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29)
130화 구천지옥 (3)
슈아아아.
비룡에게 매달려 가는 마차는 창을 닫고 있어도 바람 소리에 시끄러웠다.
“정말 따라갈 거야?”
“물론이오.”
“음, 좋아. 받아 주지.”
사소한 오해가 있었지만 복수를 마치는 순간 당진철은 수호를 따르기로 했다.
고향 행성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몸소 경험한 수호로서는 그의 선택이 염려되었으나, 본인의 의지가 확고하니 굳이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일이 벌어지면 난 한 달도 못 살 거요.”
무림공적이란 꼬리표가 붙으면 그렇게 된다.
무림맹 모든 가문들과 무사들의 표적이 되는 일인지라 그들이 전부 멸망하든, 당사자가 죽든 해야 끝나는 것이다.
무림맹 본단을 초토화시킨다고 해도 강호에 고수들은 많고, 더군다나 당진철 같은 일류고수들은 발에 차일 정도로 많다.
무림맹과 싸우고 구천 행성에서 살 방법이 없는 일이니, 죽거나 수호를 따라가거나 선택지는 둘뿐.
“나야 좋지. 무공 과외도 가서 하면 되잖아.”
애초부터 차원이동 목표는 셋이었다.
구천 행성의 관찰, 복수, 조카의 무공 유학.
선생을 직접 데려가는 것이니, 복수만 마치면 할 일은 다 끝나는 셈이다.
아직 추가로 생긴 공적수치에 대한 것은 모르겠지만, 짐작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 번 더 접촉하면 오르겠지.’
일전에 수호가 구천 행성의 ‘코드’가 없었을 때 벌인 일들은, 이후 코드를 획득하고 비석을 통해 증명하는 순간 소급되어 공적 점수를 받았다.
이후에 문씨세가를 나서며 수많은 무림고수들과 싸웠으며, 무림인들의 기준으로 믿을 수 없는 싸움도 이겨버렸다.
그 뒤로 이무기에는 못 미치지만 여러 영물들도 길들였으니, 또 한 번 증명의 비석 앞에 자신을 증명해 보이면 역사의 축복을 받으리라.
내력 스탯과 기공 스탯이 오르는 확실한 보상이 있긴 하지만, 증명의 비석이 꺼려지는 것은 그 불쾌한 느낌 때문이다.
마치 발가벗은 상태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기분.
굳이 그 불쾌한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진 않으니 중간 정산은 하지 않고,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가기 전에 딱 한 번 정산 받을 작정이었다.
정상적 운기법으로 축적할 내공과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수치 상승이 있으니, 정산을 받지 않고 갈 수는 없다.
“이제 남궁 머시기만 처치하면……. 응?”
수호는 창밖으로 보이는 무리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야, 야수문에서 고수들이 어디 다 나갔다더니, 여기 있었네.”
남만까지 가서 야수문을 털었으나 그다지 고레벨의 야수들은 얻지 못했다.
대부분 덜 자란 새끼들이거나 아직 교육을 마치지 못한 녀석들이고, 어쩌다 너무 포악하여 길들이지 못한 고레벨 야수를 운 좋게 얻었을 뿐이다.
대충 보이는 야수 전력만 해도 야수문 본거지와 비교해서 훨씬 좋아 보이는 대규모 무리.
수호는 즉시 비룡의 고도를 낮췄다.
*야수문주 구낙수는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역사 이래 가장 화려한 구성을 갖춘 대규모 출정이다.
처음은 좋았다.
평소였다면 저마다 창칼을 쥐고 나와 앞길을 막았을 무림맹 녀석들이 순순히 길을 내어주었고, 협조적이기까지 했다.
규모에 놀라고, 마몬족 사냥이라는 자신들의 뜻을 받아들여 길을 터주는 거라 생각했다.
“야수문 본거지가 습격당했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달려온 전령의 말에 그것이 순진한 착각임을 깨달았다.
“당했구나!”
야수문의 위용에 놀라서 길을 비켜준 게 아니었다.
남만과 멀어지도록 일부러 그들을 저지하지 않고 보내준 것이다.
그렇게 멀어진 때를 기다려 소수정예로 남만 본거지를 기습한 것이다.
“적은 몇이냐!”
“다섯이었습니다.”
“이놈들이!”
다섯 명이서 본거지로 들어갔다면 적어도 초절정 고수 이상이 아니겠는가? 화경의 고수도 몇 끼어있을지도 모를 일.
남만 야수문에서 화경의 고수라면 구낙수 본인뿐이다. 은거한 전대 고수들이 몇 있긴 하지만 거의 야수문과 인연을 끊으신 분들이니…….
“이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놈들!”
구낙수는 회군을 두고 갈등했으나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이대로 돌아가면 아무런 소득이 없이 무림맹 놈들에게 놀아난 꼴이 된다.
이미 무림맹 본단의 지근거리까지 당도했으니, 놈들에게 적어도 상처는 주고 떠나야 하지 않겠는가.
얻어맞고 침묵하는 건 무림 가문이 아니다.
원한을 묻어두고 복수의 날을 기다리든가, 맞서 싸우는 기개를 보여주리라.
“문주, 조심하셔야 합니다. 침입 고수중 하나가 야수들을 순식간에 보이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흥! 환술 따위에 휘둘릴 본문의 고수들이 아니다.”
지금 구낙수의 고수들과 숙련된 조련사들이 이끄는 야수 전력이 진짜배기다. 본진에 남아있을 미숙한 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때부터 야수문의 거친 진군이 시작되었고, 무림맹까지 오는 길에 있는 몇몇 마을이 참화를 입었다.
얌전히 진군해 오던 그들이 약탈과 방화를 일삼자 무림맹 무사들도 대응에 나섰고, 무림맹 본단의 하루 거리에 전선이 만들어졌다.
“대형! 확 밀어버립시다.”
“여기까지 와서 망설일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전선이 고착화된 지 하루 만에 수하들이 재촉했다.
하지만 구낙수는 하늘을 찌를 듯한 수하들의 사기에 위화감을 느꼈다.
‘약탈이 독이 됐어.’
몇몇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제대로 된 고수들은 없었고, 쭉정이들과 양민들뿐이었다.
당연히 피해 없는 승리에 수하들의 사기는 올랐으나 덩달아 방심이 커졌다.
지금 저 너머에 대치중인 무림맹 고수들은 한눈에 봐도 정예들인데 다짜고짜 밀어버리자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라버니.”
“왜?”
여동생 구운소의 부름에 퉁명스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사곡의 곡주인 그녀만 남만에 남아 있었어도 걱정이 덜했을 터인데.
“하루만 시간을 줘요. 사곡의 고수들을 이끌고 후방으로 가 놈들을 치겠어요.”
은밀한 우회기동과 기습이 특기인 그녀다.
확실히 해봄직한 작전.
“후방은 무리다.”
후방을 노리기엔 무림맹 본단이 버티고 있고, 제대로 된 정보도 없다.
“적의 측면을 노려 기습하면 일거에 들이닥쳐 놈들을 쓸어버리자.”
“좋아요. 사곡에서 이번 일에 목숨을 걸겠어요.”
자신의 고집으로 출정에 따라나와 본거지 습격의 책임을 느낀 구운소의 각오는 사뭇 비장했다.
“좋아. 코끼리들이 돌진하면 신호에 맞춰 기습해라.”
“네, 두 시진만 주세요.”
우회 기동해 측면을 치는 작전이다.
사곡의 뱀들이 난전에서 큰 역할을 할 터이니, 기대해 봄직한 작전.
구운소가 사곡의 고수들 수십을 이끌고 천천히 숲으로 몸을 빼냈다.
“뿌우우우!”
“크아앙!”
야수문은 전열을 정비하며 곧 돌격할 듯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무림맹 무사들이 그에 대응하기 위해 여기저기 거마창 같은 장애물을 세우고 돌격에 대비했다.
한 번의 돌격 이후엔 어차피 난전이다.
무림맹 고수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고수들의 수가 많은 자신들이 질 거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희생이 따를 것임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잘 길들여져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덤벼드는 야수들은 확실히 성가신 놈들이다.
난전에서 확실히 예상치 못한 일격이나, 사각에서 날아온 공격에 치명상을 입는 일이 잦으니까.
그래서 그럴까?
전선의 선두에 배치된 선 이류, 삼류 무사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 전투에서 희생자가 난다면 자신의 부대에서 가장 많이 나리라.
전장을 정리하는 것은 아마 중진과 후방에 위치한 일류고수들과 절정고수들이 맡을 것이다.
‘고기방패.’
평생을 무예를 연마한 그들의 운명은 딱 그 정도이지만, 여기서 살아남아 공적을 인정받으면 그들도 후방에 포진한 고수들이 될 수 있다.
‘마인을 처단하는 일이다.’
역사에 증명하고 축복 받으리라.
양 진영의 무사들이 곧 있을 충돌을 느꼈는지, 전장에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차츰 피어나는 살기에 야수들도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가운데, 비룡 하나가 나타나 전장 위를 맴돌았다.
“이야, 많이도 몰려 있네.”
수호는 비룡을 착륙시키지 않고 마차 문을 열었다.
“위에 있어. 나 혼자 갔다 올 테니까.”
“삼촌, 조심해요.”
“오냐.”
수호가 마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슈아아악. 쿠우웅!
흙먼지를 피워 올리며 떨어져 내린 곳은 공교롭게도 전장의 한복판.
양 진영의 무사들이 서로 경계하는데, 수호는 무림맹을 등지고 야수문 진영을 향해 걸어갔다.
“와, 가까이서 보니까 더 크네.”
코끼리라는 게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거의 비룡이 엎드려서 걸어다니는 것 같은 육중한 덩치.
“다들 위에 태운 거 버리고 나랑 살자.”
“뿌우우우우!”
수호는 길들이기 스킬에 거부하는 코끼리들을 보며 발을 굴렀다.
콰아앙!
그의 내력이 담긴 진각에 땅의 정령이 응답했다.
꾸구구궁!
발이 닿은 땅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더니 점점 앞으로 확산되며 땅 자체를 뒤집어 버렸다.
“어어?”
지반 자체가 푹 꺼지고 불쑥 튀어나오자 덩치 큰 코끼리들은 기우뚱거리며 제대로 서 있지를 못했다.
쩍 갈라진 땅 사이로 매몰되는 녀석들도 있었고, 요리조리 피하는 표범 같은 녀석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데 밀집해 있던 와중에 저들끼리 꺼지는 땅을 피하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몇 넘어왔네?”
내공으로 강화된 ‘대지강타’ 스킬에 대다수의 코끼리들이 전투불능에 빠지며 수호의 길들이기에 넘어왔다.
파파팟!
코끼리들이 야수 쉼터로 소환되며 사라지자, 야수문 문주 구낙수가 분노를 터트렸다.
“네놈이구나!”
맹수들을 사라지게 하는 환술이라니!
구낙수를 태운 호랑이가 여기저기 엉망이 되어버린 땅을 훌쩍 뛰어넘으며 돌진해왔다.
“범위는 좋은데 위력이 별로네.”
대기강타는 적의 전열을 무너뜨리기 좋지만, 날쌘 고수들에게는 별로 통하지 않았다.
야수들도 날랜 놈 위주로 절반은 남았고, 고수들은 피해 입은 사람이 적다.
경신법이 능한 구천 행성에서 대지 강타는 필요로 하는 에너지에 비해 별 쓸모없는 효용의 스킬.
“이노오오옴!”
호랑이를 타고 뛰어든 구낙수가 창을 내질렀다.
수호는 미간을 노리고 찔러오는 그 창을 고개를 젖혀 피하곤 두 손으로 잡아챘다.
후우우웅!
구낙수는 당황했다.
자신의 공격을 피한 것도 놀라운데, 창을 쥐고 역으로 힘을 줘 자신을 들어 메치려 했다.
‘어딜!’
허벅다리에 힘을 꽉 주고 자신의 오랜 친구인 대호의 허리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대호는 천 근이 넘는…….’
자신만만하던 구낙수가 다시 당황했다.
끼기긱.
활처럼 휘어진 창대가 부러질 듯 비명을 질러대기에 내력을 주입해 강화했는데, 그게 실수가 되었다.
창이 부러지는 대신 그대로 대호와 함께 하늘에 떠 땅에 처박혔다.
콰앙!
낙법으로 피해 큰 충격은 없었으나 황당함이 가시지 않았다.
“말라깽이가 힘이 제법이구나!”
덩치가 자신의 절반 수준인 놈이 천근추도 제법이고, 타고난 신력도 대단하다.
얼른 낙법하고 창을 쥐고 대비하려는데 놈은 달려들지 않고 있었다.
퍽, 퍽, 퍽!
“나랑 가자. 나랑 가!”
“이, 이놈이!”
자신의 오랜 친구 대호를 개잡듯이 패고 있었다.
슈아악!
분노한 구낙수의 창이 수호의 허리를 노리고 찔러 들어갔으나 다시 그놈의 손아귀에 잡혀 버렸다.
‘금나수?’
아니, 금나수의 수법도 저리 과감하고 압도적이진 않으리라. 검기 두른 창이 놈의 손아귀에서는 그저 막대기 수준으로 변해버렸다.
“넌 기다려 봐.”
지금 수호에게 사람은 관심 밖이다.
호랑이를 보곤 사랑스러운 눈빛을 하고 주먹을 다시 내질렀다.
“넌 나랑 꼭 가자!”
퍼억!
쿠로보다 덩치는 왜소하지만 그 녀석을 꼭 닮은 털. 이놈과 변신하면 얼마나 멋질까?
퍼억, 퍽!
“나랑 같이 살자!”
수호의 주먹이 다시 호랑이의 면상을 두들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