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5)
36화 흔적 (1)
수호가 앞서가고 그 뒤로 날이 바짝 선 클로를 양손에 낀 수영과 단검을 쥔 준호가 뒤따랐다.
다섯 걸음 뒤에는 카메라맨과 줍줍 담당의 서민수 대리와 한동수가 자리잡았다.
“저희 이렇게 그냥 가도 돼요?”
“그럼 어떻게 가는데요?”
“좀 경계도 하면서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수호 형님이 앞에 가시잖아요.”
“……?”
‘아니, 그게 왜?’라는 의문을 삼키며 추가로 물었다.
“보통은 던전 들어가면 정찰대 운용하지 않나요?”
“예? 이 인원으로요?”
동수의 말에 서민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망할, 애초에 5명 공격대가 말이 안 되지.’
못해도 10인, 보통 15~20인으로 꾸려지는 게 공격대다.
“앞에 세 놈 있다.”
수호의 말에 최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 나서지 말고 뒤에 있어.”
“알았어.”
레벨4 던전에서 F급 각성자가 전면에 나서봐야 고기방패가 될 뿐이다.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취직!”
긴 혀를 날름거리며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 건 붉은 피부의 기괴한 생명체였다. 손에는 창이 쥐여져 있었는데 희한하게 다리가 없었다.
“와, 이상하게 생겼다.”
수호의 짧은 감상에 최수영이 그러려니하며 설명해줬다.
“리저드맨이네요.”
붉은 도마뱀인간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수호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취직! 취직!”
퍼퍽! 쿵!
수호가 맨손으로 다가가 리저드맨의 창을 뺏어 머리통을 한 대씩 쳐줬다. 목이 돌아가 즉사한 리저드맨들이 자신들의 에너지를 헌납했다.
“여기 쏠쏠하네.”
지금 레벨은 19.
세 마리 잡아서 이 정도면 보스 만나기 전에 20레벨 달성도 가능할 성싶었다. 탐색마법으로 확인해 보니, 시체 두 구에서 아직 차원에너지가 남아있었다.
“동수야 저 두 놈 갈라봐.”
“넵, 형님.”
“저건 내가 할게.”
“네, 작은형님.”
동수와 준호가 죽은 리저드맨 둘의 가슴을 갈랐다.
“와, 겁나 질기네.”
거의 톱질하듯 피부를 갈라 조약돌만 한 혈석을 꺼내왔다.
“그거 꺼내는데 무슨 용을 그렇게 쓰냐?”
“엄청 질겨요.”
“이걸로 해봐.”
수호가 인벤토리에서 잘 벼려진 단검을 꺼내줬다.
최수영이 익숙한 단검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거 제가 준 거잖아요?”
지난 레벨5 던전 오크캐슬에서 사용하라고 준 거다.
“줬다 뺏냐?”
“쳇, 됐어요.”
제법 값나가는 도축용 단검이지만 마법검도 아니고 쩨쩨하게 다시 뺏고 싶지는 않았다.
“준호 네가 해봐.”
“응.”
엉겁결에 단검을 받은 준호가 리저드맨을 해부하듯 갈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보다 쉬워.”
“흐음, 어쩌면 사냥할 만하겠는데.”
서민수와 최수영은 외부인이니 사냥에 끼워줄 마음 자체가 없었지만, 동수와 준호는 다르다.
길드 부하들을 언제까지 레벨1 던전이나 돌도록 놔둘 수는 없다.
스스로 크는 게 늦다면 길드 대장으로서 훈련시켜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길드 앞마당에 버젓이 레벨4 던전이 생겼는데 괜히 입장료 장사해서 외부에 개방하고 싶지는 않았다.
“잠깐 기다려 봐.”
여긴 야생세계지만 야생이 아니다.
덩치를 키우고 발톱을 세우고, 단련하지 않아도 강해질 방법이 있다.
– 소모품
– 장비
– 스킬
스킬은 양도가 불가능하다.
소모품이나 장비 중 아공간 주머니같이 몇몇 특이한 물건들도 양도가 불가능하지만, 그 외 대부분의 장비는 주는 게 가능했다.
명진에게 준 목탁이나, 지금 준호에게 사줬던 검 같은 무기들.
본신의 힘이 약하면 템빨로 강화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너 장검 쓰지 않았냐?”
“클랜 사무실에 두고 왔어.”
“쯧, 사냥 오면서 검을 두고 오냐.”
“…….”
본래 목적이 도시락 배달이었지만 말해봐야 핑계로만 들릴 것 같아 준호는 침묵했다.
“하긴, 단검이든 장검이든 별 도움 안 되긴 하지만.”
“…….”
형이 왜 저럴까?
지난 한 달 동안 도시락 셔틀을 꾸준히 해줬건만 도대체 인성이 터진 이유가 뭘까?
애초에 레벨4 던전에서 F급 각성자가 활약하길 바라는 게 잘못 아닐까.
“형, 내 생각엔…….”
“이거 적당하겠네.”
수호는 무려 500포인트나 하는 검을 구입했다.
인벤토리가 활성화된 뒤로, 상점에서 산 물건들은 죄다 인벤토리에 보관되었다.
팟.
수호는 방금 구입한 검을 꺼냈다.
죄수들의 목을 칠 때 사용하던 검.
잘 벼려져 있어 어지간한 모가지는 한 방이다.
얼떨결에 검을 받아든 준호는 눈을 빛냈다.
투박하게 생겼지만 척 보기에도 괜찮은 검이다.
전에 쓰던 것보다 무게가 조금 더 나가고 길지만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그거 써.”
“혀엉…….”
준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르지 않는 형님의 은혜를 어찌 갚을 것인가.
“일단 연습으로 한 마리 해보자. 백구야.”
“멍!”
“근처에 몇 놈만 데려와 봐.”
“으르르, 왈왈!”
주군의 명령을 받은 장군처럼 비장한 얼굴로 숲으로 뛰어간 백구는, 곧 리저드맨 4마리를 달고 꽁지 빠지게 도망치듯 돌아왔다.
“취직! 취직!”
리자드맨 4마리를 발견하자 수호는 세 마리의 목을 꺾어 버리곤 한 마리만 남겼다.
“취, 취직!”
“그래 취직시켜 줄게.”
수호는 구직 의지가 남달라 보이는 리자드맨의 창까지 뺏은 다음 준호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쟤랑 싸워봐. 면접이야.”
“취직?”
“그래 임마.”
긴 혀를 날름거리던 리자드맨은 수호보다 배는 더 약해보이는 준호를 보곤 이미 죽어버린 동족의 복수를 다짐했다.
저 약한 인간이라도 죽여버리리라.
“취직!”
다리 없이 빠른 게 어찌 소문뿐이랴.
리자드맨은 긴 꼬리를 몇 번 흔드는 것만으로 준호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흐읍!”
준호는 자신의 유일한 스킬인 ‘참수’를 발동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은 용기와 자신감을 주고 손에 쥔 검은 새털처럼 가볍다.
슈아앙!
아름다운 궤적의 끝에 리자드맨의 목이 있다.
후웅, 퍽!
검이 허공을 가르고 리저드맨의 펀치가 준호의 몸통을 때렸다.
“허윽!”
헛바람을 들이킨 준호가 악을 쓰며 리저드맨의 후속공격을 대비했으나, 이미 리저드맨은 수호에게 붙잡혀 바닥에 패대기쳐지고 있었다.
“이 새끼, 내 동생 때리네?”
“취직!”
“취직은 개뿔. 넌 탈락이야.”
우드득.
“취직! 취지직!”
두 팔을 꺾어버려 고통에 몸부림치는 리저드맨을 발로 밟고 수호는 동생을 불렀다.
“와서 죽여 봐.”
“어흑.”
안전이 확보되자 준호는 바닥에 엎드려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야 안 죽어. 빨리 와서 목 따.”
“나 갈비뼈 나갔다고!”
“아, 엄살은……. 동수.”
“넵! 형님.”
뒤에서 따르던 동수가 재빨리 튀어나왔다.
“얘 처리해라.”
“넵!”
최수영이 수호에게 준 단검은 준호를 거쳐 동수에게 가 있었다.
“히얍!”
“취직! 취지익!”
동수는 긴 혀를 날름거리며 특유의 비명을 지르는 리자드맨의 위에 올라타고 사정없이 단검을 내질렀다.
“취이이이.”
과다출혈로 죽어버린 리저드맨의 모습도 잠시.
“오옷! 저 등급 오른 것 같습니다.”
매번 레벨1 던전만 돌던 동수다.
그러다 생애 첫 경험하는 레벨4 던전의 고위 몬스터 사냥으로 한 번에 한계를 허물었다.
레벨 10 – E
유튜버
영상기억, 도축
“오, 진짜네.”
관찰스킬로 살펴봐도 동수의 레벨이 올랐다.
등급이 오르면 몸이 느낀다. 더욱이 각성스킬이 하나 더 붙을 정도면 모를 수가 없다.
“오오! 막 살인을 더 잘할 것 같아요.”
들뜬 동수의 목소리에 수호는 업적상점에서 도축스킬을 찾아 슬쩍 열람해봤다.
고기나 부산물을 얻기 위해 대상을 죽인다.
제압된 대상에게 효과적.
동수에게 혈석채취를 많이 시키긴 했나 보다.
“아흑.”
“괜찮냐?”
“아, 뼈, 뼈.”
여전히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는 준호를 보곤 상점에서 치유포션 하나를 구입했다.
“이거 먹어봐.”
“후우.”
심호흡을 하며 겨우 상체를 일으킨 준호가 치유포션을 삼키자 표정이 빠르게 좋아졌다.
“이거 포션이야?”
“어, 이런 것도 파네.”
“와, 포션도 상점스킬로 사신 거예요?”
동수도 관심을 보여 왔다.
“그거 막 사다가 팔기만 해도 우리 부자 되는 거 아녜요?”
치유포션은 한 병에 100만 원은 한다.
수억 원대의 장비나 스킬북보다는 싸지만, 수요가 많은 물품이다 보니 무시 못 할 돈벌이가 된다.
“으음.”
치유포션 하나에 업적포인트가 30이다.
가장 기본 스킬북이 100포인트인 걸 감안하면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돈과 업적포인트.
돈은 혈석만 주워 팔아도 벌지만 업적포인트는 한계가 있다. 수호의 레벨이 높아질수록 저레벨의 몬스터를 잡을 땐 업적포인트가 차츰 줄어들어 종래엔 0이 된다.
고블린 수십 마리를 잡아야 겨우 업적포인트 1을 획득하는 걸 보면, 가치의 비교우위가 어디에 있는지는 명백했다.
“그래도 마음 놓고 훈련시킬 수는 있겠네.”
업적포인트가 귀하다지만 어디 부하들 목숨만 할까.
위급시에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상점에서 치유포션을 미리 구매해놓으려 했다.
“으음.”
업적상점 스킬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지난번 아공간 주머니 때도 한계 구매수가 있었는데, 포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모든 아이템 스킬들이 재고가 다를 것이다.
‘오늘은, 이란 단서가 붙은 게 다행인가?’
겨우 5통의 치유포션을 샀다.
아직은 업적상점 스킬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다.
내일 구매 가능한지 다시 알아보면 된다. 일단 지금은 다섯 병의 포션을 산 것에 만족했다.
“정비했으면 가자. 준호랑 동수는 한 마리씩 던져줄 테니까 잡아봐.”
“후, 알았어.”
“감사합니다. 형님.”
동수가 넙죽 엎드렸다.
자신의 몫까지 챙겨줄 줄이야.
이것이 말로만 듣던 쩔이 아닌가?
금수저만 가능하다던 고위용병 쩔 버스를 자신이 받게 되다니.
역시 이 길드에 들어온 것은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저쪽에 다섯 놈이다. 가자.”
“네, 형님!”
셋이 수풀을 헤치며 먼저 가자 서민수가 입을 쩍 벌렸다.
하는 짓을 보면 무슨 조폭들 같은데 무대가 무대다 보니.
“여기 4레벨 던전 맞죠?”
“어.”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금수저 도련님이 용병 수십 고용해서 던전 돈다는 소리는 들어봤다. 하지만 기껏해야 레벨1이나 레벨2 수준이다.
“레벨4 던전에서 혼자서 두 명을 버스 태운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지금 보잖아.”
“정말, 레벨4 던전에서 이렇게 긴장감 없어도 되는 건지.”
“그러니까 눈에 다 담으라고.”
최수영이 서민수의 등을 툭 쳤다.
“얼른 따라가서 담아. 하나도 놓치지 마라.”
“넵.”
서민수가 보고 들은 모든 게 관리국에 보고될 것이다.
던전 사냥에 있어 베타적인 박수호다. 그의 길드에 입사해 부하라도 되지 않는 이상, 앞으로 또 던전에 함께 올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정보수집이 가능할 때 모아둬야 한다.
최수영과 서민수는 뒤쳐질까 서둘러 수호의 흔적을 따라잡았다.
“죽어라!”
한동수가 팔 빠진 리자드맨 하나를 올라타고 송곳질하듯 단검을 마구 내리찍고 있었다.
팍, 팍!
“후우, 후우!”
박준호가 장작 패듯 팔 빠진 리자드맨의 목줄만 노리고 있었다.
‘저럴 거면 도끼가 낫지 않나.’
서민수가 괜한 의문을 삼키며 박수호를 찾았다.
“어? 거기서 뭐하세요?”
어딘가를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호에게 다가갔다.
“뭘 그렇게 보세요?”
서민수의 시선이 수호가 보고 있는 바위로 향했다.
넓적하고 큰 바위 두 개가 서로 머리를 맞대듯 서있어 꼭 A텐트처럼 보였다.
“어?”
자세히 보던 서민수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 집에 가고 싶다.
– 치킨 먹고 싶다.
– 된장찌개 먹고 싶다.
“아니, 벽화에 한글이 왜…….”
바위에 글씨가, 그것도 한글이 새겨져 있었다.
낙서 같은 짧은 글귀가 수십 개가 넘었는데, 서민수는 본능적으로 한 구절에 시선이 멈췄다.
-아, 하고 싶다. 막 하고 싶다.
서민수가 슬쩍 수호를 돌아봤으나 그의 표정은 그저 심각할 뿐이었다.