신의 힘이 아니라 그 이상을 투자해야 했다고.
“완전히 거덜난 것이다. 크크큭. 정말 잘해줬구나, 발러슈테드. 네놈이 내 수족이었단 사실이 자랑스럽다!”
그런데 그런 발버둥치는 죽음의 처지와 다르게 다른 어둠의 대군들은 더 강해질 기회가 있다고 했다.
“종말의 때가 와 어둠의 대군들이 싸움에 나섰다. 즉, 어둠의 대군이 다른 어둠의 대군을 죽여 흡수하는 일도 가능해진 것이다.”
맙소사. 지금보다 더 강해진다고?
“물론 그 외에도 힘이 강해질 방법은 다양하다. 발러슈테드, 네놈도 그런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뭐?”
“아직 모르겠는가? 네놈은 신성을 갖기 시작했다. 즉, 네놈을 먹어치우면 네놈의 별이 가진 힘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
세상에, 그렇다는 건 나는 어떤 것보다 맛있는 먹이인 셈이다. 내 얼굴이 절망으로 물드는 걸 봤는지 그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후 신격이 되면 잡아먹기 어렵지. 그러니 지금, 어린 새순처럼 맛있을 때 먹어치우겠다!”
완전히 놀아났다. 처음부터 토사구팽 하려고 했던 거다. 계약 조건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건 비열한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도저히 타협의 여지가 없구나.
“솔직히 비루한 인간 놈이 설마 신성의 길을 걸으리라 생각도 못했다! 이 또한 기다림의 묘미이자 즐거움! 이제 네놈의 영혼을 씹어 수확의 기쁨을 누리겠다!”
“이렇게 된 이상 얌전히 죽을 거 같나!”
검은 번개를 모든 어둠과 마력을 끌어내 떨어뜨렸다.
콰아아앙! 쾅! 쾅! 콰앙!
눈앞에 무수히 많은 번개 줄기가 작렬했다. 지금껏 이렇게 힘을 내본 적이 없을 정도로.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크크크하하하! 이게 인간의 어둠인가! 정말 보잘 것 없군!”
진신을 드러내고 샤프리히터를 써 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부질없다. 비장의 수단인 SSS등급 스킬조차 큰 의미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SSS등급이니 먹히긴 할 거다. 하지만 워낙 격차가 커 성질만 돋울 게 뻔했다.
상대는 초월자 중에서도 가장 최상위에 위치한 존재다. 무슨 짓을 해도 무의미했다.
“젠장,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입술을 깨물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눈앞에서 거대한 입이 쩍 벌어진다. 너무나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 나는 완전히 무력했다.
“그래! 처먹든 말든 맘대로 해라!”
어쩔 방법이 없다. 마치 어항 안에 든 작은 금붕어나 마찬가지의 처지였으니까. 그런데 다 끝났다고 여기던 그때 갑자기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던 자가 멈춘다.
“음? 네놈의 영혼은 아주 묘하군?”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먹어치울 수가 없다. 네놈의 영혼은 그 육체와 분리되면 다른 차원으로 떠나게 되어 있군. 그걸 이 몸의 힘으로도 저지할 수 없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놀랍게도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의 목소리에서 진심으로 당혹해 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대체 네놈은 무엇인가?”
그 물음에 나도 당황했다. 하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신격 아퀼라의 가호 때문이 틀림없다. 그의 말에 의하면 나는 이 세계에서 완전히 죽음을 맞이하면, 영혼만 원래 세계인 지구도 돌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한제우의 육체에 깃들어 원래의 삶을 되찾을 수 있다.
동의 없이 이쪽 세계로 끌고 왔으니 일이 틀어지면 돌아갈 수 있게 아퀼라가 배려해준 거다.
“이상하군! 이상해! 네놈에게 걸린 괴상한 방법을 파해할 수가 없다니!”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매우 심기가 불편한 목소리였다. 지고한 자신의 능력으로도 요상한 마법을 풀지 못하고 있으니 열 받을 수밖에.
하지만 이걸 건 이는 대신격 아퀼라다. 아무리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라고 해도 당장 해결할 순 없었다.
“크하하하! 거 아쉽겠군! 씹어 먹을 수 있는 게 내 영혼이 아니라 육체뿐이어서!”
어차피 중요한 건 영혼이다. 신성은 영혼에 깃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네놈 처지가 나아질 줄 아느냐! 좀 놀랍긴 하다만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어디 맘대로 해보시지! 다른 대군과 싸움질로 바쁠 텐데 이런 일을 연구할 시간이 있나 모르겠다만!”
“크르르릉!”
정곡을 찔렀나 보다. 분노한 듯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날 집어던졌다.
“으아아아아!”
더러운 구름을 뚫고 땅바닥까지 처박혔다.
콰아아앙!
지면에 요란한 소리를 내고 충돌했는데 질긴 이 목숨은 그 정도로 죽지 않았다.
“크윽!”
팔다리가 다 뒤틀어졌지만 용사의 힘으로 바로 회복되어갔다.
“이 빌어먹을 놈을 데려가! 데려가서 심연의 우물에 처넣어!”
아무래도 그는 당장 어쩌기 어려우니 날 억류해 뒀다가 나중에 해결하려는 모양이다.
“여기에 붙들리느니 차라리 자살을 택하겠다! 영혼만은 자유로히 빠져나갈 수 있게!”
“맘대로 하라! 하지만 네놈처럼 집착과 탐욕으로 가득 찬 인간이 자살을 택할 리가 없지.”
그건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의 말이 맞았다. 제국에 너무나 많은 미련이 남아있다. 당장 죽음을 택하고 지구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발러슈테드! 네놈의 힘을 모두 봉인하겠다! 어디 가진 능력을 잃어버리고도 그 교만이 어디까지 가나 보지!”
“크아아아악!”
갑자기 온몸을 갈기갈기 찢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내 안의 모든 게 억눌리는 걸 느꼈다.
“이 개 같은 자식!”
악을 쓰며 버틴 뒤 서둘러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발러슈테드 발러.
[괴물사냥꾼 0레벨] [피도 눈물도 없는 자 0레벨] [왕관을 찾아 헤매는 자 0레벨] [인류용사 0레벨]“맙소사….”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가진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니지만 모두 0레벨로 봉인된 상태였다.
“끌고 가! 심연의 우물에 처넣으라고!”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가 외치자 땅 속에서 데스나이트 둘이 스윽 일어났다. 그들은 양쪽에서 날 붙잡았는데, 평소라면 단번에 쳐 죽일 수 있을 놈들임에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힘 같은 스탯 역시 별 볼일 없을 정도로 낮아진 탓이다.
“놔! 놓으라고!”
그래도 내 성질머리가 있어 반항했는데, 데스나이트 하나가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피를 쏟아내며 축 늘어졌다.
건틀렛을 낀 데스나이트의 주먹질이 어찌나 매운지 제대로 서있을 수도 없었다. 이후 나는 흉흉한 해골 군마에 짐짝처럼 태워져서 어딘가로 끌려갔다.
의식은 깨어나면 금방 다시 끊기곤 했는데, 눈을 뜨면 내가 계속 쌍욕을 시전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주먹질이 이어졌고 기절하기를 반복했다.
좀 얌전히 잡혀가면야 좋겠지만 궁지에 몰리자 성질이 한껏 더러워져서 악만 남았다. 특히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에게 아무 반항도 할 수 없었다는 상황 자체에 분노가 치밀었다.
촤아악!
그때 별안간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물이 얼굴에 쏟아진다. 정신이 돌아와 눈을 떠보니 데스나이트 둘이 흉흉한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뭐! 이 새끼들아! 쳐다보면 어쩔 건데!”
힘을 완전히 잃은 내가 여전히 뻗대자 임무를 수행하던 둘도 기가 막힌 듯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정말 보통 놈이 아니군.
-맞아. 이 차원에 잡혀온 필멸자들은 똥오줌을 지리며 눈물을 좔좔 쏟아내는데.
-우리 주인에게도 욕설을 날릴 정도로 지독한 놈이다.
-어서 우물에 집어 던지고 돌아가자고.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른다. 데스나이트 둘이 날 집어든 것이다.
“안 내려놔! 이 해골 새끼들아! 내가 힘을 찾으면 니들부터 먼저 조질 거야! 알아!”
하지만 그들은 대답도 없이 날 내던졌다.
“으아아아!”
나는 어떤 거대한 구멍으로 떨어졌다. 그 안은 오로지 밤만 지속되는 이 테멘 앙 키의 지상조차 밝아 보일 정도로 어두운 장소였다.
퍼억!
“크억!”
땅에 떨어지자마자 몸을 꿈틀꿈틀 거렸다. 뼈마디가 모두 분질러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악에 차서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이 발러슈테드! 이대로는 안 끝나! 안 끝난다고!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 이 새끼야! 지옥 끝에서라도 기어 올라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속에서 열불이 터지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내 처지 때문에 목구멍에서 울컥 뭐가 올라오려 했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어서였다.
“젠장….”
지하로 떨어진 나를 향해 수십이 넘는, 안 좋은 무언가가 몰려들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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