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169
-150년이나 갇혀있었다고?
-그런 거예요! 돈으로도 감방가는 걸 피할 수 없을 때가 오는 법이지요. 하지만 저는 긍정적이니까요, 그 150년 기회를 알차게 써야한다고 생각했답니다.
이 인간, 150년 동안 이 테멘 앙 키에서 훔칠 만한 걸 찾았던 건가. 역시 보통이 아냐.
-그래서 그 프로그래마 모르티스 말고도 훔칠 만한 게 뭐가 있는데?
-아주 적당한 게 있는 겁니다. 후배님. 흐흐흐.
소녀가 음침한 웃음을 흘린다. 마치 뭐라도 팔아보려는 영업사원 느낌인 걸.
-지금 후배가 있는 우물 말이죠. 굉장한 게 묻혀있답니다.
-여기에?
-네, 심연의 우물 지하에는 오래 전에 죽은 드래곤 신격의 육체와 정수가 묻혀있어요.
-드래곤 신격?
-이름은 저도 모른 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알고 있지요. 그 드래곤 신격이 이 차원에서 어떤 고대의 악을 쓰러뜨리고 같이 죽었다는 거예요. 자신의 수많은 드래곤의 부하들과 함께 말이죠. 어쩐지 지하에 드래곤의 뼈나 송곳니가 듬성듬성 보이지 않나요?
-아, 그러고 보니….
그게 드래곤 신격과 그를 따르던 드래곤들의 흔적이란 건가.
-애초에 우물 속에 있는 심연의 보석도 드래곤 하트가 터지면서 만들어졌단 가설이 있어요.
-그런 일이 있었나. 하지만 여기는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가…,
-그가 오기 전에 여기는 황량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차원이었어요.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가 이 차원에 정착한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즉, 정치적으로 실각하고 도망쳐 온 것이 여기란 거다.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모르나? 우물에 드래곤 신격의 몸이 있다는 걸.
-모릅니다. 애초에 관심도 없다고요.
-정말?
-그는 오로지 원래 자신이 머물렀던 세계로 가길 원하고 있어요. 이 테멘 앙 키에는 애정이 없지요. 심연의 보석도 여기 거주민들에게 필요하니 채굴하게 명한 것일 뿐 본인은 신경 쓰지도 않아요. 사실 그 정도의 소모품이 어둠의 대군의 관심을 끌 수 있을 리가요.
-등잔 밑이 어둡다 그건가.
알았다면 반드시 캐내려고 하겠지. 지금은 조금의 힘이라도 더 필요한 시절이니까.
-대가는 알겠어. 그런데 아직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는데.
-뭔가요? 까다로운 후배.
-내가 어떻게 당신이 신격이 되게 도울 수 있다는 거지?
나 자신도 신성의 여정을 어떻게 완료하는지 모른다. 그저 진입로에 들어섰을 뿐이다.
-내 코가 석자라고. 어떻게 너까지 신격으로 만들어.
-후후후, 후배. 발뺌이 지나치네요.
-뭐?
-이 선배는 다 알고 있답니다. 종언의 석판에 대해.
-으윽.
하긴 그렇겠지. 대신격 아퀼라의 파트너였던 자니까.
-종언의 석판을 발동시키면, 이름이 적힌 신적 존재들은 리켄티아투스에서 추방되지요. 그렇다면 남은 이 중 주목할 만한 이는 발푸르가 여신격. 그녀는 아퀼라의 안배로 이름이 적히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후배랍니다.
-요지가 뭐야?
-만약 성공한다면 구원 후의 세계에 단 둘 밖에 안 남을 신격 중 하나가 당신이라고요. 후배. 그런 후배가 날 신격의 위에 올려주지 못한다고요?
상대는 깔깔거린다.
-아퀼라 때는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요. 후배, 나와 거래해요. 이득을 약속하겠습니다.
-…음. 적어도 하나는 맘에 드는군.
-뭔가요?
-믿어달라고 하지 않는 것.
그 말에 소녀는 다시 웃어댔다.
-믿음이란 금화가 반짝 거리는 동안에만 잠깐 찾아볼 수 있는 거랍니다. 후배, 사기꾼 사이의 명언을 아시나요?
-…믿는 자만 속게 되어 있다.
-맞습니다. 신뢰니 뭐니 하는 건 개나 줘버리세요. 그저 우리가 나눌 금과 권력을 논하면 되는 거예요.
-속물이군.
-아니죠. 이런 건 우수한 인간이라고 하는 거랍니다. 저 사실 천재거든요.
사고방식이 나랑 판박이였다.
-게다가 후배는 제가 없으면 종언의 석판을 제대로 다룰 수 없을 겁니다.
이래저래 이 감방 선배랑 손을 잡을 수밖에 없어보였다. 어쩐지 내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 있는 거 같아 불안했지만.
-이 세계의 보물을 훔치는 것도 좋고, 종언의 석판도 좋단 말이야. 근데 이 감옥 부터 나가야할 텐데 방법이 있는 건가?
-물론이죠.
-역시 노하우가 있군. 뭔데 그게? 그리고 선배는 지금 어디에 있지? 여길 빠져나가면 찾아갈게.
마법지퍼 안에 온갖 보물이 가득하다. 짐을 빨리 되찾아야 한다. 그런데 상대가 생각도 못한 대답을 해왔다.
-걱정 마세요. 일단 제가 갈 테니까요.
-뭐?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그녀는 분명히 갑옷에 깃들어 있을 뿐이데. 게다가 마법지퍼 안에 갇혀 있을 터.
-어떻게 여기까지 오려고?
-그건 후배가 걱정할 바가 아니랍니다. 또 봐요!
그걸로 연락은 끊겼다. 속으로 몇 번이고 다시 불러봤지만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이 무슨, 황당한….
여기까지 어떻게 오려고?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일단 이 건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
누미디아의 사기꾼에게서 새로운 소식은 없었다.
“역시 헛방이었어.”
되도 않는 소리를 하는 게 역시 사기꾼답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감방 선배에 대해선 금방 잊어버렸다. 당장 우물 속에서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또 땅밑왕에게 연락 왔어?”
“네, 대장.”
노예 하나가 가져온 전서에 기분이 안 좋아졌다. 땅밑왕이란 작자가 자꾸 회유와 협박으로 날 자기 휘하에 두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리한 사기꾼의 감은 이놈이 날 이용해 먹으려 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당근과 채찍으로 연일 압박하는 게 꼭 내 수법과 같았기 때문이다.
“아주 교활하고 못돼 처먹은 놈이야.”
어떻게 남을 속여 이용하려고 할 수 있어. 양심이 없는 놈이 아닌가. 당연히 거절했다. 그리고 다른 지배자들에게 끈을 대서 땅밑왕의 압박을 벗어나려 노력 중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내 생각보다 훨씬 간절했던 것 같다. 설마 나 같은 신참에게 이곳의 패왕이 얼마나 관심을 둘까 싶었는데 그건 오판이었다.
“네놈이 그 발러인가?”
“이런… 설마 직접 찾아올 줄이야. 어지간히 오지랖이 넓으시군.”
“현장파라서 말이야.”
보자마자 상대가 땅밑왕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하프 자이언트답게 거대한 몸체는 가히 반칙이다 싶었다. 물질계에 있을 때 드래곤 여럿 접고 다녔을 기세인 걸.
“내 이렇게 직접 왔는데, 제안에 대한 답을 듣고 싶군.”
“거절하겠다.”
“그렇다면 이 주먹으로 해결해 볼 수밖에. 애송아, 이 몸은 여태 이 주먹으로 갖지 못한 게 없다.”
그 말에 나는 킥킥 웃었다.
“그 첫 번째에 내가 오르겠군.”
“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이 주먹으로 해결해왔다. 이번에도 같을 것이다.”
아니지. 그런 무식한 것보다 반짝이는 게 훨씬 근사하다고. 멍청한 새끼 같으니라고.
“맘대로 해봐. 이 발러 님은 누군가에게 굴복하는 남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네 자신의 주먹으로 증명하라!”
퍼억!
인지할 틈도 없이 얼굴이 돌아갔다. 이 느낌은 뭔가, 대포알에 턱을 친 것만 같았다. 이 무슨 황당한….“
“크악!”
시야가 미친 듯이 빙빙 돌았다.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갱도를 데굴데굴 굴러갔다. 갱도의 벽에 몸이 막힐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크으….”
간신히 추스르고 일어나자 피가 쏟아졌다.
울컥.
봉인 됐는데도 이 정도라니? 주먹의 소양이 대단하군. 물질계에서 거의 베오울프에 준했던 것 아닐까. 어느 행성 출신인지 모르겠으나 그 행성을 일신의 무력으로 쩌렁쩌렁 울린 패자가 틀림없었다.
“곤란한 걸. 나는 좀 많이 세련된 남자라 이런 무식한 싸움에 약하단 말이지.”
“흥! 한 주먹에 의지가 꺾인 건가! 변변찮은 놈!”
하지만 앓는 소리를 하는 건 다음 수를 위해서였다. 나는 넘어지며 움켜쥐었던 모래를 뿌렸다.
“으윽! 이런 치사한!”
원래라면 먹힐 리가 없다. 아니, 그나 나 정도의 강자면 이런 유치한 짓을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공평하게 약해졌기에 삼류나 할 법한 행동도 먹혔다. 설마 모래를 뿌릴 줄은 몰랐겠지.
퍽!
그가 주춤하는 정강이를 까자 땅밑왕이 허리가 구부러졌는데, 그 순간 물구나무를 서며 발바닥으로 내려온 그의 턱을 올려 찼다.
퍼억!
제대로 들어갔다! 하지만 희열은 잠깐이었다.
덥썩!
땅밑왕이 날 붙잡더니 있는 힘껏 땅에 내리꽂았기 때문이었다.
“컥!”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거기까지였으면 다행이었다. 땅밑왕은 땅에 말린 오징어처럼 납작하게 뻗은 날 쥐더니 근처의 돌무더기에 집어던져 버렸다.
와르르르! 콰앙!
돌들을 무너뜨리며 처박혔다. 온몸의 뼈마디가 다 부러지는 것만 같다.
“제법 멋진 공격이었다. 게다가 모래를 뿌린다니. 그런 허접한 같은 짓은 수백 년 만에 다시 보는군. 음… 그래, 나도 첫 전투에서 그런 비열한 짓을 해 살아남은 적이 있다.”
하찮은 놈들의 개싸움에선 흔한 짓도 절대강자에겐 신선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정말 그랬다. 요행은 요행일 뿐이었다. 진짜 이 하프 자이언트는 무식하게 강한 놈이었다. 나는 애써 몸을 일으키며 부산하게 머리를 굴렸다.
생각해라, 언제나 길은 있으니까. 상대는 어둠의 대군이 아니다. 그렇다면 분명 살 길은 있지 않을까.
절그럭, 절그럭.
한데 그때 이 긴박감에 초를 치기라도 하 듯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음?”
철걱, 철거덕.
뭔가 이상한 소리였다. 쇠 같은 게 제멋대로 부딪치는 듯한 소음에 나뿐 아니라 모두가 의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 상상도 못할 만한 게 있었다.
“저게 뭐야?”
누군가 내뱉은 말은 우리 모두의 심경을 대변했다. 웬 속이 깡통처럼 빈 갑옷이 제멋대로, 불안한 발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새하얀 그 갑옷은 성스럽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깨끗하고 멋져서 도무지 이 쓰레기장 같은 세계에 안 어울렸다. 하지만 갑옷의 움직임은 절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이상했다.
우리가 말을 잃어버리고 있을 때 그 갑옷이 건틀렛을 번쩍 들어올렸다.
-후배! 여기 이 선배가 왔어요. 상황을 보니 때마침 멋진 등장?
그 순간 상황을 파악했다. 지금 살 길은 오로지 저 갑옷뿐이었다. 있는 힘껏 그쪽으로 달렸다.
“엇!”
주변에서 놀랐으나 말릴 틈도 없었다. 나는 재빨리 갑옷 뒤에 숨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고,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다시 우쭐해졌다.
“땅밑왕 너 이 새끼! 넌 이제 죽은 목숨이다! 우리 선배님이 어마어마한 분이거든!”
설마 온다고 하더니 리빙아머 같은 상태로 걸어올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진짜 어이없는 선배가 아닌가.
“크하하하!”
절로 웃음이 터졌다. 이제 이 갑옷만 있으면 두려울 것 없다. 우물에서 봉인되는 건 필멸자의 힘뿐이다. 무기류는 대체로 그대로다. 이 갑옷이 각성했다고 하니 힘 옵션만 붙어 있어도 대박이다.
-저기요? 후배.
한데 내 열렬한 반가움에도 상대는 떨떠름하다.
-왜?
-아무리 갑옷이라지만 여자 엉덩이 뒤에 숨어서 당당해지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요?
뭐야, 지금 내 커리어를 부정하는 건가. 내가 여자 엉덩이 뒤에 숨어서 얼마나 많은 승리를 거뒀는데. 그래서 당당히 대답해줬다.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주특기거든.
-네? 아… 그, 그런 건가요.
이번만큼은 누미디아의 사기꾼도 당황한 음성이었다.
-날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군. 이런 짓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이 남자, 이상한 부분에서 자랑을 하고 있네요….
누미디아의 사기꾼은 어이없어 하더니 다시 낄낄 웃는다.
-뭐 좋아요. 역시 후배는 맘에 듭니다.
-어떤 점이?
-명예를 모르는 점이요!
그렇게 우리가 떠들썩 할 때, 이 대화가 들릴 리 없는 땅밑왕은 황당한 기색이었다. 내가 갑옷 엉덩이 뒤에 허리를 낮추고 숨어 시시각각 표정변화를 하고 있으니 미친 것처럼 보이겠지.
“뭐해! 가서 잡지 않고! 놈은 빈사다!”
“네! 대장!”
엉망인 꼴을 보니 자신이 생긴 듯 그의 졸개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러자 누미디아의 사기꾼이 소리쳤다.
-후배! 지금부터 멋진 포즈라도 잡으세요.
-아니, 왜?
-합체할 거니까!
번쩍.
각성한 누미디아의 사기꾼이 순식간에 내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차르륵!
이거 몸에 딱 맞는 게, 핏이 정말 죽이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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