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d a tyrant from a slave trader RAW novel - chapter 66
“에이바르. 뭐가 문젠가.”
로젠비크가 짐짓 냉랭한 어조로 물었다.
“아닙니다. 오랜만에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불편해서 그런 것입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진행하시지요.”
로젠비크는 그의 말대로 다시 진행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단순히 불편해서 그런 거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방해가 계속됐다.
기침을 요란하게 하는가 하면 의자를 끌기도 했다.
그것은 충분히 거슬리는 행동이었다.
“아르시아 공. 그렇게 불편하면 나가도 된다. 회의에 참석해주려고 한 것은 가상하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군다면 회의에 방해만 될 것 같군.”
“아닙니다. 폐하. 거의 다 끝나가지 않습니까. 저도 익숙해져야지요.”
에이바르는 로젠비크의 화를 돋우려는 듯이 말을 했고 지금껏 누구도 그러지 못했다는 점에서 귀족들은 그의 언행을 보며 환호했다.
오래된 체증이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로젠비크는 회의를 진행하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몇몇 귀족들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헤레이스는 에이바르를 노려보았고 레이아스와 루엔피스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황제에게 반감을 가진 귀족들은 그 모습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고 마침내 로젠비크가 먼저 그곳을 떠나버렸다.
“폐하께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신 것 같군.”
에이바르는 태평하게 말하고 일어섰다.
“좀 조심하도록 하세요. 백작이나 되었으면서 정무 회의 때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그렇게 어렵나요?”
헤레이스가 앙칼지게 소리치자 에이바르가 멀뚱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황후 폐하의 기분도 별로이신 것 같군요. 알았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냥 정무 회의에 나오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모처럼 신하 노릇 좀 해 보려고 했다가 이렇게 돼서 죄송하고 생각합니다. 이러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니 좋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황.후.폐.하.”
헤레이스를 명백히 조롱하는 것 같은 말투에 몇몇 귀족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르시아 공. 폐하께 무례한 행동은 삼가도록 하시오. 그러는 건 내가 그냥 두고 보지 않겠소.”
리카르도의 아버지가 말하자 에이바르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 사람, 두 사람이 자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일부러 늦게까지 남아 있다가 에이바르와 함께 나갔다.
에이바르는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들을 기다리거나 자기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몇몇 귀족들은 사냥감을 정한 것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아르시아 공에게 그런 면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오늘 함께 저녁 만찬을 같이 하면서 얘기를 나눠보면 어떻겠습니까. 오랜만에 황성에 오신 것을 환영할 겸 말입니다.”
에이바르는 몇 번 사양했지만 나중에는 그들의 강권을 계속 거절하기가 어려워져,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에이바르를 아는 사람들이 봤으면 그가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하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을 터였다.
“그러면 저녁에 뵙도록 하지요.”
에이바르는 그렇게 말하고 사람들과 헤어졌다.
자기가 빠져줘야 그들끼리 작당 모의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에이바르는 그것도 상당히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용병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하거나 감정을 감추고 남을 속여야 할 때도 종종 있었다.
그가 그런 일을 익숙하게 해내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황성에 있는 저택에 가자 서먹서먹해진 사용인들이 그를 반겼다.
에이바르는 금방 자신의 서재로 들어가 버렸고 덕분에 사용인들과의 어색한 대면은 금방 끝이 났다.
그는 저녁 만찬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로이드가 준 마도구를 다시 착용했다.
이걸 통해서 저쪽에서 같은 걸 보게 될 거라고 하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됐다.
로이드도 같이 있을 테니 여차하면 그가 공간 이동 마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올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마법 스크롤로 와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는 마음을 놓고 있었다.
인신매매에 연루되고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고결한 듯 구는 귀족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조금 어렵기는 했지만 그 정도 감정은 감춰줄 수 있었다.
시간이 되어 에이바르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가 만찬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아르시아 공. 편하게 에이바르 공이라고 불러도 되겠는지요?”
“아르시아 공이라고 부르십시오.”
굳이 편하게 굴려고 하지 말라는 듯이 말하자 저택의 주인인 라리그 백작은 어색해하면서도 그 말을 받아들였다.
만찬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풍성하게 차려졌다.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질 지경이었다.
사용인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시중을 들었는데 시중드는 여자들이 나이가 어려보였다.
열다섯 살도 되지 않았을 것 같은 아이들을 보면서 에이바르는 그 아이들도 인신매매를 당한 아이들은 아닐까 생각했다.
혹시 저택의 주인이 자기를 떠보려고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설마 황제와 짜고 이런 짓을 하는 건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저택의 주인은 에이바르에게 태도를 확실히 보이라고 경고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에이바르는 상황을 살폈다.
어린 사용인들이 시중을 드는 동안 몇몇 귀족들이 노골적인 접촉을 하고 이죽거렸다.
에이바르는 잠시 고민했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계획에 변수가 생기는 것이야 용병들에게는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당신. 노예상이랑 작당하고 인신매매를 했소?”
에이바르의 직접적인 말에 라리그 백작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지금 나를 불러놓고 이런 짓을 하는 이유가 뭐요. 여기에 와 있는 인간들이 짐승 같은 놈들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그런 건가?”
“아르시아 공!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오!”
“내가 말을 함부로 했소? 내 생각에 당신은 나한테서 이런 말을 들어도 되오. 이 말보다 더 심한 말도 들어도 되오. 알겠소?”
“닥치라고 했소! 당신이 황후의 오빠라는 건 잘 알고 있소만, 그렇다고 당신이 제국에서 대단한 인물이라고 착각하지 마시오. 여기에서 살아나가는 것도 어려울 수도 있을 거라는 말을 하는 거요. 밖에는 내 기사들이 있소. 당신이 내 기사들을 다 이기고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소?”
라리그 백작은 에이바르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싶은 듯했다.
그러나 에이바르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람들은 에이바르 덕에 좋은 구경을 하게 됐다는 듯이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상처입은 맹수를 조롱하는 듯이 에이바르를 자극하려고 하며 어린 여자아이들을 쓰다듬었다.
“손을 성히 달고 가고 싶으면 손을 얌전히 내리는 게 좋을 것이다.”
에이바르가 말하며 어느새 검집에서 검을 빼 들자 귀족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것은 장난이라고 할 단계를 이미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아르시아 공. 선을 넘지 마시오. 우리가 그냥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줄 수 있소.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늦을 것이오.”
라리그 백작은 약간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에이바르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라리그 백작은 인신매매에 연루되어 있었고, 그 사업을 통해서 막대한 이익을 누리고 있었다.
그래도 평소에 눈에 띄게 어린 아이들을 풀어두지는 않았는데 그날은 에이바르를 끌어 들이려고 조금 무리수를 둔 것이었다.
적당히 술을 먹이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도 그냥 따라할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강경하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렇게 성격이 곧은 사람은 일단 한번 잘못된 것에 발을 담그면 쉽게 발을 빼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인데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에이바르는 검을 빼 들었고 귀족들을 위협했다.
귀족들은 그가 그냥 말로만 그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닫고 손을 내렸다.
그러나 자존심을 굽히지 못한 사람이 몇 사람은 있었고 그는 할 테면 해 보라는 듯이 에이바르를 노려보았다.
백작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에는 경험이 많지 않을 거라고 그들은 멋대로 생각했다.
그가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몰라서 그런 오해를 한 거였지만 그것을 알아차리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에이바르는 검을 가볍게 움직였다.
그의 검은 허공에 실선 몇 개를 그리고 내려오는 것 같았다.
실제로 공격을 당한 사람들조차 뜨거운 것이 어깨에 끼얹어진 것 같은 느낌을 잠깐 느꼈을 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피… 피…!”
누군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바닥으로 무언가 툭 떨어지고 어깨 아래가 휑한 느낌이 들면서 갑자기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을 때도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모두 들어와라! 들어와서 에이바르 아르시아를 잡아라! 죽여도 좋다! 아니. 반드시 죽여라!!”
라리그 백작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에이바르는 편한 자리를 찾아 옮겼다.
그러면서 어린 여자아이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아이들은 겁을 먹은 상태에서도 에이바르의 말을 따랐다.
그 모습이 라리그 백작의 심기를 더욱 상하게 만들었다.
“모두 안전하게 있어라. 자기 안전은 자기가 지켜야 하는 거다.”
에이바르는 무뚝뚝하게 말하고 그들의 앞을 지켜섰다.
문이 열리고 밖에 있던 기사들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에이바르에게 다가오지도 못하고 그의 검풍에 휘말렸다.
마나를 밀어넣고 기다리고 있던 에이바르가 오러를 날리자 그에게 그런 검술 실력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것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당황하며 물러났고 손발이 엉켜서 제대로 싸우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에이바르도 무적은 아니었다.
기사 중 몇몇은 일부러 여자아이들을 공격했다.
그는 아이들이 다치도록 놔두지 못하고 그쪽으로 향하는 검을 막으려고 하다가 몇 번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기사들은 드디어 약점을 찾았다는 듯이 기고만장한 얼굴을 했다.
에이바르가 여자아이들을 신경 쓴다면 그 아이들을 공격하고 틈을 노리면 된다고 생각한 듯했다.
수를 다 읽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라리그 백작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에이바르를 노려보았다.
이제 그도 이 이상은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가 사납게 외쳤다.
“오래 시간을 끌 것도 없다. 그냥 죽여버려라!”
그러자 기사들 몇이 에이바르를 향해 검을 겨누도 다가왔다.
흡사 창과 화살에 찔린 맹수를 사냥하는 자들의 태도와도 같았다.
에이바르는 자신의 몸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의연했다.
자신은 해야 할 일을 했고,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목표를 정했던 대로 살았으니 후회도 없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자기가 죽으면 뒤에 있던 아이들은 다시 짐승같은 놈들에게 끌려가게 될 거라는 거였다.
조금만 더 버티자고 생각한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몸이 많이 굳었군. 실망이야. 에이바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에이바르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늦었잖아. 로젠비크. 일부러 그런 거지? 훨씬 더 빨리 올 수 있었잖아. 내가 당하고 있는 걸 다 알았을 거면서.”
“그렇긴 했는데 멋진 걸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나는 정말 네가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 안 했어. 겨우 이런 놈들을 상대해서 이 모양이 되다니. 정말 창피하다. 헤레이스가 보면 혀를 찰걸?”
로젠비크는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말을 하면서 검을 빼 들었다.
황제가 나타난 것을 보고 사람들은 겁에 질려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막 가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제국의 황제에게 검을 겨눌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폐, 폐하… 그것이… 그것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너희들.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나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랬는데 황제 폐하가 너희를 살려둘 것 같아? 빨리 황제 폐하를 공격해야 할걸? 폐하께서 나를 얼마나 걱정하시는데. 나를 공격하고 살기를 바라면 안 돼.”
에이바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로젠비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기가 늦게 나타난 것에 복수를 하려고 그런 것 같았다.
사람들이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라리그 백작을 바라보고 있을 때 허공에서 헤레이스가 나타났다.
“어우. 오빠. 미안. 스크롤을 떨어뜨렸어. 그래도 많이 늦지는 않았지? 많이 늦었…나? 그거 오빠 피야?”
헤레이스의 말에 사람들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17장
“어떻게 하기로 한 거예요? 뭐 하면 돼? 다 죽이면 되는 거야? 맞지?”
헤레이스가 로젠비크를 보고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것 같은데. 저놈들이 먼저 공격을 해 올 것 같으니까 그때 죽이지?”
“그래. 알았어.”
헤레이스는 상큼하게 말하고 그들이 공격하기를 기다렸다.
라리그 백작은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한 듯 모두에게 공격을 명했다.
그곳에 있던 귀족들도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기를 바란 사람은 없었겠지만 어차피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느리건 빠르건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은 모두 알았을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에이바르를 그곳에 부른 것이기도 했다.
기사들은 아직도 쉽게 검을 겨누는 것이 어려운 듯했지만 결국에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들이 검을 든 그 순간 로젠비크가 아주 능숙한 솜씨로 검을 휘둘렀다.
검이 춤을 추고 나자 그의 검에서 날아간 오러가 사람들의 몸에 촘촘한 검상을 새겨넣었다.
“살기를 바라면 안 될 거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에이바르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라리그. 너는 나를 공격하지 않을 셈인가?”
로젠비크가 그를 향해 검을 겨누며 말했다.
라리그 백작의 옆에는 수많은 귀족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겁에 질린 상태였다.
“나는 뒤늦은 협상을 싫어한다.”
로젠비크의 말에 라리그 백작이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렸다.
“폐하.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단순한 오해가 잇었을 뿐이었습니다. 기사들이 공격을 한 것도 그들이 독단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판단하고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폐하.”
“조용히 하거라. 라리그. 너에게 말을 하라고 허락하지 않았다.”
로젠비크는 조용히 말했고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살벌한 소리와 함께 다시 살육이 벌어졌다.
헤레이스와 에이바르가 어린 여자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