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202
“실패하면 완전히 끝이에요. 후배.”
나도 잘 안다. 다 잃어버리겠지.
“하지만 이대로 꼬리를 말 수는 없지. 만약 내게도 위대한 존재가 말했던 그 긍지란 게 있다면, 내 운명은 저기서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누미디아의 사기꾼은 내 결심이 확고한 걸 듣고 적극 돕겠다고 했다. 물론 나는 경고하는 걸 잊지 않았다.
“혹시라도 통수 칠 생각하지 마. 만약 그랬다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배 영혼을 끓어오르는 심연에게 팔아버릴 테니까.”
“걱정 마세요. 사기로 여기까지 올라온 자를 적으로 두고 싶지 않으니까. 저는 신격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나는 그녀의 소망이 진실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전부터 신격이 되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다지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는달까.
누미디아의 사기꾼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과거 그녀와 아퀼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좋아, 일단 일이나 하자고.”
“마침 때가 좋네요.”
중성자별이 한 번 휘젓고 사라진 이후 양진영의 개판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든 막으면서 감마선 버스트를 터뜨리려는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와 그 전에 상대를 박살내려는 발버둥치는 죽음의 충돌로 혼란은 점입가경이었다.
“이런 때라면 파고들 여지가 있겠군.”
“그렇죠. 두 어둠의 대군의 존재감도 충돌하고 있어요.”
음? 그런가?
나는 지나가듯 말한 사기꾼 선배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겐 두 어둠의 대군의 존재감이 충돌하는 게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격의 차이로 인한 문제다.
직접 중성자별을 부르는 등의 마법을 부릴 때는 나 같은 존재에게도 잘 보인다. 하지만 서로 존재감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싸움은 감지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인간 둘이 서로 손을 맞잡고 밀어내기 시합을 한다면, 땅바닥에 기어 다니는 개미가 그걸 인지할까? 전혀 모르겠지. 반면 그 인간들이 바닥에 호스로 물을 뿌려대면 개미도 뭔 일이 났다는 건 인지할 수 있다.
지금 두 어둠의 대군이 벌이는 힘겨루기는 그런 것이었다.
역시 이상해. 반쯤 신격에 다다른 나도 잘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데 그걸 명확히 본다면 누미디아의 사기꾼이 나보다 격이 높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녀는 무심코 말해서 자기 실책을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나는 일단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후배, 저길 보세요.”
“음?”
누미디아의 사기꾼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까,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를 섬기는 한 무리의 신격과 그들의 추종자가 맹렬한 기세로 발버둥치는 죽음에게 나아가고 있었다.
“드디어 나선 건가.”
일단의 무리가 발버둥치는 죽음의 몸에 침투해 보석을 노릴 거라고 미리 들었다. 누미디아의 사기꾼도 그런 임무를 받아 제한적으로 풀려난 상태고.
“우리도 가야해요, 후배.”
마침 전장은 난전으로 엉망진창이다. 방어를 뚫고 발버둥치는 죽음의 몸에 내려앉기 적기였다.
“좋아.”
우리는 최대 속도 나아갔다.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전장에 접근하기까지 한참 걸렸지만 막상 여기까지 오자 얼마나 지독한 상황인지 절감했다.
“멀리서 보던 거랑 차원이 다르네.”
수많은 시체가 우주 공간에서 얼어붙어 둥둥 떠다녔다. 어느 부분에서는 죽은 시체가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니, 이건 뭐랄까. 시체로 가득 찬 물 속을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저쪽으로 가지.”
기왕이면 돌파하는 무리에 합류하는 게 낫겠다. 나는 한 덩이로 뭉쳐 소용돌이 같은 기세로 적을 뚫는 자들의 후미에 끼어들었다.
“크아아아압!”
선봉에 선 덩치 큰 신격의 기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막아서려는 적들을 육편으로 터뜨리고 있었다. 마치 신격계의 여포를 보는 것만 같다.
“기세가 대단하지 않나?”
그때 함께 비행하던 무리 중에서 하나가 말을 걸었다. 당연히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갑옷은 완전 밀폐구조였고, 자아가 깃들어 있었기에 안에 내가 있는 걸 감출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갑옷이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됐다.
애초에 그녀는 갑옷이라기보다 강철 골렘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절대적인 자를 상대로도 잠시 동안 내가 안에 있다는 점을 감출 수 있다고 자신했다.
“당신은?”
누디미다의 사기꾼은 태연하게 대답하고 있었지만 내심 놀란 기색이었다. 나 역시 심장이 쿵쿵 뛴다. 그도 그럴 게 상대가 엄청난 거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의 총애를 받는 대신격, 검은 파라오였다. 갑자기 이런 존재가 말을 걸어올 줄이야. 그와는 이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검은 파라오는 대신격 중의 대신격이라 불린다. 일반적인 대신격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진 존재다.
“알면서 묻는군.”
“어쩐 일이신가요?”
그녀의 물음에 검은 파라오는 나직하게 웃는다. 음흉하고 불길한 웃음소리였다.
“사실 자네에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네. 누미디아의 사기꾼.”
“으음… 알 수 없는 소리를 하시는군요. 여기 저 말고 누가 있다고요?”
갑자기 불안이 마음속에 번졌다.
“바로 그대 안에 숨어있는 존재에게 물은 거지.”
“!”
놀란 나는 하마터면 목소리를 낼 뻔했다. 누미디아의 사기꾼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다급히 마음속으로 말을 걸어왔다.
-내색하지 마세요. 넘겨짚은 게 틀림없어요.
-그렇겠지?
-나는 어둠의 대군들 앞에서도 당신의 존재를 감출 수 있어요. 검은 파라오가 알아볼 리가 없잖아요.
-상식적으로야 그렇지. 하지만 그냥 넘겨짚은 듯하지 않은데….
이쪽을 보는 검은 파라오의 눈빛은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깊이가 느껴졌다. 뭐랄까, 이건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나 끓어오르는 심연 같이 절대적인 존재와 비슷한데.
“곤란하면 인정하지 않아도 좋네.”
검은 파라오는 더 추궁하지 않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사방천지에 싸움으로 난리가 난 상황에도 그는 유쾌한 기색이었다. 오히려 비행하면서 어깨 부분에 풀린 붕대를 다시 묶기도 했다.
“하하, 뒤쪽 붕대 좀 바로잡아 주겠나? 미라가 된 이후에 이놈의 붕대 고치는 게 일일세.”
우리는 그의 넉살에 대답을 찾지 못해 곤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검은 파라오는 말을 이어갔다.
“발버둥치는 죽음의 안으로 잠입하는 걸 도와주겠네.”
“무슨 생각이신가요?”
“허허, 안에 든 친구는 끝내 입을 안 열 건가? 무슨 통역을 쓰는 것도 아니고 한 다리 건너 대화해야 하다니.”
“무슨 생각이냐고 물었습니다.”
누미디아의 사기꾼이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자 검은 파라오는 다시 껄껄 웃었다.
“자네는 아름다운만큼 가시가 있군. 그저 손을 내밀어주겠다는 거네. 잠입을 돕고 그 이후에….”
“거기까진 됐어요. 보석의 탐색은 함께할 생각이 없으니까.”
“그렇겠지. 자네들은 혹시라도 짐이 보석을 갖게 될까 우려되겠지. 하지만 걱정 말게나. 자네들이 원한다면 짐은 양보하지.”
이상한 얘기였다. 내가 아는 검은 파라오는 무덤에서 웅크리는 자의 총애를 받는 대신격이다. 당연히 영원의 보석을 구해 자기 주인에게 달려가야 정상인데?
누미디아의 사기꾼이 이런 내 의문을 대신 물었다.
“당신은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를 섬기고 있잖습니까?”
“으음? 내가 언제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를 섬기고 있다고 했는가? 물론 그 멍청한 묘지기는 내가 자기 수하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하하하!”
갈수록 알 수가 없었다. 이거 참,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말인지 모르겠다.
“그럼 누구를 섬기십니까?”
결국 내가 목소리를 내자 누미디아의 사기꾼이 깜짝 놀란다.
“후배!”
“괜찮습니다. 진작 들켰는데요. 저건 넘겨짚는 거 따위가 아니에요.”
검은 파라오는 내 태도가 맘에 드는 듯했다.
“이제야 나서는군, 발러슈테드 발러.”
“저를 기억하십니까?”
“물론일세. 자네가 여기 왔다는 건 비밀로 지킬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묘지기가 자네를 반가워할 리가 없으니까.”
검은 파라오의 태도는 이전과 천양지차였다. 그때 마스타바 앞에서 만났을 때는 정말로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의 종복 같았다. 뭐랄까, 자기 주인에 대해 공경심이 느껴질 정도? 그 점을 묻자 그는 콧방귀를 끼었다.
“그거야 마스타바 안에서 그 옹졸한 놈이 듣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나. 지금은 짐이 뭐라 떠들던 모를 걸세. 그러니 맘대로 얘기할 수 있지.”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를 향한 조소를 감추지 않은 그는 내가 아주 맹랑한 짓을 했다고 좋아했다.
“워낙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묘지기는 자네에 대해 잊고 있지. 하지만 발러슈테드 자네가 발버둥치는 죽음의 봉인을 풀면서 장난질을 한 걸 알게 되면 가만있지 않을 걸세.”
애초에 지금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가 고전하는 건, 내 수작질 때문이다. 봉인을 풀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죽음에게 잘린 신체와 끈적이는 역병을 먹게 해줬으니까.
신의성실의 계약에 어긋나는 결과였고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가 그걸 알아채는 순간 내 영혼은 끝장이다.
“아주 그럴싸한 대책이 있어야 할 걸세, 발러슈테드.,”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하하, 정말 그대는 보통이 아니군. 힘은 보잘 것 없지만 배짱은 대신격들도 못 당할 걸세. 대신격이라고 해도 그 묘지기의 분노를 사면 놀라서 똥오줌을 질질 흘리는데, 반면 자네는 그를 속여먹을 생각만 가득하군.”
내 행동에 검은 파라오조차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우주 역사상 자네 같은 필멸자는 없었어.”
“그건 일단 재껴두시지요. 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누굴 섬기는지 물었다.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가 아니면 대체 누구인가?
“글쎄, 말해도 모를걸?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분이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미소를 지우고 나직하게 혀를 찼다.
“…이미 사라지고 말았지. 하지만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네.”
“대체 그게 누굽니까?”
검은 파라오는 혼자 턱을 쓰다듬고 생각에 잠겼다. 주변에서 폭발과 함께 신격들의 몸이 육편이 되어 터져나가고 있었지만 그는 남 일처럼 태평하다.
“좋아, 이쪽 비밀을 알려주면 자네도 조금 안심할 수 있겠지. 바로 눈 멀고 우둔한 아버지라네.”
“네?”
나는 바로 미간을 좁혔다. <눈 멀고 우둔한 아버지>라…?
“그런 어둠의 대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칠마성전을 봤기 때문에 제 지식은 신격조차 넘어서는….”
“아니지. 일단 아버지는 어둠의 대군이 아니니까. 그리고 말했잖나.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분을, 돌아오길 기다리며 섬기고 있는 겁니까?”
“내 긴 사연을 잘 요약해 주는군.”
검은 파라오는 다시 웃으며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검은 영기가 가득 뿜어져 나오더니 우리를 덮쳐 오던 괴종족들을 일제히 증발시켜버렸다.
그 괴종족 중에 별의 자식도 여럿이었는데 손을 한 번 들어 소멸시키다니…, 나는 검은 파라오의 권능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과연 대신격 중의 대신격….”
“사실 난 자네가 뭘 하려는지 짐작하고 있다네. 그걸 방해할 생각도 없고 자네가 제법 잘 해내리라고 믿음도 있지. 하지만 저기에는 말이야.”
검은 파라오는 발버둥치는 죽음을 가리켰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에 우리는 어느새 근접해 있었다. 침입을 막기 위한 자들의 저항 역시 더욱 격렬해져 간다.
콰드득! 콰아앙!
갑자기 발버둥치는 죽음의 몸에서 수십 킬로미터 길이의 거대한 촉수들이 튀어나왔다. 마치 검은 얼음을 뚫고 거대한 지렁이가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 촉수들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주변에서 비행하는 신격들을 잡아채서 으깨버리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피해! 발버둥치는 죽음의 촉수다!”
그때까지 뭉쳐서 돌파를 시도하던 이 무리는 착륙하려던 도중에 촉수들이 나타나자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각자도생하며 안으로 침입하려는 것 같았다.
“자네가 생각하는 이상의 위험으로 가득해.”
갑자기 나타난 촉수 때문에 검은 파라오의 말에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짐이 돕는다면 자네 목적을 이루기 훨씬 좋겠지.”
“어째서 절 도우려 하십니까?”
내 물음에 검은 파라오는 씩 웃었다. 사악하기 그지없으면서도, 호감을 주는 묘한 미소였다.
“간단해. 자네를 도우면 발버둥치는 죽음과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가 피눈물을 흘릴 테니까. 그 이상 재밌는 일이 어디에 있나! 하하하핫!”
검은 파라오는 파안대소하면서도 주변에서 잡아채려 다가오는 촉수를 모조리 박살내고 있었다. 사방에 신격들의 비명이 가득한 상황에서도 확실히 검은 파라오의 곁은 안전했다.
“설령 자네가 거절한다고 해도 강요하지는 않겠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선의로 하나만 알려주지. 듣게나.”
검은 파라오는 맹렬한 속도로 비행하는 우리 밑에 있는 얼음덩어리와 촉수들을 가리켰다.
“사실 저건 발버둥치는 죽음의 본체가 아니라네. 그저 껍질 같은 거지. 그걸 알아야 자네 일에 실패가 없을 거야.”
마치 검은 파라오는 내가 세운 계획을 짐작하고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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