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1)
12화 내 동생 건드리지 마라
용가리대출 사무실.
사장 김종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신중하게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다.
“야, 이번 주 배당 어떻게 되냐?”
“존 하비가 1.2이고 당진철이 7배지 말입니다.”
“그래? 뭐 정보 돈 거 없냐?”
“그냥 실력대로 붙을 것 같지 말입니다.”
대격변 이후 5차 혁명으로까지 부르는 차원 산업시대를 맞아,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다름 아닌 각성자 격투대회.
나라마다 지역마다 자잘한 대회들이 많지만, 가장 상금이 크고 인기 있는 건 하나였다.
Supernatural Power Fighting Championship.
줄여서 ‘SFC’가 상금이 가장 크며 명예도 있기에, 고랭크의 각성자 매치업이 자주 성사돼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합법, 불법을 막론하고 경기당 토토도 가장 활발하며 판돈도 크다.
“역배에 걸어봐?”
“에이, 짱개한테 걸긴 좀 그렇지 말입니다.”
“후우.”
김종수는 신중을 기하기 위해 둘의 매치업 자료를 찾아봤다.
세계각성자 랭킹 17위의 미국인 존 하비, 그리고 257위의 중국인 당진철.
각성자 랭킹이야 어차피 누가 몬스터를 많이 때려잡고 몸에 차원에너지를 많이 축적했느냐의 지표일 뿐.
누가 강한지는 싸워봐야 안다.
대중들은 SFC 타이틀을 가진 자가 세계최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후우, 짱개 놈이 일 칠 거 같긴 한데.”
김종수는 좋은 예감에 배팅하려는데, 사무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시선을 돌려야 했다.
“형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건 다름 아닌 밑에서 부리는 똘마니 중 하나였다.
김종수의 심복인 이수용이 버럭 소리 질렀다.
“이 새끼가 미쳤나. 큰형님 투자업무 중이시잖냐!”
“큰일 났습니다. 형님.”
“뭔, 큰일! 명함은 다 돌리고 왔냐?”
“지금 명함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밑에서 철수 형님 개 패듯이 맞고 있지 말입니다.”
“뭐? 누가?”
이수용과 김종수의 인상이 동시에 돌아갔다.
“시발, 어떤 개잡놈이 남의 나와바리에서 지랄이야? 철종이파야?”
“아닙니다. 그 왜 아까 오후에 왔던 빚쟁이 있지 않습니까. 그놈이 웬 젊은 놈을 하나 데려왔는데…….”
김종수가 인상을 썼다.
몇 시간 전 일이라 기억난다.
이자 갚기도 벅차서 빌빌대던 놈인데, 어디서 목돈을 꿨는지 대뜸 원금을 다 갚겠다고 찾아왔다.
당연히 문지기 선에서 걸러져 만나주지 않았다. 며칠 그렇게 애닳게 하다가 이자 받으러 가는 날에 찾아가 원금을 뻥튀기할 작정이었다.
흔하고 흔한 일이다.
“하, 어디서 힘깨나 쓰는 놈 고용해 왔구만.”
인생막장 빚쟁이들이 종종 악을 쓰곤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놈이 어떤 놈을 고용해 왔느냐다.
“젊은 놈 누구디?”
주먹질하는 뒷골목 인맥이 거기서 거기. 주먹 좀 친다는 놈들은 인상착의만 들어도 안다.
“처음 보는 놈이었습니다.”
김종수가 인상을 썼다.
“어떤 새끼지?”
“나다. 이 새끼야.”
열린 문으로 젊다고 하기엔 어려 보이는 녀석이 들어왔다.
“어어.”
명함 돌리던 똘마니가 화들짝 놀라 비켜섰다.
“누가 김종수야.”
“하 참. 어이가 없네.”
자리에서 일어난 김종수는 픽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형님!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소파에 앉아있던 이수용이 험악한 얼굴을 더욱 구기며 수호에게 다가가 으르렁거렸다.
“아따 대갈빡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어느 파에서 왔냐? 어이?”
“넌 빠지고.”
수호가 이수용의 머리를 잡고 옆으로 픽 밀었다.
쿠타당!
정말 가볍게 민 것처럼 보였는데 한 바퀴 날아간 이수용이 소파에 처박혀 바닥에 뻗었다.
한방에 기절한 그를 보며 김종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다고 부하들이 보는데 가오가 있지, 약한 모습 보일 수는 없었다.
“각성자가 초능력 써서 사람 막 패도 돼? 추방되고 싶어?”
각성자 특별법에 명시되어 있다.
일반인을 상대로 초능력을 써서 폭력 행위를 가하면 추가처벌을 받는다.
무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도시의 룰은 각성자에게 엄격하다.
합법적으로 초능력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유일한 무대가 SFC다.
잔뜩 긴장한 게 한눈에 보이는데도 당당한척 하려는 김종수를 향해 수호가 씩 웃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맞기 싫으면 꺼져라.”
“으음?”
“문지기가 그렇게 지껄이던데?”
수호의 미소가 짙어졌다.
“맞고 시작할까? 그냥 용건만 간단히 할까?”
김종수가 마른침을 삼키며 바닥에 뻗어있는 이수용을 다시 한번 봤다. 그래도 부하 중에 제일 맷집이 좋은 놈인데, 미동도 하지 않고 쓰러져있다.
“용건이 뭡니까?”
김종수가 꼬리를 내렸다.
*
자리가 정리되고 준호와 수호가 소파에 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김종수가 몸을 바짝 앞으로 숙이곤 테이블 위의 서류를 보며 말했다.
“이것으로 박준호 고객님과의 채무관계는 깨끗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찌이익.
찢어지는 차용증서를 보자 준호는 울컥한 심정이었다.
“그러게 돈 준다는데 왜 도망치고 그래?”
“아닙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희는 정직과 신용을 생명으로 여깁니다.”
뻔뻔한 소리를 뱉는 김종수의 뒤로, 아랫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부하 9명이 여기저기 멍이 든 얼굴로 서있었다.
요란하게 푸닥거리만 했지, 뼈 상하게 손쓴 놈은 없다.
“너희 얼굴 다 봐놨다. 앞으로 내 동생 건드리지 마라.”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부하들 단속 잘해.”
“물론입니다.”
수호와 준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종수가 허리를 굽히며 명함을 내밀었다.
“급전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주십시오. 고객님.”
“새끼.”
수호가 명함을 받아 챙기곤 손을 휘저었다.
“다음에 보자.”
“살펴 가십시오. 고객님.”
“살펴 가십시오.”
김종수의 선창에 부하들이 떼창했다.
수호 형제가 사무실 밖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명함 돌리던 막내가 창문의 블라인드 사이로 밖을 살폈다.
“완전히 갔습니다. 형님.”
그 말이 기폭제가 된 듯, 잔뜩 얼어있던 패거리들이 인상을 험악하게 구겼다.
“시발, 허리야.”
“아, 뒈질 것 같네.”
쾅!
김종수가 소파를 걷어차자 패거리의 웅성거림이 멎었다.
“시발. 막내야 소금 뿌려라.”
“예, 큰형님.”
돈 받아놓고 이렇게 기분 더럽기도 오랜만이다.
“수용아.”
“예, 형님.”
자신의 오른팔이자 패거리 가장 잘 치는 주먹이 아직도 얼이 빠진 얼굴이다.
“저 새끼 뒷조사해봐라.”
어디서 갑자기 뚝 떨어진 놈인지…….
“형제는 개뿔.”
쥐뿔도 없던 흙수저 새끼가 어떻게 저런 끈을 잡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보고 별것 아니면 이 모욕은 그대로 갚아준다.
“누군 뒷배 없는 줄 아나, 샹.”
김종수가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
명함 돌리기 및 청소 담당인 막내가 속으로 욕을 삼켰다.
*
치이익!
불판에 올려진 돼지갈비가 익으며 간장 냄새를 풍겼다.
샥, 샥.
준호가 집게와 가위를 들고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치이이익.
준호는 갈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건우를 보니 마음이 짠했다. 침을 꼴깍 삼키는 모습을 보니 괜히 미안했다.
이게 뭐라고 자주 사주지 못했는지.
“으음.”
건우 옆에 앉은 수호도 갈비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삼촌과 조카 모습이, 굶주린 개랑 강아지가 앉아있는 것 같다.
“이제 먹어도 돼.”
둘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와아.”
“이야.”
“그렇게 맛있어?”
준호의 물음에 건우와 수호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고기는 질리도록 먹어봤는데, 이렇게 양념한 건 진짜 오랜만에 먹는다.”
사냥이야 자주 했으니 고기야 삶아 먹고 구워 먹고 별별 요리법을 다 동원해봤다.
안타까운 건, 수호의 상식으로 구할 수 있는 조미료가 소금이 한계라 그리 다양한 조리법은 없었다는 점이다.
“지구 최고다.”
감탄을 거듭하며 고기를 흡입했다.
그런 형을 보니 또 짠한 마음이 드는 준호였다.
‘고된 삶이었을 거야.’
10년 만에 돌아온 형은 기억 속 형과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외모야 그대로이지만, 내면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변했다.
염치없지만 든든하다.
지금 준호의 마음이 꼭 그랬다.
“빚도 다 갚았고, 각성 할 것도 아니면 내일 필드는 안 가도 되겠다.”
“어, 으음.”
오늘 하루 트럭 정비도 하고 나름 준비한 준호다. 인생을 짓누르던 빚이 이렇게 쉽게 사라질 줄이야.
“앞으로 하고 싶은 거 없어?”
“하고 싶은 거라…….”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꿈이나 재능 따위는 생각해보지 않은 삶이었으니까.
돈, 돈, 돈. 그리고 아들을 향한 걱정과 미래의 불안함뿐인 인생이었다.
“형은?”
“난 용병해야지.”
“굳이?”
“어.”
“다른 안전한 일들도 많아. 급하게 돈이 필요한 일도 없잖아?”
“내가 다른 일이 어울리나?”
“…….”
그냥 형이 걱정될 뿐이다.
수호가 피식 웃었다.
“돈 때문이 아냐.”
“그럼?”
“난 사냥체질이야.”
“무슨 농담을 그렇게 진지하게 해? 하하.”
“농담 같냐?”
“…….”
수호에게 돈은 수단일 뿐이다. 목적이 될 수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문화를 즐기고 문명의 물건을 살 정도면 충분하다.
흔한 돌멩이를 귀하다 여길 사람은 없다. 필요할 때 길에 나가 주우면 되니까.
수호에게 돈은 딱 그 정도 가치다.
수호에게 사냥 전리품은 돈과 고기가 아니라, 레벨업과 업적포인트다.
“넌 뭐할래?”
한참을 고민하던 준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는 맹세할 수 있어.”
“뭐?”
준호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형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 도울게.”
“음?”
“잡일이라도 좋아.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이래 봬도 운전은 잘해.”
“새끼.”
수호가 웃으며 소주를 털어 넣었다.
*
신라 길드 인재관리팀.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강민혁 팀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박 차장! 특급이야!”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빼곰 내밀던 박명운이 팍 인상을 썼다.
“아, 또 뭐?”
“얘 좀 파봐.”
“뭐, 누군데?”
쪽지엔 이름과 등급, 간단한 신상정보가 적혀있다.
“일단 찾아봐.”
각성자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이름을 넣자 동명이인들이 주르륵 떴다.
“얘야, 얘.”
강민혁이 휘리릭 넘어가는 사진 중에 하나를 짚자 박명운이 눈썹을 움찔했다.
“F급? 그것도 오늘 각성자 등록했네. 초짠데?”
“그래. 초짜니까 더 대박이지.”
강민혁이 미소만 짓고 있자 박명운도 궁금증이 일었다.
“왜? 얘 뭐 있어?”
“각성스킬 조회해봐.”
“공개불가잖아?”
“뒷문으로 들어가 봐.”
“아, 거참. 귀찮게.”
불법이지 불가능은 아니다. 알고자 하면 비공개 정보 따위는 없다. 조금의 수고로움이 들어갈 뿐.
공개 불가인 개인정보들의 블록이 하나씩 지워지며 정보를 띄웠다.
“이야, 활동이력 죽이네.”
“그치?”
심플하지만 임팩트 있는 이력이다.
고블린 사냥이야 그저 그렇다 치더라도, C급 각성자 최구식을 생포해왔다.
“얘 뭐야? 영 초짜는 아닌가봐? 아니면 총이라도 주웠거나.”
초대박의 각성 스킬.
틀림없다.
“클클, 특급이랬잖아.”
박명운도 흥미가 도는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오래간만에 재밌는 놈이네. 어? 용병면허도 없이 던전도 갔다 왔네. 얘 이미 소속 있는데?”
“편법일 거야. E급 용병 하나랑 같이 들어갔는데, 혈석 정산은 전부 박수호 명의로 받았어. 이게 뭘까?”
“얘가 사냥 다 했나 보네.”
“맞아. 클리어 타임도 짧아. 용병면허만 없지, 개인 전투력이든 사냥능력이든 최소 C급 정도로 봐야 해.”
“이거 점점 궁금해지네.”
공개불가 정보들이 하나씩 밝혀지며 드디어 각성스킬도 드러났다.
“음? 구현계?”
“이게 뭐야?”
박수호의 각성스킬이 터무니없었다.
“물? 빵? 이거 꽝인데?”
강민혁과 박명운이 동시에 벙쪘다.
“하, 이게 뭐야?”
강민혁은 갑자기 담배가 당겨 입술을 만졌다.
이딴 각성 스킬을 가지고 C급을 생포해? 말이 안 된다.
박명운이 혀를 내둘렀다.
“이게 말이 되나. 얘 정말 C급 잡았어? 뭐, 무공 같은 거라도 배웠나?”
그냥 흘리는 말에 강민혁이 눈을 번뜩였다.
“맞아. 묘하게 여유있는 놈이었어. 그놈 눈빛이…….”
진짜 무공을 배웠거나, 타고난 싸움꾼이던가, 아니면 특수부대…….
“어?”
새롭게 블록해제된 정보를 보고 박명운이 흥미로운 얼굴을 했다.
“이 새끼, 한 10년 정보가 붕 뜨는데? 행불이었네?”
“행불?”
“각성추정 시간은 어제. F가 10년이나 차원 넘었을 리도 없고……. 이거 냄새나는데?”
강민혁도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국가소속이었나?”
어디 특수 임무라도 다니던 공작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강민혁이 인상을 썼다.
“각성 스킬빨인 줄 알았는데…….”
특수훈련을 받고 최소 10년은 활동한 베테랑 요원이라면 레벨 1 던전 따위야…….
“텄네. 클클.”
“젠장.”
스카웃이고 나발이고 날아갔다.
나라가 음지에서 활동하던 정예요원을 양지로 끌어올려 쓰려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