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516
515화. 포옹
임근용은 지금 갑작스럽게 늘어난 세금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당연히 관료 가문인 육, 임, 오 세 집안과는 별 관련이 없었지만, 그들의 밑에 있는 소작인들과 일반 백성은 도저히 먹고 살 수 없는 지경이었다. 소작농의 경우 땅도, 공구도, 소도 없었기 때문에 수확한 곡물의 절반을 지주에게 소작료로 지불 해야 했고, 여기에 더해 식구 수에 따라 관아에 세금도 내야 했다. 뒷배가 없는 많은 상인들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진 핍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근은 문발 아래에 서서 심각한 목소리로 임근용에게 바깥 상황을 보고했다.
“세금이 너무 무거워 일부 소작인들이 벌써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내년 춘경쯤에는 쓸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정상적인 세금을 제외하고도 곡물 1섬마다 2승(*升: 리터(liter))을 서작모(*鼠雀耗: 옛날 나라에 바치는 곡식이 쥐나 참새에 의하여 해를 입는다는 구실을 붙여 더 받던 부과세)로 내야 하고, 가모(*加耗: 징세할 때 운송이나 보관 중 발생하는 곡식의 손해분을 고려해 미리 가산해서 징수하는 것)로 한 말을 또 더 내야 합니다.
거기다 의창세(*义仓税: 흉년에 대비해 미리 곡식을 걷어 창고에 저장해 두기 위한 세금), 정구부(*丁口赋: 인두세, 납세 능력의 차이를 고려하지 아니하고 각 개인에게 일률적으로 매기는 세금)까지 부과되고, 누군가 도망치면 그것까지 남은 집들에 추가로 얹어서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땅 1묘에 대한 세금을 다 내려면 땅 3묘가 있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건 원래 규정된 세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 거기에 부역까지 더해지니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임근용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근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약과입니다. 올가을 세금은 평주에서 받지 않고 태명부로 이관해 태명부에서 일률적으로 북쪽으로 운송할 거라 했다 합니다. 하지만 실물로는 받아 주지 않아서 반드시 돈으로 바꿔서 납부해야 하는데, 지금 쌀값이 1말당 50문밖에 되지 않습니다. 쌀로 100문을 바꾸면 거기에 또 20문의 창고비가 붙습니다. 거기에 직접 돈을 태명부로 가지고 가서 내지 않고 여기서 내면 또 20문의 수고비가 붙지요. 이렇게 계산하면 100문의 세금을 내기 위해서는 실제로 140문을 내야 하는 겁니다. 실물로 내던 것에 비하면 거의 3배 가까이 더 세금을 내야 하는 셈인데, 누가 남아 있으려 하겠습니까?
마 장두가 목이 다 쉴 때까지 설득을 해도 도저히 사람들을 붙잡을 수가 없어서 매일 자고 일어날 때마다 몇 집씩 도망가고 없답니다. 이소부인께서도 가능한 한 빨리 뭔가 방법을 마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내년에는 그 넓은 땅을 경작할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을 겁니다.”
“내가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 대세가 이미 그러한데 나 혼자 발버둥 친들 뭘 어쩌겠어. 마음이 있어도 그럴만한 능력이 없구나.”
임근용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년 봄에 누가 그런 것에 신경이나 쓸 수 있겠는가? 전생의 그녀는 왜 그런 동란이 발생했는지, 왜 수 십 명의 병사들의 반란에서 시작된 일이 나중에 그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왜 성안으로 진격해 들어온 비적들이 부잣집 사람들만 보면 흉악하게 돌변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들을 무참하게 칼로 베어댔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 먹고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째서 고생스럽게 농사를 지은 사람들이 의지할 곳 없이 떠돌며 밥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자식들마저 키울 수 없는 상황에 놓여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슬프게도 임근용이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임근용은 그간의 피나는 노력으로 스스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자신했지만, 아직도 그녀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너무도 많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이 세상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끔찍했다. 임근용이 했던 일들은 이런 일들과 비교하면 메마른 땅에 떨어진 물 한 방울과 같아서 사실상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한근을 돌려보낸 임근용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육건신을 찾아갔다. 그녀는 격앙된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육건신에게 그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육건신은 그저 담담하게 한 마디만 할 뿐이었다.
“알았다.”
임근용은 절로 입을 다물었다. 초록은 동색이라지 않던가. 육건신은 관료였고 한 지방을 관리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그 재산이 다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육건신이 어찌 이 일을 모르겠는가? 설령 몰랐다 해도 이런 말을 듣고 놀랄 사람은 그녀처럼 규방에 깊이 처박혀 있는 부인들밖에 없을 것이다.
육건신은 임근용이 말없이 가만히 있자 틀림없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라 생각하고 앞에 있는 탁자를 힘껏 내려치며 말했다.
“설마 또 소작료를 면제해 주려는 게냐?”
임근용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사나운 기세로 그녀에게 경고했다.
“둘째 며느리 너! 행동 조심해! 돈이 너무 많아서 보관할 곳이 없어서 그러는 게냐? 지금처럼 다들 힘든 상황에 또 네가 나서서 그런 짓을 하면, 남들한테 널 미워하고, 둘째를 미워하고, 날 미워하고, 육씨 가문을 미워할 구실을 만들어 주는 꼴밖에 더 되겠느냐! 또 제멋대로 굴 생각이라면 나중에 가서 나한테 야속하다고 탓한 대도 소용없을 것이다!”
의랑은 육건신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임근용을 꾸짖자 깜짝 놀라 즉시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가 앞으로 나와 임근용의 허벅지를 꼭 껴안고 놓지 않으며 계속 그녀를 불렀다.
“어머니! 어머니!”
그러더니 또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
“뭐하는 거예요? 아이가 놀랐잖아요! 좀 좋게 말할 수 없어요?”
임옥진이 옆에서 다급하게 분위기를 수습했다.
“근용이가 언제 소작료를 면제해주겠다고 했다고 그래요? 작년에 벌써 한 번 소작료를 면제해 줬고, 지금 집안에 돈 들어갈 데가 한 두 군데도 아니잖아요. 또 그랬다가 내년에 흉년이라도 들면 뭘로 먹고 살겠어요? 그치, 아용?”
임근용은 의랑을 품에 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며 더 이상 육건신과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도리를 모르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말라하지 않던가. 저런 사람과는 아무리 말을 해도 통할 리가 없으니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 소작인들이 전부 도망쳐 땅이 황폐화되면, 부자들한테는 대체 뭐가 남는단 말인가? 아무것도 남을 게 없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소작료를 감면해 주면 사람들의 분노를 살 수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또 그녀가 소작료를 면제해 주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을 거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임근용은 육건신의 저 낯짝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육건신은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 임근용을 보고 냉소하며 말했다.
“다들 잘 들어라, 앞으로 이소부인의 외출을 금할 것이다. 또 소작료를 감면할 일은 절대 없으니 그런 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받아야 할 소작료는 한 톨도 빠짐없이 전부 받아 내라!”
그러시든지. 임근용은 말없이 의랑을 품에 안고 밖으로 나갔다.
벌써 늦가을이라 날이 일찍 저물었다. 유시 정각(*酉正: 오후 다섯시)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태양은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고 하늘가에는 몇 가닥의 빛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두운 곳이 더욱더 어둡게 느껴졌다. 육함은 살며시 문발을 젖히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등불도 켜져 있지 않은 방 안은 어두컴컴했고 사람의 기척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문발 아래에 서 있는 앵두를 바라보았다.
앵두가 황급히 말했다.
“이소부인께서 대부인 댁에 다녀오신 후로 계속 이 상태예요. 의랑 공자께서 우느라 피곤했는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잠이 드셨는데 이소부인께서 의랑 공자가 깰까 봐 식사도 안 하시고 불도 안 켜셨어요. 이소야께서 오늘 오실 줄은 모르고 계실 거예요. 저희한테도 아마 내일이나 모레 오실 것 같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육함이 손을 흔들어 그녀에게 그만 가 보라고 한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는 창호지를 뚫고 들어온 희미한 복도의 등불 불빛만이 보였다. 여자 몸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와 어린아이 몸에서 나는 은은한 젖 냄새가 섞여 따스하면서도 감미로운 느낌이 들었다. 육함은 기억을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안방으로 들어가 침상 앞에 섰다.
그는 휘장 안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숨소리에 참지 못하고 휘장을 살짝 들추고 손을 뻗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손끝에 차가운 머리카락이 닿았고 이어서 따뜻한 얼굴이 느껴졌다.
“아용…….”
육함은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차가운 얼굴을 그녀의 얼굴에 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많이 힘들었겠군.”
임근용이 재빨리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으며 그의 품에 안겨 소리 없이 울었다. 어느새 그의 옷깃이 임근용의 눈물로 푹 젖었다. 육함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그녀를 꼭 껴안고 아이를 달래듯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속삭였다.
“울지 마시오. 내가 왔잖소.”
임근용이 그의 가슴에 기대어 울먹이며 말했다.
“민행, 분명히 동란이 발생할 거예요! 틀림없어요!”
“걱정 마시오. 내가 있잖소.”
육함은 방금 전에 방죽, 춘아, 한근으로부터 근래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더구나 오는 길에서도 보고 들은 바가 있어 육함 역시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임근용이 걱정하고 있는 일에 대해 육함 또한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임근용에게 그런 말을 해서 괜히 그녀의 걱정을 더 가중시키고 싶지 않았다. 육함이 웃으며 말했다.
“일단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을 먹은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이것 보시오, 의랑이가 시끄러워서 깼지 않소. 아이가 놀라겠소.”
임근용이 고개를 돌려 보니 정말로 의랑이 그녀의 옆에 모로 누워 고개를 들고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어두워 아이의 표정까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작은 두 눈이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임근용은 살짝 부끄러워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가 피식 웃으며 나지막이 아이를 꾸짖었다.
“요 못된 것, 깼으면서 어쩜 이리 시치미를 떼고 있어.”
육함이 가볍게 웃으며 손을 뻗어 의랑을 안아 들더니 아이에게 속삭였다.
“우리 의랑이가 얼마나 착한데.”
의랑은 작고 말랑말랑한 몸을 육함에게 찰싹 붙이고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꽉 껴안으며 작게 소리쳤다.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육함은 갑자기 마음이 봄날의 강물처럼 부드러워졌다. 그는 잠시 동안 의랑의 정수리에 입술을 붙이고 있다가 작게 말했다.
“그래, 다녀왔어. 의랑이는 착하게 말 잘 들었어?”
그는 이 말을 하고 나서 자신이 의랑이와 떨어져 있다 만날 때마다 매번 똑같은 말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랑은 아무 대답 없이 그에게 바짝 붙어 있다가, 또 손을 뻗어 임근용을 끌어당겼다. 그는 욕심껏 부모를 자기 옆으로 끌어당기며 놓으려 하지 않았다.
임근용은 마음이 아파 얼굴마저 다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육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니면, 우리 의랑이 먼저 피신시킬 방법을 찾아봐요. 혹시라도 우리 의랑이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무서워서 그래요.”
임근용은 지금껏 이 일을 혼자서 해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그녀를 포옹하는 육함의 손길을 느끼자 문득 육함이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속에서 희망과 갈망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육함은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임근용은 몹시 실망하며 천천히 그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가볍게 침상에 누우며 다시는 그에게 기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육함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일은 천천히 신중하게 논의해야 하오. 일단 밥부터 먹고 당신한테 자세하게 이야기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