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9)
30화 생환
“준호 형. 저희 왔어요.”
“아빠!”
“뭐하러 왔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준호의 얼굴엔 반가움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할머니가 주래요.”
아들이 이숙자가 싸준 도시락을 건넸다.
대수롭지 않은 이들의 만남을 찍어대는 카메라가 있었다.
찰칵, 찰칵.
이쪽을 주시하는 시선도 여럿.
수첩에 뭔가를 적는 자들 또한 여럿.
“들어가자.”
컨테이너에 들어가자 제법 널찍한 휴게실이 나왔다.
“어유, 기자놈들 승냥이처럼 눈 벌게진 거 봐.”
“아빠. 집으로는 언제 가요?”
“큰아빠가 돌아오실 때 아무도 없으면 섭섭하잖니? 그래서 잠깐 기다리는 거야.”
사실은 시위다.
복수심 반, 관리국의 요청 반으로 이 자리에 있다.
“형님. 이 짓을 꼭 해야 합니까? 그냥 돌아가죠?”
“관리국이랑 굳이 척질 필요 없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열받잖아요. 제대로 기다려보지도 않고 죽은 사람 취급이나 하고.”
격앙된 동수의 말에 준호가 씁쓸히 웃었다.
타국에 뺏길세라 언론까지 통제하며 수호의 정보를 감추던 정부가 하루 만에 태도를 뒤집었다.
수호가 귀환자인 것을 언론에 보도자료까지 돌리고, 심지어 그가 4세계 행성에서 귀환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차원산업 시대에 신세계로의 게이트가 가지는 가치를 생각하면 대한민국은 엄청난 기회를 날린 셈.
정부의 움직임에 동조한 여론은 도시의 방위를 담당하는 길드들의 도덕성과 허술한 관리를 규탄했다.
이 모든 게 가능한 이유는 박수호가 죽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게 상식이니까.”
레벨 5. 별이 다섯 개인 던전이다.
그것도 상급에 속하는 오크캐슬.
30인의 B급 풀파티 혹은 A급 10인을 포함한 10~30인의 공격대 조합을 권하고 있는 곳이다.
단 2명의 파티로는 무리다.
S급 이상의 각성자. 그것도 오래토록 손발을 맞춰왔으며 다재다능한 여러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나마 생존이 가능할까?
이레귤러 F급 각성자.
관리국에서 평가하는 박수호의 전투력은 A급 정도다.
거기에 B급 각성자 최수영이 더해졌다고 해도 어려운 생존확률이다.
“쳇, 정부놈들 이렇게 신뢰가 없어서야.”
동수가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막말로 최 팀장이 1인분 할 때 수호 형님이 19인분 하면 깨는 거잖아요?”
“그래. 형님이라면 무조건 살아 돌아오실 거야.”
굳게 믿으면서도 간절하게 기도하는 둘이었다.
*
기자들도 밥은 먹어야 산다.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시선은 현장에 가있다.
“어휴, 이걸 언제까지 찍고 있어야 돼냐.”
“왜요? 그림 좋잖아요.”
포탈 앞에는 몇몇 소수의 시위단체, 박수호의 가족과 최수영의 감지11팀 팀원들도 나와서 시위에 동참하고 있었다.
가능성이 아주 낮지만 생환을 바라며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이 좋은 그림이 된다.
피해자 가족은 언제나 팔리는 소재다.
“근데 진짜 박수호가 신세계 귀환자일까요?”
신입의 질문에 베테랑 기자가 픽 웃었다.
“기자라는 놈이 순진하게 그걸 믿냐?”
“가능성은 있잖아요?”
“어이구, 안 까고 버린 복권이 당첨인지 아닌지 알게 뭐냐?”
죽었을 테니 영영 깔 일도 없고 말이야.
“그냥 다 쇼야. 정부에서 이번참에 길드들 단속이나 하려는 거지 뭐.”
네놈들 나태함과 관리 부실 때문에 복권을 잃었으니 당첨금을 내놓아라 이 소리다.
“그것도 그러네요.”
“기자라는 놈이……. 큰 그림을 봐야지 임마.”
“하하,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그런데 만약 박수호가 살아 돌아오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말이 되는 소릴 해라.”
“그렇죠? 하하.”
“지가 무슨 이성우라도 된대? 참나. 이레귤러라고 다 괴물이고 그런 게 아냐.”
“넵. 하하.”
“오, 이성우 이야기하니까 헤드라인 하나 딱 떠오르네.”
“어떤 거요?”
“대한민국. 미래의 랭커를 잃다.”
“박수호가 그 정도예요?”
선배기자가 후배의 목을 장난스럽게 툭 쳤다.
“어휴, 생각을 좀 해라. 그 정도면 이미 살아 돌아왔겠지 임마. 어그로잖아, 어그로.”
“하하,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새끼, 아부는.”
한참 시시덕거리는데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어어?”
“나, 나온다!”
두 기자들도 포탈로 시선이 갔다.
“어어?”
본능적으로 움직인 손이 셔터를 눌렀고, 뒤이어 놀랐다.
“늑대다!”
“뭐, 뭐죠?”
“시발, 특종이다!”
“서, 선배님!”
자리를 뺏길세라 부리나케 달렸다.
*
“크르르.”
번들거리던 눈빛은 빠르게 생명의 빛을 잃어갔다.
마침내 오크로드가 숨을 다했다.
“또 오르네.”
오크로드가 보스라 경험치가 많긴 한가 보다.
18에서 좀처럼 오르지 않던 레벨이 단숨에 19가 되었다.
던전 클리어 한 번으로 F급이 곧 D급이 되게 생겼다.
“후, 진짜 잡았어.”
최수영이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박수호를 보는 눈빛이 전과 많이 달라져있었다.
규격 외.
이레귤러라 불리기 충분한 능력 아닌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빚졌네요.”
“뭘?”
5성 던전인 걸 알고 지레 포기했던 최수영이다.
“덕분에 살았다고요.”
“난 또.”
수호가 픽 웃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기회 되면 신세 갚을게요.”
“으음.”
세계최강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강한 여자다.
한번 까였으니 부인으로는 무리라도 부하로는 탐날 인재다.
“부하로 받아줄게.”
“뭐요?”
“내 클랜에 들어와.”
“하, 시발.”
스카웃 제의를 이렇게 싸가지 없고 기분 나쁘게 하는 것도 재주다.
“싫어요.”
“두 번 까였군. 싫으면 말고.”
탐나지만 절실할 정도의 인재는 아니다.
“얼른 나가자고.”
오크왕이 걸치고 있던 장비들을 모조리 벗겨내 인벤토리에 넣었다.
전리품도 짭짤하고 경험치도 대박을 쳤다.
공략시간이 일주일이나 걸린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음번 공략에선 그것보다 배는 더 빨리 할 자신이 있었다.
“크르르.”
“늬들도 가자.”
오크라이더들이 부리던 늑대들은 이미 종속된 녀석들이라 ‘길들이기’가 먹히지 않았다.
“아이고, 귀여운 녀석들.”
운 좋게 오크캐슬의 늑대 사육장에서 아직 덜 자라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늑대 녀석들을 구했다.
전투력 620
오크들이 기르던 늑대.
오크주술사의 낙인이 찍히기 전 구출 되었다.
아직 성장하는 중이다.
덜 자란 녀석들이라 해도 덩치가 지구의 늑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다 자라면 황소보다도 더 클 테니 든든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수호보다 야수의 레벨이 높아서 동시에 유지 가능한 숫자에 제약이 생겼다는 것.
19레벨의 수호에게 있어 32레벨 늑대 2마리가 한계였다.
야성 스탯이 더 높아지든가, 수호가 늑대들보다 레벨이 높아지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다.
그때가 되면 수십 마리 늑대 녀석들과 무리사냥을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제 나가자.”
보스를 죽이면서 그 옆에 생겨난 출구포탈이다.
“후, 그래요.”
최수영이 깊은 숨을 뱉었다.
이렇게 살아 돌아가는구나.
정말 둘이서 5성 던전을 클리어하다니.
아니, 사실상 그 혼자서 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싹수야 그렇다 치더라도 실력 하나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파팟!
포탈을 통과하며 잠시 어지러움이 가신 뒤 여기저기서 빛이 번쩍였다.
파파팟!
몇 대의 카메라가 연신 플래시를 뿜으며 생환한 둘을 찍어댔다.
“박수호 씨! 본인 맞습니까?”
최수영의 인상이 굳었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설마 기자놈들?
시력이 돌아오며 주변의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헐레벌떡 모여드는 사람들.
기자들을 뒤로 물리며 막아서는 관리국 직원들.
빌어먹게도 반가운 감지11팀 부하들.
살아 돌아왔구나.
“늑대는 소환숩니까?”
“아, 물러서요!”
“좀, 비키라니까?”
“가까이 오시면 안 됩니다.”
뒤엉킨 사람들의 악다구니에도 수호는 가만히 서서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
전엔 기자들이 까마귀 같다고 생각했다.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전에 인터뷰 한번 해주려고 했었는데 기회가 없었다.
“박수호 씨! 생환을 축하드립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십니까?”
수호의 귀에 꽂히는 목소리에 그쪽으로 돌아봤다.
“기분이 어떠냐고?”
“그, 그렇습니다.”
“좋지.”
전리품만 처분해도 몇 억은 나올 터다.
거기에 경험치도 쏠쏠찮게 올렸고.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무슨 계획?”
“거취라든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그냥 던전이나 돌겠지.”
그때 기자들을 막으며 관리국 직원들이 몰려왔다.
“박수호 씨. 모시겠습니다.”
“늬들이 왜?”
“예? 김미소 팀장님이 모시라고…….”
“됐어. 저기 우리 식구 있네.”
“하지만…….”
최수영이 직원을 만류했다.
“보내드려.”
“…….”
“내가 책임진다. 비켜.”
“알겠습니다.”
수호가 움직이자 그 뒤로 동상이라도 되는 양 굳어있던 늑대들이 움직였다.
“크르르.”
“으으.”
우르르 몰렸던 사람들이 분분히 물러났다.
황소만 한 늑대 둘이 보디가드처럼 뒤따르니 아무도 접근할 엄두를 못 냈다.
수호가 다다른 곳은 준호와 동수, 건후가 멀뚱히 서있는 컨테이너 앞이었다.
“여기서 뭐하냐?”
“형…….”
“설마 나 기다린 거야?”
“그걸 말이라고……!”
준호는 울컥하는지 말을 삼켰다.
5성 던전에 단둘이 들어가서, 일주일 만에 나온 사람이 이리도 태연할 수가 있다니?
“이야, 이거 색다르네.”
준호는 머쓱한지 뒤통수를 긁적였다.
자신을 걱정해주고 기다려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고 신기하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가자. 오랜만에 쉬고 싶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쏠쏠한 경험치 때문에 다시 던전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럴 마음이 싹 가셨다.
미친놈처럼 사냥만 하고 살 생각은 없다.
지구로 돌아온 이유가 뭔가?
“오늘은 맛난 거 좀 먹자.”
“회식 좋죠! 얼른 가시죠.”
동수가 잽싸게 차로 안내했다.
늑대 두 마리가 다소곳하게 앉은 채로 픽업트럭이 출발했다.
최수영이 떠나는 트럭을 한참 응시하다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야, 최수영! 괜찮냐니까?”
“어? 어. 언니가 웬일이야?”
“웬일은!”
부은 김미소 팀장의 눈을 보니 굳이 묻지 않아도 알 듯했다.
“기다려봐.”
사적 감정만을 챙기기엔 그의 직함이 컸다.
귀환자관리팀장 김미소를 향해 질문을 쏟아내는 기자들을 보며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는 추후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잃을 뻔한 두 명의 귀한 인재가 돌아온 것에 그저 감사합시다.”
“팀장님! 하나만 묻겠습니다. 박수호 씨가 정말 신세계의 귀환자가 맞습니까?”
김미소의 볼살이 씰룩였다.
‘좀 기다리자니까.’
수호가 귀환자라는 것을 언론에 알린 것을 관리국장의 성급함만으로 탓하기엔, 자신도 그리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 생환에 대한 확신이 없었으니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죽을 거라 생각한 그가 버젓이 살아 돌아왔고, 이제 와서 그의 정체를 숨겨봐야 우스운 일이다.
정보 통제는 물 건너갔다.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그 한마디에 기자들이 앞다투어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는 모두 외면하며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추후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수영을 챙겨 김미소가 떠나자 기자들이 재빨리 이동을 시작했다.
몇몇은 회사로 복귀했고, 몇몇은 그대로 박수호가 간 수호 클랜으로 향했다.
언론사들이 앞다투어 수호의 존재에 대한 기사를 올렸고, 우라까이한 기사들마저 조회수가 수십만을 찍었다.
검색어 순위는 1위는 당연한 일.
그리고 동수 채널의 조회수가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