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선을 보다 (1)
도씨 가문이 암암리에 사방에서 가을 곡물을 수매하는 동시에 오씨의 생일잔치도 시끌벅적하게 열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며칠 전까지 줄곧 화창하고 맑았던 날씨가 갑자기 전날 밤부터 안 좋아져 비가 오기 시작했다. 가을비가 한바탕 내리고 난 후 날이 밝을 무렵이 되어 비는 그쳤지만 날씨가 흐린 탓에 유난히 추웠다.
날이 밝아오자 임근용은 오씨의 생일잔치를 위해 특별히 만든 앵초색 비단 겹옷과 산호 분이 뿌려진 흰색 주름치마를 입고 도씨가 선물한 보석에 수술이 달린 금보를 달았다. 그녀가 머리를 양쪽으로 둥글게 말아 올리고 입술에 연지를 조금 바르려고 하는데 도봉상이 갑자기 들어오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아직 입동도 안 됐는데 왜 이렇게 추운 거야. 진짜 한밤중에 왜 비는 오고 난리라니? 정원에 물이 고여서 오후 내내 실내에만 앉아 있어야 하잖아.”
도봉상은 뒤에 서 있던 시녀가 들고 있는 수정 그릇에서 꽃을 골라 임근용에게 꽂아 주며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걸로 골라서 꽂아.”
수정그릇에는 수경재배 한 예쁜 꽃들이 있었는데, 목부용과 진주월계화 두 가지 종류였다. 색깔은 농담이 서로 다른 분홍색, 노랑색 등이 있었는데 이런 경삿날과 아주 잘 어울리는 색깔이라 눈과 마음이 즐거워졌다. 그중에서 특히 목부용이 아주 예뻤다. 임근용은 손을 뻗지 않고 우선 도봉상이 어떻게 치장했는지 살펴보았다.
도봉상은 오늘 옅은 분홍색의 무늬 비단 상의와 치마를 입고 보라색 허리띠를 맸으며 쌀알 같은 진주가 달린 금보를 차고 있었다. 양쪽으로 꼬아 올린 머리에는 신선한 분홍색 부용꽃을 꽂고 얇게 연지와 분을 발라 한 떨기 꽃 같은 소녀의 아름다움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가 이미 목부용을 꽂았으니 자신은 진주월계화를 꽂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임근용은 노란색 월계화를 집어 들어 도봉상에게 꽂아달라고 부탁하며 웃었다.
“셋째 언니, 언니 오늘 정말 예쁘네요.”
도봉상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우리 언니는 훨씬 더 예쁘게 차려입었어.”
도봉상은 약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오늘 같은 날은 남자 쪽 집에서 반드시 축하 인사를 와야 했다. 임근용은 그런 그녀를 보고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넘겨짚으며 말했다.
“어, 오늘 누가 오기로 되어 있어서 그런가 많이 수줍어 보이네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봉상이 그녀의 귀를 잡아당기며 매섭게 말했다.
“누구 얘길 하는 거야?”
임근용이 얼른 귀를 감싸며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잘 못 봤나 봐요.”
“흥흥…….”
도봉상은 귀를 한 번 비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듯 미적거리며 손을 풀었다.
“네 말도 맞긴 해. 오늘 분명 부끄러워할 사람이 있어.”
임근용은 작은 상아 상자에서 입술 연지를 조금 덜어내 거울을 보며 입술에 꼼꼼히 발랐다. 그녀는 거울로 자기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즐거워하다가 말했다.
“누구요?”
도봉상은 대답 없이 거드름을 피우며 그녀에게 분을 발라 주려 했다. 임근용이 단호하게 거절하며 말했다.
“전 아직 어려서 너무 많이 단장하면 사람들이 비웃을 거예요.”
사실 입술 연지를 바른 것도 오씨를 위해서였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을 것이다.
도봉상이 얼굴을 찡그리며 그녀를 비웃었다.
“어리긴 뭐가 어려? 이제 곧 혼담도 진행해야 할 사람이 아직도 어리다고 하다니. 그럼 나도 비웃어야겠네? 대체 무슨 고리타분한 소리를 하는 거야?”
임근용은 그녀가 의외로 정곡을 찌르자 얼굴이 뜨거워져 목소리를 살짝 높이며 말했다.
“언니는 갑자기 왜 그런 얘길 꺼내고 그래요?”
도봉상은 그녀가 굳은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고 그녀가 원래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그녀는 더 이상 임근용을 놀리지 않고 웃음기를 거두며 정색하고 말했다.
“알았어, 그만 놀리고 진지하게 말할게. 지난번에 고모가 우리 어머니한테 네 혼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셨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지 않아?”
임근용이 찌푸렸던 미간을 점점 펴더니 미소를 지었다.
“언니 또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죠. 이번에는 정말로 안 속아요.”
도봉상이 급하게 말했다.
“내가 또 언제 너한테 거짓말을 했다고 그래? 우리 어머니랑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걸 내가 직접 들었어. 진사까지는 필요 없고 너그럽고 유능하면서 집안이 부유하고 형제가 적은 사람으로 알아봐 달라고 하셨대…….”
“그런 말을 언니 앞에서 했다고요?”
임근용의 얼굴에 웃음기가 더욱 뚜렷해졌다.
“그걸 어떻게 믿어요.”
도봉상이 어찌 동생에게 자신이 엿들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임근용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이 계집애야, 못 믿겠으면 앞으로 두고 보면 되잖아. 그보다 또 다른 큰일이 있어. 좀 전에 어머니한테 미리 생일 축하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고모가 말씀하시는 걸 들었는데 이참에 선을 보려고 범씨 가문과 손씨 가문 아가씨를 전부 손님으로 초대했대. 너도 누군지는 알지?”
임근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어머니께서 따로 찾아가서 만날 줄 알았는데.”
도봉상이 의기양양해하며 그녀를 놀렸다.
“아직 어려서 이쪽 방면은 잘 모르는구나. 선보는데 이런 자리보다 더 나은 자리가 얼마나 있다고? 선보러 따로 방문하면 맘에 들 경우에는 괜찮지만 맘에 안 드는 경우는 또 잘 에둘러서 위로해야 하고 무례한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미움을 살 수도 있는 거잖아.”
임근용의 마음이 움직였다.
“사촌 언니, 언니는 그 두 아가씨를 알아요? 엄청난 새언니가 들어와서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기라도 할까 봐 걱정돼서요…….”
“손 소저는 본 적이 있어. 성격이 고상하고 온화한 편이야. 범 소저는 본 적 없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평판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지는 잘 모르겠어…….”
* * *
두 사람이 오씨 방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시간이 일러 손님들이 오지 않은 상태였다. 오씨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자기 식구들이었다. 임근용은 직접 수를 놓은 베갯잇을 올리고 큰절을 하며 축하 인사를 했다. 임근용은 장수면을 먹고 그녀들 옆에 단정하게 앉아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비록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오씨의 기분은 전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오씨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웃으며 흥겹게 사람들이 보낸 생일 선물을 뒤적였다. 그녀는 때때로 아이들에게 한두 마디 농담을 던지며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사시(巳时)가 되자 점점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도순흠이 장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어서인지 청주성 내의 명망 있는 사람들 이외에도 평소에 친분을 쌓아두었던 여러 사람들이 찾아왔다. 손님이 많이 와서 도씨는 도봉경을 도와 나이가 좀 있는 여자 손님들을 접대했고, 임근용은 도봉상을 따라 나이가 어린 아가씨들을 안내했다.
도봉상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어린 아가씨들에게 익숙하다는 듯 인사하고 예의 바르게 한담을 줄줄 늘어놓았다. 임근용이 자기도 모르게 부러워하며 말했다.
“언니, 원래 이렇게 친구들이 많았어요? 친구들하고 주로 뭐 하고 놀아요?”
그녀는 임근용에 비해 훨씬 자유롭게 사는 것 같았다.
도봉상이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거의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이야. 그냥 평소에 자주 외출을 하니까 보고 들은 게 많아서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할 지 아는 것뿐이지.”
그녀는 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임근용을 향해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손씨 가문의 아가씨와 그 올케가 왔어. 잘 살펴봐.”
그녀들은 두 여자를 마중하러 가서 웃는 얼굴로 부인의 차림새를 칭찬했다. 부인은 후덕한 얼굴이었지만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이는 대략 스물 대여섯쯤 되어 보였다.
“손 부인, 옷 색깔이 참 곱네요.”
손 부인이 약간 굳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겸손한 말투로 말했다.
“이건 평주성에서 산 건데 제일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걸로 고른 거예요.”
도봉상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무슨 그런 겸손한 말씀이세요. 색깔이 부인께 너무 잘 어울리는데요.”
그러고 나서 도봉상은 두 손을 모은 채 손 부인의 뒤에 서 있는 여자를 향해 친절하게 말했다.
“언니, 오랜만이에요. 옷에 있는 그 꽃은 언니가 직접 수놓은 건가요? 정말 예쁘네요.”
임근용은 옆에 서서 손 소저를 진지하게 살펴보았다.
손 소저는 은실로 연꽃무늬를 수놓은 연보라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젊은 여자들이 자주 하는 동심형으로 틀어 올린 머리에 머리 장식과 옥류소(玉流苏)를 꽂고 있었다. 그 옥류소는 조금 특별했는데 윗부분에는 머리를 쳐들고 꼬리를 곧추세운 모양의 홍옥으로 만든 잉어가 있었고 아랫부분에는 영롱한 빛을 발하는 백옥 가루가 묻은 수술이 달려 있었다. 그녀는 하얀 피부에 얇게 지분을 발랐고 구부러진 눈썹과 버들잎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표정은 담담했고 아주 예쁘다고까지 할 수는 없었지만 단정하고 점잖아 보였다. 정성스럽게 차려입은 것이 한눈에 보였다.
손 소저가 도봉상의 칭찬에 부드럽게 대답했다.
“셋째 아가씨가 제 나이가 되면 저보다 훨씬 더 잘하실 거예요.”
손 부인은 고개를 돌리고 시누이의 말투와 표정을 살펴본 뒤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그만 들어가서 도씨 부인께 인사를 드려야겠어요. 셋째 아가씨 시간을 너무 많이 뺏으면 안 되지요.”
손 소저도 도봉상에게 작별을 고하고 올케 언니의 뒤를 따라 대청으로 들어갔다.
도봉상이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아용, 잘 봤어? 어때? 그 옥류소 봤어? 위에 있는 붉은 옥으로 된 잉어가 되게 특이하지 않아? 저 손 소저의 규명이 바로 홍리(*红鲤: 붉은 잉어)래.”
그 옥류소는 특별히 주문해 제작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손 소저의 혼수는 아마 그렇게까지 적지는 않을 것이고 최소한 임역지와 비슷한 수준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근용이 절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꽤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손 부인께서 좀 엄해 보이네요.”
사실 지나가듯 힐끗 봤을 뿐이라 제대로 봤다고 할 수는 없었다. 첫인상은 좋아도 실제로 교제해 보면 좋지 않은 사람인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뭘 어쩌겠는가? 속속들이 다 알고 지내는 친분 있는 집안이나 친척이 아니고서야 그저 운명에 내맡기고 불만족스럽더라도 운이 나쁜 탓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봉상이 작게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손씨 가문은 식구가 적은데 노부인께서 일찍 돌아가셨어. 이 젊은 부인이 시집오자마자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시아버지, 시누이, 시동생까지 일가를 다 보살폈어. 젊은 나이에 그렇게 많은 일을 겪었으니 어찌 엄격해지지 않을 수 있겠어?”
임근용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 소저가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해도 임역지보다 두 살이나 많고 조실부모한 데다 큰올케가 집안 살림을 맡아서 하는 상황이라 사람들 눈에는 좋은 짝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녀와 약혼을 한다면 설령 그녀가 혼수를 풍부하게 가져온다 하더라도 도씨가 욕을 먹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정말로 쉽지 않았다. 그래도 임근용은 어쨌든 범씨만 아니면 되니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해도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